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그때의 그 봄은 아닐지라도 [영화]

글 입력 2021.02.06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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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운드 엔지니어 상우(유지태)는 소리를 찾아 전국을 다니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맡고 PD 은수(이영애)와 사랑에 빠진다. 행복에 겨운 나날들도 잠시, 순수하지만 맹목적인 그의 사랑에 은수는 지쳐간다. 상우는 이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그들의 사랑을 잡아두려 애를 쓴다.


허진호 감독의 2001년 작 <봄날은 간다>의 독특한 점은 제목에서부터 비극을 예고하는 로맨스 영화라는 것이다. 인연의 출발점인 수색역 씬부터 관객들은 연인이 어떤 결말을 맺을지 짐작할 수 있다. 봄날은 흘러가 버리고 말 것을 전제로 두고 시작하는 이 영화를 향해, 새드 엔딩이 달갑지 않은 여린 감성의 관객이라면 오프닝부터 어느 정도 떨어져 거리를 둔 채 감상을 시작할 것이다.

 

막 사랑을 시작하는 이들에게도 마찬가지로 달가운 시나리오는 아닐 테다. 꽃잎은 결국 떨어지듯이 너희도 떨어지게 될 거라는 어느 대중가요처럼, 조금 극단적으로 보자면 이 영화는 모든 사랑에게 내리는 집행일 미정의 사형 선고와 다를 바 없다.


그러나 <봄날은 간다>는 약 2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일반 관객, 씨네필, 평론가 가릴 것 없이 대중적인 사랑을 받아왔으며 오늘날 한국 로맨스의 대표 수작으로 꼽힌다. 이 영화가 갖고 있는, 관객의 마음을 움직일 힘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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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은 간다>는 상우와 은수라는 특정한 한 연인의 시작부터 끝까지의 이야기를 담았다. 그 특정한 연인의 이야기가 많은 이의 가슴을 동하게 할 수 있었던 요인으로는, 사랑하며 얻게 되는 모든 감정을 소중히 다루었다는 점에 있다.


먼저 로맨스 영화의 토대라 말할 수 있는 사랑으로 인한 설렘과 행복에 대한 묘사가 뛰어나다. "아, 거기 비 오는구나. 여긴 비 안 와요." 호감이 짙어져 가던 시기에 짧지만 가슴 설레는 통화가 있었다. 그리고 상우가 잠든 사이 강릉을 적시던 비구름은 곧 그에게도 찾아간다. 잠에서 깬 상우는 세차게 내리는 비를 보며 은수를 떠올린다. 그 사람을 만나고 온 비겠구나. 설렘으로 반짝이는 눈은 그의 생각을 투명하게 비추는 듯하다. 눈이 부신 달을 보며 사랑하는 이를 떠올린다는 김용택 시인의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를 연상시키는 로맨틱한 장면이다.


또한 연애를 막 시작했을 무렵, 상우는 보고 싶다는 은수의 한 마디에 택시를 타고 달려온다. 때아닌 새벽에 무려 강릉까지 날아온 그에게 은수는 얼굴을 구기며 웃어 보이고, 둘은 부서져라 서로를 안는다. 사랑을 하고 있는 이라면 마음이 간질거릴, 또 이미 떠나 보낸 이라면 가슴이 뜨거워질 "아저씨, 강릉!" 씬이다. 그들의 행복은 마치 언젠가 공유했던 추억인 것처럼 관객에게 가깝고도 달콤하게 와닿는다.


그러나 <봄날은 간다>는 앞서 말했듯 밝은 면으로만 굴러가는 로맨스 영화와는 거리가 먼 작품으로, 그보다는 오히려 사랑으로 얻는 고통에 더욱 중점을 둔다. 영화는 인물의 고통을 바라보는 시선 하나하나마다 신중을 기한다.


극 중 상우의 정서는 비교적 자주, 그리고 친절하게 설명된다. 창문 밖으로 세차게 내리는 비에 마치 은수에게까지 가닿으라는 듯 세차게 악을 쓰며 <미워도 다시 한번>을 부르는 장면에서 드러나듯, 아리랑의 화자처럼 은수가 어떻게든 자신을 떠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은수의 주위를 맴돌고 차를 긁는다. 반면 배역을 연기한 이영애 배우마저 은수를 ‘속을 알기 어려운 인물’이라 칭했을 정도로, 영화는 은수에 대해 말이 없다. 정확히 말하면 은수의 내면에 대해 설명하지 않는다. 영화적 구조를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다.

 

<봄날은 간다>는 오프닝부터 엔딩까지 철저히 상우의 시점에서 전개된다. 평화롭고도 단조롭던 상우의 나날들에 은수는 불쑥 찾아왔다 훌쩍 떠나 버리는 타인이다. 관객은 상우의 가족 관계, 주변 사람 등등 그의 배경이 되는 특징을 잘 알고 있지만 은수에게는 이혼 경험이 있다는 사실 하나뿐이다. 나빠 보이는 그녀의 행동을 이해할 면죄부가 되기에는 부족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불친절은 표현에 있어 꽤나 효과적이다. 만약 영화가 플래시백을 통해 과거 은수가 겪었던 일을 설명하고 그녀의 상처를 전시한다면, 영화는 급속도로 납작해질 것이다. 관객을 설득시키고 은수의 행동을 정당화하기보다는 그 과거를 공백으로 채움으로써, 관객은 은수가 어떤 일을 엮었는지 알 수 없지만 그 결과 그녀의 고통을 함부로 재단할 수도 없다. '그럴만했다', 혹은 '그래도 나빴다'라며 그 당위성을 판단하지 않고, 영화적 상상력으로 그 고통의 깊이를 능동적으로 짐작해보게 된다.


이와 같은 고통의 중시는 후반부의 상우에게도 적용된다. 은수가 다른 이를 만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상우는 은수의 집에 찾아와 오열한다. 그런데 그 폭발하는 감정을 담아내면서 영화는 상우에게 클로즈업은커녕 초점조차 주지 않는다. 착잡한 은수의 얼굴 뒤로 오로지 흐릿하게 뭉개진 몸부림과 울음소리만이 들려올 뿐이다. 그러나 그의 고통은 충분히 생생하게 전해져 온다. 영화가 친절한 시각적 묘사를 제공하지 않음으로써 관객은 그가 얼마나 아프고 고통스러울지 스스로 짐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상우 할머니의 아픔 또한 같은 맥락에서 최소한의 범위로 소개된다. 이러한 까닭으로 관객은 은수를 못된 여자라고, 상우의 할머니를 미련하다고 함부로 비난할 수 없다. 그들이 겪은 아픔의 깊이를 모르기 때문이다. 사랑으로 얻는 고통을 괄시하지 않는 이러한 여백의 미학 덕분에 관객은 보다 능동적으로 영화를 관람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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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어느 순간 관객은 부정적인 제목과는 반대가 이 영화가 사랑에 대해 긍정적인 시각을 던지고 있음을 깨닫는데, 이 역시 <봄날은 간다>의 매력을 설명할 수 있는 중요한 요소일 것이다.


감독이 가장 심혈을 기울여 제작하는 씬은 오프닝이라는 말이 있듯, 이 영화의 오프닝 역시 막대한 의미를 지닌다. 영화는 할머니의 뒤를 졸졸 따라가는 상우의 모습으로 막을 여는데, 상우의 할머니는 젊은 시절 바람을 피운 남편에게 버림받았으나 치매라는 질병 탓에 아직까지도 매일 기차역에 나가 돌아올 남편을 기다리는 사람이다. 버림받은 이와 곧 버림받을 이의 동행은 두 사람의 앞길에 대한 평행성과 동질성을 의미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베인 상처에서 피를 멎게 만드는 방법을 알려 주었듯, 상우의 할머니는 떠나보내는 법을 손자에게 가르쳐 주는 중요한 역할을 해낸다. '떠난 버스와 여자는 잡는 게 아니다'라는 말을 넘어서 당신의 삶 그 자체로 할머니는 상우에게 큰 깨달음을 준다. 상우는 할머니를 보며 잊어야 비로소 완성되는 사랑도 있음을 배운다. 할아버지는 올 수 없으니 이제 그만 좀 하시라 소리를 지르던 상우는 문득 지금 화를 내고 있는 건 할머니에 대한 안타까움이 아닌 묘한 기시감 때문임을, 자신이 화를 내는 대상은 따로 있음을 깨닫는다.


다 알고 있다는 듯 "힘들지?"라 물으며 어깨를 토닥여주던 할머니 덕에 상우는 아이처럼 엉엉 울며 마음속 응어리를 추스른다. 그리고 작고하신 할머니의 고무신을 돌려놓는 장면에서 상우는 진정으로 할머니를 보내드린다. 할머니를 통해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을 배운 상우는 그녀와 같은 길을 걷지 않는다.


따라서 그토록 기다렸던 은수가 돌아왔을 때 상우가 그대로 놓아 준 까닭은 이미 그들의 봄날은 지나갔고 다시 올 수 없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탁월한 셔레이드로 평가받는 엔딩 시퀀스에서, 휘날리는 벚꽃 아래 그녀가 건넨 화분은 이 잔인한 사실을 확인하는 기능을 한다. 그녀가 알지 못하는 것은 비단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화분이 무쓸모하다는 사실 하나만이 아닌 것이다. 봄이 또 온다 해도 그때 그날이 올 수는 없다는 사실을 이제는 알기에 상우는 화분을 받지 않았다. 그녀의 마음을 받지 않았다.


흘러가는 어떤 것을 소리로 잡으려는 사람. <봄날은 간다>의 허진호 감독은 주인공 상우를 이렇게 정의한다. 상우는 소리처럼 사랑 역시 잡아내려 노력했기에 긴 겨울을 겪었다. 좋았던 한때, 드넓은 벌판에서 희미하게 들려오는 그녀의 콧노래를 붙잡았으나 녹음되어 다시 듣는 그것은 숨 쉬는 음성이 아니듯이, 순간과 감정은 잡아두는 게 불가능하다.


너무나 아름답기에 흘러갈 것이라는 사실이 가슴 아픈 게 사랑이다. 동시에 흘러갈 것이라는 슬픔 덕에 더 소중하고 아름답게 느껴지는 게 사랑이기도 하다. 영화는 소중한 것들을 계절처럼 흘려보내는 것이 자연의 섭리이자 우리가 할 일이라고 말한다. 마치 그를 증명하고 싶은 것처럼, 시리게 아팠던 계절들을 뒤로 한 어느 봄날 상우에게는 마침내 그녀의 콧노래를 들으면서도 웃을 수 있는 순간이 왔다. 기다렸다는 듯 영화는 거기서 막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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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딩 크레딧 사운드트랙인 김윤아의 <봄날은 간다>는 영화와 동명인 점에서 알 수 있듯 영화 전체의 정서를 함축시킨 결과물이다.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정념을 3분으로 응축시킨 듯 가사는 아련하고 구슬프지만 곡의 분위기는 어둡거나 쓸쓸하지 않다.


이 영화는 '봄날은 어차피 갈 것' 에 중점을 두지 않았다. 어차피 갈 것이니, 꺼져가는 사랑을 보며 동동 발을 구르기보다는 그 자체를 끌어안고 받아들이라 말한다. 존중 어린 시선을 바탕으로 섬세하게 감정을 전달했고, 계절의 흐름과 아름다운 음악을 빌려 서정적으로 표현해냈기에 이 영화는 사랑하고 있는 연인들에겐 소중함을, 이별 중인 이에게는 위로를, 그리고 이별을 이겨낸 이에게는 아련함을 선사한다. 아직 마음이 연한 이에게도, 마음에 온통 굳은 살뿐인 이에게도 따뜻한 온기가 되어 준다. <봄날은 간다>의 생명력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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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이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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