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폐하, 잠시 궁궐 산책 좀 하겠습니다. - 아주 사적인 궁궐 산책

지금까지 보지 못한게 너무 많아요.
글 입력 2021.06.14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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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전통을 좋아한다. 비록 관련 지식은 많지 않지만, 굳이 무언가를 살 때 한국 전통의 것들이 드러나는 것이 있나 찾아보는 소소한 버릇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버릇이 생긴 것 해외에 거주했을 때 온종일 한국을 그리워하며 한국 전통의 것을 유독 많이 찾아보기 시작했을 때부터였다. 짙은 향수는 취향으로 변했고, 이제 나는 한국에 발을 붙이고 있음에도 한국을 그리워하며 한국의 것들을 은연중에 찾는다.

 

덕분에 자주는 아니지만, 궁궐 산책도 즐긴다. 여유로운 날에 서울로 올라갈 일이 있으면 조심스레 만나기로 한 친구에게 궁궐에 가보는 것이 어떻냐고 묻는다. 다행히 친구들은 친절했고, 그렇게 나는 고즈넉한 궁궐을 거닐었다.


관련 지식이 전무한 내가 궁궐을 돌아다닌다고 해도 많은 것을 볼 수 있지는 않았다. 나는 궁궐에 갈 때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을 가장 뼈저리게 느낀다. 그저 그 분위기에 취해 감상에 젖거나, 학창 시절 공부했던 역사를 떠올리며 이 자리에서는 어떤 왕들이 돌아다니고 어떤 일들이 일어났겠구나 상상해볼 뿐인 나에게 궁궐은 궁궐 그 자체보다는 '역사의 공간'이라는 의미가 더 강했다.


하지만 무언가 하나하나 깊게 들어가는 법 없이 뭐든 옅게 좋아하는 내가 굳이 궁궐 공부를 할 필요성을 느끼지도 않았다. '언젠가 관련된 책을 읽어보고 싶다'라고 막연히 생각할 뿐이었다.


그렇기에 처음 이 책을 처음 보자마자 눈을 반짝였다. 처음에는 책 표지 가운데에서 해맑게 웃고 있는 해치의 오동통함에 이끌렸고, 이후 'K-궁궐을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라는 문구가 나를 저격하는 것만 같았다.

 

'태정태세문단세'에는 한 번도 나오지 않은 이야기라는 책 띠의 문장도 마음에 들었다. 역사 공부를 싫어하는 편은 아니지만, 좋아하는 궁궐을 공부의 개념으로 다가가고 싶지 않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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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다섯 궁궐 경복궁, 창덕궁, 덕수궁, 창경궁, 경희궁을 각각의 특징과 매력으로 소개하며 이 책은 시작한다.

 

많은 사람이 서울의 궁궐에 대해 다양한 지식을 갖고 있다. 오히려 "다 같은 궁궐 아냐?", "그냥 크고 작은 차이만 있는 것 아냐?"라는 단순한 의문을 나도, 그리고 내 친구도 한 번씩은 가져봤다. 하지만 이런 무심한 독자들을 위해 저자는 유쾌하게 다섯 궁궐의 매력을 설명해준다.


나는 이 책을 읽기 전 '궁은 다 한국의 전통을 담아내는 유서 깊은 곳들이지'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나서는 그러한 생각이 오히려 궁궐의 진짜 매력을 감추고 있는 것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궁은 다 한국의 전통을 갖고 있다. 유서가 깊은 것도 맞다. 그러나 그것이 서울의 다섯 궁을 뭉뚱그릴 수 있는 틀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문득 한국의 전통을 좋아하면서도 너무 무지했다는 사실에 부끄러웠을 정도다.

 

저자는 궁궐을 산책하며 독자들에게 각 궁궐의 숨은 매력을 이야기한다. 이를테면 창경궁은 서울의 다섯 궁궐 중 유일하게 물이 흐른다. 덕수궁은 작고 한국의 정통성에서는 조금 멀게 느껴질 수 있으나, 그렇기에 '빨리빨리'를 좋아하고 다양한 사진을 찍는 것을 선호하는 한국 사람들에게 가장 적합한 가장 '한국적인' 궁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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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알다시피 궁궐은 나무와 돌로 이뤄져 있다. 하지만 그 나무와 돌이 어떻게 궁궐에 사용되게 되었는지, 어떤 모습으로 궁궐을 구성하여 이 한국과 오랜 역사를 함께 하고 있는지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나도 마찬가지다. 그저 나무는 나무였고, 돌은 돌이었다. 계단이니까 계단이고, 어떤 용도인지는 몰라도 그 당시에는 어떻게든 유용하게 쓰였겠지, 무심히 생각했다.


이 책에서는 그 돌과 나무에 대해 더욱 자세히 들여다본다. 어떤 돌이 쓰였는지에 대한 기본적인 이야기에서 시작한 저자의 설명은 끝은 '부용정의 초석은 바지를 종아리 위로 걷어 올리고 물가에 발을 담근 모양이다. (...) 연못에 발을 담근 채 한가로이 사계절을 즐기는 그 느긋함이 부러워진다.'라는 말로 끝난다.

 

저자를 따라 책 속에서 함께 궁궐을 산책하던 나는 마치 친구의 허무맹랑한 소리를 들은 것처럼 '무슨 소리야,' 하고 웃으면서도 어느새 저자의 말을 납득하고 고개를 주억였다.


저자는 궁궐을 단순한 건축물로 보지 않는다. 살아있거나, 혹은 살았던 사람들을 기억하는 생명체로 본다. 이 책을 읽다 보면 그런 저자의 시선을 따라 저자와 함께 궁궐을 선택하다 보면 어느새 궁궐은 나에게 한층 친숙하게, 그리고 다정하게 다가온다.

 

그뿐만 아니라 저자가 마치 오랜 친구라도 된 것처럼 계속 함께 수다를 떨게 된다. 맞아. 정말 물가에 발을 담근 것 같은 모양이네. 맞아. 저 나무는 춤추는 것 같다. 맞아. 한국 2000년대의 그 끔찍했던 꽃무늬 벽지는 어쩌면 이런 곳에서 전통성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몰라. 해치야, 궁궐을 지켜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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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다 읽고 나면 어느새 궁궐을 찾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불쑥 든다. 지금까지는 지나쳤던 것들을 다시 한번 눈으로 살피고 이 궁궐이 간직해온 시간을 되새기고 싶다. 은근히 지금까지 궁에서 머물렀을 왕들을 떠올리며, 그들에게 이야기하며 말이다.

 

폐하, 이곳에 만나봐야 할 것들이 너무 많습니다. 실례가 안 된다면 해치 궁둥이 좀 확인하고 산책 좀 하고 가겠습니다.

 

 

[김혜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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