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삶이 ‘표지’를 숨기고 있다고 믿는다.
무언가를 오랫동안 갈망하고 준비한 사람만이 표지를 읽을 수 있다. 자연의 선물이자 신의 축복이다. 나는 사랑으로 충만하고 꽃피울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러자 시는 표지가 되어 내게 나타났다.
제목 그대로, <시가 사랑을 데리고 온다>
풀꽃 시인으로 유명한 나태주 시인이 직접 엮은 해외 명시들은 먼 이국땅에서부터 불어와 내게 큰 위로와 용기를 주었다. 시인의 말대로 모르는 나라, 낯선 나라에 대한 동경과 국경을 초월한 공감이 더 끈끈하게 나를 묶어준 것 같다.
<내 사랑은>
시간은 기다리는 사람에게는
너무나 느리게 옵니다
시간은 용기 없는 사람에게는
너무나 빠르게 옵니다
시간은 슬퍼하는 사람에게는
너무나 길게 옵니다
시간은 기뻐하는 사람에게는
너무나 짧게 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시간은 영원히 올 것입니다.
- 존스 베리
사랑은 시간 속에 있고, 그 시간 속에 있는 이는 시가 데려온 사랑을 얻으리라. 사랑 속에 있던 이는 시를 노래하고 사랑을 다시 시로 노래한다. 참으로 아름다운 진리. 시는 내게 표지로 다가왔고 사랑을 하라고 부단히도 재촉한다.
<젊은 시인에게 주는 충고>
마음속에서 풀지지 않는 고민들에 대해
인내함을 가져라.
고민 그 자체를 사랑해라.
지금 당장 답을 얻으려 말라.
지금 당장 주어질 순 없으니까.
중요한 건
모든 것 그대로 살아보는 일이다.
그러하면 언젠가 미래에
너 스스로 알지 못하는 그 시간에
삶이 너에게 답을 가져다 줄 것이리니.
- 라이너 마리아 릴케
릴케의 말이 맞다. 삶은 표지를 숨겨두고 그것을 찾고 구하는 이에게 모습을 드러낸다. 참 적절한 때에, 꼭 알맞은 방식으로. 그러한 경험이 몇 번인가 있었다. 그래서 이 시가 내게 참으로 위안이 된다.
앞이 캄캄한 길 위에서 시인은 인내하라고 말한다. 모든 것을 살아보고 고민 자체를 사랑하라고 한다. 인내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는 알고 있었다. 쉽지 않다는 것을 알지만 그럼에도 연단하라고 한다. 나보다 앞서 이 길을 간 선배가 건네는 응원이다.
나는 다만 그의 발자국을 따라 밟는다. 시 한 구절에 발자국 하나. 마음이 따뜻해진다.
<봄의 말>
봄이 속삭인다.
꽃피워라,
희망하라,
사랑하라,
삶을 두려워하지 마라.
소년 소녀들은 모두 알고 있다,
봄이 말하는 것을.
살아라, 자라나라, 피어나라,
희망하라, 사랑하라, 기뻐하라, 새싹을 움트게 하라,
몸을 던져 두려워하지 마라!
- 헤르만 헤세
다시 희망을 갖고 열심히 사랑하기로 했다. 그토록 두려웠지만 몸을 던져 삶을 살아내기로 했다. 이 시가 나의 20대를 이끌어갈 것이란 예감이 든다. 꽃피워라, 희망하라, 사랑하라, 삶을 두려워하지 마라. 무얼 망설이나?
마음이 왜 이리 간지러운가 싶더니, 벌써 삼월이다. 봄이 오는 신호를 받고 꽃피울 준비를 하고 있던 까닭이다. 오래전 심었던 씨앗이 마음 밭 사이로 깊이 뿌리를 내렸고, 성장통으로 난 괴로워했다. 인고의 시간을 지나 꽃 몽우리가 맺혔다. 그 속은 사랑으로 충만하다.
왜 이리 간질이나 했더니, 터질 듯한 사랑이 피울 준비하며 꽃잎 살랑인 까닭이다. 아니, 그게 아니면 봄바람 때문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