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뉴욕, 아이 러브 유 [여행]

뉴욕에서의 한 달
글 입력 2021.07.08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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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6월 23일, 엄마와 계획한 한달 간의 미국 여행. 얼리버드로 뉴욕 인 샌프란시스코 아웃 왕복 티켓을 예매했지만 코로나라는 변수로 내 계획은 완전히 망가졌다. 수수료를 물기 직전까지 티켓 취소를 망설이며 현실을 부정했다.

 

그럼에도 내가 언젠가 뉴욕에 다시 갈 날을 기다리며 버틸 수 있는 이유는 오로지 3년 전 뉴욕 여행에 대한 기억들 때문이다.

 

 


Welcome To New York



Welcome To New York

 

 

뉴욕에 가기 전에는 설렘을, 뉴욕 여행 중에는 실감을, 돌아와서는 그 기억을 되살려줬던 테일러 스위프트의 'Welcome To New York'

 

“널 기다리고 있었어 Welcome To New York”

 

 

뼈가 시리도록 추웠던 2018년 1월, 뉴저지에 사시는 친구네 할머니 댁에 지내며 정말 좋은 기회에 처음으로 미국을 갈 수 있었다.

 

함께 간 친구와 친구네 언니는 가족이라 같이 입국심사를 했지만 나는 혼자 입국심사를 해야 했다. 미국 입국심사에 대한 악명을 어렴풋이 들어 불안한 마음에 발을 동동 굴리고 있을 때 내 차례가 됐다.

 

덩치가 큰 흑인 직원이 내 입국 신고서와 여권을 한참 보더니 “뉴욕에서 얼마나 있는데?”라고 묻길래 “한 달”이라고 답했다. 그러니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뉴욕에는 한 달 동안 할거 없는 데...”라고 중얼거리는 걸 듣고 웃으니 어쨌든 여행 잘 하라며 보내줬다. (3주쯤 있다보니 이 직원의 말이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1분도 안 걸렸지만 나에게는 1시간처럼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친구네 할머니께서 보내주신 한인 택시를 타고 다리를 건너 할머니 댁으로 가는데 친구가 팔을 툭툭 치더니 손가락으로 창밖을 가리켰다. 보자마자 감탄사를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뉴욕 야경이 파노라마로 보이는데 내가 정말 뉴욕에 왔구나 그제서야 실감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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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댁에서 바라본 뉴욕 야경


 

시차 적응을 하는 동안은 월마트에 가서 장도 보고, 동네 가게도 가보며 할머니 댁 주변을 탐색했다. 시차 적응을 하는 시간이 조금 아깝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할머니 댁에서 보이는 뉴욕 야경을 보며 식사를 할 때면 그 마음이 싹 사라졌다.

 

 

 

맨해튼에서의 첫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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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로폴리탄 뮤지엄

 

 

시차 적응을 끝내고 맨해튼에 갔던 첫날을 잊지 못한다. 너무 좋아서 그런 것도 있지만 첫날부터 사고를 거하게 쳤기 때문이다.

 

버스터미널에서 내려서 조금 걷자마자 뉴욕타임즈 건물이, 도로에는 영화에서 보던 옐로캡 택시들, 뉴요커들을 따라 어설프게 무단횡단을 하며 본 별천지 같았던 타임스퀘어. (일주일이 지나니 둘러보며 감탄하기 바빴던 타임스퀘어를 또 타임스퀘어네? 하며 자연스럽게 무단횡단하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주위를 구경하다 보니 어느새 도착한 메트로폴리탄 뮤지엄. 겉으로 봤을 때는 별로 안 커 보여서 몇 시간이면 다 볼 수 있을 것 같았던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을 첫날부터 보러 간 것이 사건의 발단이었다. 개장부터 폐장까지 관람했는데도 못 가본 전시관이 있다는 걸로 설명 가능하지 않을까.

 

어디부터 볼지 계획도 안세우고 일단 발이 향하는 대로 가서인지 다른 전시실로 나가고 싶은데 이상하게 이름도 모르는 똑같은 전시실로 세 번이나 돌아왔다. 처음엔 마냥 다 신기했는데 나중에는 지쳐서 눈에 잘 들어오지도 않았고 나가는 곳만 잘 찾아가는 마음으로 전시실 중간에 있는 의자에 앉아 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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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되돌아오는게 신기해서 찍었던 이름 모를 전시실


 

후들거리는 다리를 이끌고 언니가 찾은 미슐랭 가이드에 소개된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고 다시 버스를 타고 돌아가는데 셋 다 잠들어서 내려야 하는 버스정류장을 너무 많이 지나치고 말았다.

 

하필 휴대폰 배터리도 나가고 급하게 내린 곳은 어딘지도 모르고 물어볼 사람조차 지나다니지 않았다. 추위에 벌벌 떨며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을 때 한 버스가 오더니 문이 열리며 기사님이 일단 타라고 했다. 어디로 가냐 물어서 대답했더니 일단 앉으란다.

 

또 잘못 내릴까 봐 잔뜩 긴장하고 정류장 알림판만 바라보는데 기사님이 여기서 내리면 된다고 친절히 가르쳐 주셨다. 지금 생각하면 웃기지만 당시에는 너무 무서웠던 이 일화는 우리의 단골 안주가 됐다.


여행기를 쓰려고 다시 갤러리를 정리하며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을 뼈저리게 느끼게 됐다. 당시 나는 미술 작품을 좋아하긴 했지만 전문적인 지식이라고는 없는 백지상태여서 예쁘다, 화려하다 같은 일차원적인 감상 밖에 할 수 없었다. 일단 사진으로 남기고 보자는 마음으로 열심히 찍은 결과물을 지금 다시 보니 내가 이 작품도 봤었어? 더 자세히 볼 걸 아쉬운 마음이 가득 들었다.


 

 

우연이 가져다 준 선물



시위 때문에 록펠러 센터로 가려는 길을 경찰들이 통제하고 있었다. 당황한 우리가 눈에 띄었는지 경찰이 어디로 갈 거냐고 물었다. 친구와 언니가 록펠러센터라고 하자 다시 말해달라고 해서 록펠러센터라고 했는데도 여전히 못 알아들은 눈치였다. 여행 계획을 짜다가 본 글에서, 미국에서는 록펠러가 아니라 라커펠러 센터라고 해야 알아듣는다는 말이 떠올라 라커펠러 센터라고 말하자 길을 알려줘서 도착할 수 있었다.

 

그렇게 도착한 록펠러센터는 뉴욕의 야경을 볼 수 있는 전망대 ‘탑 오브 더 락’이 유명하지만 우리 셋 다 야경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어(입장료가 생각보다 센 탓도 있었다.) 외관만 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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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펠러센터 로아 플라자


 

우리는 겨울에 갔던 터라 프로메테우스 동상 앞 로아 플라자는 스케이트장으로 사용되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작은 규모에 살짝 당황했다. 아이스 링크장은 정비 중에다 록펠러센터에 들어가서 할 건 없고.

 

열심히 찾아왔는데 이렇게 그냥 갈 수는 없어 주변을 걷는데 맨해튼 한복판에 고딕 성당이 있는 게 아닌가. 우연히 들어간 이 성당은 ‘세인트 패트릭 대성당’이었다. 문 하나를 기점으로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간 것처럼 적막과 성스러움이 감도는 성당 안은 기도를 하는 사람들도 보였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모든 것이 화려하고 시끌벅적한 맨해튼에서 우연은 우리에게 특별한 경험을 가져다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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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이 가져다 준 선물, 세인트 패트릭 대성당

 

 

 

문화인들의 천국, 뉴욕



문화는 누리면 누릴수록 그 비용에 대한 부담이 커지기 마련이다. 이런 부담을 가진 문화인에게 뉴욕은 천국 같은 곳이다. 미술관, 박물관도 입장료를 따로 받기는 하지만 대부분 기부 입장 제도를 운영하고 있어 1달러만 내고 관람할 수도 있다. (메트로폴리탄은 재정난으로 기부 입장 제도를 폐지했다고 한다.)

 

현대미술관 같은 경우는 금요일 저녁부터 무료입장을 시행한다. 여행 전 여러 미술관, 박물관 공식 홈페이지에 올라온 정보 혹은 블로그를 잘 활용한다면 양질의 문화를 미안할 만큼 저렴한 가격에 누릴 수 있다.

 

우리도 이런 정보를 통해 무료입장을 시행하는 금요일 저녁에 현대미술관에 가기로 했다. 그런데 무료입장 티켓을 받기 위한 대기줄이 이렇게 길다는 소리는 듣지 못했다. 나름 일찍 왔다고 생각했는데도 줄이 벌써 이만큼이라니!

 

그렇게 기다려 얻은 표를 들고 입장한 후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어느 전시실에 들어가자 많은 사람들이 일정 선은 절대 넘어가지 않고 한 방향을 보고 있었다. 도대체 뭘 보나 싶어서 뒤로 돌아가봤더니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이 있었다.

 

생각보다 작아서 자세히, 또 천천히 보고싶었지만 계속 중간에 서서 한참 들여다 보는게 민폐일 정도로 사람들이 많아 사진만 찍고 자리를 비킬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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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 <별이 빛나는 밤>, 1889, 뉴욕 현대미술관

 

 

뉴욕에 왔으면 영어를 잘하든 못하든, 무조건 관람해야 한다고 하는 뮤지컬 티켓값은 생각보다 더더욱 비싸다. 하지만 타임스퀘어에 있는 tkts 부스에서는 뮤지컬 티켓을 저렴하게 판매하고 있어 합리적인 가격에 뮤지컬을 관람할 수 있다. 우리도 tkts를 이용해서 제법 좋은 자리에서 '위키드'를 관람했다.

 

뮤지컬은 굳이 안 봐도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던 것조차 후회됐다. 화려한 무대 장치와 뮤지컬 배우들의 열연. 뮤지컬마다 전용 극장이 있는 브로드웨이가 괜히 브로드웨이가 아니구나 다시금 깨달았다.

 

또 신기했던 건 우리나라와 다르게 극장 안에서 팝콘 같은 먹거리를 팔고 취식하며 관람이 가능했다는 것이었다. 유명한 만큼 엄격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자유로운 분위기에 놀랐다.

  

첫날에 거하게 사고를 친 이후 할머니께서 너무 걱정하셔서 우리는 항상 해지기 전에 뉴저지로 향하는 버스를 탔지만 대부분 저녁에 시작하는 뮤지컬 특성상 '위키드'를 보는 이날 하루만 어쩔 수 없이 늦은 시간까지 맨해튼에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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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kts에서 예매한 위키드 티켓

 

 

뮤지컬을 다 보고 나오니 확실히 사람들도 낮에 비해 많이 없긴 했지만 맨해튼에서도 제일 번화가인 미드타운은 안전하다고 느껴졌다. 그래도 빨리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에 타임스퀘어를 가로질러 걷는데 마블, 세서미 스트리트 등 캐릭터 코스프레를 한 무리가 갑자기 친구를 잡아끌어 사진을 찍자고 하는 게 아닌가? 보통 관광객이 먼저 사진을 찍자고 하지 그 반대 경우는 처음 봐서 이 상황 자체가 너무 웃겼다.

 

지켜보고 있는 우리에게 사진을 찍으라고 강요해서 한참을 찍자 그제서야 놔주더니 당당하게 10달러를 요구했다. 벙쪄있으니 빨리 달라고 재촉하는데, 좋은 추억 하나 만든 셈 치고 10달러를 건넸다.

 

당시에는 이게 웬 봉변이냐며 억울해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이것도 소중한 추억이 됐다. 이렇게 아직도 새록새록 한 한 달 동안의 여행기를 한 편으로 축약하기 어려울 것 같아 다음 편에서 계속 이어나가려 한다.



[신민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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