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영감과 감각을 깨우는, <영감의 서재 102> [공간]

글 입력 2021.06.22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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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감의 서재에 다녀오다

 

인스타그램의 유행은 ‘인스타그래머블’한 음식, 공간, 심지어 포토제닉한 사람의 인기로 이어졌다. 사회적으로는 코로나로 인해 겹쳐 외부 활동에 제한을 받자, 사람들은 더욱 #신상카페 등과 같은 핫플들로 모여들었다. 을지로의 간판 없는 카페들, 성수동의 가오픈 기간의 카페들에는 어떻게 알고 온 사람들로 가득하다. 그렇게 공간들의 상향평준화와 일반화 사이 어딘가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동안, 트렌드를 정확하게 읽어내면서도 깊이있는 콘텐츠로 찾아온 공간이 있다. 바로 ‘영감의 서재’이다.

 

오랫동안 매거진 편집장으로 일한 박지호가 매달 새로운 주제로 책, 음반, 오브제, 브랜드, F&B 등을 큐레이션해 제공하는 공간이다. 코로나 상황에 발맞추어 1명에서 4명 사이의 한 팀이 오롯이 2시간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운영된다. 주 3일, 하루에 2회차만 운영되고 높은 완성도와 밀도의 큐레이션으로 별다른 홍보 없이도 연일 매진을 보이고 있다.

 

아름다운 공간과 예술을 향한 사랑과 사람을 향하는 생각들로 가득해, 만나면 이야기가 끝나지 않는 네 사람으로 모인 모임이 있다. 그 중에서 매번 ‘여기 갈까?’하고 우리를 이끌어주는 H 언니의 제안으로 치열한 예약에 성공해 영감의 서재에 다녀왔다.


 

찾아가는 길부터 특별한 곳

 

영감의 서재는 정동길에 위치해있었다. 서대문역에서 나와 길을 걷다가 오른쪽으로 꺾으면 오래된 나무들과 붉은 벽돌의 건물들이 조화로운 정동길이 나왔다. 길 양옆으로 예원학교와 이화여자고등학교가 있어 곳곳에 여학생들이 눈에 띄었다. 교복을 입은 학생들의 에너지와, 오래된 나무의 힘, 차분한 붉은 벽돌과 조용한 동네 공기가 아름다운 분위기를 만들었다. 비가 내렸지만 오히려 약간의 비가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H언니와 나는 소나무가 심겨 있고 빨간 벽돌과 담벼락이 있는 학교에서 학창시절을 보낸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대화를 나누며 걸어갔다.

 

그렇게 길을 걷다보면 작은 성처럼 돌출된 입구를 가진 따뜻한 건물이 눈에 띈다. 1930년대에 지어진 ‘신아기념관’이다. 오래된 건물이지만 깔끔했고, 내부는 심플한 화이트톤으로 리모델링 되어있어 엔틱한 외부와 묘한 조화를 이루었다. 건물 외부에도, 내부에도 ‘영감의 서재’와 관련된 간판이나 안내 표지는 눈에 띄지 않았다. 예약 안내 문자 내용을 따라 복도 안쪽의 102호 앞에 도착하니 문패에 타이핑 서체로 정갈히 새겨져 있었다. ‘영감의 서재 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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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패가 조용히 서재의 존재를 알린다.

 


사려깊고 따뜻한 공간

 

문 앞에서 기웃거리자 직원분이 나오셔서 우리가 열려던 문은 닫겨 있다며 다른 문을 통해 공간 안으로 안내해주셨다. 문을 열자마자 네명 다 탄성이 나왔다. 너무 높아서 황량하지도, 너무 낮아서 답답하지도 않은 딱 적당한 층고에 아늑한 크기감의 공간이었다. 복도와 마찬가지로 깔끔한 화이트톤의 벽을 가지고 있었다. 가구는 우드톤으로 비치해 공간이 위치한 정동길과 신아기념관의 분위기를 이어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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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가운데에 둘러앉기 좋은 책상을 놓고  정면에 보이는 벽면에는 책 표지들을 한눈에 보기 좋은 책장을 설치해놓았다. 정면의 벽 외에는 가구들과 오브제들을 낮게 설치해 답답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가구는 가구 디자인 스튜디오 길종상가에게 의뢰한 작업이라고 했다. 눈에 띄게 화려해서 공간을 해치지도 않고, 과도하게 단순해서 불편하게 느껴지지도 않는, 사람과 공간을 향하는 가구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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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곳곳에 루이스폴센 조명이 놓여 있었다. 적절한 간접 조명으로 책을 편안히 읽으며 집중하기에 좋았다. 오른쪽 벽의 창으로는 햇살이 들어와 산뜻한 조도를 만들어주었다. 해가 저물수록 간접조명의 효과가 더 드러나며 분위기는 차분해졌다. 창밖으로는 나무가 잘 보였는데, 동시에 공간 안에도 다양한 식물들을 비치해 놓아서 나무 가구들과 함께 공간을 한층 더 편안하게 만들어주었다. 흰색 바탕에 우드톤의 난색에 그리고 식물의 싱그러운 초록이 섞여들자 기분좋은 시원한 따뜻함을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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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도 높은 큐레이션

 

공간에 감탄하고 있자 직원 분께서는 전체 큐레이션에 대한 설명을 해주셨다. 우리가 찾은 기간의 큐레이션 주제는 ‘사진’이었다. 다양한 사진집과 포스터, 사진 작품들과 카메라들이 있었다. 존 레논이 사망 당시 쓰고 있었다던 안경과 관련된 설명부터 벽면의 포스터와 그 작가에 대한 설명, 큐레이션 되어있는 책들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2시간 예약제인 것을 감안하여 밀도 높으면서도 속도감 있는 설명을 해주셨다. 전체적인 설명을 통해 어떤 생각으로 공간을 구성했는지를 듣고 나니 한층 더 몰입하여 공간을 감상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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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레논이 사망 당시 쓰고 있었다던 안경 모델

 

 

설명 후에는 웰컴 다과를 준비해주셨는데, 사과주스와 휘낭시에가 1인 트레이에 담겨져 나왔다. 책상 위에는 다양한 필름 카메라와 폴라로이드 카메라도 준비되어 있었다. 공간을 이용하는 동안 직접 사용하고 필름과 폴라로이드는 들고 갈 수 있다고 하셨다. 한가지 주제를 놓고 큐레이션 할 때, 그것을 일방적으로 감상만 할 수 있는 전시가 아니라 어떻게 방문자의 시간 속에 그 주제가 스밀 수 있는지 고민하는 곳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덕분에 우리는 아름다운 사진집들을 구경하면서도 그것을 구경하는 서로를 찍기도 하고, 공간의 사진도 찍으며 ‘사진’이라는 주제를 한껏 향유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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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쪽 벽에는 지류함이 있었는데, 지류함 칸 안에 안웅철 작가님의 사진 작업들이 있었다. 밀착 인화 필름들, 폴라로이드 사진을 폴라로이드 케이스에 담은 작업들, 유명인들의 사진 등 눈을 뗄 수 없는 사진들이 많았다. 일반적인 갤러리 전시와 달리 정말로 남의 서재에 와서 주인의 설명을 들으며 그가 소장한 미술작품들을 가까이에서 구경하는 듯한 기분이 묘했다. 기존의 화이트큐브에서 느끼던 거리감 없이 좀더 편하게 몰입하여 작업을 감상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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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관련된 큐레이션들 외에도 지류함 위에는 LP플레이어가 있었다. 재즈가 흘러나오는 중이었다. 우리가 디터람스가 디자인한 LP플레이어냐고 묻자 그렇다며 국내에서는 보기 드문 모델이라고 자부심을 보이셨다. 우리가 골라서 들을 수 있는 LP들에 대한 설명도 해주셨다. 빌 에반스와 에디 히긴스 콰르텟의 재즈 음반들부터 장필순, 김현철의 음반, 안웅철 작가님의 작업이 표지로 쓰인 ECM 음반까지 다양한 음악이 있었다. ‘피아니스트의 전설’ OST 음반을 청해 들었다. 엔니오 모리꼬네의 서정적인 음악이 공간에 깊이감을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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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LP 설명 중에도, 또 다양한 작업들에도 연신 감탄을 하며 감동을 하자, 직원 분께서 좋은 시간 보내주셔서 감사하다며 이솝 아로마틱 캔들을 내어오셨다. 향초를 켜자 은은한 향이 방에 가득했다.

 

음악과 향에 취한 채, 책을 읽고 사진을 살피고 사진을 찍으며 2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오감이 풍족해지는 곳

 

좋은 공간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다. 코로나는 오프라인의 종말을 예고하는 듯 했으나 오히려 사람들은 더 밀도 높은 공간을 찾아 나선다. 코로나로 여행은 못가지만, SNS에 그럴싸하게 올리기 좋은 공간들이 인기가 많기도 하다. 그러나 SNS에서 홍보가 잘되는 것에만 목적을 둔 공간과, 정말로 방문한 이의 공기와 시간을 달라지게 해주는 공간은 다르다. 전자는 시각 외의 요소들을 배제하기 때문이다. 멋있어 보여서 찾아가도 지나친 개방감으로 인해 대화소리는 분산되고 귀가 웅웅거리거나, 공간의 목적에 비해 조명이 지나치게 어두운 곳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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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영감의 서재’는 주제에 따른 큐레이션과 그 전달에 대한 고민으로 가득했다. 주제를 다양한 각도로 해석하는 깊이감과, 찾아오는 사람들을 향하는 따뜻한 생각으로 완성된 공간 경험을 선사해주었다. 길어진 코로나 상황으로 인해 새로운 자극에 목마른 사람들이 영감의 서재와 사랑에 빠질 수 밖에 없다.

 

그리드로 잘 맞춰진 공간 구성의 시각, 훌륭한 플레이어와 음반들이 채워주는 청각, 트레이에 반듯하게 담긴 음식의 미각, 이솝 캔들을 통해 후각까지. 촉각은 직접 필름 카메라와 라이카 카메라들을 써보고, 책을 넘겨보는 것에서 느껴지는 것이라고 한다면 오감을 모두 풍족하게 해주는 공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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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감의 서재 브랜드 컬러인 노란색의, 책갈피로 활용 가능한 펜을 가지고 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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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영감의 서재에서 읽으면 어울리리라 생각한 '자기만의 방'을 챙겨갔는데, 정말이지 영감의 서재와 어울렸다.

직원분도 공감을 하신건지 책상위에 올려져있던 책을 찍어서 올려주셨다.

 

 

앞으로도 응원하게 되는 곳

 

좋은 공간은 좋은 경험을 낳고, 좋은 경험은 또다른 경험을 쌓기 위한 양분이 된다. 좋은 경험은 감각을 깨우고, 감각이 예민해지면 원래는 지나치던 것들에서도 아름다움을 찾게 된다. 그렇기에 곳곳에 좋은 공간이 생긴다는 것은 우리 삶을 위한 주유소가 늘어나는 것과 같다고 믿는다.

 

‘영감의 서재’에서의 경험이 많은 이들에게 와닿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우리 사회의 ‘좋은 공간’에 대한 정의가 한층 더 성숙해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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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의 영감이 다양한 이들을 만나 또다른 영감 가득한 결과물을 낳기를 응원한다.

 

 

[남서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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