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분위기, 감정을 만들어내는 공간 [미술]

앱솔랩스의 미학: 무대연출가 에즈 디블린
글 입력 2021.02.06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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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을 통해 예술에서 공간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다. 분위기, 내용에 따라 달라지는 구도와 인물들의 배치, 수직적 구성, 수평적 구성 등 공간의 형태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림, 조각을 보았을 때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부분이었다. 정적인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는 박람회나 전시회에서는 작품 자체만 보았다. 구성 요소 하나하나를 분절해서 보았고, 각각에 어떤 의미가 숨겨져 있는지가 주요 질문이었다. 뮤지컬 본 후, 변화의 역동성과 연결성을 체험하면서 공간이 주는 감정, 의미 또한 질문의 한 목록이 되었다.

 

앱솔랩스의 미학, 무대 연출가 에즈 디블린 편은 무대의 형성과정을 보여준다. 하얀 종이와 갖가지 필기구로부터 시작되는 아이디어는 몇 차례의 회의와 조율을 통해 점점 구체화된다. 한 무대를 만들기 위해 25번까지 클라이언트와 만나기도 했다는 그녀의 말을 들으면서, 작품은 수많은 도전과 실패, 그리고 그보다 훨씬 적은 횟수의 성공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알았다.

 

그녀의 아이디어와 도전이 가장 돋보이는 작품은 ‘연극 신앙치료사’ 다. 독백으로 가득한 연극 사이의 공백을 음침한 분위기로 채우기 위해 무대 주변을 따라 비를 뿌렸다. 분위기 뿐만 아니라 장면 전환, 장막 형성 등의 기능적 역할도 수행했다. 전기장치로 가득한 연극무대에 물이라는 요소를 투입하는 것 자체가 놀라운 발상이었다. 하지만 나를 더욱 놀라게 했던 것은 살수기의 작동원리도 몰랐다는 그녀의 말 한 마디였다. 아이디어의 발상 자체도 중요하지만 이를 실현할 수 있는 추진력과 조력자도 중요하다는 것이 느껴졌다.

 

무대는 공간, 빛, 어둠, 비율, 시간에 의해 만들어진다. 이 재료들을 어떻게 조합하고, 이용하느냐 에 따라 다양한 형태, 효과를 주는 세팅이 만들어진다. 가장 인상적인 재료는 거울이었다. 빛을 조정하고, 공간을 생성하는 거울의 특성을 살려, 그녀는 공간을 창조해 냄과 가상, 가능성, 기만 등의 의미를 작품 속에 녹여 냈다. 그녀가 처음 거울을 무대의 재료로 쓴 것은 맥베스였다. 거울을 써서 무대 세트를 반쪽으로 가르고, 맥베스가 속고 있다는 걸 은유적으로 표현했다. 그 후, 디지털 세계를 다룬 ‘더 데너’ 라는 연극에서 관객이 자신이 보는 걸 불신하게 만들기 위해 거울을 사용했다. 향기를 주제로 한 샤넬 프로젝트에서는 거울 미로를 통해 분당 5만개의 결정을 내리는 전두엽을 표현했다.

 

돌발적인 사건도, 인물도 얽혀 있지 않은 이 다큐 영상이 보는 내내 흥미진진했던 이유는, 겉으로 보이는 그녀의 무대 자체보다도, 아이디어였다. 어떻게 이런 아이디어를, 이 주제와 연관시켜서 이런 방식으로 표현해냈지? 발상과 실현 그 과정 전체가 아이디어의 집합체 였다. 그녀의 작품은 단순한 아이디어와 도형, 모형으로부터 시작해서 점차 크고 웅장한 무대로 발전한다. 그리고, 아이디어는 유년 시절의 경험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많았다.

 

‘여기가 우리집이었어요. 지붕이 두 개로 갈라졌는데 저는 두 지붕 사이에 올라가 앉아서 시내를 내려다 보곤 했죠. 그때부터 이야기를 모형과 연결 지었던 것 같아요. 어린 시절의 영향을 안 받는 사람은 아무도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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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율, 완벽함, 실제적인 묘사, 신화의 재현 달성 여부가 주 목적이었던 그리스 미술은 체제와 권력의 반영물 같아 그 아름다움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감정을 주지 않는다. 단순히 심미적으로 아름답다고 해서는 예술적 가치를 지니지 못한다. 예술가의 가장 중요한 자질은 대중에게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를 자신의 작품을 통해 전달하는 것이다. 그녀의 무대는 무대를 기획할 때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 가치를 먼저 생각한다. 비욘세, 칸예, 아델 같은 가수들의 무대를 구성할 때는 가사를 먼저 생각한다. 특정 가사에는 어떤 장면이 들어가야 할 지, 이를 통해 특정 대상을 지지할 것인지, 비판할 것인지 고민한다. 공간, 빛, 어둠, 비율, 시간을 섞어 가치를 표현하는 그녀의 무대는 초현실주의의 신선함이 담겨 있다.

 

다른 관점에서 생각하는 것. 어린 아이였을 때, 우리는 모두 호기심 많은 창조자였다. 모든 것에 의문을 가지고, 물어보고, 자신의 말로 표현해 냈다. 하지만 점점 성장해 나가고, 기존의 사회에 편입해 감에 따라 우리는 관습과 질서를 자신의 생각과 동일시하는 어른이 되었다. 애즈가 극장에 대해 가진 생각을 살펴보면서, 예술가는 말랑말랑한 뇌를 가진 창조자로 남아 있는 어른임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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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즈는 극장은 민주적이라고 했어요. 무대에 20명이 올라갔을 때, 그중 누구를 볼지는 관객 마음이에요. 그런 점에서 극장은 민주적이죠. 객석 꼭대기에 앉든 맨 밑에 앉든 모두가 어떤 경험이든 얻어가니까요.‘

 

무대, 극장은 권력을 보여주고, 권위를 상징하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극장은 선택 받은 소수의 권력가, 배우들이 출연해 의도된 의미, 정해진 줄거리를 전달하는 곳이다. 대중은 연출가의 의도, 작가의 생각을 자연스럽게 따라가게 된다. 그래서 정부, 국가는 반국가적인 예술을 탄압하고, 지금도 북한, 중국 등 일부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국가를 찬양하는 공연을 상영한다. 이런 이유들로, 극장이 관객에게 권력이 주어져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애즈의 말 또한 진실을 내포하고 있다. 연출된 공간, 줄거리라고 해도 관객의 시선이 머무는 곳은 다르다. 주연 인물이 극의 많은 장면에 출연하지만, 항상 그 인물에 시선이 가지는 않는다. 자신과 삶의 흔적이 비슷한 인물, 생각이 같은 인물을 관찰하기도 하고, 명품 연기로 극장을 압도하는 배우에게 눈길이 가기도 한다. 관찰, 공감, 비판 등 관객은 연극 속에서 다양한 생각을 거친다.

 

그녀의 이야기는 공간이 주는 특별한 효과에 대해 많은 질문과 해답을 내놓았다. 예술은 분명 진입장벽이 높다. 하지만 생각하고 접할수록 즐길 거리가 많아지는 깊이 있는 취미이다. 

 

 

[박은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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