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집의 외로움을 정기고의 공허함에 투영시키다

쏟아서 비울 때, 채울 수 있다.
글 입력 2021.02.22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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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색한 봄의 멀미가 단순히 열병으로 여겨질 수 있는건 모두 음악이 주는 힘 덕분이었다.


공허할 때마다 듣는 내 플레이리스트를 차지한 노래들은 보이지 않는 교감을 가능케 했고, 노래를 들으며 파생되는 순수한 감정과 생각들은 정제 없이 튀어나와 사람들과 진실된 소통의 장을 마련해주기도, 미련한 과거의 기억들을 아름답게 만들어 주기도 했다.


때로는 아티스트의 숱한 고민이 느껴지는 여러 소리들이 조합된 노래들을 통해 인간이 타파한 한계에 대한 감동을 전해 받기도 한다. 음악에 관한 전문적 지식을 갖지 않아도, 청각을 통해 느껴지는 음악은 여러 감각으로 전이되어 인간에게 다양한 감정을 맑고 선명하게 느끼게 해준다.


나는 지금 내가 듣는 노래의 쪼개지는 비트를 칭하는 이름이 무엇인지, 고요한 재즈와 방방 뛰는 하우스를 가르는 기준에 대해 알지는 못해도 음악이 주는 힘만큼은 여느 노래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다르지 않은 깊이 만큼 느끼고 있었다.


누구나 어떠한 자격없이 음악을 향유할 수 있고, 공유할 수 있다. 음악에 대한 풍부한 배경지식과 이해는 없지만,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은 15살에 받았던 음악적 감동에 관한 나의 이야기가 있다.

 

 

▶ 15살의 나와 그때 내가 음악을 즐기던 요령

 

그때의 나는 소수의 취향을 쫓으며 우월감을 느끼는 ‘홍대병’ 말기 어디쯤이었다. 점심시간에 같은 반 친구들이 매일 같이 틀어놓던 뮤비 속 아이돌을 좋아하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매일같이 귀에 이명처럼 떠도는 노래들은 화려하고 중독적인 k-pop이었다. 누구나 좋아하는 가수를 좋아한다고 말하면, 내 음악과 인간에 대한 취향이 단편적으로 분석될 것 같았기 때문에 곧 남들이 잘 알지 못하는 가수를 좋아한다고 말하고 다녔다. 철없고 허영심 가득했던 그때의 나에게 취향이란 보여지기 위한 정보 중 하나와도 같았다.


이때 나에게 적당한 유명세를 가졌지만, 진실된 감동을 가져다 주는 노래를 하는 이가 있었다. 바로 과거 언더에서 활동하다가 <썸>이라는 노래를 통해 유명세를 얻은 가수 ‘정기고’다. 공허한 표정으로 사랑을 느끼는 그의 노래가 나를 오랫동안 유튜브에 잡아 놓았다.


전문가의 손길이 느껴지는 헤어와 메이크업, 소비자의 관점을 고려한 계산된 의상을 입고 번쩍이는 조명 위 상업적인 무대에서 노래를 하는 정기고, 스타쉽이라는 번듯한 소속사와 계약 후 발매한 앨범 <썸>이후, 유튜브에 그의 라이브 영상을 검색하면 흔하게 나오는 모습이다.

 

<썸>으로 언더에서 지상으로 갓 데뷔한 그의 과거를 처음 접한 건 유튜브에 업로드된 라이브 영상들을 통해서였다. 라이브 영상 속 그의 언더시절은 꾸밈없이 매우 자연스러웠고, ‘노래’만으로 사람들을 동요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전하며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이 무엇이든 변화시킬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주기도 했다.

 



 

 

▶ 정기고의 공허함에 나의 빈 집을 투영시키다.

 

무엇보다 공허한 감정에 처한 이가 사랑을 느끼고 줄 수 있다는 사실은 내게 너무나도 소중했다. 나에게 집은 늘 비어있는 외로운 공간과도 같았고, “텅 비어있는 내가 누군가에게 애정을 줄 수 있을까?”란 말과 함께 날 맹목적으로 사랑할 수 있는 환상 속 이들을 그리고 기다리며 평생을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빠지기도 했다. 허공을 바라보며 외치는 몹쓸 외로움에 대한 원망을 애정 가득한 말을 통해 사랑으로 승화시킨 영상 속 정기고에 나의 빈집을 투영시켜 공허함과 사랑 중 하나가 어느 하나를 지배하지 않고 공존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할 수 있었다.

 

다음 멜로디와 가사를 기대할 수도 없이 그의 노래가 너무나 익숙해졌을 때도, 나는 집안 가득 그의 노래가 들리도록 했다. 그때 만큼은 외로움이 나를 외롭게 만들지 않았다.

 

 

 

 

▶ 영원하지 않을 걸 알아도, 구차한 사랑을 묻고 주다.

 

모래알처럼, 다섯 손가락 사이로 스르륵 사라지네


그는 쥐면 쥘수록 빠져나가는 사랑의 법칙에 이미 통달한 것처럼 말하면서 끊임없이 상대방에게 집념적인 태도로 사랑에 대한 ‘왜’라는 구차한 물음을 던진다. 구차할 수 밖에 없는 마음의 크기가 그의 여유로움을 빼앗아도 사랑은 잃게 하지 못했기에 달콤하게만 들린다.

 

15살이었던 그때의 나의 내면에서는 찌질한 진실과 쿨한 거짓이 대립하고 있었다. 항상 진실된 것들을 추구하고 그것들이 세상의 답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내가 본 멋진 것들은 매사에 덤덤하고 사사로운 바에 얽매이지 않는 냉소적인 태도에서 시작됐다.


“tell me why” 같은 영문장을 포함해 사랑을 갈구하는 ‘왜’라는 부사는 노래에서만 34번이 등장하는데, 보편적으로 군색하게만 느껴왔던 ‘왜 날 사랑하지 않아’ 문장 속 ‘왜’와 그의 ‘왜’는 거리가 있었다. 그는 사랑의 법칙을 통해 채울 수 없는 애정의 깊이에 대해 분명하게 인지했음에도 불구하고 넘치는 사랑을 행했다. ‘정기고의 Why’는 내가 잘 보지 못한 진실에서 시작된 멋진 것들 중 하나였다.


이제야 홍대병을 치유한 나는 후회했다. 왜 그의 노래를 듣고 산발적으로 떠올랐던 생각들을 꾸준히 기록하지 않았을까. 오랜 과거를 기록하며 반성한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처한 환경에 상관없이 자유롭게, 음악적 취향을 공유할 수 있길, 또 다른 빈집의 공허함을 사랑으로 메울 수 있길 기대하며.

 

 

[김재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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