[Review] 다시 찬란한 기쁨의 봄이 오리니 - 시가 인생을 가르쳐 준다

<시가 인생을 가르쳐 준다>를 읽고
글 입력 2021.07.11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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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것을 즐기면서도 나에게 시는 여전히 어렵다. 인문학 소설류도 어렵지만, 시의 단어에 함축된 의미를 알아차려 가며 시를 읊는다는 것은 나에게 있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시를 읽는 것만으로도 이유 없이 눈물을 흘릴 수 있을 만큼 좋은 시를 만나고 싶어서 시집 읽는 것 또한 게을리하지 않게 된 이유 중 하나다. 좋아하는 가수이자 작가인 요조는 자신의 친구가 지어준 시의 제목을 읽는 것만으로도 매 순간 까닭 모를 눈물이 흐르곤 한다고 했다. 시가 너무 아름다워서 읽을 때마다, 생각할 때마다 눈물이 흐른다는 것. 나에게는 아직 상상 속의 일이지만, 나도 그러한 평생의 시를 만나고 싶다.

 

'시가 나에게 살라고 한다'라는 시집을 좋아한다. 나태주 시인이 좋아하는 시를 엮어서 만든 시집이다. 그때의 나는 뭔가 고달팠던 것 같다. 그 이유가 회사 때문이었는지, 나의 일상이나 이성문제였는지 지금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자연스레 그때의 나는 스스로 마음에 위안을 얻고자 기도하는 듯한 마음으로 ‘시가 나에게 살라고 한다’ 라는 시집을 찾았던 것 같다. 시라는 것이 사실 단 몇 줄의 글이라 칠지라도 가끔은 수백 장의 글보다도 위안을 줄 때가 있다.

 

어지러웠던 마음을 단어 하나만으로도 중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시가 가진 큰 힘이라는 것을 그때 처음 느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나태주 시인이 저자인 시집을 여러 가지 의미로 좋아한다. 아직 이렇다 할 외우는 시는 없지만, 그분의 생각과 시선으로 고른 시라면, 이유 불문하고 함께 공감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믿음이 있다. 초등학교 교사였다는 나태주 시인은 섬세하고 감성이 따뜻한 느낌이 가득하다.

 

‘시가 인생을 가르쳐 준다’의 시집도 그 연장 선상이다. 각각의 시에는 나태주 시인의 짤막한 설명이 덧붙여 있다. 시에 관한 그의 생각과 이야기로 하여금 함께 내 생각을 덧붙여 볼 수 있다. 함축적인 의미까지 우리가 정확히 알 필요는 없다. 어려웠던 그동안의 시와 비교해 보면 이 시집에 나와 있는 시는 그 자체로도 술술 읽히며 의미를 유추해 볼 수 있다. 일차원적인 깨달음이 주는 감동도 나는 무척이나 좋았다.

 

김남조 시인의 ‘너를 위하여’는 사랑하는 부모님의 자식에 대한 원초적인 사랑을 떠올리기도 했고,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의 무엇이든 열심히 였지만, 어설프기도 해서 속도 많이 상했던 나의 지난 시절이 떠오르기도 했다. 그럼에도 나를 다독이고 지지해주었던 내 사람들의 사랑을 등에 업고 두둑한 배짱으로 하루하루 소중한 일상을 빼곡히 채워나갔던 지난날이 떠올라 많은 감정을 들게 했던 시라는 생각에 몇 번이고 이 시를 되뇌었던 것 같다.

 

 

너를 위하여

 

나의 밤 기도는

길고

한 가지 말만 되풀이한다.

 

가만히 눈뜨는 건

믿을 수 없을 만치의

축원.

 

갓 피어난 빛으로만

속속들이 채워 넘친 환한 영혼의

내 사람아.

 

쓸쓸히

검은 머리 풀고 누워도

이적지 못 가져본

너그러운 사랑.

 

너를 위하여

나 살거니

소중한 건 무엇이나 너에게 주마.

 

이미 준 것은

잊어버리고

못다 준 사랑만을 기억하라

나의 사람아.

 

눈이 내리는

먼 하늘에

달무리 보듯 너를 본다.

 

오직

너를 위하여

모든 것에 이름이 있고

 

기쁨이 있단다

나의 사람아.

 

- 김남조

 

 

이 시와 함께 나태주 시인이 한 말이 인상적이다.

 

"젊은 날 좋은 시를 만나는 것은 하나의 축복이고 행운이다." 나에게 영감을 주는 것이 좋은 노래일 수도 있고, 좋은 책일 수도 있다. 우연히 보게 된 사진이나 그림이 될 수도 있다. '너를 위하여'처럼 좋은 시 또한, 나 스스로에게 큰 감동일 수 있다. 절대적으로 공감하는 훌륭한 문장이라는 생각이 든다.

 

책은 전체적으로 청년 - 장년 - 노년 - 유년의 4가지 테마로 나태주 시인의 인생에 큰 울림을 주었던 시 125편이 함께 그려져 있다. 보통은 인간의 일생을 나뉠 때, 유년 - 청년 - 장년 - 노년으로 표현하지만, 나태주 시인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는 청년 시절이라고 일컫는다. 그래서 이 책에서도 청년 - 장년 - 노년 - 다시 유년의 순으로 시들을 배열한다.

 

노년을 거쳐 다시 유년, 즉 다시 '봄'을 나타내는 듯해서 이 머리글을 읽는데도 순간 코끝이 시큰했다. 지금의 내 나이가 되었을 때, '맑은 마음'을 지니고 살아가는 이가 과연 얼마나 될까. 나태주 시인은 이 시집을 읽으며 맑은 마음을 품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한다. 군데군데 펼쳐진 초록의 장들과 시의 제목만으로도 마음의 일렁임을 차분한 싱그러움으로 바꾸는 듯한 맑은 기운을 지나칠 수가 없다.

 

테마를 이루는 문장 또한, 자꾸만 되뇌게 된다. 모든 장이 주옥같은 시들로 가득하지만, 이 시집의 마지막 장인 ‘다시 찬란한 기쁨의 봄이 오리니’는 쉬이 이 책을 덮을 수 없게 만든다. 지금의 내가 느끼기에 너무 순수한 감정이 들어서인지, 무엇이 되었든 이별하고 다시 시작하려는 그 마음이 애달파서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이 장을 읽으며 이미 나는 많은 축복을 받은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좋은 시를 하나도 아닌, 이렇게 수백 편의 시를 한 번에 펼쳐 볼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단 생각을 되뇐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

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 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 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 김영랑

 


"오월 한낮 흐드러지게 피어오른 모란꽃 속에서 누군가 천년 전에 살았던 한 사람이 나와서 잠시 들려주고 다시 꽃 속으로 들어갔을 것 같은 저 말씀. 모란꽃에 실린 인생. 모란꽃으로 다시 살아나는 사랑. 비록 현실의 사랑은 잃었어도 끝내 마음속 사랑까지는 잃을 수 없어 자연으로 돌아오는 눈부신 사랑의 부활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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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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