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여름.

글 입력 2021.05.29 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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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냄새가 날 때쯤이면 기분이 묘하다. 여름과 거리를 두고 싶기도 하면서 또 그 독특한 맛을 다시 한 번 느껴보고 싶기도 하다.

 

여름을 반기지는 않는데 그 숨 막히게 축축한 공기와 몸이 녹을 것 같은 뜨거운 햇살로 여름을 느끼는 게 싫지도 않다. 좋았다가도 싫고, 싫었다가도 좋다.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모르겠다. 나도 나를 모르니 나를 알 사람이 없구나 싶다. 모두가 그렇다. 그러니 사람 일은 알다가도 모른다고들 하는가 싶다.


여름이 다가오면 모든 것이 활기차고 생기가 넘쳐 흐른다. 사실 잘 모르겠다. 주변에서 하는 말에 따라가며 그냥 그렇구나! 할 뿐이다. 여름이 되면 여행도 많이 가고 운동하는 사람도 비교적 많아진다. 여름을 주제로 한 영화나 드라마 따위에서는 학생이나 젊은이들이 여행에서, 혹은 일상에서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거나 바다에서 뛰노는 모습을 담는다. 내 현실은 더위에 녹아내리는 것을 간신히 모면하고자 에어컨 아래서 하루하루 연명하는 것인데, 다른 사람들의 일상은 나랑은 다른가 보다.

 

맥락 없는 넋두리는 그만두고 여름과 사랑을 이야기해보려 한다.

 

*


사랑의 정의를 묻거나 사랑은 이런 것이라며 정답 같은 해설을 늘어놓고자 노력하는 사람은 바보다. “이렇게 생각한다”가 아니라 “이런 게 사랑이다”라는 명제는 성립할 수 없다.

 

사람마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듯 그 사랑의 형태는 제각각이다. 거기에 정답이라든지 통일된 정의 따위는 없다. 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사랑도 내가 생각하는 사랑일 뿐이지 누군가의 사랑도 이렇다는 말은 아니다. 하여튼 내가 느끼기에 사랑은 여름날의 더위 같은 것이다.


여름은 덥다. 그냥 덥지만 가끔은 미친 듯이 덥다. 요새는 여름의 절반 이상이 그 미친듯한 더움으로 채워지기도 한다. 이상기후가 심각하다는 걸 몸으로 느낄 수 있다. 여름의 더위로 비유한 탓인지 사랑도 이상기후처럼 오락가락한다. 화가 날 때는 나는 지금 몹시 화가 난 상태라는 걸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다.

 

지루할 때도 마찬가지다. 슬플 때도 같다. 기쁠 때도 그 기쁨을 바로 찾아낼 수 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사랑은 그게 안 된다. 몇 번을 겪어도 내가 지금 저 사람을 좋아하는지 아닌지, 이게 사랑인지 그냥 호감인지 파악하는 데 시간이 꽤 걸린다. 어떤 때는 사랑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부정하면서 외면하려 부단히 노력한다. 이랬다저랬다 하는 것이 변덕스러운 날씨와 다를 게 없다.


여름이 오면 화창할 때는 어느 계절보다 맑고 청량하다. 장마철이 되면 그 어느 계절보다 하늘은 우중충하고 날씨는 습하고 한없이 축 처진다. 중간이 없는 계절이다. 그만큼 여름은 기억에 강하게 남는다.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 중에서 가장 확실한 인상을 주는 건 여름이다. 누군가를 사랑했던 기억, 사랑했던 감정, 사랑했던 시간, 사랑에 대한 모든 게 여름처럼 나라는 사람의 시간에 가장 뚜렷하게 새겨진다. 첫사랑은 무덤까지 간다는 말에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사랑이라는 제목을 붙인 앨범은 내 추억 속에서 언제라도 쉽게 찾아낼 수 있다. 처음으로 키스를 나누던 순간의 두근거림은 생생하다. 사랑하던 이와 밤을 함께 한 날은 불볕더위처럼 내 몸에 그 열기를 진하게 남겨둔다. 더위를 피하려 같이 들어갔던 카페, 여름을 즐기려고 함께 떠났던 여행, 사소한 것에도 크게 웃었던 시간 따위가 흑백 사진 더미 속에 무심하게 던져둔 컬러 사진처럼 지나칠 정도로 뚜렷하게 눈에 들어온다.

 

이제 여름이 오겠다 싶을 때면 푹푹 찌는 더위가 생생하게 기억나는 것처럼 사랑에 대한 기억은 굳이 안 그래도 될 정도로 생생하다.

 

*


사랑에 대한 시간이 마냥 좋은 것으로만 가득하면 좋겠지만 맑은 날과 흐린 날이 뒤죽박죽 섞여 있다. 일 년 내내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면 가뭄이 들어버린다. 비도 내려야 땅이 죽어가지 않는다.

 

사랑에도 맑은 날과 흐린 날이 필요한가 보다. 해도 기왕이면 맑은 날이 더 많았으면 하는 심정이다. 가끔은 흐린 날들이 있는 것이 내 마지막 여름이 될 사람과 함께 할 날에는 비가 내린 후에도 햇살로 가득하기 위해 연습 좀 하라는 꾸짖음은 아닐까 싶다.


여름은 덥다. 여름은 습하다. 여름은 맑다. 여름은 화창하다. 여름은 너무나도 뚜렷하다. 내 여름이었던 누군가는 그 여름의 향기를 나에게 진하게 남겨두었고, 앞으로 찾아올 여름도 아마 그러하리라고 예상한다. 내가 피한다고 피할 수 있는 게 아니라면 그저 그 향기가 맑고 화창한 향기가 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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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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