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어른들은 알지 못하는 씨앗을 품은 아이들은 즐겁다

영화 ≪아이들은 즐겁다≫
글 입력 2021.05.17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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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 협의된 자만이 출입할 수 있는 아지트를 가져본 적이 있는가? 아파트 주차장 구석, 지하의 먼지 쌓인 곳, 놀이터 미끄럼틀 아래 빈 곳‥. 나의 아지트였다. 그곳에서 벌어지는 우리의 작당 모의는 아무도 알아챌 수 없었고, 누군가 드나들 순 있어도 그곳의 의미를 알고 있는 우리만이 진정으로 아지트를 소유할 수 있었다. 현실 세계의 사각지대에서 새로운 규칙과 관계를 정립하며 이상을 실현해나가는 곳. 철학자 미셸 푸코는 이러한 아지트 따위의 공간을 두고 현실화한 유토피아, 다시 말해 현실에 존재하지만 현실의 모든 장소의 바깥에 있는 공간인 헤테로토피아라고 불렀다.

 

그땐 왜 그런 장소를 소중하게 여겼을까? 우리는 자라나면서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세상과 마찰하게 되고 이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숱한 불가능성과 마주치며 이내 안으로 말려든다. 그리고 어른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의 바깥을 향해 나아간다. 모래를 밥이라고 하고 돌멩이를 돈이라고 해도 말이 되는, 우리의 의견이 반영된 규칙과 그것이 통용되는 장소를 찾아 나선다. 물론, 사회화의 과정에서 그것이 영원히 ‘바깥’일 수밖에 없음을 깨닫고 탈피했던 곳으로 다시 돌아오게 되지만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마음속에 언제나 그런 아지트를 하나씩 품고 있다. 아무런 기능을 하지 않는 먼지 쌓인 장소를 볼 때 출처 모를 그리움을 느끼는 이유는 이런 태곳적 기억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런 기분은 때때로 슬픔의 형태를 하고 마음에 자리한다. 세상의 바깥이라 소중했던 곳이 같은 이유로 소외되고 버려진 모습을 보는 것 같기 때문이다. 우리에겐 그런 기억이 있다. 서둘러 내부로 들어오느라 바깥에 놓고 그대로 방치해버린, 하지만 결코 사라지진 않은 기억 말이다. 아이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작품을 마주할 때 이따금 정체 모를 눈물로 울렁이는 이유는 그러한 기억에 공감해주는 이가 생겼다는 때늦은 설움과 안도감 때문일 것이다. 다듬어진 언어로 말하기에는 너무나 내밀하고 복잡해서 미처 타인에게 납득시키지 못했던 바깥의 마음에 뒤늦게 누군가 귀를 기울이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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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이들은 즐겁다》는 주인공 9살 다이의 시선을 따라 그의 세상에서의 크고 작은 변화를 그려낸다. 몸이 아파 병원에 있는 엄마와 일하느라 항상 바쁜 아빠, 그리고 전학 간 새로운 학교에서의 친구들과 함께 세상을 경험해나가는 다이의 걸음을 담임 선생님의 모습이 목까지만 보이는 낮은 눈높이를 한 채 따라간다. 사소한 것으로 치부됐지만 거대한 파도를 매일 맞닥뜨리는 기분이었던 그때의 마음을 섬세하게 재현하는 영화는 사라지지 않은 흐린 기억에 쌓인 먼지를 조심스레 털어낸다.

 

포스터에 등장하는 다이와 다이의 친구, 민호와 유진이 종이컵 망원경을 들고 망을 보며 앉아 있는 곳은 동네 산 구석에 놓인 주인 없는 컨테이너로, 삼총사의 아지트다. 어른들에게는 처치 곤란 골칫거리지만 삼총사에게 그곳은 안식처다. 벽에 마음대로 그림을 그릴 수 있고 읽고 싶은 책도 마음껏 읽을 수 있는 자유로운 공간이면서도 남에게 상처 주지 않기, 다른 사람에게 아지트를 알리지 않기 등 나름의 규칙도 존재한다.

 

어른들이 이미 만들어 놓은 법이 아닌 아이들이 직접 협의해서 만든 법만이 통하는 이 공간은 어른들이 아이들을 쫓아내는 다른 곳과 다르게 아이들이 침입하는 어른들을 쫓아낼 수 있는 결정권을 가진다. 기존 세상의 바깥에 존재하나 엄연히 실재하는 아이들의 유토피아다. 그곳에서 아이들은 티 없이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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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들에겐 이 공간만이 유일한 세상이 아니다. 어른들의 세상은 이들의 영역을 손쉽게 침범한다. 모범생 재경은 자신보다 시험을 잘 본 다이가 커닝을 한 게 아니냐는 엄마의 말 한 마디에 다이를 거짓말쟁이로 믿기 시작하고, 둘 사이에 다툼이 일어나자 자초지종도 모르는 다이 아빠가 대신 사과한다.

 

아이들은 어른의 힘을 인식하고 그것의 부재가 야기하는 불이익을 직간접적으로 체감한다. 다이는 부모님과 주말을 보냈다고 거짓말을 하고, 그걸 들은 다른 아이는 다이 엄마가 병원에 있다는 소식을 엄마를 통해서 들었다며 다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숙덕인다. 이에 다이를 믿었던 민호와 유진도 이상함을 느낀다. 어른의 흘러가는 말 한 마디가 아이들의 세계에 너무도 큰 파동을 일으킨다.

 

그러나 아이들의 세상은 어른들의 생각보다 더 단단했다. 다이를 오해할 뻔했지만 여전히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아야 한다는 규칙을 공유하는 민호와 유진은 다이를 찾아오고, 다이를 둘러싼 소문을 걱정하는 다이 엄마에게 ‘우리는 그런 거 신경 안 쓴다’라며 안심시킨다. 하지만 이내 아지트였던 컨테이너는 철거되고 어른들의 재산 싸움의 도구가 된 유진이 전학을 가게 되면서 삼총사의 유토피아에는 금이 간다. 아이들이 소중하게 구축한 세상이 어른들의 가벼운 의사에 따라 귀추가 결정된다.

 

깊은 상처를 받은 아이들은 멀리 떠난다. 책을 좋아하지만 책이 없어 버려진 것을 주워 읽는 시아와 다이와 어색한 사이지만 어쩌다 보니 일행에 합류하게 된 재경이 함께 다이 엄마가 있는 병원을 향해 청주로 떠난다. 목적은 하나, 다이 엄마가 키우며 다이를 떠올렸던 화분을 엄마에게 갖다주는 것. 아이들이 몰래 결성한 특공대는 다시 어른의 공간에 제약받지 않는 여행을 떠난다.

 

장장 4시간의 여행을 하며 길을 잃고 다투기도 하지만 아이들은 뜻깊은 추억을 하나 더 만들어간다. 다이와 재경은 서로 도우며 화해하고, 다이는 어른들로부터 도망치다가 깨뜨린 화분을 그러모아 자신만이 아는 곳에 다시 심는다. 순탄치 않은 여정 끝에 병원에 도착한 다이는 화분을 전해주진 못하지만 무사히 엄마와 마지막 인사를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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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실에 있는 다른 화분에 비해 잘 자라지 않아 다이가 엄마에게 선물한 화분이 엄마의 사랑을 받아 무럭무럭 자라고, 깨지고 흩어져도 다시 모여 새로운 곳에서 뿌리내리는 과정은 다이의 성장과도 닮아있다. 다른 친구들처럼 주말에 부모님과 놀러 가서 맛있는 음식을 먹진 못하더라도 다이는 병원에 있는 엄마와 이제 막 학부모의 삶을 시작한 아빠의 사랑, 그리고 친구들의 단단한 지지와 함께 자란다. 유일한 터전이 부서지고 깨져도 떠나지 않는 아이들과 함께 새로운 곳에서 또 다른 즐거움을 만들어간다.

 

다이 엄마가 생전 다이를 위해 나무의 성장 과정을 우화로 만든 동화로 영화가 마무리되는 것이 큰 울림을 주는 이유는, 아이들이 저만의 위로와 공감으로 구축한 ‘그런 거 신경 안 쓰는’ 공간이 쉽게 부서질 씨앗처럼 보여도 결국 커다란 나무로 자라나 세상에 뿌리내릴 것이라는 메시지로 읽히기 때문이다. 바깥의 아지트에서 나누었던 아이들의 이야기들이 어른들이 치부하는 것처럼 쓸모없는 것이 아니라,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기억으로 남아 오래도록 이들을 지켜줄 약속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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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의 엄마는 사는 날 동안 다이로 인해 행복했다. 다이의 아빠는 다이에게 엄마를 지켜줘서 고맙다는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계속해서 흔들리고 부딪치는 아이들의 유토피아는 결국 현실의 바깥에 있는 헤테로토피아로 머물지라도 현실에 있는 어른들을 지킬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잊고 지내더라도 누구나 품어봤을 그 힘의 존재를 떠올린다. 어느 순간부터 잘 생각나지도, 이해할 수도 없지만 그 힘을 품은 아이들이 그 자체로 소중한 존재라는 것만을 또렷이 기억하면 된다. 그리고 우리 역시 그랬더라고, 지금의 아이들이 저만의 단단한 아지트에서 건네는 위로와 함께 즐거워하면 되는 것이다.

 

 

[조현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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