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가축으로 전락한 용과 그들을 도축하는 백정의 이야기 - 도롱이 [웹툰]

글 입력 2021.04.18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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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고백부터 하자면, 나는 만화를 매우 좋아한다. 특히 웹툰을.


웹툰 시장이 지금처럼 활성화되기 이전, 한국 웹툰 역사의 1세대를 이끌었다고 할 만한 조석의 <마음의 소리>, 강풀의 <타이밍>, 주호민의 <신과 함께> 등등에서부터, 최근엔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는 <나 혼자만 레벨업> 등의 웹소설 원작 웹툰도 매주 결제까지 하면서 챙겨볼 정도로, 웹툰이라는 장르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남다른 편이다.


그 결과 지금껏 봐온 웹툰의 총량도 평균 정도는 가볍게 웃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랄까.


그런 나에게 누군가가 지금까지 봐온 그 수많은 웹툰 중에서 ‘가장 파격적인 1화’를 선보인 작품을 하나만 고르라고 한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N 포털의 금요 웹툰 <도롱이>를 꼽을 것이다.


<도롱이>가 대단히 참신한 소재의 작품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은 아니다. <도롱이>는 판타지에서 빠지면 서운하고 나오면 뻔해지기 마련인 ‘용’을 중심에 둔, 소재로만 본다면 오히려 진부한 축에 속하는 동양 판타지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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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파격이란 본래 새로운 것이 새롭게 등장할 때보다도, 익숙한 것을 새롭게 만들 때 더욱 강렬하게 다가오는 법.


당신은 단 한 번이라도 상상해본 적이 있는가.


흔히 세계의 질서를 수호하는 초월자로서 인간 위에 군림해온 ‘용’이라는 존재가 바로 그 인간에게 사육되고 도축 당하며 한낱 가축의 신세로 전락해버린 세상을. 머리만 떼다 팔아도 집 한 채 값을 벌 수 있고 그 피와 뼈는 몸에 좋은 영약으로 유통되며, 새끼로는 뱀처럼 술까지 담가 먹는 그런 세상 말이다.


아 물론, 그들 모두가 아직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라는 게 조금 다르다면 다른 점이긴 하지만.

 

 

 

0. 줄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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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세월 동안 대대로 이무기 도축업을 해오며 막대한 부를 쌓아온 백정 집안의 장녀 ‘권삼복’. 그녀는 부모의 심부름으로 이무기의 머리를 들고 오던 길에 우연히 귀하디 귀한 자연산 이무기 ‘도롱이’를 만나게 된다.


권삼복은 백정 집안의 후손다운 날렵함으로 도롱이를 제압하는 데 성공하지만, 이내 살려달라고 간청하는 도롱이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그를 놓쳐 버리고 만다. 그녀가 지금까지 봐왔던 양식장의 이무기 중 말을 할 줄 아는 이무기는 없었기 때문이다.

 

권삼복은 자신의 오빠이자 집 안의 장남인 ‘권삼오’에게만 그 날의 이야기를 털어놓게 되고, 평소 이무기에 대한 호기심이 많았던 권삼오의 손에 이끌려 함께 도롱이를 찾아 나선다.


우여곡절 끝에 다시 만나게 된 권 씨 남매와 도롱이. 도롱이는 그런 그들에게 이무기 도축업의 어두운 일면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장남으로서 가업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끼게 된 권삼오는 그런 도롱이를 외면하고 돌아선다.


그러나 권삼복은 도롱이와 가까워질수록 그가 말한 이무기 도축업의 비정함과 세상 전체에 미치고 있는 부정적인 영향에 대해 공감하게 된다. 이 모든 것을 끝내기 위해서라도 이제는 한낱 전설로만 남은 용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권삼복.


그녀는 승천까지 10년밖에 남지 않은 도롱이를 용으로 만들어주기로 결심하게 되는데...



 

1.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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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이무기는 뭐가 다를까?


이것이 [도롱이]가 처음부터 끝까지 던지고 있는 질문의 핵심이다. 저 이무기라는 비현실적인 단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다른 단어로 바꿔도 상관없다.


‘돼지’를 넣어볼까?


생각해보자. 인간과 돼지는 뭐가 다른가. 일단 돼지는 인간과는 달리 네 발로 걷는다. 인간과는 다른 생김새를 가지고 있다. 인간과는 달리 애초에 식용으로 길러진다. 굳이 돼지가 아니더라도 인간이 사육하는 대부분의 포유류는 이 정도의 차이점을 가지고 있다. 막상 늘어놓고 보니 그렇게까지 가짓수가 많은 것 같진 않다.


인간과 짐승을 구분하는 기준이 겨우 이것뿐이라고?


만물의 영장인 인간의 자존심은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고, 한 가지 이유를 더 덧붙이며 그것이 가장 본질적인 차이점라고 오랜 시간 주장해왔다.


그것은 바로 지성의 유무 즉, ‘말’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다.


돼지를 포함한 거의 모든 생물들은 말을 할 수 없고, 말을 할 수 없다는 것은 지성이 없다는 뜻이다. 지성은 이 문명사회의 기반을 이루는 핵심적 가치이기에 그것이 없는 생물의 생명이 인간의 것과 동등할 수는 없다...라는 것이, 인본주의의 주장이다.


그렇다면 돼지가 말을 할 수 있다면 어떨까. 그것도 인간과의 의사소통이 가능할 정도로 능숙하게. 인간의 지성은 그런 돼지의 지성을 받아들이고 그 생명의 가치를 존중해줄 수 있게 될까.


[도롱이]는 아니라고 말한다.

 

 


2. 대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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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씨 남매의 어린 시절을 다룬 에피소드에서, 권삼오는 아버지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이무기는 소나 돼지랑은 다르지 않나요. 말도 통하고 감정도 있는데.”

 

이에 대해 권삼오의 아버지는 이렇게 답한다.


“그럼 언어와 성대가 인간과 다르면 잡아도 되는 거니? 개나 돼지도 죽음 앞에선 비명을 지를 텐데 못 알아들으니까 상관없어? 다 똑같은 생명인데 말이 좀 통한다고 특별하게 여겨야 할까?”


“결국 인간이 아닌데.”


이것이 결론이다.


말을 할 줄 아느냐, 지성이 있느냐, 감정을 느낄 수 있느냐. 이러한 추궁은 모두 부질없다. 이무기가, 돼지가, 소가, 닭이, 그 외에 인간의 필요에 따라 사육되는 모든 짐승들이 짐승인 이유는 사실, 우리가 인간이고 그것들은 인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과 짐승이 다른 이유?


인간은 애초에 그런 걸 알고 싶어한 적이 없다. 다만 명확한 구분을 위해 그럴싸한 구실이 필요했을 뿐.


만약 돼지나 소가 말을 할 수 있게 되고, 감정도 표현할 수 있게 된다고 하면 우리의 논리는 저 권 씨 집안의 것과 같아질 것이다. 그리고 그에 맞는 조치를 취했겠지. 이를테면 권 씨 집안의 사람들이 사육하는 이무기들의 성대를 모두 잘라버린 것처럼.

 

 

 

3.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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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롱이]의 세상은 오랫동안 가뭄이 지속된 빈민가에서부터 차츰 사막화가 이뤄지고 있는 중이다. 무분별한 이무기 도축으로 인해 더이상 용이 승천할 수 없는 세상이 되어버렸고, 그것이 기후 악화라는 결과를 가져오고 말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누구도 이무기 도축을 멈추려 하지 않는다.


‘이무기 도축’이라는 원인과 ‘가뭄’이라는 결과 사이에 논리적인 연결고리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권삼복이 식솔들에게 우리의 가업이 가뭄의 원인이라고 아무리 말해줘도, 그들의 반응은 한결같다.


“그게 왜 우리 때문이야? 말도 안 되는 소리 좀 하지 마”


이것은 현실 속 환경문제를 대하는 사람들의 일반적인 태도를 떠올리게 한다. 물론 권삼복의 식솔들과 달리 우리는 여러 매체를 통해 환경 문제에 대한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고, 친환경 기업의 제품을 소비하거나 환경 보호 운동에 동참하는 등 나름대로 그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을 기울이기도 한다.


하지만 정작 그 문제의 가장 본질적인 원인을 단호하게 근절하진 못한다. 그것이 우리의 생활에 이미 너무나 큰 편리와 쾌락으로 뿌리를 내려버렸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여전히 일회용품이 잔뜩 낭비되는 배달음식을 시켜 먹고, 온갖 도축업장에서 배송되는 고기들을 음미한다.


그 순간만큼은 그 누구도 환경오염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일회용품도, 배달음식도 모두 우리들의 눈앞에 이미 있는 것들이니까. 기왕에 있는 건, 있는 대로 즐기고자 하는 마음 편한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같은 결론을 내놓은 사람들로 인해 발생하는 수요가 곧 이를 충족하기 위한 무분별한 공급으로 이어지게 된다는 진실은 외면한 채로.


유감스럽지만 이것은 한 개인의 각성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권삼오가 도롱이를 외면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권삼복이 도롱이를 용으로 만들어주기로 결심하고도 무려 10년 동안 이무기 도축업을 계속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그 때문이다. 그들의 주장은 곧 그들의 집안, 마을, 나아가서는 이무기를 지금껏 소비해왔던 인간이라는 종족 자체의 명예를 깎아내리는 것이므로.


해결을 위한 최선이 무엇인지 뻔히 알면서도 차선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문제가 있다. 권삼복은 지금 당장 이무기 도축업을 그만두는 것이 최선임을 알고 있었지만, 가족들을 설득할 만한 명백한 근거가 없다는 것 또한 알았다.


근거 없는 호소만으로 돌이킬 수 있을 만큼 권씨 집안의 역사는 짧지 않았기에 권삼복은 도롱이가 승천하여 용이 될 때까지 시간이 다소 걸리더라도, 조금씩 나아지는 방향을 택했다. 이무기 도축업자로 남아 희생되는 이무기를 조금이라도 줄이고, 도롱이를 통해 새끼들을 빼돌려 개체 수를 보존하고자 한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가 최선이라 판단한 차선은 반대편에 서있는 다른 누군가가 봤을 땐 잘해봐야 차악, 결국에는 다를 바 없는 최악이다. 이무기 도축업자들에게 복수하기 위해 용이 되길 포기한 검은 이무기 ‘강철’은 권삼복의 그런 어중간한 태도 역시 스스로의 죄책감을 덜기 위한 위선에 지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백 명을 죽이고 한 명을 살렸다고 해서, 죽은 백 명에게 위로가 되진 않는다. 만약 희생되는 주체가 이무기가 아닌 인간이었다고 하더라도, 그런 미적지근한 구원책을 차선이라고 말할 수 있었을지를 생각해보면, 결국 권삼복 역시도 이무기의 문제 앞에서 인간의 입장을 버리진 못했다는 걸 부정할 수가 없는 것이다.

 

 

 

공존은 가능한가


 

그 결과, 강철의 분노는 불길이 되어 권 씨 집안의 산을 집어삼키기 시작한다. 그동안 기울여왔던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되고, 서로를 향한 분노만이 남은 최악의 상황 속에서 권삼복은 과연 어떤 선택을 내릴까. 그녀는 이번엔 누구를 위한 최선을 택할 것인가.

 

그 끝에 있는 것은 예정된 공멸인가, 기적 같은 공존인가.

 

완결을 코앞에 둔 [도롱이]를 통해 직접 확인할 수 있길 바란다.

       

 

[임현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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