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어린이도, 어른도 아닌 나와 우리의 세계 [도서/문학]

베스트셀러 읽기 - 김소영의 ‘어린이라는 세계’
글 입력 2021.05.25 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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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 한다는 속담이 있다. 지난날의 모습은 생각지 못하고 처음부터 그랬던 양 행동할 때 이 말을 쓴다. 보통 여기에서 지난날의 모습은 보잘것없는 무언가고, 지금의 모습은 보잘 것 있는 무언가다. 올챙이가 변태하여 성숙해지면 개구리가 된다. 그런 식으로 개구리는 보잘 것 있음의 대명사가, 올챙이는 보잘것없음의 대명사가 됐다. 덜 큰 올챙이와 다 큰 개구리의 관계가 그렇다.


김소영 작가의 『어린이라는 세계』를 읽으며 이 속담을 생각해 본다. 그리고 다시 이 속담을 통해 생각해 본다. 우리가 ‘어린이’라는 단어와 ‘어른’이라는 단어를 대치하며 얻은, ‘올챙이 적 생각 못 하는’ 개구리의 태도에 관해.

 

 


모두의 어린이


 

 

어린이와 무관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어린이라는 세계’는 당신이 잊고 있었던, 신중하고 용감했던 당신의 세계다.

 

258페이지, 추천의 글, 김지은(어린이문학 평론가)

 


‘어린이’로서 존재했던 시간이 생략된 채로 나이를 먹은 사람이 있는가? 우리는 모두 어린이였다. 어린이가 아니었던 사람도 없고, 어린 시절이 없을 수도 없다. 그러나 그 시절은, 마치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처럼 잊힌다.


잊고 잊히기 때문에 어른들은 어린이들의 세계를 이해하지 못한다. 어린이의 언행은 이따금 ‘잘못된 것’이 되고, '틀린 것’이 되고, ‘아닌 것’이 된다. 어른이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어린이의 생각과 행동은 그 자체로 틀리지 않았다. 다만 세상의 주류인 어른의 잣대로 그것들을 판단하면서 언제나 ‘틀리고’ 만다.


어린이는 어른으로서 살아가며 필요한 규칙과 경계를 배우며 알아간다. 다시 말해, 도저히 이해 안 된다는 얼굴로 그들의 ‘무지’에 쏘아붙여야 할 이유는 없다. 우리 모두 그렇게 배우며 자랐다.

 

 


무엇도 아닌 사람



어른을 기준에 둔, 올챙이 적 생각 못 하는 개구리의 태도는 또 하나 있다. 김소영 작가는 책에서, 5세 아이가 학대로 사망한 사건을 기사로 접하고 ‘다섯 살 어린이의 삶’을 생각한다. 그 기사엔 ‘피어 보지도 못했다’는 댓글이 틀렸다고 생각한다며 이런 말을 한다.


 

내가 아는 삶은 그런 게 아니다. 삶의 순간순간은 새싹이 나고 봉우리가 맺히고 꽃이 피고 시드는 식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지나고 보면 그런 단계를 가졌을지 몰라도, 살아 있는 한 모든 순간은 똑같은 가치를 가진다. 내 말은 다섯 살 어린이도 나와 같은 한 명의 인간이라는 것이다.

 

163페이지

 

 

자라나는 새싹, 피어나지 않은 봉우리, 맺기를 기다리는 열매 같은 표현을 의심해 볼 필요가 있었다. 이런 표현은 비단 어린이뿐만 아니라, 어린이를 비롯한 특정 세대를 그저 ‘미완성’의 존재로 규정하는 프레임이 되기도 한다. 그 시기만의 특별함은 고려되지 않은 채로 오직 완성을 목표 삼아 표현됐다. 그렇기에 이 모든 시간들-누군가의 현재들은 언제나 미래보다 낮은 값의 가치로 환산된다. 오늘은 덜 자란 상태이므로.


책에 언급된 대로 “지나고 보면” 그랬다. 이 표현을 무심코 사용할 수 있었던 건, 나는 ’지났기' 때문이었다. 그 시기를 지났다고 생각했기에 어린이의 삶을 자람을 예비하는 준비 시간 정도로 여기고 만 것이다.


그러나 그 세계도 세계다. 그들에게는 지금의 시간이 새싹의 순간도 아니고 준비의 기간도 아니다. 그 무엇도 아닌 사람, 한 사람으로서 갖는 세계의 전부다.

 

 


늘 어린이



한편, 따지고 보면 어른이 어린이의 시기를 ‘지났다’고 말할 수도 없다. 우리는 늘 어린이다.


어린이가 ‘올챙이’라면, 보잘것없는 지난날이라면, 자라나는 새싹이라면, 어른이 맞닥뜨리는 매 순간은 ‘개구리’여야 한다. 보잘 것 있고, 싱그러운 결실이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나이가 들었다는 사실만으로 개구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사람은 엄마 배 속에서 나와 겪는 모든 일이 새롭다. 처음 겪는 일이고, 그래서 서툴고, 서툴러서 어렵고, 어려워서 실수하고, 그렇게 배우며 적응해 나간다. 어린이들이 겪는 보통의 일들이 그렇다. 갑자기 나의 세계가 만들어졌고 세상 속에서 ‘나’를 적응시키는 법을 배운다. 실수도, 배움도 처음일 수밖에 없다.


어린이는 매사가 처음이라, 처음이라서 나타나는 특징들이 어린이의 것이 되지만 그것들은 어른에게도 있다. 성인이 되면, ‘이제 막’ 성인이 되어서 서툴고 사회생활을 하게 되면, 사회 ‘초년생’이라서 서투르다. 누구에게나 어떤 시기에서든 처음과 미숙함은 여전한 일이다. 처음과 미숙함에서 파생된 기상천외한 일들도 역시 생긴다.


그런 점에서 더는 어린이날을 내 날로 기념하진 않아도, 생전 겪어 보지 못한 새로운 시작을 할 때면 우린 언제나 어린이인 것이다.

 

 


어른보다 어른스러운 어린이



반면 어린이는 어른스럽다. <어린이라는 세계> 속 어린이들은 감정적으로나, 이성적으로나 어른이 환호하는 어른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자람이는 작가에게 책 선물을 한다. 선생님(작가)께 선물하고 싶어서 책을 샀는데, 그 책이 이미 선생님에게 있다는 걸 알게 되자 자람이는 이렇게 편지를 쓴다.

 

 

“이 책이 선생님한테 있잖아요? 하지만 다 똑같은 책이어도 이 책앤 제 마음이 있어요.”

 

72페이지

 


이런 말을 진심으로 할 수 있는 어른은 몇 명이나 될까. 아마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 말을 듣고 감동하는 어른은 얼마나 될까. 분명히 많을 것이다. 어른이 하지 못하는 것을 어린이는 한다.


날카로운 질문을 하는 은규의 이야기도 나온다. 그는 이런 식으로 묻는다.


 

“어디서 시위하면요, 거기 온 사람들 몇 명인지 경찰이 말하는 거랑 시위한 사람들이 말하는 거랑 왜 달라요? 그 사람들 몇 명인지 어떻게 세요?” - 230페이지


“만약에 통일이 된다면, 그때는 지금 어린이들이 커서 어른이 되어 있을 텐데 그때 가서 문제가 발견되면 어떡해요? 좋은 점만 알고 대비를 못 했다가 ‘아, 이건 아니다’ 하고 없었던 일로 할 수는 없잖아요. 그때 가서는 저희가 해결해야 될 텐데, 왜 어린이한테는 의견을 안 물어봐요?” - 231페이지

 


은규의 질문들은 본질에 닿아있다. 은규는 주장과 해석이 입장에 따라 다르다는 걸 간파하고 있다. 더군다나 왜 그런지 궁금해하고 있다. 논지와 근거를 알고 싶은 것이다. 그게 중요하니까.

 

 

어린이들은 어른들에 비해 역사 지식이나 정치의 세부 내용을 알기가 어렵다. 한편으로는 그렇기 때문에 현재가 또렷하다. 맥락이라든가 정세라든가 하는 주석 없이, 본문만을 읽는 사람들이다.

 

234페이지

 

 

막상 어른들이 주석을 보느라 놓친 본문을 어린이들은 또렷이 보고 생생히 느낀다. 은규처럼 말이다. 나이라는 훈장을 떼어놓고 보면 이들의 마음과 생각, 그리고 말은 그 누구의 것보다 섬광처럼 번쩍인다.

 

 


나와 우리



『어린이라는 세계』는 누구에게나 있지만, 누구나 간과한 것을 꺼냈다. 개구리 대신 올챙이를 내보이며, 올챙이가 살아낸 시간들이 얼마나 “정중하고 사려 깊고 현명함으로 가득(p.258)”한지를 말한다. 더불어 주석만 들여다보며 아는 체하는 우리에게도 본문을 명징하게 인식하던 시절이 있었다고, 그 시절이 있기에 주석도 읽어내는 거라고 알려 준다. 개구리는 올챙이로부터 만들어진다.


어린이, 아니 나이가 어릴 뿐인 사람을 사람으로서 존중할 것. 어린이와 어른이 아닌 나와 우리로, 세계는 그렇게 구성돼야 한다.

 

 

[송혜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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