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서툴러 보이는 장욱진의 그림이 사랑 받는 이유 [미술/전시]

그의 심플함이 말하는 것들
글 입력 2021.03.03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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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일하는 가게에 꼬마 손님이 놀러 왔다. 심심할까 봐 콜라와 큐브 치즈 몇 개를 챙겨주고 초를 하나 켜줬다. 예쁘다며 초를 바라보던 아이는 치즈를 포크에 꽂아 초에 갖다 댄다. 옆에 있는 아이의 부모님은 그을음이 생긴다며 말리다가 아이가 하고 싶은 대로 두었다. 초 가까이에 치즈를 한참 갖다 대던 아이는 조금 녹았다며 따뜻한 치즈를 입에 넣었다.

 

그걸 보고 아이다움이 무엇인지 생각했다. 분위기를 위해 켜둔 초에 치즈를 데워먹으려 하는 어른이 몇이나 있을까? 세상에 태어나 사회의 규칙과 틀에서 갇히지 않은 상태. 편견도 불가능의 구속에서도 자유로운 아이들의 순수함. 나이든 사람의 연륜에서 나오는 지혜도 물론 값지지만, 아이들의 이따금씩 하는 행동과 말에 영감을 받을 때가 종종 있다. 이미 세상을 살아가는 어른들의 시각에서는 그런 순수함을 유지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다녀온 장욱진의 전시에서 나는 그 아이다움을 보았다. 그의 그림 속 단순한 선과 동화적인 분위기를 보면 마치 어린아이가 그린 그림처럼 보여서 그런 것도 있지만, 도록에 담긴 그의 삶과 태도를 보면서도 느낄 수 있었다. 나이가 들며 잃어버리기 쉬운 그 태도를 어떻게 계속 이어나갈 수 있었을까. 어린 아이가 그린 것처럼 보이는 장욱진의 작품이 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지도 알고 싶어졌다.

 

 


“나는 심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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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1973, 캔버스에 유채, 17.9x25.8cm, ⓒ현대화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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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기장, 1956, 나무 패널에 유채, 21.6x27.5cm, ⓒ현대화랑

 

 

장욱진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순수함은 심플함에서 비롯된다. 그는 화려한 기법 대신 단순하게 선을 썼다. 전개도와 같은 평면적인 구도를 사용하고 원근법을 왜곡시켰다. 있는 그대로 모든 것을 그리는 대신 화가가 느낀 그대로, 정말 필요한 것만 남겨서 대상을 단순화시킨 것이다. 심플함을 위해 화가가 선택한 간결한 선과 평면성, 원근법의 왜곡이 아이가 그린 그림과 맞닿아 순수함으로 이어졌다.

 

서툴러 보이는 조형 표현은 정말 중요하고 필요한 것만 남겼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의 그림에는 미숙함 대신 정제된 깨끗함과 군더더기 없는 단순함이 자리한다. 구구절절하게 말하는 대신 핵심만 이야기할 때 귀에 더 잘 들어오는 것처럼 단순한 그의 그림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명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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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욱진, 1985, 무제, 종이에 먹, 25x25cm

ⓒ(재)장욱진미술문화재단

 

 

또한 장욱진은 배움을 게을리 하지 않으며 늘 본질에 다가서고자 노력했다. 일본 유학 시절에는 일본사람이 소화한 서양화법을 배우는 대신 책이나 서양화를 직접 보며 그림을 배웠다. 누군가의 관점을 거치는 대신 가능한 한 배우고자 하는 대상에 가까이 다가가 스스로 판단하려 한 것이다.

 

게다가 그는 유화를 그리며 서양화가로 그림을 시작했는데, 이후에 매직그림, 먹그림(수묵화), 판화, 벽화, 글씨 등 다양한 영역을 넘나들었다. 그는 “그림에 동서양이 있을 수가 없다”며 동양은 수묵화, 서양은 유화로 대표되는 이 둘 사이의 경계를 그림이라는 한 단어로 통합시키기도 했다. 누구하고도 이야기할 수 있고, 누구도 좋아할 수 있는 것이며, 누구도 할 수 있는 것이라는 보편적인 언어로서 미술의 본질을 이야기한 것이다.

 

이러한 그의 시도는 “체(體.습관)가 생기면 안 된다”라는 신념에서도 비롯된다. 유화에서 시작해 다양한 재료와 동서양의 구분 없이 작업을 계속할 수 있었던 이유다. 그렇게 경계를 넘나들며 50, 60년대의 질감이 두드러지는 전형적인 유화 스타일에서 매직그림과 먹그림, 70년대엔 안료를 얇게 펴서 표지에 스며들게 하는 기법에까지 이른다. 유화이면서 유화가 아닌 이 독특한 스타일은 ‘체體’를 멀리하고 새로운 시도를 망설이지 않았던 그의 태도 때문에 가능했다.

 

우리가 사회적인 규칙에 따라 세상을 바라보는 이유는 편하기 때문이다. 정해진 기준이 있다면 새로운 것을 보아도 그 기준에 따라 그것을 분류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 반복되면서 고정관념이나 선입견이 만들어진다. 아이들은 그렇지 않다. 새하얀 백지에 아이들을 비유하듯이, 아이들은 무엇이든 흡수하고 배울 수 있는 상태다. 그런 자유로운 상태를 아이다움이라고 한다면 장욱진 역시 아이 같은 삶을 살았던 게 아닐까. 그것이 "심플함"이라는 한 단어로 표현되어 그의 작품세계를 이끌었다.

 

 

 

심플함의 이유


 

그렇다면 장욱진이 심플함을 추구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장욱진의 아버지는 시서화를 즐기고 병풍을 만들어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 어린 자식들에게 글씨 쓰기를 시키고 그 중 잘된 것은 벽에 걸어두고 흐뭇해할 정도로 자상한 사람이기도 했다. 장욱진은 그런 아버지를 좋아하고 따랐지만, 그가 일곱 살이 되던 해에 아버지는 병으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 장욱진은 이 무렵부터 까치 그림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그림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 이미 그림의 기본기를 습득했던 장욱진은 경성부속 보통학교에 입학하여 미술에서 두각을 나타낸다. 그림을 그리는 대상과 똑같은 그림을 잘 그렸다고 생각했던 일본인 교사들은 장욱진의 독창적인 그림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줄곧 낮은 성적을 받다가 미술대회에서 최고상을 수상한 뒤부터는 좋은 성적을 받게 되었는데 장욱진은 ‘상이란 것은 예술가에게는 별다른 의미가 없다’며 연연하지 않았다. 그는 남의 평가보다는 자기 만족이 더 중요한 사람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일찍 그림을 시작했기 때문일지, 예술 애호가였던 아버지의 영향일지, 아니면 타고난 기질일지 몰라도 그는 어릴 때부터 예술가 기질이 다분했다. 일본인 교사의 불의에 항의했다가 학교에서 퇴학당하기도 한 강한 신념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타협보다 신념, 평판보다 자기 만족이 더 중요했던 이런 기질은 그의 작품세계를 이끌어나가는 바탕이 되었을 것이다.

 

장욱진은 경성교보 중퇴 후 전염병인 성홍열을 앓게 되어 수덕사에서 요양하게 되는데, 사찰과 산수를 곁에 둔 생활을 하며 불교적 세계관과 자연과 가까워진다. 후에 장욱진은 비공比空이라는 법명을 받는다. 비공比空이란 ‘깨달은 사람의 마음은 텅 비어 있고, 그 텅 빈 속으로 세계가 스며들어와 하나가 된다.’라는 의미이다. 불교에서의 공空은 아무것도 없으면서 영원히 존재하는, 무엇도 더하고 뺄 것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 역설적이지만 아무것도 가지지 않았기에 텅 빈 속으로 세상이 들어올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의 몸이란 이 세상에서 다 쓰고 가야 한다. 산다는 것은 소모하는 것이니까. 나는 내 몸과 마음을 죽을 때까지 그림을 그려서 다 써버릴 작정이다."

 

 

그가 이런 말을 한 이유도 그의 불교적 세계관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본다. 몸과 마음을 그림으로다 써서 공의 상태에 이르기 위한 마음. 이것은 “나는 심플하다”라는 선언과 그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단순함으로 이어졌다. 비워진 공空의 상태는 순수함과도 연결된다. 그래서 그의 작품을 보는 사람들이 어린 아이 같은 순수함과 동화적인 분위기를 느끼는 것이 아닐까.

 

 

 

그의 그림이 우리에게 전하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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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수, 1978, 캔버스에 유채, 30x40cm, ⓒ현대화랑

 

 

1978년작인 <가로수>는 장욱진의 대표작 중 하나이다. 세 그루의 커다란 가로수 길을 한 가족과 개, 소가 걸어가고 있는 그림이다. 장욱진은 이 그림의 모티프를 옛날 3등 국도의 가로수에서 가져왔다. 국도는 포장되지 않은 자갈과 흙길에 차가 덜컹거리고 지나다니는 차도 많지 않다. 그래서 시속 20~30km의 느린 속도로 달리며 길가의 원두막, 소, 지나가는 사람이나 개를 눈에 하나하나 담을 수 있다. 고속도로에서는 주변 풍경은 스쳐 지나가지만 국도에서는 전원 풍경을 천천히 즐길 수 있다.

 

낯설고 새로운 풍경에는 눈이 간다. 아직 모든 것이 새로운 아이들이 사소한 것들에 눈길을 주는 이유다. 반면, 어른의 눈에는 당연해 보이는 것들 투성이다. 우리는 그런 것들을 스쳐 보낸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자. 따뜻한 햇빛, 까만 밤하늘에 떠오른 밝은 달,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부모의 손을 잡고 걸어가는 아이.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를 웃음짓게 만드는 건 당연하고 사소한 것들이다.

 

장욱진의 그림은 그런 것들을 생각나게 한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것처럼 바쁜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3등 국도의 전원 풍경을 선물한다. 생각의 틀과 선입견 없이 순수하게 그대로를 받아들였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하고, 익숙함에 놓쳐버리는 것들을 다시금 돌아보게 만든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장욱진의 작품을 좋아하는 게 아닐까.

 

그리고 이것은 현재를 살아갈 힘을 준다. 쳇바퀴처럼 반복되는 일상에서도 반짝이는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는 힘,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힘, 현실에 매몰될 때 어린 아이의 눈으로 새로운 시도를 해볼 힘을 말이다. 그러니 삶이 버거운 순간이 오면 장욱진의 그림을 떠올릴 것 같다. 그의 작품이 주는 따뜻함에 한숨 돌리고, 그의 말처럼 다시 채우기 위해 소모하는 삶의 한가운데로 발을 내딛을 용기를 얻기 위해서.

 

 

참고자료

강새봄. 『장욱진 작품에 표현된 아동화적 요소에 관한 연구』. 석사학위논문. 경희대학교. 2007.

김문정. 『장욱진작품의 민화적 요소 : 까치 소재를 중심으로』. 석사학위논문. 동국대학교. 2019.

서혜자. 『장욱진의 회화와 정신세계에 대한 연구』. 석사학위논문. 단국대학교.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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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소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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