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댄스 댄스 댄스-정직하고 드라이한 삶의 양식 [문학]

멋들어지게 춤을 추며 마주하게 되는 운명의 신비로움
글 입력 2021.06.16 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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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스 댄스 댄스」는 서평에 명시돼있는 것처럼 춤추며 돌아가듯 숨 가쁜 현대 젊은이들의 삶과 사랑과 성의 이야기를 엮어낸 소설이다. 작가인 무라카미 하루키는 ‘댄스’라고 하는 메타포를 사용하여, 독자들로 하여금 ‘댄스 스텝’을 잘 밟으며 살아가고 있는지 스스로를 반추하게 만든다. 특히 밀레니얼 세대가 중요시하는 자아와 타자, 가벼움과 무거움, 관념과 현실에 대해 종합적이고 세련되게 다룬다는 점에서, 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들 중 「댄스 댄스 댄스」를 베스트로 꼽는다.


「상실의 시대」는 하루키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작품으로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진 작품이다. 그리고 「댄스 댄스 댄스」는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라는 그의 데뷔작에서부터 시작되는 ‘하루키 초기 4부작’의 마지막 작품이자, 「양을 쫓는 모험」의 속편에 해당한다. 하지만 ‘하루키 초기 4부작’의 작품들을 차례대로 읽어야만 「댄스 댄스 댄스」라는 작품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작가가 직접 밝히고 있듯 각각의 작품들은 개별적으로 독해가 가능하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상실의 시대」를 쓴 직후에 「댄스 댄스 댄스」를 집필한 이유는 그에게 아직 할 말이 남아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하루키의 청춘이 모종의 경험을 거쳐 결국 ‘어떤 식으로 살게 되었습니다.’ 라고 하는 끝맺음이 있어야 비로소 그의 초기 4부작 시리즈는 완결성을 갖추게 되었던 것이다. 어둠 속에 묶여있던 그가 어떻게 과거 관념의 세계와 단절하고 현실 세계와 연결될 수 있었는지 「댄스 댄스 댄스」를 읽어보면 그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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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이 끊어진 뒤 겪게 되는 상실감, 새로운 관계의 형성과 재생 의지


 

「상실의 시대」에서 <나오코>를 잃고 「양을 쫓는 모험」에서 <쥐>를 잃었던 <나>는 현실 감각을 되찾고자 현실과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는 <키키>를 찾는다. 그런 그는 여전히 급변하는 사회에서 소외되어있고 고독한 인물로 그려진다. 하지만 <나>는 현대적으로 재건축된 ‘돌핀 호텔’에서 <유미요시>와 <양사나이>를 만난 후 여러 사건들에 휘말리며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유미요시>에게 마음의 동요를 느낀 그는 <양사나이>와의 대화 후 자기 확립의 모험을 떠나게 된다.


소설의 초반부에서 <유미요시>와 동침을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가 의도적으로 그녀와의 자리를 피하는 것은 ‘무엇을 구하는지 알 수 없는 채로’ 동침을 한다면 서로에게 결국 상처만 남길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녀와 연결됐다고 느끼는 순간부터 <나>는 전작들과 다르게 누군가를 상실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무엇인가를 구하지 않던’ 그가 ‘무엇인가를 구하기’ 위해 근본적으로 변화하는 모습은 <유미요시>를 만나게 되면서 현실성을 회복해나가려고 노력하는 <나>의 의지를 대변한다. 이렇듯 <나>는 자기 확립의 모험을 하며 잃어버렸던 감정들을 되찾아간다.


수동적인 성향이 강했던 <나>는 여러 사건들을 겪고난 뒤 해묵은 과거와 작별인사를 하고 현실로의 귀환을 선택한다. 모든 사건들이 끝난 후 그는 환상이 아닌 현실성을 띠고 있는 <유미요시>를 강력하게 원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유미요시>를 찾아간 그는 그와 그녀를 떼어놓으려는 관념의 세계가 분명히 존재함을 깨닫고, 전과 다르게 이에 능동적으로 대항하여 삶의 의지를 펼쳐 보이려 한다. 이렇듯 무라카미 하루키는 현대를 살아가는 도시인에게 진정한 ‘사랑’의 의미가 무엇인지 재고해보게 함으로써, 관계회복을 통한 자아의 확립에 대한 메시지를 던진다.

 

 

 

우리가 상실하고 있는 것엔 어떤 게 있을까?



소설 속에서 누군가를 상실하고 고독해지는 원인을 관계의 단절이나 죽음에서 찾는 것은 일반적이다. 그렇다면 앞서 언급한 상실감이나 허무감을 ‘버블경제’라는 시대적 상황과 연결 지어 생각해본다면? 혹은 고도자본주의의 시스템에 대입해서 생각해본다면 어떨까? 그러한 ‘상실감’은 개인의 차원을 넘어 사회적인 현상이 된다. 자신이 무엇을 좇으면서 살아가야 하는지 잘 알지 못하는 젊은이들에게 「댄스 댄스 댄스」는 일종의 지침서 역할을 하고 있다.


「상실의 시대」에 등장하는 <나가사와>라는 선배나 「댄스 댄스 댄스」에 등장하는 <고혼다>라는 친구는 엘리트 계급에 누구나 부러워할만한 직업을 갖고 행복하게 사는 듯 보인다. 하지만 가까이에서 그들의 삶을 지켜보는 <나>는 무언가 그들에게서 중요한 것이 결여되어있다는 사실을 안다. 그들은 더할 나위 없이 깔끔하고 훌륭하지만 정작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는 함께할 수 없다. 자연스러운 삶을 살지 못하는 그들은 자신의 삶에 출구가 없음을 느끼며 방황한다.


<고혼다>는 원하는 모든 것들을 경비로 구입할 수 있다. 하지만 그에게 '꼭 필요한' 사람과 평범한 인생을 살 수 없다는 괴리감과 자본주의의 환상은 그를 자살로 이끄는 요인이 된다. 또한 <나>가 하고 있는 문화적 제설작업은 지나친 공급, 혹은 지나친 데이터에 대한 큐레이션 작업을 의미한다. 현대의 시장은 공급의 과열 상태이며 이로 인해 넘쳐나는 상품들과 서비스는 '꼭 필요한' 것이 아니다. 이처럼 <나>는 낭비가 이 시대의 최고 미덕이 되었다고 말한다. 정치가는 이를 내수의 세련화라고 부르는 반면, <나>는 그저 무의미한 낭비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럴듯한 이미지와 세련된 생활방식을 위해 시간과 돈을 쏟아 부으며, 자신의 주위에 있는 소중한 것들은 정작 챙기지 못하는 사람들을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고혼다>의 경우는 극복이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었으며 환경에 의해 통제받았던 것이기에 비극에 가깝다 할지라도, 우리는 우리 주위에 있는 소중한 것들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를 구성하는 주위의 것들은 눈 깜짝할 새 사라져버리고 말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물론 돈은 중요하다. 자본주의 사회가 의미하는 바는 명백하기 때문에. 그렇지만 가끔 우리는 수단에 경도되어 가장 중요한 목적성을 상실하곤 한다. 「양을 쫓는 모험」과 「상실의 시대」에서 시작한 주제는 「댄스 댄스 댄스」에서 확장된다. 청춘의 갈림길에 서 방향키를 잃지 않고 똑바른 길을 향해 나아가야 함에 대한 역설은 시대가 급변할 수록 더욱 중요해질 화두가 되리라 생각한다.

 

 

[이정욱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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