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자세히 보아야 의미있다 - 마르첼로 바렌기展

이봐요, 당신은 냉장고에 있는 케쳡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자세히 본 적이 있나요?
글 입력 2021.05.10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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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에 사진기의 발명 이후로 새로운 미술 사조가 등장한다. 바로 '인상주의'. 인상주의자들은 실제와 똑같이 그려내며 묘사에 오랜 시간 집중해왔던 그동안의 리얼리즘적 관점에서 벗어나 역설적으로 사실적이지 않은 그림을 그려내기 시작한다.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보이는 대로 그려야 해." 이는 당시의 대표적인 화가 끌로드 모네가 남긴 말이자, 인상주의를 가장 잘 나타내는 말이다. 그들은 사물의 느낌, 그리고 순간적인 인상을 표현하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 따라서 지금껏 전통처럼 내려왔던 회화 기법을 거부하고 색채 그대로에 관심을 가졌다.

 

 

나는 작업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그대로 노출한다. 거짓도 리터치도 없다.

 

 

그런데, 2021년 현재, 카메라가 그 어느 때보다도 발전한 지금, 극사실주의를 바탕으로 작품을 그려내는 독립적이고 이례적인 아티스트가 등장한다. 그는 유튜브라는 매체의 특성을 십분 활용한다. 그가 작품을 그리는 과정은 더하거나 빠지는 것 없이, 모두 유튜브 영상에서 공개가 된다. 4시간 반 동안 작품을 그린 여정은 4분 내외의 짧은 영상으로 압축해 볼 수도 있다. 이렇게 그는 작업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노출하며 사진과 헷갈릴 정도로 사실적인 그림을 그려낸다. 그는 2013년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고 동영상을 매일 업로드하며, 채널을 개설한 지 1년 만에 구독자 10만 명에 이르렀다.

 

유튜브 누적 조회 수 3억 8천, 구독자 수 261만 명, 유튜브 골드 버튼의 하이퍼리얼리즘 마스터. 그는 바로 이탈리아 작가 마르첼로 바렌기이다. 그의 월드투어 개인전이 한국에서 첫발을 내딛는다. 용산 아이파크몰 6층 '팝콘D스퀘어'에서 그의 놀라운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마르첼로 바렌기는 과자 포장지, 과일과 만화 캐릭터 등 일상적으로 볼 수 있는 사물들을 소재로 하여 극사실주의 그림을 선보인다. 전시의 부제, 'IT'S LIFE'와 일맥상통한다. “와, 이건 진짜 사진 아니야?” 전시를 보는 내내 직관적으로 느껴지는 현실감과 생동감에 연신 감탄하며 그의 궤적을 따랐다. 페인팅, 드로잉, 카툰 등 약 100점에 달하는 하이퍼 리얼리즘 작품들을 통해 우리 주변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사물들에게 특별함을 부여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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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기관을 교란하다


 

 

“내 작업의 목표는 보는 이의 감각기관을 교란하는 것이다.”

 

 

그의 그림을 관람하다 보면 무엇이 원본이고 무엇이 복제인지 의문이 들 때가 있다. 최근 다녀온 팝아트의 거장, 앤디 워홀전이 문득 떠오른다. 그는 주제의 독창성이 아닌 대량 생산을 강조하며, ‘모든 것은 반복일 뿐인데 새로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놀랍다’라는 말을 남기며, 원본과 복제, 가상과 현실의 세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한다.

 

초반의 극사실주의는 팝아트의 영향을 받았다. 자신을 작품에 개입시키지 않고 있는 그대로 묘사했던 앤디 워홀처럼, 대상에 대한 주관을 적극적으로 배격하고 중립적 입장에서 극명한 화면을 구성한다. 그러나 팝아트와는 달리 억제된 것으로서 아무런 코멘트도 없이 있는 그대로의 사실만을 다룬다. 극사실주의는 우리가 육안으로는 식별할 수 없었던 점들이 그대로 클로즈업되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충격을 받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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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나는 마르첼로 바렌기의 실제와 구분이 불가할 정도로 사실적인 그의 작품에 감탄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의 예술 세계와 신념을 통해 그의 그림들이 특별하고 따뜻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일상의 사물이 지닌 순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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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나태주 <풀꽃> 중에서

 

 

그는 아무리 재미없는 물체라도 그만의 정점은 있다며, 일상적인 사물들을 깊게 들여다보아야만 알 수 있는 사소한 점들에 주목한다. 미세한 주름, 지문 자국, 생활 흠집과 작게 솟아올라 있는 기포... 무엇이든 이름을 불러 준다면 꽃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자세히, 오래 사물을 관찰함으로써 각각의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의 정점을 극대화하여 입체적인 그림을 그려낸다.

 

일전에 본 한 노인의 손을 찍은 사진작가의 사진이 스쳐 지나가기도 한다. 젊어서는 농기구를 만지던 거칠거칠한 손, 주름이 자글자글한 손, 크고 작은 점들과 고생의 흔적들을 카메라는 집요하게 쫓는다. 노인은 그 손으로 자식들이 장성할 때까지 키워내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나 보낸다. 광고 모델의 하얗고 보드라울 것 같은 손과 정반대의 모습이지만, 사람들은 그의 손에서 따뜻함과 아름다움을 함께 느낀다. 그는 말한다.

 

 

모든 사물은 각자의 이야기와 아름다움이 있다. 아무 꾸밈없이 있는 그대로 일상의 사물을 표현할 때 그 순수함에 매료된다.

 

 

그를 스쳐 간 사물들은 그의 손길에서 의미 있는 존재가 되어 다시 피어난다.

 

 

 

잘못된 예술은 없다


 

 

올바른 예술은 없고, 잘못된 예술도 없다. 아티스트는 자신을 자유롭게 표현하면 된다.

 

- 마르첼로 바렌기

 

 

전형적인 아카데미에서 미술 교육을 받은 마르첼로 바렌기는 교수들로부터 비평을 받는다. '대상은 지나치게 현실적이고, 그림자는 필요 이상으로 완벽하며, 여백은 이상하리만큼 깨끗하다.' 그러나 그는 '타인을 만족시키기 위해 그림을 그리지 않겠다.'라는 신념이 확고했다.

 

생계를 위해 15년이라는 오랜 시간 건축에 몸담았지만, 그의 신념을 저버리지 않고 유튜브로 대중들과 소통하며 독자적인 스타일을 구축한다. 그가 원했던 대로, 그는 그 자신을 만족시키는 작업에 집중한다.

 

정답이 없기에 아름다운 것이다. 작품을 다 보고 나오는 순간, 그의 시선이 닿은 것들은 모두 존중받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우리가 언뜻 보고 지나친 일상의 아름다움, 다수의 입맛에 맞추느라 잃어버린 각자의 스타일과 개성. 작품에 대한 감상을 제외하고도 한 사람의 생애를 관찰하며 얻는 깨달음이 있었다.

 

대중과 끊임없이 소통하는 아티스트, 마르첼로 바렌기. 유튜브라는 플랫폼을 통해 개인을 브랜딩하고 PR하는 시대에 일찍이 그 시작점을 잡았던 그의 첫 번째 전시가 한국에서 열렸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도 의미가 깊다고 생각한다. <마르첼로 바렌기展>은 8월 22일에 마감한다. 이 글을 보는 이들이, 마르첼로 바렌기의 시선과 찬찬히 닮아감을 느끼면서 일상을 환기하는 시간을 가져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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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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