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온전한 나의 삶을 위하여 [문화 전반]

글 입력 2021.04.14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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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배울 수 없으며, 이성과 관련해서는 기껏해야 철학함만을 배울 수 있다.”

 

by. Immanuel Kant


 

“철학은 배울 수 없으며, 이성과 관련해서는 기껏해야 철학함만을 배울 수 있다.”라고 칸트는 말했다. ‘철학’과 ‘철학함’은 대중적으로 명확히 구분되고 있지 않지만 이 두 개념은 확연한 차이점을 갖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철학’과 ‘철학함’은 어떻게 다른 것인가? 이에 대한 답변을 바탕으로 데카르트의 「방법서설」과 칸트의 「계몽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변」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철학함’의 태도에 대해 분석해보고자 한다. 이에 더하여 두 텍스트에서 제시되는 태도가 현재를 살아가는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논해보고자 한다.

 

 

 

1. 철학과 철학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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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하나의 학문으로 알려져 있는 ‘철학(Philosophy)’의 어원을 살펴보면 사랑하다(Philos)와 지혜(Sophia)가 합쳐진 단어로 ‘지혜를 사랑하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사랑한다는 것은 자신의 이상향과 유사하거나 자신이 생각하기에 좋은 것을 가지고 싶어 하는 인간의 본성이다. Sophia에 해당하는 지혜는 세상의 이치를 알고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다.

 

즉, 철학은 자신의 이상향이며 좋다고 생각되는 지혜를 언제나 가까이하고자 하는 정신적 활동이다. 따라서 칸트가 철학이 아니라 철학함만을 배울 수 있다고 말한 까닭은 철학이 정신적 활동이라는 점에 근거함을 알 수 있다.


‘철학’이 이와 같은 뜻을 갖고 있다면 ‘철학함’은 어떤 뜻을 갖고 있는가?

 

칸트에 따르면 철학함을 배우는 것은 지식의 습득이 아니라 자기 이성을 스스로 사용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철학함은 자주적으로 생각하고 실천하는 활동이다. 또한, 결과만을 아는 것이 아니라,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왜 그렇게 반박했는지 스스로 되짚어서 생각해 보는 것이다.

 

이런 철학함의 계기는 놀라워함, 경탄에 있다. 낯선 것에 대해 놀라고 질문을 던져서 스스로 지혜를 추구하며 답을 내온 과정이 철학함이다.

 

 

 

2. 「방법서설」과 철학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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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법서설」과 「계몽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변」에서는 공통적으로 “자주적인 이성의 사용”이라는 철학함의 태도에 대해 보여준다.

 

「방법서설」에서는 자신을 연구하여 어떤 길로 이성을 이끌지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이성을 “잘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인간은 모두 천부적으로 동등한 이성을 갖고 있지만 개개인이 경험하는 우연적 성질들에 따라서 다른 견해를 갖게 된다.

 

데카르트는 이성을 사용하는 단 하나의 최상의 방법은 존재하지 않으며 개개인이 자신의 견해와 맞는 방식으로 이성을 활용하는 방법을 배우고 쌓아 나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데카르트는 어릴 적부터 다양한 학문을 접해왔고 열심히 공부해왔지만 결국 자신의 무지함, 학문에 대한 의심과 오류에 빠져 회의감을 느꼈다. 결국 그는 자신 속에서 혹은 세상이라는 커다란 책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학문 외에는 어떤 학문도 찾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여기서 단순한 지식의 습득이 아닌 자기 이성을 스스로 사용하는 방법을 배우는 ‘철학함’의 태도를 보여준다. 지식을 탐구하는 학자가 서재에서 하는 추리보다는 나 자신이 직접 경험하고 판단하여 잘못을 했을 경우에는 그에 상응하는 벌을 받는 추리 속에서 더 많은 진리가 있다고 말한다.

 

즉, 진정한 철학함이란 자신의 행동을 분명히 직시하면서 확신을 갖고 삶을 살아가며 참된 것과 거짓된 것을 구별하는 지혜를 갖추는 것이다. 이런 철학함이 태도는 선례와 관습에 따라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연구하며 얻어질 수 있고, 자신이 어떤 길을 나아가야 할지 자주적으로 선택할 때 갖추어질 수 있다.

 

 

 

3. 「계몽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변」과 철학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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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몽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변」에서는 철학함의 태도로서 “계몽”을 마땅히 스스로 책임져야 할 미성년 상태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라고 말한다. 미성년의 원인은 지성의 결핍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지도가 부재해도 지성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용기의 결핍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성년 상태에서 누군가가 자신을 대신하여 이성의 사용 방향을 선택해 주는 것이 편하다고 생각한다. 이로부터 비롯된 게으름과 비겁함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외부의 지도에서 해방되어도 미성년 상태에 머무르곤 한다.

 

또한, 성년이 되는 단계가 힘들기보다는 위험하다고 하는 이유는 혼자 걸으려고 할 때 발생되는 위험이 그들을 겁쟁이로 만들고 용기를 잃도록 하기 때문이다. 겁쟁이가 되어버린 자들은 영영 자신의 이성을 자주적으로 사용할 수 없다. 이런 장애물들을 극복하고 계몽을 이루기 위해서는 모든 국면에서 이성을 공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자유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성의 사적인 사용은 시민으로서의 의무를 다하고 수동적으로 명령에 따라 일을 수행해야 하기 때문에 계몽이 제한된다. 반면에 한 사람의 지식인으로서 독자 대중 앞에서 이성을 공적으로 사용한다면 시민으로서의 의무에 반대되는 행위를 한 것도 아니며 자신의 이성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고 그 자신의 인격으로 말할 수 있는 무제한의 자유를 향유할 수 있다.

 

즉 이성을 누군가의 명령에 의해 수동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자주적으로, 공적으로 사용할 자유만이 계몽을 이끌어 낼 수 있다.

 

 

 

4. 개인과 철학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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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텍스트에서 공통적으로 강조한 철학함의 태도로서의 “자주적인 이성의 사용”을 개인적, 사회적 관점에서 살펴보자면 “진정한 개인의 삶”을 이루기 위해서 큰 의미가 있다.

 

우선 개인적인 관점에서 살펴보자면 나 자신만의 온전한 삶을 이루기 위한 필수 요소이다. 자주적으로 이성을 사용한다는 것은 낯선 선택을 한다는 것이기에 익숙함을 추구하려는 인간에게는 쉽지 않다. 다시 말해, 일상생활에서 ‘철학함’의 태도를 취한다는 것은 자신을 둘러싼 것들을 향해 질문을 던지는 것이고 익숙한 것을 낯설게 만드는 과정이다.

 

이런 낯섦을 기피하고자 인간들은 칸트가 말한 “미성년 상태”에 머무르고 싶어 한다. 이렇게 용기를 잃고 게으름과 비겁함 속에서 머무르다 보면 진정한 나에 대해 잊어버릴 뿐만 아니라 그저 이미 만들어져 있는 길을 어떠한 비판적 태도 없이 걸어가게 되는 무의미한 삶을 살게 된다.

 

이와 같은 수동적인 삶이 아니라 온전한 나를 위한, 내가 만들어가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주적인 이성의 사용이 필요하다.

 

 

 

5. 사회와 철학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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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관점에서의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살펴보자면 우선 우리가 어떤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지부터 생각해 보아야 한다.

 

현대 사회는 고도화된 과학, 기술문명으로 인하여 효율성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게 되었다. 이로부터 발생한 과도한 경쟁 구도로 인해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학생들은 나라에서 요구하는 교육적 가치에만 치중된 수업을 받아왔다.

 

이런 수업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자라온 학생들은 자신이 무엇을 진정으로 원하는지 생각해 볼 기회조차 부여받지 못한다. 이처럼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는 상태로 일방적으로 요구되는 학습을 위하여 이성을 수동적으로 사용하게 된다면 결국 개인의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며 자신을 잃어버리게 된다.

 

이런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자주적으로 이성을 사용하여 자신의 특징, 선호, 개성을 하나씩 알아가면서 사회가 요구하는 사람이 되기 위한 길이 아니라 진정한 내가 되기 위한 길을 선택하는 것이다.

 

 

 

6. 정리하며


 

지금까지 철학과 철학함의 차이점에 대해 살펴보았다. 철학은 지혜를 가까이하고자 하는 정신적 활동 그 자체를 의미한다면 철학함은 스스로 생각하며 의문을 제기하고 지혜를 추구하는 활동이다. 즉 철학함에서 강조하는 것은 자주성, 자율성이다.

 

이런 철학함의 태도에 대해서 「방법서설」과 「계몽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변」에서는 공통적으로 “자주적인 이성의 사용”이라는 철학함의 태도에 대해 주장을 펼치고 있다. 이를 기반으로 나의 삶에서 철학함의 태도가 왜 필요한지 살펴보았다.

 

익숙함을 추구하려는 인간의 본성과 편파적인 가치만을 강조하는 사회적 구조 속에서 진정한 자신을 찾고 온전한 나만의 삶을 이루기 위해서는 자주적인 이성의 사용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와 같은 철학함의 태도를 깨우치고 꾸준히 유지할 수 있는 사람만이 자신에 의한, 자신을 위한 온전한 자신의 삶을 이뤄낼 수 있다.

 

 

[박세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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