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달이 되고 싶네요 [사람]

긴 밤을 지새우는 이들에게
글 입력 2021.04.18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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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친구 k와 가정법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이러한 이야기는 우리가 유명한 가수나 배우가 되면 어떻게 할 거냐와 같이 시답잖은 것들이 대부분이라 그냥 가볍게 끝나고 마는데, 어ᄄᅠᆫ 물음은 때때로 내가 생각지도 못한 부분을 꺼내 보게 할 때가 있다.


이 글도 그러한 가정법에서 시작했다. 어느 날 갑자기 친구 k가 나에게 다음 생에 태어나면 무엇이 되고 싶으냐고 물었고, 이것저것이 머릿속에 떠올랐는데 명확히 하나로 꼭 집어서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막연히 하늘을 자유롭게 나는 새가 생각났는데 그 공중에 나는 새는 실은 두려움에 떨며 날갯짓을 하는 것이라는 걸 어디서 들은 거 같아 새는 제외했다. 그러다가 바람이 되면 자유롭고 온 세상 곳곳을 누빌 수 있을 것 같아 바람이라 말하려고 했지만, 그것도 역시 조금은 외로울 것 같아 싫어졌다. 그러다가 문득 달이 떠올랐고, 생각은 주저 없이 나는 다음 생에 태어나면 꼭 달이 되리라는 곳까지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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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는 태양이 있고 밤에는 달이 있다. 언제나 그래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태양 아래 하루를 보낸 후 떠오르는 달을 바라보며 내일은 기약하는 것은 늘 그래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달이 뜨는 밤에 생활하고 떠오르는 해를 보며 하루를 끝낸다.


현재 생활하고 있는 서울과 장장 버스로만 4시간이 걸리는 본가를 둔 나는 홀로 자취를 시작한 이래로 쭉 밤에 잠드는 것을 힘들어했다. 외로워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늦게 자도 뭐라고 하지 않는 사람의 부재로 인해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아니면 그냥 내 올빼미 성향이 뒤늦게 발현된 것일지도 모르고. 하지만 뭐가 됐든 밤에 생활하는 것은 그리 나쁘지 않았고 적막감에 쌓여 홀로 보내는 시간은 나만의 비밀스럽고 고즈넉한 시간을 부여받은 것 같아 언젠가부터는 일찍 자려는 시도 초자 하지 않았다. 밤에 생활하는 건 일상이 되었고 나는 그런대로 잘 살아갔다.


하지만 그래도 유달리 밤이 증폭시키는 외로움은 때때로 다루기 어려울 때가 있었다. 새벽 감성이라는 말이 있듯이, 밤에 느끼는 건 모든 지 극단적으로 치달을 때가 많았고 나는 그 감정들의 노예가 되어 밤새 질질 끌려다니는 시간이 점점 많아졌다. 다음 날 깨어나면 뭐 그런 걸로 내가 힘들어했나 싶었지만, 밤이 되면 감정은 속절없이 피어나 또 나를 괴롭히곤 했다. 유난히 감정적인 내가 보내는 밤은 대개 그런 식이었고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나는 밤 산책을 시작했다.


원래도 좋아하던 산책은 밤에 하니까 더 좋았다. 사람이 별로 없는 산책로를 혼자 걸으며 밤공기를 맡고 이런저런 생각을 할 때면 그게 그렇게 좋아 밤 산책을 생각만 해도 웃음이 절로 났다. 그래서 하루 중 가장 기대되는 시간이 밤 산책이었고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내 하루가 달려 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나한테는 굉장히 중요한 일상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그러한 밤 산책조차 나의 감정을 따라오지 못하는 순간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럴 때면 나는 어찌할 줄을 몰랐다. 친구에게도 따로 속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 성격이기도 했고 이런 건 털어놓는다고 해도 근본적으로 설명될 수도 그래서 이해받을 수도 없는 문제라 생각했기 때문에 오로지 나만의 실타래로 나 홀로만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나날 중 무심코 달을 본 날을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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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밤에 생활하던 나는 생각만큼 달을 본 적이 없다는 것을 그때 처음 깨달았고 달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 있는지도 그때 처음 알았다. 그리고 정말 외롭고 홀로 있는 것만 같던 마음은 그 달을 보자 아무렇지 않아졌다. 나는 그 순간을 떠올리면 아직도 마법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단단히 엉켜 있던 마음이 순식간에 녹아내린 게 신기했고 그 대상이 멀리 있지 않고 늘 나와 함께 했다는 것은 그 무엇보다 큰 위안이 됐다. 지나치게 감성적인 밤에 느낀 감성적인 위로라 생각될지 모르겠지만, 달 하나면 어쩌면 충분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밤이었다.


그래서 나는 다시 태어난다면 달이 되어 긴 밤을 보내는 이들 위에서 그들을 고즈넉이 내려 보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각자의 사연이 모여 움튼 밤의 길잡이랄까. 그렇게 말하면 꽤 거창한 듯 보이지만 실은 그냥 누군가의 외로움에 함께 하고 싶다. 그래서 외로운 마음이 마냥 외롭지 않았으면 하고 누군가의 밤이 헤어나올 수 없는 어둠이 아니길 바란다. 비로소 해가 떠오른 후에야 잠들 수 있더라도 그 밤이 어딘가 어긋난 것에서 비롯된 것임에 고통받지 않고 그 자체로 온전하길 바란다. 그래서 다른 이보다 뒤늦게 시작되는 긴 잠이 평온하기를 바라고 그렇게 계속되는 삶들의 한구석에 함께하고 싶다. 긴 밤에 작은 온기로. 때로는 그걸로 충분하다는 것을 나는 이제 알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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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나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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