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이토록 작은 것들과의 만남 그리고 헤어짐 [동물]

구피들을 용궁으로 떠나보내며
글 입력 2021.05.05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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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한 것들은 모두 나를 울게 한다. 어김없이 지금도 나는 사랑한 것들이 떠나가는 것에 눈물을 짓는다. 사랑한 것이 사람이든 아니든 상관없다. 5살때 택시에서 곰돌이 인형을 잃어버려 땅이 꺼질듯 울었고, 11살때는 여행에서 잃어버린 애착 강아지 인형을 그리워하며 3개월을 울었다. 심지어 피아노 학원을 가서 연습을 하는 도중에도 강아지 인형을 생각하며 눈물이 쉴 새없이 줄줄 흐르는 정도였다.

 

어른이 되고나서도 별 다를 바 없었다. 오히려 성장하는 과정에서 내가 사랑한 것들의 소중함을 더 깊이, 진득하게 느껴서일까. 마음을 주기 시작하면 그 뒤에 따라오는 별안간의 슬픔은 더욱 아렸다.

 

 

 

이토록 작은 것들과의 만남


 

아침 7시에 일어나 쿠팡 로켓배송으로 온 여과기를 간단히 조립하고, 구피 어항에 설치했다. 20마리가 훌쩍 넘었던 구피는 이제 10마리도 채 남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남은 아이들만이라도 어떻게든 살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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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피들을 키우기로 결심한 것은 올해 3월 초였다. 구피들이 어항에 오기 전부터 소일을 사고, 그 뒤에 수초 씨앗을 심었다. 그리고 차근차근 새싹을 키웠다. 구피들의 예쁜 보금자리를 내 손으로 꾸며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씨앗이 발아하는 순간부터 새싹이 땅 위로 솟아 앙증맞은 모습을 드러내고, 이윽고 더 자라 푸른 잎이 하나 둘 나는 모든 모습을 사진으로 남겼다. 구피들이 이 자리에서 자유롭게 헤엄치고 건강하게 자랄 모습을 떠올리니 행복했다.

 

초등학생 때 마지막으로 키웠던 구피들은 나의 소홀함으로 인해 소리소문없이 용궁으로 떠났다. 그때는 아이들이 떠난 것에 대해 약간의 죄책감이 있을 뿐이었다. 애초에 구피들에게 큰 관심과 사랑을 주지 않아서 타격이 덜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런 무자비한 내 모습이 좀 무섭기도 하다.

 

이번에는 달랐다. 진심으로 잘 키울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릴 때와는 완전히 다른 섬세함으로 구피들을 보듬어 주겠다는 의지가 가득했다. 시작부터 아주 소중하게 수초를 키웠고, 구피들이 오기까지 최선을 다해 준비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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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4월 7일, 구피들이 우리 집에 도착했다. 남자친구가 키우던 예쁜 아가들이 드디어 내 어항에서 살게 된 것이다. 흔하게 볼 수 없는, 형형색색의 아름다움을 뽐내는 구피들을 키우게 되었다. 이름은 알비노네온레드턱시도, 알비노네온슈퍼화이트. 빨간색과 흰색 턱시도를 입은 것마냥 꼬리가 예뻐서 뒤에 '색깔'+'턱시도'라는 구성의 이름이 지어졌다고 한다. 구피 말고도 남자친구가 생이 새우도 선물해 주어서 새우와 구피를 함께 키우게 되었다.

 

누가 봐도 '아름답다'는 탄성이 터지는 구피 아가들이었다. 춤을 추듯 살랑살랑 거리며 헤엄치는 구피들을 보고 있으면 내 마음도 부드럽게 춤추는 기분이었다. 그런 이쁜 구피들을 보고 있자니 자연스레 어항 앞으로 가 앉아 멍 때리는 일이 많아졌고, 보면 볼수록 구피들의 행동과 움직임 특성을 더 잘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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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은 암컷 구피 두 마리의 배가 볼록하게 튀어나온걸 포착했다. 배 안에는 뽀글뽀글한 주황색 알들이 가득 차 있었고, 얼마가 지나자 배 속에서 치어의 눈알이 보이기 시작했다. 알을 품은 암컷 구피들은 분주한듯 이리저리 수초를 헤집고 돌아다녔다. 같은 여자로서, 암컷의 작은 생명체가 치어를 품고 열과 성을 다하는 모습이 너무나도 경이로웠다. 이토록 작은 아이의 배에서도 더 작고 조그만 아기가 나오는구나,를 느끼며 매일이 설레였고 기대로 가득찼다.

 

그러던 중 저저번주에 2박 3일 여행을 떠나 잠시 집을 비우는 일이 생겼다. 타이밍이 정말 아쉽게도 구피들의 출산이 임박한 시기였다. 집을 떠나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여행에서도 계속 구피들을 생각하며 '지금쯤 치어들을 출산했을까' '힘들진 않을까' 염려했다. 마지막에 집으로 돌아오는 날에는 얼른 어항을 보고 싶어 몸이 근질근질했다.

 

 

 

이토록 작은 것들과의 헤어짐


 

금요일 오후에 집을 떠나, 일요일 늦은 밤 집으로 돌아왔다. 오자마자 짐도 안 풀고 달려간 곳은 바로 어항이었다. 그런데 믿기 싫은 광경을 보았다. 구피 한 마리가 힘없이 죽어있었던 것이다. 이유를 알 수 없는 갑작스러운 죽음에 힘이 빠져버렸다. '그래, 내가 집을 비웠으니까 한 마리가 너무 힘들었나보다. 조만간은 내가 떠날 일 없으니 잘 관리해야지' 다짐하며 죽은 구피를 용궁으로 보내주었다.

 

그런데 이틀 뒤 이상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구피들이 살랑거리던 넓은 꼬리가 반보다도 훨씬 더 좁게 접혀있는 것이다. 그것도 한 마리가 아니라, 두 세마리로 첫 증상을 보였고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거의 모든 구피들이 아픈 증상을 보였다. 꼬리가 녹거나, 갈라지거나, 피가 맺히거나.. 점점 갈수록 구피 생태계가 총체적 난국이 되어갔다.

 

나는 도무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여러 가지 원인이 추측되지만, 내가 딱히 무엇을 잘못했는지는 확신하기 힘들었다. 평소대로의 먹이를 주었고, 평소대로 물을 채워주었고, 평소대로 아이들을 바라볼 뿐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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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국이 되었다고 판단한 순간부터, 아이들이 하나둘씩 떠나기 시작했다. 처음 한 두마리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면역력이 아주 약한 개체라면 버티기 힘들었을테니까. 그런데 건강했다고 생각했던 구피들까지 믿기 힘들정도로 빠르게 말라가고 결국 줄줄이 생을 마감했다.

 

'나는 자격이 없는 주인일까.' 차라리 무관심했던 초등학생 때 키웠던 구피들이 더 오래 자랐다. 그런데 왜 한 달도 지나지 않아 이렇게 마음을 주었던 아이들이 떠나갈까. 도무지 이토록 작은 것들의 죽음에 대하여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어항 생태계를 살리려고 했지만 속수무책으로 죽어가는 구피들을 보니 마음이 찢겨졌다. 남자친구는 자책하는 나에게 '충분히 자격이 있는 주인'이라고 위로해 주었고, 그걸로 나는 고마움을 느꼈지만 다시 뒤돌아 생각하면 스스로를 탓할 뿐이었다. 만약 이 구피들이 나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더 오래 더 건강하게 살 수 있지 않았을까.

 

어이없지만 문득 저녁 밥상에 올라온 생선을 보고 미안함을 느꼈다. 생선은 아무 생각도 죄책감도 없이 맛있게 먹으면서 그보다 더 작은, 어쩌면 생선에게는 하찮을 만큼 작은 구피들의 죽음에는 이렇게 슬퍼하는가. 생선은 처음 마주하는 모습이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반찬'이었지만 구피들은 내정성으로 키우는 '생명'이었다. 같은 물고기들을 반찬과 생명으로 구분한 내 모습이 잔인한 인간 같지만 가식없이 솔직한 마음으로 난 그렇게 느낄 뿐이었다.

 

여과기를 달아주고 아침에 정형외과 치료를 받고 집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 사이 두 마리가 또 용궁으로 돌아가버렸다. 이윽고 오후에는 내가 정말 아끼던 레드턱시도가 생을 마감했다. 그 작은 것이, 살려고 이리저리 발버둥치면서 정신을 잃을 때까지 온 힘을 다해 헤엄쳤다. 30분 가량의 힘든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고군분투하다, 어느새 앞서 떠난 친구들을 따라갔다. 떠나간 구피들은 사람으로 따지면 신생아부터 청소년, 어른, 노인까지 모든 연령층에 속했다. 나는 이렇게 매일마다 이토록 작은 것들의 죽음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구피들을 떠나보내며 아이들의 배 만큼이나 홀쭉해진 내 마음의 크기를 느낀다. 이별은 언제나 서럽고, 죽음은 무겁다. 아이들이 마지막까지 안간 힘을 다해 살고자 버둥거렸던걸 생각하니 목구멍에 밥이 들어가지 않았다. 한 마리 한 마리들의 모습이 너무 아른거려서 눈물이 왈칵 떨어졌다. 다시, 내가 사랑한 것들은 나를 울게 한다. '그 작은 것들이 살려고 얼마나 간절했을까.' 인간인 나도 그 아픈 작은 모습들을 바라보는게 숨이 막히고 먹먹한데, 아이들은 마지막까지 죽음이 얼마나 두렵고 싫었을까.

 

핀셋으로 떠나간 아이들을 한 마리씩 건져내며, 마지막으로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물에서 살아있을 때는 한 번도 접촉한 적 없는 구피들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만져본다.  부디 아이들이 좋은 곳으로 가기를 진심으로 기도한다. 돌고 돌아서 언젠가 또 어여쁜 생명체로 다시 태어나기를 기도한다.

 

떠나간 구피들을 꽃밭에 묻어 주었다. 얘들아, 내년에는 활짝 만개한 꽃으로 다시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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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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