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찐따 박성빈] 할마시 신발이 기른 손자

글 입력 2021.05.13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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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할아버지, 할머니와 같이 산다. 여섯 식구의 가계는 그들이 운영하는 신발가게로 유지됐다.


가게는 동서울 시장에 있었다. 효도신발, 욕실 슬리퍼, 나이스 운동화 같은 것들을 동대문에서 떼와 파는 곳이었다. 중학생 때까지 외출할 일이 생기면 꼭 가게를 들렀다. 고등학생 때부터는 그러지 않았다.


‘슬래재규어’는 푸마의 짝퉁 브랜드다. 그 이름이 맞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아무튼. 나는 할머니가 동대문에서 떼 온 슬래재규어 신발을 신는데 별 거리낌이 없었다. 흥정 끝에 싼 값에 얻었다며 내게 신겼으니까. 누가 남 신발 브랜드를 일일이 확인하며 망신 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으니까. 곱씹어보니 씨발새끼 였던 J는 그 신발을 신고 온 나를 조롱했다. J는 우리 집이 신발가게를 하는 걸 알았다. 누가 그런 신발을 신냐며 키득거렸다. 나는 웃는 낯짝을 유지하느라 혀를 깨물었다. 피 맛이 났다. 내가 어느 좌표에 있는지 확인한 때였다. 그 때부터 가게에 잘 안 갔다. 수치심이 혀끝에 어떤 맛을 남기는지도 알았다.


조부모가 싫고 미워진 것도 그 무렵이다. 나는 할머니의 집착과 신경질이 싫었다. 다정한 구석이 없었다. 환갑이 넘어서도 자식의 자식 뒷바라지를 하는 울화를 설거지할 때마다 소음으로 표현하는 방식이 싫었다. 참고서 값이 필요하다고 할 때마다 뭔 놈의 책값이 그리 비싸냐는 채근을 빼먹지 않는 것도 싫었다. 부엌에 들어서거나 세간을 뒤질 때 어지르지 말라는 고성을 꼭 들어야 하는 것도 싫었다. 할머니의 신경질에 맞서려면 그런 게 아니라며 언성 높여야 했던 것도 싫었다. 할아버지와 매일같이 싸울 때마다 내 방식이 맞다며 시비를 걸고 악을 쓰는 것도 싫었다.


생각해보면 할머니는 자기 최선을 다한 거였다. 새벽같이 일어나 물건을 납품받고, 양손에 인 채 한 시간가량 버스를 탔다. 곧장 가게에서 손님을 상대하고 할아버지와 교대하면 해가 질 무렵이었다. 집에 오면 집안일을 했다. 손자들 밥과 빨래와 설거지를 해야 했다. 이 집 남자들은 무능하고 어리고 자기연민에 찌들어 있었기에 집안일도 하지 않았다. 소리를 지르지 않을 수 없는 환경이었다. 험한 말을 쏟고 욕지거리를 뱉고 물건을 던져야 그나마 잠자는 게 가능했다. 생활은 할머니의 키를 주저앉히고 집안 구석마다 더께를 남겼다. 그것에 걸레질하는 게 왜 항상 자신이냐는 억울함을 그런 식으로 푼 것이라고 지금에 와서야 생각한다.


할머니의 신경질에서 벗어난 건 대학에 오면서 부터다. 본가에 있는 시간이 줄고, 할머니와 마주 칠 일도 줄었다. 원래 집에 들를 때 할머니는 한번 파란색 선이 죽 그어진 촌스러운 슬리퍼를 안겼다. 내가 필요하다고 말한 적 있던가, 생각하다가 그러려니 하며 신고 다녔다.


동기들은 왜 그런 슬리퍼를 신냐고 물었다. 이상한 감각을 가졌다고 장난을 걸었다. 나는 J가 떠올라 수치심이 일어 얼굴이 벌개졌는데 그들의 장난에 악의가 없다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안도했다. 그들은 내가 조부모와 같이 사는 것도, 우리 집이 신발 장사를 하는 것도 몰랐다. 빈곤하고 가난하며 그래서 촌스럽다는 조롱이 아니라 순전히 취향이나 호오를 나무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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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나는 내가 신발가게를 창피해하고 있다는 게 참을 수가 없어졌다. 스무 살이 돼 처음으로 술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무렵이었다. 할머니 말처럼 남의 돈을 타먹는 건 쉽지 않았다.  할머니가 새벽같이 일하러 나가는 게 생각났다. 내가 학위를 딸 수 있는 건 당신이 생활에 찌든 얼굴을 숨기고 웃는 낯으로 타인에게 대거리해서였다. 파란색 선이 그어진 슬리퍼와 슬래재규어 운동화를 팔아서였다. 부끄러움을 느끼는 나날이 많아졌다. 기어이 슬래재규어 신발을 버리고 처음으로 리복 신발을 샀을 때는 내 성분을 부정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 부끄러움을 타파하고 싶다는 바람이 종종 생겨서 나는 일부러라도 슬리퍼를 신고 다녔다. 그러나 슬래재규어 신발을 신고 다니는 것은 여전히 부끄러워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내 몫을 수행하기 시작했다. 내게 돈이 드는 일은 내가 해결했다. 할머니가 준 신발을 신지 않는데에도 익숙해졌다. 파란색 슬리퍼는 줄이 끊어졌다. 이제 리복 신발을 신고 다니는데 거리낌이 없어졌다. 내 학위의 기원이 어디 있는지 잊어 간 채 어떤 식으로든 나를 포장하고 싶다는 갈증을 해소하는데 여념 없었다. 나는 늘 그런 식이었다. 뭐든 쉽게 잊었다.


국문과를 전공했지만 사회과학 수업들이 더 기억에 남았다. 인권이니 윤리니 도덕이니 그 때 배운 것들을 떠들어대며 허영심을 채웠다. 사회구조의 불합리를 지적하는 레포트와 기사를 쓰고 발표했다. 점수보다 중요한 건 내게 부조리를 감각하는 더듬이가 있다는 것을 어떻게 하면 세련되게 과시할 수 있는지였다.


지금 청년세대는 ‘세대론’으로 쉽게 재단되며 정치적으로 각성해야 한다는 훈계를 듣는다, 이 훈계는 유효한가, 이미 입지를 다진 기성세대가 청년의 처지를 이해해야 한다. 나는 그런 글을 써댔다. 마치 저자인 나는 기성세대에게 빨대 한번 꽂아본 적 없다는 식의 글들이었다. 할머니가 차려준 밥, 다려준 옷을 입고 부조리가 제공한 편의를 이제껏 다 누리고 성장한 주제에 잘도 그런 위선을 지껄였다. 그런것들로 나를 잘 포장했기에 비영리단체에서 일하고 ‘소셜섹터’라 불리는 생태계의 회사에 취업할 수 있었다.


회사를 다니면서 패스트푸드점 아르바이트를 할 때였다. 피곤한 나날이었다. 남는 시간에 잠을 자고 있었다. 집에서는 김장을 했다. 그 소리에 깼다. 배추라도 옮기라는 소리를 듣고 표정을 잔뜩 구긴 채 짐을 날랐다. 으레 그렇듯 별것도 아닌 일로 식구들끼리 싸움이 붙었다. 할머니는 이쪽에 놓으라며 소리를 질렀다. 나 역시 큰 소리로 역정을 냈다. 이게 그렇게까지 소리칠 일이야?


집에서 밥을 먹을 때, 할머니는 반찬을 내놓으며 왜 이렇게 집에서 말이 없냐는 식으로 추궁했다. 역시나 시비 거는 일로 해석한 나는 다 먹은 그릇을 개수대에 소리나게 집어 던졌다. 기분 나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뭐 때문에 그러냐고 응수했다. 내 몫을 내가 수행하는데 무슨 문제가 있냐는 식이었다. 쾅 문을 닫고 잠갔다. 말하면 싸움이 나는 집에서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냐고, 맨날 소리만 질러대지 않았냐는 성이 가슴에서 맴돌았다.


한바탕 지르고 나면 할머니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었다. 내 눈치를 보면서 김장을 했고 내가 집어던진 그릇을 설거지했다. 화가 식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방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김장을 하고 설거지를 하지는 않았다.


할머니를 착취해서 얻은 시각과 잣대로 타인에게 관대할 것을 설파하는 나. 집에서는 천불이 나 할머니를 몰아세우지만 누구도 배제되지 않아야 한다는 투의 기사를 쓰는 나. 할머니를 붙잡고 흔들며 왜 그렇게 화가 많고 소리를 질러대냐고 폭력적이게 묻고 싶지만, 남과 섞일 때는 대상화가 어쩌느니 페미니즘이 어쩌느니 혐오를 중단할 것을 주문하는 나. 나는 내가 종종 역겹다. 내 윤리는 왜 할머니를 밀어내는가. 내 인권은 왜 할머니를 그러안지 못하는가. 내 도덕은 왜 여전히 할머니를 상처입히는가.


얼마 전에는 수박을 샀다. 어버이날이라서 그랬다. 꽃을 달아주며 그동안 감사했다, 같을 말을 늘어놓기엔 낯간지러웠다. 어울리는 선물을 고심하고 비싼 금액을 지불하는 것은 내가 당신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음을 들키는 듯해 하지 못했다. 수박을 식탁에 올려두는 일에도 얼굴이 해사해지는 당신을 보면서 나는 울고 싶어진다. 당신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하지 못하면서 이 글을 쓰는 것도 비슷한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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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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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온수
    • 5편도 나오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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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저
    • 미온수5편 6편 7편......제 찌질스러움이 해소될 때까지 나옵니다... 영원히 안 끝날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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