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삶이라는 연극 무대 위에서 - 더드레서 [공연]

연극 <더 드레서>
글 입력 2021.02.22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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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더드레서>의 결말을 포함한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연극이 시작하기 전, 가득 들어찬 관객들은 부푼 기대를 안고 무대 위에 펼쳐질 작품을 기다린다. 그들은 웅성거리는 관객석에서 고요한 무대 위와 마주한다. 그 시각, 무대 뒤 편 또한 분주함과 긴장감으로 가득 차있다. 배우들과 스텝들은 쉬지 않고 움직이며 관객들과 만날 채비를 한다. 우리가 보진 못하지만, 고요해 보이는 무대의 뒤는 우리와 만나기 위한 사람들의 움직임으로 분주하다. 정동극장에서 12년 만에 다시 선보인 연극 <더 드레서>(2020.11.18~2021.1.3)는 관객석에 앉아있는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무대 뒤 모습을 무대 위에 올려, 우리 인생의 이면에 관해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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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드레서>는 ‘연극’에 관한 연극이다. 그것도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영국을 배경으로, 죽기 직전의 노쇠한 배우가 모든 힘을 쏟아 붓는 연극에 관한 이야기다. 하지만, 그가 연기하는 <리어왕> 공연 장면이 주된 요소만은 아니다. 작품은 연극이 시작하기 직전, 인터미션, 연극이 끝나고 난 후 대기실의 모습을 주로 보여준다. 그렇기에, 많은 장소를 무대 위에 올리지는 않는다. 우리가 보고 있는 무대 위에 구현되는 주요한 공간은 ‘선생님’의 대기실과 <리어왕> 공연 무대뿐이다. 이동식의 대기실 무대와 무대 막을 통해서 작품은 두 공간을 어렵지 않게 옮겨 다닌다. 책상, 소파, 옷장 등의 일상 가구로 채워져 단조로워 보일 수 있는 공간은, 선생님과 노먼, 그들과 대화하는 사람들로 인해 채워진다. 거의 한 몸과 같이 등장하는 선생님과 노먼은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고, 둘을 비롯해 연극을 구성하는 다른 배역의 배우, 무대 감독 등 다른 인물들이 등퇴장하며 이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배우들은 많은 양의 대사를 소화해내며 단순한 공간 안에서 연기로써 전달할 수 있는 에너지를 응축시켜 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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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공연은 연극에 관한 연극이기도 한 동시에 연극의 극적 요소를 많이 활용하고 있는 대본의 힘을 살리기 위하여 디테일한 연출에 많은 신경을 쏟았다. 연극 초반, 선생님의 대기실 안에서 노먼과 사모님이 대화하며, 정신이 노쇠한 선생님이 병원에서 겪은 이야기를 노먼이 알리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에서, 현재 노먼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 대기실 공간의 틀, 그 바깥에 제 3자처럼 앉아있는 배우들이 그 상황을 재연한다. 이러한 장면은 연극 안에서 연극인 <리어왕>을 준비하고 선보이는 배우들의 모습과 맞물려, 공연 바깥의 관객들의 시선과 더불어 공연 안에서의 인물들의 행동을 지켜보는 또 다른 겹의 시선을 만들어낸다. 이 장면에서는, 무대를 비추는 따뜻한 느낌의 조명과는 달리, 차가운 색채의 푸른 조명이 재연하는 배우들에게 비춰, 틀 바깥에서 연기하는 그들의 모습이 현실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 인물들을 둘러싼 또 다른 하나의 ‘막’과 같은 느낌을 전달한다.

 

이렇듯, 관객들은 연극 안의 연극, 또 연극 안의 재연을 보며 작품을 둘러싼 여러 겹의 층위를 느낄 수 있다. 관객들은 여러 개의 시선을 통해 작품이 다루고 있는 현실의 문제를 바라봄과 동시에, 또 다른 겹인 객석에 앉은 나를 둘러싼 현실까지도 이와 연결시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이와 같은 작품의 특성 상 작품 속 연기자들은 배우를 연기하는 배우, 혹은 배우가 아닌 주변인으로 배우를 지켜보는 인물의 연기를 해나가야 했다. 특히, 노먼 역은 선생님의 주변인인 드레서로 헌신했지만, 결국 누군가의 기억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지 못한 설움을 느끼는 인물이었기에 그 복잡한 심경의 전달이 중요했다. ‘배우는 다른 이들의 기억 속에서만 존재’한다고 말하는 선생님의 말씀을 되새기던 노먼은, 모순적이게도 오랜 시간 헌신한 그에게 중요한 사람으로 남지 못한 자신의 처지에 울분을 터트리며, 죽어버린 선생님의 험담을 늘어놓는다. 이 장면에서 노먼 배역은 시종일관 긍정적으로 선생님을 대하던 모습을 지우고, 그를 욕하고 원망하는 아이러니한 모습을 연기하며, 인간적이어서 미워할 수 없는 인물의 내면을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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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공연에서 중요한 것은, 작품이 전쟁 중이라는 힘든 시기에 연극을 지속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관한 것이다 보니, 큰 타격을 받고 있는 현재 우리 공연계에 전달하는 메시지가 있다는 것이다. 특히, 선생님 역의 배우가 관객석을 바라보며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하는 장면은 제 2차세계대전이라는 시간적 배경을 넘어 지금의 관객들과도 직접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장면이 아니었나 짐작한다.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배우가 200번 넘게 공연한 작품의 처음 대사도 기억하지 못한 채 공연을 시작했지만, 결국 혼신을 다해 연기를 마치고 전쟁 중에도 연극을 보러와 준 관객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하는 장면이었다. 배우는 연극 안의 연극, 즉 <더 드레서> 속, <리어왕>을 보러온 관객들에게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지만 그것은 동시에, 질병으로 인해 전쟁을 치르고 있는 공연계의 모습을 지켜봐온, 그 모든 상황에도 불구하고 극장을 찾아준 지금의 우리 관객들과도 깊이 소통하는 장면이었을 것이다. 관객들은 어려운 시기에 이 연극을 꾸려나간 배우들에게 찬사를 보내며 힘든 시대, 인생이라는 연극 무대에 올라와있는 자신에게도 박수를 보냈을 것이다. 이 장면을 통해 왜 지금, 이 시기에 <더 드레서>라는 작품이 올라가야 하는지, 극장을 나서는 관객들은 그 물음에 어렵지 않게 답할 수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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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드레서>는, 연극이라는 장르를 우리 삶과 엮어내 각자 인생의 배우로서 맡은 바 역할을 다하고 있는 관객들에게 작품과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전했다. 평생 주연으로서 계속 해오던 역할마저 주춤대며 거부하는 노쇠한 배우, 평생을 헌신했지만 누구의 기억에서도 기념되지 못하는 드레서, 중요하진 않지만 무언가 역할을 맡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묵묵히 할 일을 해가는 조연 등 연극은 다양한 인물들을 통해 우리 인생의 면면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비록 우리는 관객석에 앉아 연극을 보고 있지만, 현실 속의 연극, 연극 속의 현실을 들여다보며 무대 위의 주조연 배우들, 무대 밖의 창작진들과 소통하는 동시에 커다란 연극 무대인 우리 삶까지도 가까이서 관찰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전달 받는다. <더 드레서>는 동시대의 어려움을 상기시키는 동시에, 우리 삶이라는 보편적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를 전하며, 현재를 사는 우리와 소통하기 위해 노력한다.

 

'인생'이라는 무대 위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 남이 보는 나와 내 안의 내가 다를 때도 있고, 가면을 쓰고 연기를 하며 약한 나를 드러내보이지 않으려 애쓰기도 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모든 삶을 끌어안아야한다. 연극이 끝나고 관객들이 모두 퇴장해도, 무대 위에 불이 꺼져 어둠 밖에 남지 않아도, 우리는 계속해서 삶이라는 연극을 이어나가야 하기에.

 

 

[조혜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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