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논어', 읽어 보셨나요? [도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답변
글 입력 2021.05.19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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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도덕 시간을 참 좋아했다. 국어, 영어, 수학 같은 주요 과목이 아니라는 부담감이 적어서이기도 했지만 삶의 지표를 제시해 주는 과목이라서 좋았다.


고등학교에서는 도덕의 연장선으로 생활과 윤리, 윤리와 사상을 배울 수 있었다. 등급이 전부였던 대입 시절,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원동력을 준 과목이었다. 특히 공자의 사상은 근본적인 학업적 태도뿐만 아니라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알려주었다.


단편적으로 배웠던 공자의 ‘논어’를 전부 읽어보고 싶었기에 대학교에 합격하자마자 책을 구입했다. 배웠던 부분을 다시 읽어볼 때는 가슴이 뛰었고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은 공자의 시각에서, 또 나의 시각에서 생각해 보았다.

 

분명히 논어는 널리 알려져 있는 문헌이다. 하지만 대중적이라고 말하긴 어렵다. “성경을 읽어봤다.”라고 말할 때와 “공자의 논어를 읽어봤다.”라고 말할 때 상대방의 반응은 상당히 다르다. 이런 반응은 기독교는 현대 사회에서 종교의 한 축을 지탱하고 있지만 반면 유교는 이미 과거의 사상이라는 인식이 크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많은 사람이 유교는 다소 고리타분하며, 남존여비 사상을 갖고 있기에 여성에게 억압적인 사상이라고 알고 있다. 이러한 다양한 이유로 논어는 ‘잘 알려졌지만 잘 읽지는 않는 경전’이 되었다.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는 공자의 논어를 읽으면서 여성을 심각하게 깎아내린다거나 답답한 학문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오히려 책을 읽으면서 자신을 좀 더 정돈할 수 있고, 학문적 태도와 삶의 태도가 연결되어 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유교는 이미 지난 학문이다.”라는 편견에서 벗어나 유교의 대표 서적인 ‘논어’에 담긴 단아한 삶의 태도를 더욱 많은 사람이 향유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런 생각에서 비롯하여 논어의 몇 구절을 소개하고 또 개인적인 경험 및 생각을 적어내고자 한다.

 

 

 

초점을 나에서 타인으로 옮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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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남이 자신을 알아주지 못할까 걱정하지 말고 내가 남을 알지 못함을 걱정해야 한다.”

 


고등학교 시절, 나의 터닝포인트가 된 구절이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행동하던 나는 언제나 ‘내가 어떤 사람으로 보이는가’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다방면으로 지식을 갖춘 리더십이 있는 여성을 꿈꿨다. 그러다 보니 완벽한 ‘나’를 만드는 것에 초점을 두었다. 하지만 언제나 나는 나 자신의 모습에 만족하지 못했다. 부족한 모습만 계속 발견하게 되었고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에 대해 더욱 집착하게 되었다.


하지만 위 구절을 읽은 후 생각의 사고를 바꿔보게 되었다. 물론 오랜 사고과정을 바꾸는 것이 결코 쉽지만은 않았다. 의식하지 않으려고 해도 어느새 타인의 시선을 고려하고 있는 내 모습을 종종 발견하곤 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사고의 의식을 내가 아닌 타인으로 옮기고자 노력했다.


상대방은 어떤 사람인지 깊이 이해하는 것은 상대방은 대중의 일부로 바라보는 것이 아닌 한 명의 개별적 존재로 배워가는 과정이었다. 이전처럼 ‘내’가 어떤 존재인 것을 신경 쓰는 것이 아닌 ‘상대방’이 어떤 존재인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 타인을 더 이상 타인으로 바라보지 않고 한 명의 지인으로 받아들이게 되면서 상황에 적합한 배려와 친절을 어떻게 베풀어야 할지 자연스레 알게 되었다.


이런 사고의 전환으로 나는 내가 꿈꿔왔던 인간상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또한, 나의 부족한 점을 발견하며 나 자신을 미워하던 시간 대신에 상대방을 좀 더 알고자 하는 태도를 배우고 타인을 지인으로 받아들이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우리는 결코 타인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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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공이 말하였다. “저는 남이 저에게 하기를 바라지 않는 일을, 저 또한 남에게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사야, 그것은 네가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처음에는 공자의 대답이 이해 가지 않았다. 공자의 제자인 자공이 한 말은 현대 사회에 사는 우리에게도 중요하게 여겨지는 태도이다. “내가 싫은 행동을 상대방에게도 하지 말자.”라는 배움을 받은 나 역시 지금까지 상대방이 싫어할 행동을 최대한 피하고자 했다. 하지만 공자는 이런 자공과 나의 노력을 부정하는 듯한 대답을 한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부정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그 행동의 어려움을 강조하며 더욱 주의 깊게 상대방을 살펴야 함을 전하고자 하셨음을 알 수 있다.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다’라는 강한 어투로 말한 이유는 아무리 노력해도 상대방의 상황과 생각을 100% 온전히 알 수는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특정 상황에 대하여 이성과 감정이 다른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예를 들어 분명히 옳은 선택임에도 불구하고 ‘싫다’는 감정이 생기는 선택을 해야만 했었다. 그럴 때 나도 나 자신을 잘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 기억이 있다. 이처럼 개인도 온전한 자신을 이해하기가 어려운데 타인이 특정 개인을 이해하고 그 사람을 배려해 준다는 것은 굉장히 섬세한 노력과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의 대학 시절에 감수성이 매우 풍부한 친구가 있었다. 신입생 때 그 친구와 다른 친구 간에 작은 다툼이 있었는데 감수성이 풍부한 친구의 마음을 온전하게 이해하기 어려웠던 기억이 난다. 내 시야로는 그 친구의 감정선을 따라가기가 어려웠고 내가 전한 위로는 큰 도움이 되지 못했었다. 하지만 그 친구와 5년째 가깝게 지내다 보니 친구의 사고방식, 감정 폭을 좀 더 알 수 있었다.

 

이처럼 개인의 렌즈로 상대방을 이해한다는 것은 한계가 있다. 상대방을 더욱 이해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렌즈를 취하기 위해 충분한 시간과 끊임없는 관심이 요구된다. 이런 노력이 상대방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주겠지만 결코 100% 온전하게는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자기 자신도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공자는 이러한 점을 이미 알고 있었기에 불가능하다고 말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자신의 속도를 사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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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멈추지 않으면 얼마나 천천히 가는지가 문제가 되지 않느니라."

 

 

고등학생, 취준생, 공시생 등 뜻을 이루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고 싶다. 대학생 때 한 학우님께서 하신 말이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나이에 너무 예민해요." 수업에서 한국의 교육에 대해 토의하다가 나온 말이었다. 한국 사람들은 매우 부지런하다고 알려져 있다. 그리고 그 유명한 부지런함은 보통 교육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미리 배워야 하고 빨리 습득해야 한다는 생각에 선행학습은 결코 '선행'학습이 아니다.


하지만 대학생이 되어서 사교육의 도움 없이 온전히 혼자 공부하면서 깨달았던 점은 나는 나의 속도일 때 가장 효율적인 공부를 한다는 것이다. 난 욕심이 많았기에 누구보다 뒤처지는 것을 굉장히 싫어했다. 하지만 또 공부하는 것을 재빠르게 습득하는 두뇌는 없었다. 따라서 미친 듯이 앞서 나가는 진도를 따라가지 못하여 결국 고등학교 시절 큰 실패를 경험했었다.


그 후 재수를 하면서 나의 호흡을 배웠다. 조금은 느리지만 우직하게 나아가는 방법을 습득한 후 원하는 학교를 진학할 수 있었다. 하지만 대학교에 진학한 후에 또 다시 진로에 대한 막연함이 나를 찾아왔고 어떤 선택을 내려야 할지 오랫동안 고민을 했다.

 

현재 취업을 성공한 친구도 있고, 공무원을 준비하는 친구도 있다. 하지만 나는 조금 더 공부하기 위해 대학원 진학을 결심하게 되었다. 물론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도피성 대학원이 아니냐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난 더 이상 타인의 시각 때문에 나의 선택지를 좁히고 싶지 않다. 내가 안정된 직장을 잡는데 조금 더 시간이 걸릴지라도 더욱 자신 있는 나 자신이 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해 생각하고 내린 결정이다.

 

공자의 말씀대로 나는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신경 쓰기 보다 더욱 오래 호흡할 수 있는 길을 향해 나아가고자 한다.

 

 

 

길을 잃었을 때 방향을 제시해주는 책, 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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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주기적으로 논어를 펼친다. 그리고 최근에 새로운 한 구절이 더욱 가깝게 다가왔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인이 멀리 있는가? 내가 인을 실천하고자 하면, 곧 인은 다가온다.”

 


물론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삶에서 ‘인’을 추구했다고 말하기에는 많이 부족하다. 하지만 ‘인’을 어떻게 실천할지 우왕좌왕하던 나에게 결국 ‘인’은 방향성을 제시하며 다가왔다. 아직 나는 여전히 부족하지만 그래도 나는 꾸준히 발전하고 있다. 삶을 살아가면서 무엇이 옳은지 치열하게 고민하고 끊임없이 자신의 뜻을 닦아낸다면 분명 답이 먼저 다가올 것이다.

 

이처럼 매번 다르게 가르침을 주는 논어를 나는 앞으로도 몇 번이고 읽을 것이다. 다른 많은 사람들도 어려움을 느꼈을 때 논어를 통해 다시 숨을 가다듬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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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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