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알리오 올리오 만들기 [문화 전반]

뭐든 기본이 가장 어렵다
글 입력 2021.06.17 12:00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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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만들어 먹는 파스타를 좋아한다. 내가 원하는 재료를 원하는 만큼 넣고 만들 수 있다는 게 큰 매력이다. 크림 파스타를 가장 자주 해 먹고, 토마토 파스타나 로제 파스타도 가끔 해 먹는다. 위에 올라가는 토핑은 그때그때 냉장고 사정에 따라 달라진다. 가끔 양 조절에 실패해서 프라이팬 한가득 만들어 버릴 때도 있지만, 취향대로 만들어서 그런지 아무리 많아도 잘 안 남기게 되는 게 집 파스타이다.


파스타의 본 고장 이탈리아 가정에서 가장 자주 만들어 먹는 파스타는 바로 알리오 올리오이다. 알리오 올리오는 재료와 요리 과정이 비교적 간단한 기본 파스타에 속해서 그렇다고 한다. 그런데 반대로 나는 집에서 알리오 올리오를 잘 만들지 않게 된다. 알리오 올리오의 재료인 올리브유와 매운 고추, 마늘이 항상 집에 구비되어 있는데도 말이다. 집에서는 아무리 만들어 봐도 내가 아는 그 맛이 나오지 않는다.


뭐든 기본이 가장 어려운 법이다.

 

 

 

알리오 올리오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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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만든 알리오 올리오.

언제나 그렇듯 양조절과 플레이팅에 실패했다.


 

알리오 올리오 요리법은 재료만큼이나 정말 간단하다. 우선 깊은 팬에 소금 조금과 함께 물을 끓이고 파스타 면을 삶는다. 개인적으로 파스타 면이 넓은 걸 선호하는데, 알리오 올리오에는 얇은 면을 쓰는 걸 좋아한다. 파스타는 8분 정도 삶아주면 적당해서 삶아지는 동안 다른 재료를 손질하면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페퍼론치노가 정석이지만, 생각보다 페퍼론치노가 비싸기 때문에 이 부분에서는 청양고추를 사용하는 것으로 나 자신과 합의를 봤다. 사실 청양고추 두어 개와 다진 청양고추 큐브를 사용하면 페퍼론치노를 넣은 것보다 매콤해지기 때문에 이 쪽이 더 마음에 든다. 청양고추는 반은 잘게 다져두고 반은 얇게 썰어둔다. 그렇게 하면 청양고추 씹히는 맛을 살릴 수 있다.


마늘은... 좋아하는 만큼! 넣고 싶은 만큼! 정석 레시피에는 마늘이 3알만 들어간다고 하는데 그건 한국인이 용납할 수 없는 양이다. 적어도 7알 분량의 편마늘은 들어가야 마늘의 향을 제대로 입힐 수 있다. 편마늘보다 다진마늘을 사용하는 것이 더 깊은 향을 낼 수 있으니 기호에 맞게 준비하면 된다.


토핑 역시 취향대로 준비하면 된다. 나는 보통 베이컨을 많이 넣는데 향이 은은해서 맛이 심심한 오일 파스타랑 잘 어울린다. 그 다음으로 좋아하는 토핑은 새우이다. 통통한 새우 몇 개 넣어주면 더 맛있어진다. 생각보다 나물도 정말 잘 어울리는데, 지난번에는 두릅을 넣어 만들어 봤더니 정말 맛있었다.


재료가 다 손질됐다면 이제 다 된 거나 다름없다. 그동안 면은 이미 다 삶아졌을 것이다. 면을 건져두고 면수를 한두 컵 정도 남겨둔다. 설거지 거리를 늘리고 싶지 않다면 면을 삶았던 팬을 키친타월로 가볍게 닦아주고 올리브유를 가득 둘러준다. 가열하기 전 마늘을 전부 넣어주고 서서히 가열하며 볶아주어야 마늘 향을 충분히 낼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청양고추 절반을 미리 넣어 볶으면 매콤한 맛도 더 살아난다. 마늘 향이 올라오면 준비해둔 토핑 재료를 전부 넣고 볶아준다. 어느 정도 재료가 거의 익었을 때 삶아 두었던 면을 넣고, 면수를 한 컵 정도 부어준다. 소금으로 간을 하면 알리오 올리오는 끝이다. 간을 하는 과정에서 취향에 따라 굴소스를 넣기도 하고, 치즈를 갈아 넣기도 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간단한 과정 끝에 만들어진 파스타는 파는 맛이 안 난다는 거다. 크림 파스타도, 토마토 파스타도 대충 파는 것과 비슷한 맛은 흉내 낼 수 있는데, 도저히 이 알리오 올리오만큼은 파는 맛이 안 난다. 분명히 맛은 있는데, 맛이 없는 건 아닌데 파는 맛이 안 난다. 가장 기본이 되는 레시피라면서 그걸 따라 하는 게 이토록 어렵다.

 

 

 

기본에 충실히 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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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기본에 충실한 건 어디서든 어려운 법이다. 삶의 태도에서나 인간 관계에서나, 어떤 것을 작업하는 과정이라든가 어디에서든 가장 중요한 게 기본인데도 기본을 지키는 건 쉽지만은 않다. 기본은 무언가를 이루는 바탕이다. 기본이 바르게 되어있지 않으면 그 위에 무엇을 쌓아 올리든 위태로울 수밖에 없다.


기본은 그 무엇보다 정석을 따라야 한다. 삶에서는 어느 정도의 융통성이 있어야 일련의 과정이 매끄럽게 돌아간다고는 하지만, 기본만큼은 정석적으로 다져져 있어야 한다. 춤을 출 때, 기본기가 정석적으로 되어 있지 않으면 무릎을 다치고 마는 것처럼, 요리할 때, 칼질 기본기가 정석적으로 숙련되어 있지 않으면 손을 다칠 위험이 높은 것처럼 말이다. 그건 삶의 태도에서도 마찬가지다.


삶의 기본적인 태도는 더불어 사는 사회에서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도록 도와준다. 기본적인 예의를 갖추었을 때, 기본이라는 시간 약속을 잘 지켰을 때, 기본적인 대화 매너를 갖추었을 때, 기본적인 식사 예절을 갖추었을 때 사회적인 동물 인간은 보다 원만한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기본이 안 되어 있다. 혹시 이런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부끄럽게도 나는 몇 번, 아니, 세다 보니 꽤 많은 것 같은데, 들어본 적이 있다. 주로 예의 없게 굴었거나, 약속 시간에 늦었을 경우에 그런 말을 들었던 것 같다. 그게 마냥 기분이 나쁠 수는 있는데, 돌이켜보면 정말 기본이 되는 소양이 맞기에 벌써 성인이 되었는데도 아직 기본이 안 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항상 쓰게 웃었던 것 같다. (물론 가스라이팅으로 통용되는 이런저런 말들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것이 마땅하다!)


그렇지만 이 기본적인 태도는 비단 타인을 위해서만 갖추어야 하는 건 아니다. 얼마 전 미라클 모닝이라고 하는 것이 2030 세대를 뜨겁게 달궜다. 미라클 모닝이란, 이른 아침에 일어나 독서나 운동, 명상 같은 자기계발을 하는 것을 뜻한다. 미라클 모닝은 개인적인 루틴을 정해두고, 본격적인 일과가 시작되기 2~3시간 전에 일어나 그 루틴을 행하는 것이다. 이 개념은 2016년에 미국의 작가 할 엘로드가 쓴 자기계발서에서 처음 등장했다. 그는 아침을 보내는 습관을 통해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미라클 모닝이 효과가 있다면 그건 왜일까?


그 역시 기본이 답이다. 아침은 보통 하루를 시작하는 시간이다. 그 시간의 자기 계발 루틴이 기본적으로 탄탄하게 몸에 배어 있다면, 그 하루가 상쾌하고 활력이 도는 긍정적인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이 역시 기본을 탄탄하게 하는 과정에서 부가적으로 나타나는 긍정적인 효과인 것이다. 미라클 모닝의 규칙에서도 그 기본을 명시하고 있는데, 바로 충분한 수면 시간을 가질 것이 그 기본이다. 아무리 좋다는 미라클 모닝도 결국 충분한 수면 시간이 보장되어 있지 않으면 안 하느니만 못하다. 이처럼 기본은 어디에나 있고, 어디서나 중요하다.

 

 

 

가장 간단하고, 가장 어려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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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여기까지 읽었으면 ‘기본’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이 생길 수 있다. 마냥 어렵고 아득하게만 느껴지는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기본이 어려운 이유는 가장 간단하기 때문이다.


간단한 건 언제나 지나치기 십상이다. 간단하니까 이 정도는 괜찮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이 그렇게 만든다. 다 익혔다고 생각한 기술들을 갑자기 잊게 되는 것이 그 예이다. 베이킹에서 가장 간단하지만, 가장 중요한 계량에서 오차가 생기면, 제대로 된 결과물을 얻을 수 없는 것도 그 예이다. 사람이란 익숙함에 속아 중요한 걸 쉽사리 망각하기 마련이기에 가장 간단한 기본이 가장 어려울 수밖에 없다.


어디에서나 기본을 지키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기본은 우리의 하중을 받쳐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건물의 기초 공사가 부실해서 하중을 제대로 받치지 못하면 무너져 내리는 것처럼 기본을 지키지 못하면 우리 역시 언젠가는 무너지고 만다. 스스로를 더 단단하게 만들기 위한 기본은 언제 어디서나 우리를 돕고 있다. 무엇이든 좋다. 스스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기본 소양을 정해두고, 하나하나 지켜나가다 보면 어느 순간 더 단단해진 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분명 내가 알리오 올리오에 여러 번 실패 아닌 실패를 한 것도 기본을 지키지 않아서일 테다. 재료를 계량하는 과정이나 조리 과정에서 정석을 따르지 않아 그랬을 수도 있다. 오늘 저녁엔 다시 한번 알리오 올리오를 만들어 봐야겠다. 기본에 충실한 정석 레시피를 따라서, 기본의 맛을 내봐야겠다.


아, 그렇지만 마늘은 정석 레시피보다 조금 더 많이 준비해야겠다. 그건 한국인의 기본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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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시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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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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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푸른하늘
    • 저도 알리오 올리오 좋아해요 ㅎㅎ 전 개인적으로 치킨스톡을 넣어 먹는 것을 선호합니다! 그리고 시연님처럼 베이컨도 즐겨 넣어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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