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여자, 아랍인 그리고 피카소 - 여자를 삼킨 화가, 피카소

글 입력 2021.05.26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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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향유하게 된 것은 피카소의 그림에는 유독 여자 그림이 많은데, 왜 그러한지에 대한 궁금증을 평소에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아랍인의 눈에서 보는 피카소의 그림은 어떤 것인지 궁금하였다.

 

하지만, 이 책의 첫 장을 펴는 순간. 나는 퍽 당황스러웠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사고방식, 다른 스타일의 글쓰기 방식, 내 가치관의 용인 범주를 넘어서는 단어들 등 수많은 것들 것 나를 혼란스럽게 했고, 이 책을 읽는 것이 힘들었다. 하지만, 이 속에서 분명히 얻는 것이 있었다. 바로, 아랍인의 관점 및 사고방식이다.

 

한국에서 아랍인을 만나보기는 퍽 힘든 일일 것이다. 미국에 있을 때도 아랍인을 만나본 적이 없다. 또한, 아랍 쪽과 관련해서 알고 있는 정보는 극히 제한적이며, 사실 관심도 없었다. 우리는 이만큼 아랍과 동떨어져 있다. 하지만, 이번 기회를 통해 아랍의 사고관에 대해 알 수 있었고 이것이 기존에 내가 가지고 있는 사고관과 극명한 차이가 있어 다시금 나의 시각의 편협성을 느낄 수 있었고, 더 많은 관점을 접해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1) 피카소에게 있어 여자란


 

피카소에 별다른 관심이 없던 나는 1932년 피카소의 모델이었던 마리 테레즈의 고백에 어안이 벙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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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1932

 

 

“그는 일단 여자를 강간했죠. 그런 다음에 일을 시작했어요.” (p. 42)

 

피카소는 여자를 산 채로 삼키지 않고, 그녀가 그의 천재성 속에서 그를 산 채로 고상하게 삼키도록, 욕망의 대상이 되는 여자를 그림 속에 그렸다. 그의 그림은 매혹하기 위한 교활한 술책이고, 숭배이고, 삼킴이다. (p. 37)

 

피카소가 그녀를 그리기 시작하자마자, 그녀는 둘로 나뉘었다. 그녀는 다공질이 되고 투명해졌다. 그의 육체와 결합했고, 그가 채우고 싶어하는 공동이 되었고, 그가 마시고 싶어하는, 다양한 색으로 흐르는 따뜻한 피가 되었다. 그녀는 움직임이 없어진 채 점점 살과 먹잇감이 되었고, 그녀의 목은 매번 봉헌물처럼 그려졌다. (p. 46)

 


피카소의 화풍은 큐비즘이다. 그의 그림을 볼 때마다 어떻게 이런 형식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일까 궁금했던 적이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 답을 찾았다. 그는 눈으로 본 정지되어 있는 대상을 그린 것이 아니라, 자신이 느끼고 만진 것, 동시에 움직이고 있는 것을 그렸기 때문이었다.

 

피카소 미술관에 한 번이라도 간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의 그림 속에 여성이 정말 많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왜 여자들이 그러한 모습을 하고 있는지가 의문이었고, 왜 대부분의 대상이 여성인지에 대해 어느 정도 알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의 예술관이 이해되는 것은 아니었다.

 

 

 

2) 아랍 vs. 서양


 

아랍인인 그는 아랍의 사회와 서양의 사회를 모두 경험해 본 자로서 이 둘을 비교하면서 피카소의 그림을 분석하고 있다. 정신과 육체에 있어 아랍과 서양은 확연한 관점의 차이를 가지고 있다. 또한, 로빈슨의 일화를 예시로 들어, 나체에 있어 대비되는 견해와 모순을 보여준다.

 

우리에게는 원래부터 있었던 것처럼 당연한 미술관이 아랍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무척이나 흥미롭고 신기했다. 저자에 의하면, 그는 종교적인 이유와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 때문이라고 한다.

 

 

서양에서 역사는 건드릴 수 있는 ‘기호’, 대상, 그림, 돌의 본체, 번영의 컬렉션이자 축적, 자료이자 일람표이다. 반면 지중해 바로 남쪽인 ‘우리’나라에서 역사는 제단이 비어 있는 숭배, 아무것도 없이 텅 빈 시간이다. 역사는 속이 비고, 영과 육이 분리되고, 몽상으로 만들어진 역사였다. (p. 124)

 

 

서양의 고안물인 미술관에서 인간의 욕심이 드러난다. 바로 박제 기술을 이용하여 과거를 고정하고 죽음을 박제한다는 점에서 말이다. 이에 우리는 화가가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미술관에 가서 그의 작품을 보면서 그가 살아있는 듯한 느낌을 받으며, 그와 시대에 공존하고 있다는 착각을 하게 된다. 또한, 미술관에서 그림을 봄으로써 우리는 고대부터 현재까지의 시간의 축적을 느끼며 과거를 보고 현재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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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에서 공놀이 하는 사람들, 1928

 

 

피카소의 그림 중 ‘해변'과 관련된 그림을 분석하면서 해변과 나체가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로빈슨과 프라이데이의 만남을 기반으로 하여 설명하고 있다. 이를 통해 우리가 그림을 볼 때 어떤 인물이 그려져 있는 배경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의미를 가지고 있는 상징적인 배경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피카소의 해변에 대한 의미가 궁금하다면, 책에서 '해변' 파트를 직접 읽어보는 것을 권한다.

 

이런 점이 사진과 그림의 차이로 다가왔다. 사진에서 인물의 배경이 되는 곳은 대부분 의미가 없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림에서는 배경은 의미가 된다. 조연이 주연이 되는 것이다. 아우라의 차이뿐 아니라 이러한 측면 또한 사진과 그림의 차이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3) 아랍의 캘리그래피


 

작가에 의하면 피카소는 아랍의 캘리그래피가 예술의 궁극적 목표에 달성했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캘리그라피는 육체와 산 자들을 그리지만 그것들을 감추면서 그린다. (p. 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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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의 캘리그래피를 보면, 글씨를 통해 어떠한 형상이 그려지고 있다. 그 글씨는 그 형상의 내재적인 의미가 무엇일지에 대해 고민하게 한다. 저자는 이러한 캘리그래피가 아랍의 사회에서는 용인되지 않는 것들을 표현하기 위함이었다고 말하면서 율법과 재현 사이의 긴장을, 유혹과 위반의 메커니즘이 가정하는 숨바꼭질을 가장 비극적으로 표현(p.181)이라고 말하면서 에로틱하다고 말하고 있다.

 

*

 

본 책을 보면서 아랍의 문화, 아랍의 신과 서양의 신의 차이, 아랍인의 시선으로 본 서양의 예술 등에 대한 새로운 것들에 대한 통찰력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은 나에게 ‘레드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통해 ‘여자’와 피카소의 관계에 대해 정확하게 인지하게 되었으며, 피카소의 그림에 그려진 여인들의 상황과 그가 표현하고자 했던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알 수 있게 되었다.

 

현재 예술의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 피카소 탄생 140주년 특별전을 하고 있는데 전시회를 가기 전에 이 책을 읽고 간다면 조금 다른 관점에서 피카소의 그림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김소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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