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바꿀 수 없는 성향이라면, 방향을 돌려봅시다. [도서/문학]

<예민함이라는 무기> 서평
글 입력 2021.04.25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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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민한 성향을 극대화된 장점으로 쓸 수 있게 해 준다는 책 같은데 어떤 정보가 들어있을까. 그게 궁금해서 산 책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은 독자의 타고난 예민함을 긍정적으로 활용하도록 지각의 방향 전환을 설득하고 있다.


책의 초반에 서술된 예민한 이들의 면모를 읽는 것 자체가 독자 자신을 파악하고 생활을 개선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 아무래도 이 책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은 예민하기 때문에 혼란이나 불편을 겪은 적이 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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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최고의 관계 심리학자이자 이 책의 저자 롤프 젤린이 말하는 예민한 사람의 가장 큰 특징은 다음과 같다. 남들보다 세상을 더 자세하게 지각하는 사람, 외부의 자극을 더 세고 크게 받아들이는 사람. 이들은 타인이나 주변 상황에 공감을 잘하며 세상의 조화와 안정감을 높이 친다. 타인의 기대와 필요에 민감하며, 말의 이면을 잘 읽는다. 예민한 사람들의 맹점은 쏟아지는 자극, 발달된 공감 능력으로 인해 남을 먼저 읽느라 정작 자기 필요를 읽지 못하고 자기주장도 약해진다는 데에 있다.


이들은 행복과 아름다움, 감동을 더 풍부하게 느낄 수 있다. 세상을 세밀하게 감각하기 때문에 일상 속 작은 즐거움에서도 충분히 만족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이 섬세한 감각의 수용체는 소음이나 불안, 충격과 같은 부정적인 상황에도 마찬가지로 기능한다. 좋은 것을 감각하는 힘은 사실 나쁜 것을 감각하는 힘과 별개의 뿌리를 갖지 않는다.


예민한 사람들은 새로운 환경에 남들보다 긴 적응 시간이 필요하다. 예상할 수 없는 환경에서 받는 자극을 처리하고 소화할 시간이 확보되어야 생경한 상황, 분야 혹은 사람에 안정적으로 녹아들 수 있다. 그러니 갈수록 빨리 변하고, 그만큼 재빠르게 반응해야 하는 요즘 세상에서 그들이 받는 스트레스는 결코 가볍지 않다.


남다른 지각은 남들과 다른 생각으로 이어진다. 이에 예민한 사람들은 소속감과 안정감을 얻기 위해 종종 자기 생각을 억누른다. 그럴수록 자기 의견에 대한 자신감은 사라지고 뭔가를 정해야 할 때 더 많은 사람의 의견을 묻는다. 그러나 개개인의 기준은 사람 수만큼 다양하므로 ‘타당한 답’을 향한 길은 더 복잡해진다. 자신감을 잃으면 자신의 지각 또한 믿지 못한다.  그렇게 자기 지각을 외면할수록 이 악순환은 반복되고 고착화된다. 그럼 다음과 같은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예민한 사람들이 스스로 방해 요인을 제거하기 위해 자신의 지각을 무시하고 주변에 맞추다 보면, 그들은 자신이 얼마나 강하고 약한지, 자신의 경계가 어디쯤인지 깨달을 수 없다. 게다가 예민한 사람은 완벽함을 동경한다. 자신의 경계를 파악하지 못하는 것과 완벽에 대한 동경이 만나면 자신을 혹사시키고 힘들게 만드는 ‘과잉 부담’ 상태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자신에게 전혀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과소 부담’의 사태를 오가는 악순환이 빚어진다. 두 측면은 서로를 부추기고 에너지를 잡아먹으며, ‘적정 부담’을 통해 긍정적인 성과를 냄으로써 에너지를 되찾는 일이 불가능해진다. 이러한 메커니즘이 장기적으로 이어지면 에너지가 떨어지고 우울이 찾아오며, 심한 경우 번아웃에 이르게 된다.

 

pp. 262-263

 


‘고도로 민감한 사람들’의 ‘지각 처리 과정’ 외에 이 책에서 자주 반복되는 개념 하나가 바로 위에 언급된 ‘경계 짓기’이다.


예민한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잃고 자기 지각과 동떨어지는 것, 타인의 생각과 기대를 읽고 자꾸만 타인의 필요를 먼저 맞춰주는 등의 문제는 모두 경계가 불분명하기에 생기는 일이다. 적절한 경계는 그런 치우침에서 예민한 사람을 보호해준다. 저자는 가장 좋은 범위는 경계선 직전까지 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경계를 넘어서면 자신을 혹사시키고, 안전하자고 경계에서 아주 멀찍이 떨어져 있으면 오히려 무기력해진다. 경계선 직전, 즉 적절한 부담을 안는 영역에서 유의미한 성장이 이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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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경계를 알고 있는 것은 사실 생각(지능)도, 감정도 아닌 신체이다. 특히나 자기 자신도 잘 모르는 긴장과 불안을 단박에 알려주는 배, 위장 기관이다. 문제는 예민한 사람들이 자기 지각을 일부러 억압하다 대개 신체와의 연결도 약해져 있다는 것이다. 머릿속에 자신이 바라는 완벽한 그림이 있는 예민한 사람들에게 피로와 졸음으로 일처리를 더디게 하는 신체는 뛰어넘거나 무시해야 될 대상이 되는데, 이럴수록 어떤 일을 할 때 완성이나 알맞은 결정을 알리는 직감과도 멀어진다.


 

안정감과 소속감을 느끼기 위해 자신의 신체의 지각을 희생시키기 시작한다. 그 결과 신체를 굉장히 무가치한 것으로 여기게 된다. 정신과 영혼에 딸린 귀찮은 부속품이자 생명 활동을 진행하는 기계에 불과한 것으로 느끼는 것이다. 그리하여 신체의 저항을 억압하거나 극복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 신체는 이제 더 이상 긍정적인 것으로 인지되지 않으며, 신체적인 불균형과 신체적 필요, 다가올 질병이나 스트레스, 자신의 신체적 한계도 인지할 수 없게 된다. (...) 신체는 나중에 눈에 띄는 신체적 이상을 드러내며 자신에 대한 주목을 만회하고자 한다. (...) 신체는 이제 더 이상 무시할 수 없는 증상이나 통증의 근원이 되고, 지리한 병력이 시작되는 것이다.

 

pp. 60-61.

 


그렇다면 예민한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타인과 세상에 쉽게 조응하는 그 예민한 지각을 바로 자기 자신에게 쓰는 것이다. 지각의 방향을 돌려 자기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묻고 감각이나 감정에 휩쓸릴 때 정말 자신의 것이 맞는지 한 숨 멈추고 계속 자문해야 한다. 자기 신체를 차근차근 지각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p. 168) 어떤 활동을 할 때, 혹은 어떤 상황에 놓였을 때 내 몸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그리고 내 몸이 아프다면 어떻게 아픈지.


이 책에 나온 것과 비슷한 내용으로, 마찬가지로 예민한 사람인 필자도 이런 말을 들어본 적 있다. 내게 독이 되는 사람까지 일단 이해해 보려고 하는 습관 아닌 습관이 있었다. 그 사람이 좋아서 이해하려 하는 게 아니다. 그냥 이 책에서 말하듯 사고방식이 그렇게 작동해 버린다. 연필을 잡을 때 연필을 잡는 방식을 의식하지 않듯이, 사고가 그렇게 흘러간다. 대인관계를 포함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의 경계를 잘 몰라서 무리하고 몸이 아프거나, 아예 아무것도 못 하고 무기력해지는 상황이 반복된 적 있었다.


내 얘기를 들은 분은 몸의 아픈 양상을 찬찬히 적어두고 내가 어디까지 아프면 버틸 건지, 얼마큼 아프기 시작하면 그 일을 그만둘지 미리 정해두라고 조언해주었다. 결국 신체적인 증상으로 자신의 경계를 파악하라는 얘기였다.


예를 들어 나는 수면 리듬이 깨지면 일상생활에서 자기만의 시간이 부족한지 돌아보고, 귀가 아프면 무슨 일로 스트레스를 받는지 점검해 본다. 귀가 아플 때는 스트레스의 원인과 정도를 잘 모르고 있는 경우일 때가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배가 아프면 긴장감을 완화해 보려고 애쓰고, 위통이 특정 수준까지 올라오면 진행하고 있는 일이나 생각을 잠시 멈춰본다. 그때는 덜어낼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덜어내고, 도저히 그럴 수 없는 상황이면 되는대로 마음이나마 다독여본다.


한편 신체와의 연결감을 공고히 하기 위한 치트키는 단연 운동이다. 저자에 따르면 예민한 사람들에게는 활달한 움직임의 운동보다는 요가, 태극권 같은 운동이 적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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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와 접촉하여 얻은 적절한 경계는 또 다른 질문들로 확인되고 유지된다. 예민한 사람들은 자기 과제보다 다른 사람의 과제를 더 쉽게 해결해주는 경향이 있는데, 이럴 때는 스스로 이런 질문을 하면 좋다. 이를테면 타인을 돕다가 정작 자기 일을 잃어버리거나 필수적으로 처리해야 할 과제를 기피하고 있지 않은지 짚고 넘어가야 한다.


예민한 사람들은 여러 일에 신경을 쓰고, 그 가운데 스스로를 잃어버릴 때가 많다.(p. 146) 미래를 불안해하거나, 과거로 도피하며 정작 당면한 일을 처리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지금은 무엇을 해야 하지? 이 일은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할까?”를 자문해야 한다.(p. 146)


툭하면 바깥으로 열리는 지각의 중심을 의식적으로 자기 자신에게 두어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의 골자다. 저자는 예민한 천성을 긍정적으로 활용할 때의 유익함에 대해 얘기한다. 예민한 기질을 업무에서 펼치면 성취감을 얻을 수 있다. 저자는 예민한 사람의 직업적 성취뿐만 아니라 자신과 주변, 세상을 이롭게 할 수 있다고도 말한다. 예민한 이들은 인권 감수성이 풍부하고, 부조리한 상황에서 이상함을 빠르게 눈치챌 수 있으니 자기 특성이자 능력인 예민함을 상황을 개선하는 데에 쓸 수 있다는 것이다.


좋은 말이지만 그렇게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는 정신은 자신 또한 아낀 결과로써 이뤄졌으면 한다. 그리고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것에서 ‘계속해서’ 자신의 ‘쓸모’를 찾는 일은 없길 바란다. 이 책에서 거론되는 ‘예민한 사람들’은 자신이 세상에 도움이 된다 싶으면 그것에 골몰하기 쉽다. 그런 성향이 방심하면 튀어나온다. 안 그래도 복잡한 내면에 외부 자극의 흡수율이 높은 유형이니 자기 안에 자신도 너무 많고 자기 아닌 것도 너무 많다. 그것이 툭하면 뒤섞여 혼란스러운데 고맙다거나 잘했다는 말을 들으면 순식간에 그쪽으로 신경이 쏠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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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자신과 주변의 예민한 사람들을 경험한 바로는, 타인의 생각과 자기를 둘러싼 현상을 일단 머리로 애써 이해하고 보는 것이 내재된 삶의 방식인 듯하다. 무슨 말이냐면, 쉽게 이해할 수 없고 나 자신에게 해가 되는 사람 혹은 상황마저도 ‘왜 저래’라는 말로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그 현상이 일어난 ‘왜’를 자기 머리로 납득해 본 후에야 사고가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저자 젤린도 지각을 자기에게 먼저 맞추라고 책 내내 도돌이표처럼 말하고 있는 게다.


그러나 타인에게, 자기가 속하거나 주변에 있는 집단에 ‘맞추는’ 것은 선택의 문제이다. 그건 좋은 사람, 쓸모 있고 가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 자신의 에너지와 감정과 배려심을 남에게 주기로 자신이 선택한 것이다. 애초부터 그것을 노리는 사람도 소수 있지만, 대부분은 그 배려를 달라고 먼저 말하지 않았다. 남의 생각을 잘 읽어도, 의중은 우리가 완전히 알 수 없다. 그러니 고마움과 보람을 사람들의 반응에서 찾기 시작하면 혼자서 상처 입기 쉽다. 집단 내의 조화로운 분위기를 위해 자신의 지각과 의견을 억누르는 것도 마찬가지.


항상 명심할 것은 그 누구도 세상의 조화를 맞추기 위한 재료가 아니라는 사실. 나를 나의 중심에 세워도 좋다. 아니, 그렇게 해야 아프지 않고 보다 즐겁게 살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책의 중반부 이후로 반복되는 내용이 많아 가독성이 떨어져 흥미가 다소 떨어졌다. 소제목 아래서 다시 잘게 쪼개지는 항목마다 계속 앞 장의 내용이 반복되어 들어가 있다. 그러나 잊기 쉬운 사실을 자각하고 삶의 태도를 돌아보는 데에 이 책이 도움되었다. 타고난 특성은 억누르면 그것으로 인한 단점을 당장 적게 경험하는 것 같지만, 그 특성으로 인해 얻는 즐거움이나 풍성한 삶의 감각도 포기해야 한다. 다만 우리는 우리가 들고 있는 양날 검, 바깥으로 선 날로 나를 지킬 수도 있지만 동시에 내게도 날이 서 있는 검을 지혜롭게 쓰며 살아갈 뿐이다. 다치지 않고 쓰는 법을 터득하며 기왕이면 좋은 경험을 늘려나갈 수 있도록.

 

 

[신성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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