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는 달린다 고로 존재한다 [운동]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달리기'의 매력
글 입력 2021.03.18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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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를 시작한 첫날을 잊을 수 없다. 페이스는 1km당 6분 49초였다. 너무 빠르지도, 너무 느리지도 않은 속도다. 그러나 내겐 그마저도 벅찼다. 태어나서 한 번도 쉬지 않고 달려본 적이 없었다. 그러니 내 몸에는 1000m 이상의 거리를 견딜 체력이 없었다.

 

뛰는 동안 숨은 가빠지고 다리는 점점 무거워지며 호흡은 곧 죽을 것만 같이 거칠어졌다. 반환점에서 돌아오는 때에는 세상이 노랗게 물드는 느낌이었다. 그만큼 나의 몸을 피니시 라인까지 이끌어 가는 것은 쾌감보다는 고통에 가까웠다. 죽지 못해서 죽기 살기로 뛰었다. ‘포기하지 않을 거야.’ 이 한 마디만 끊임없이 외웠다.

 

결국 굳은 의지만으로, 목표한 3km를 완주할 수 있었다. 피니시 라인에 들어왔을 때의 그 기쁨과 성취감은 진실로 강렬했다. ‘해냈어. 포기하지 않고 결국 끝까지 왔어!’ 기쁘지만 숨은 물 밖으로 나온 생선의 호흡같이 너무 거칠었다. 이윽고 생수를 꿀꺽꿀꺽 마셨다. 그러자 뒤통수부터 이마 앞까지, 시원하다 못해 머리 전체가 벗겨지는 쾌감이 강하게 밀려왔다. 마치 흐르는 시냇물에 두뇌를 가져다가 씻긴 듯 상쾌하고 개운한 느낌이랄까.

 

드럼통을 마구 두들기듯이 쿵쿵대는 심장 박동이 귓가를 울린다. 동시에, 새벽 2시쯤 공중파 TV 채널에서 듣는 “삐이이-” 소리가 내 세상의 배경음악이 된다. 아주 고요하고, 편안하고, 멍한 상태. 오직 내 몸에만 집중하는 순간이 선물같이 찾아온 것이다.

 

그날부터 나는 달리기를 삶의 동반자로 맞이했다. 조금이라도 답답하고 찌뿌둥한 기분을 느끼면 운동화 끈을 고쳐매고 밖으로 나간다. 머리가 복잡할 때, 또는 땀을 한 바가지 흘리고 싶을 때는 일단 달려보는 것이다. 달리면서 내가 찾은 진리는 이것이었다. "나는 달린다. 고로 존재한다!".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Cogito, ergo sum)"라는 명언을 차용한 나만의 신념이다.

 

 

 

달리기는 자신과 나누는 대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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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도중에는 오로지 나의 몸과 마음에만 집중을 하게 된다. 들이쉬고 내쉬는 호흡, 일정한 스텝으로 뛰고 있는 두 다리, 상/하체의 중심을 느끼며 나의 신체에 집중하는 데 온 마음을 쏟는다. 그와 동시에 마음을 가두고 있던 새까만 잡념들은 경쾌하게 날려 보내버린다.

 

뜀박질만으로 5분도 지나지 않아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하면 무의식은 말한다. “오랜만에 이야기 좀 하자”라면서. 이때가 바로, 호흡이 제자리를 찾고 나에게 가장 맞는 속도로 평온하게 달리기를 하는 순간인 것이다. 이를 계기로 평소에는 깊이 나누지 못했던 ‘나와의 대화’를 시작하게 된다. 잊고 있었던 삶의 가치들을 음미하는 시간을 즐긴다. 꺼내보지 못한 추억들, 불현듯 떠오르는 신박하고 좋은 생활의 아이디어들이 뛰는 내내 머릿속에서 파티를 벌이곤 한다.

 

한편 달리기를 하는 동안 다양한 코스를 지나면서, 또다시 호흡이 거칠어지고 불안정한 순간이 찾아온다. 이때는 나만의 필살기가 있다. 바로 ‘명상’에 돌입하는 것이다. 명상은 땅바닥에 앉아서 눈을 감고서만 하는 줄 알았는데, 달리기를 하면서도 눈을 반쯤만 감고도 할 수 있다.


명상을 하는 이유는 달리는 동안의 힘들고 고통스러운 순간을 잘 이겨내기 위함이다. 명상을 시작하면 때때로 소중한 사람을 떠올린다. 이 거리를 달리는 고통의 무게가 사뭇 버겁다고 느낄 때, 어머니와 할머니를 생각한다. 두 분을 생각하면 ‘포기’라는 단어는 뇌리에서 삭제되곤 한다. 그래서 지치고 힘들어서 도중에 멈춰버리고 싶을 때면, 소중한 사람들의 무게를 느끼려고 한다.

 

이윽고 포기하지 않고 달릴 수 있는 더 크고 강렬한 의지와 열정이 샘솟는다. 그 상태로 피니시 라인까지 뚝심 있게 달려간다. 달리기를 하는 과정이 삶을 살아가는 방식과 매우 닮아있음을 깨닫는다. 소중한 사람과 가치들을 생각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풍요롭게 그리고 벅차게 향유하는 달리기의 매력이 삶의 그것과 똑같기 때문이다.


온전히 나라는 사람을 마주 보는 연습이 바로 ‘달리기’임을 알게 된다. 달리기를 한다는 것은 결국 꾸밈없는,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과 대면하는 것이다. 살아있음을 온전히 느끼고, 존재하는 나 자신과 대화하는 과정이 바로 '달리기'다. 고로 달리기는 나 자신 그 자체이다. “나는 달린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나만의 철학에 자신이 있는 이유다.

 

 

 

달리기를 통해 세상을 음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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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라는 운동의 특징은 시간과 장소가 동시에 변화하는 것이다. 시간이 흐르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지만, 장소가 변화함은 시시각각 몸이 이동해야만 가능하다. 달리기를 통해서라면 드넓게 펼쳐진 경치를 감상하고 음미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이 때문에 러너(Runner)들 사이에서는 '러닝 맛집'이라는 표현이 오간다. 이는 풍경이 좋고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하며 달릴 수 있는 장소를 일컫는다. 달리기를 하는 장소가 트랙이 아닌 '자연'이라면, 이 세상이 품고 있는 아름다움의 본질을 있는 그대로 접할 수 있다.


만일 오후 6시쯤 한강공원에서 달린다면 석양에 타는 저녁놀을 음미하며 기분 좋게 땀을 흘릴 수 있다. 잔잔하게 불어오는 자연 바람과 공기를 들이쉬고, 푸르른 잔디와 풀꽃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며 달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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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빌딩 숲을 벗어나 도시 외곽의 들판이나 바닷가로 향하면 더욱 경이롭고 감탄스러운 경험을 할 수 있다. 지평선 또는 수평선의 먼 곳에 시선을 고정하고 달리다 보면, 이 지구가 동그란 원형(圓形)의 모양인 것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 즉 드높은 건물들 속에서는 알 수 없었던, 내가 사는 지구라는 세계의 원형(源形)을 느껴보는 것이다.

 

달리기를 통해 세상을 음미하는 경험을 지속한다면, 이 지구에서 태어난 모든 생명체와 자연에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첫째, 나에게는 달릴 수 있는 건강한 '몸'이 기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둘째, 달릴 수 있는 드넓은 공간과 자연을 마음껏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또다시 달리는 동시에, "나는 달린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신념을 확신할 수 있는 것이다.

 

세상과 자신의 생명력을 음미하고 싶다면, 우선 운동화를 신고 밖으로 나가 달려보기를 추천한다. 빠르지 않아도 좋다. 온전히 자신만의 속도로, 귀하고 소중한 자신의 몸과 마음 그리고 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느낀다면 더할 나위 없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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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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