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적절한 거리에 관하여, ’Her' [영화]

글 입력 2021.02.22 0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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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은 지옥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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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사회는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줄이고 개인화되는 경향이 점점 더 발생하고 있다. 2019년 ‘타인은 지옥이다’라는 드라마가 방영되었었는데, 이 제목은 프랑스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가 지은 희곡 <출구 없는 방>에서 나온 말이다. 왜 타인은 지옥이 되는 것일까?


우리는 많은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가족과 혈연의 관계에서, 성장해서는 또래와 직장의 관계에서 관계 맺기를 하면서 자신의 존재를 끊임없이 인정받고자 한다. 그런데 최근에는 이러한 관계에 싫증이나 피로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한 TV 프로그램에서 유시민 작가는 “귀찮아요, 관계가”라고 대답했는데, 이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요즘은 더 많아지는 추세이다. 특히 인맥을 중시하는 한국 사회에서는 관계 맺기가 중요한 만큼, 사람들은 각자의 많은 관계 속에서 오히려 자유로움을 느끼지 못하며 관계 자체가 스트레스로 다가올 것이다.


‘혼밥’, ‘혼영’ 등이 느는 것도 이러한 까닭이다. 그래서 사르트르는 타인은 지옥이라고 묘사했던 것이다. 개개인은 하나의 주체성을 갖고 있는데, 타인과 관계를 맺을수록 자신의 인격이 훼손되고 그 과정에서 피로감을 느끼게 되며 그러한 타인과의 관계는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타인은 정말 지옥일까? 우리는 인간관계에서 스트레스를 느끼기도 하지만 서로의 버팀목이 되어주기도 한다. 그렇다면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떠한 것이 필요할까? 이와 관련해 영화 Her을 소개하고자 한다.

 

 

 

“난 당신의 것이지만 당신만의 것은 아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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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당신의 것이지만 당신만의 것은 아니죠.”

 

영화 속 이 대사는 주인공 테오도르에게 그의 인공지능 사만다가 마지막 장면에서 전하는 말이다. 디지털 시대에 살아가면서 인간관계에서 겪은 상처 때문에 사람과의 관계 맺기를 두려워하는 테오도르는 인공지능 사만다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조금 특이한 내용으로 영화는 ‘실체가 없어도 사랑을 느낄 수 있는가’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있다. 초반부에서는 주인공은 인공지능 사만다를 기계로 인식하나,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보다 그의 마음을 알아주고 위로해주는 사만다에게 의지하게 된다.


그러나 결론 부분에서 그는 자신을 위해서만 존재한다고 생각했던 사만다가 다른 이와도 자신과 같은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을 알고 화를 낸다. 그리고 사만다는 그런 그에게 “난 당신의 것이지만 당신 만의 것은 아니죠.”라고 답한다.


필자는 이 영화의 핵심은 ‘거리’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사랑하는 이가 생기면 소유하려는 욕구가 있다. 애인들의 애칭들이 그렇듯이 서로를 위해서만 존재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소유하려던 테오도르와 달리 사만다는 그를 떠났다.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 보면, 폴은 홀리 역인 오드리 헵번에게 “우리는 서로를 소유하면서 살아가기도 해요.”라고 말한다.

 

어느 것에도 소유되지 않으려는 홀리는 사랑을 부정하지만 결국 서로의 소유를 인정하고 둘의 사랑은 이루어진다. 이 영화에서는 소유함으로써 사랑이 이루어졌는데, 영화‘Her’은 더 깊게 소유하려고 하자 헤어졌다. 물론 내용상 인공지능의 분화로 이루어진 것이지만, 감독은 사랑과 소유, 그 사이의 거리에 대해 다루고 있다.

 

 

 

적절한 ‘거리’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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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사랑에 적절한 거리 두기는 무엇일까? 거리와 관련하여 하나의 이야기가 있다. 고슴도치는 등의 날카로운 가시 때문에 서로를 끌어안지 못한다. 그렇다고 서로가 동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추운 겨울날이면 서로의 온기를 조금이라도 가지기 위해 거리를 가까이한다. 하지만 서로를 찌를 만큼은 아닌, 그 정도의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다. 이런 고슴도치의 모습에서 타인과의 거리 두기도 배울 수 있다. 서로를 소유하기 위해 상대에게 더 다가가게 되면 서로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는 점이다. 테오도르는 결혼했지만, 오랫동안 별거했고 사만다와 함께했다. 이후 사만다를 떠나보내고 전 부인에게 “너를 내게 맞추려 해서 미안해”라고 편지를 쓴다. 주인공은 사랑하는 이와의 '거리'와 그의 태도에 대해서 되돌아 본 듯 하다.


이동진 영화평론가는 제목이 ‘she’가 아닌 ‘her’인 것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인칭 주어인 ‘she’와는 달리 ‘her’은 목적어로 대상적인 의미이다. 그는 전 부인을, 사만다를 하나의 주체로 대하지 못하고 자신과의 짝이 맞는 대상으로만 취급했던 것이기 때문에 관계가 유지될 수 없었던 것이다. 디지털화되고 개인화되는 현대사회 속 타인과의 공존은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이 지점에서 Her은 사회적 현상과 결부하여 진정한 관계와 소통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담아내고 있다.


결국, 이 영화는 우리에게 사랑하고 타인과 더불어 사는 법을 가르쳐 준 것이다.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함께 소유하면서 채워나가는 일은 행복한 일이지만, 아무리 가까운 관계라도 거리는 필요하다는 것을 말이다. 고슴도치처럼 서로의 거리를 터득한 모습까지 이루어져야 진정한 관계가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심은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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