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달과 6펜스, 그 중간에 서서 [도서/문학]

글 입력 2021.02.05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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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다닐 때면 늘 책을 한 권 챙긴다. 책의 내용을 알고 고르는 것은 아니다. 책 표지가 끌리거나 전부터 읽고 싶었지만 아직 읽지 못했다는 단순한 이유로 고른다. 그럼에도 신기하게 늘 여행을 다닐 때의 내 감정과 상황에 묘하게 일치되는 책을 골랐다. <달과 6펜스> 역시 그 중 하나였다. 프랑스 여행을 갈 때 챙겼던 책이었다.


<달과 6펜스>는 찰스 스트릭랜드라는 천재 화가의 삶을 나레이터의 글을 통해 적어 내려간 전기 형태의 소설이다. 여기서 제목 달과 6펜스는 각각 너무 멀어 닿을 수 없을 것 같은 달을 이상으로, 영국의 가장 낮은 단위의 화폐인 6펜스를 물질적인 삶, 현실로 비유한다.


스트릭랜드는 증권 거래업자로 아내와 두 아이를 두고 평범한 삶을 살아가던 가장이었다. 그러던 중 그는 가족들을 버리고 돌연 파리로 떠난다. 나레이터인 ‘나‘는 가정으로 돌아오라는 스트릭랜드의 부인의 말을 전하기 위해 그를 만나러 파리로 간다. 방탕한 생활을 하고 있을 줄 알았던 ‘나’의 예상과 다르게 스트릭랜드는 허름한 여관방에 틀어박혀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그리고 가족들을 버리고 떠나온 이유 역시 그림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림만 그릴 수 있다면 굶거나 힘든 노동을 한다고 해도 그는 상관없었다. 물감과 캔버스를 사면 몇 달을 빵과 우유로 해결한 적도 있었다. 심한 병을 앓아도, 죽음이 눈앞에 다가왔을 때도 그는 태연했다. 병에 걸린 스트릭랜드를 지극히 보살펴준 스트로브에게 고마움을 느끼지 못했고, 자신의 행동으로 스트로브와 그의 아내 블란치의 삶이 나락에 떨어졌을 때도 일말의 죄책감도 느끼지 못했다.

 

한센병에 걸려 죽어가고 있을 때도 죽음에 대한 공포보다 그림을 더 그릴 수 없다는 사실이 그를 괴롭게 했다. 그는 오로지 그림만을 위해 살아갔다.


아내의 말을 전하러 온 ‘나‘에게 스트릭랜드는 이렇게 대꾸한다.

 


“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지 않소. 그리지 않고서는 못 배기겠단 말이요. 물에 빠진 사람에게 헤엄을 잘 치고 못 치고가 문제겠소? 우선 헤어나오는 게 중요하지. 그렇지 않으면 빠져 죽어요.”

 

 

물에 빠져 죽지 않기 위해 어떻게든 헤어나와야겠다는 그의 비유는 그림에 모든 것을 걸고 파리에 온 의지를 보여준다. 윤리적인 기준에서는 쉽게 용납할 수 없는 그의 태도에도 찰스 스트릭랜드라는 인물에 매력을 느낀 것은 그림을 향한 그 신념 때문이었다.


그때의 난 파리 여행에서 ‘달’을 발견했다. 하지만 자기 확신의 부재와 현실과의 타협 속에서 고민하다 6펜스의 세계에 남았다. 찰스 스트릭랜드라는 인물은 그런 나에게 이해할 수 없는 인물이면서 동시에 일종의 우상으로 다가왔다.

 

물질 세계가 주는 안락함과 편안함을 기꺼이 버리고, 사회의 통념보다 오로지 자신의 신념으로 살아가는 신기한 사람. 제 3자인 ‘나’의 관찰로 서술하는 방식을 취해서 그가 더 신비스럽게 묘사되었을지도 모르겠다. 파리를 떠나 현실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의 나와 파리에서의 삶 이후로 달의 세계에 머물렀던 스트릭랜드. 그의 삶은 내가 선택하지 않은 다른 선택지 같았다.


하지만 스트릭랜드처럼 현실을 내던지고 이상을 맹목적으로 좇을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것은 아무나 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윤리와 도덕의식에도 불구하고 동경하며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하다. 작품 활동을 위해서도, 단지 생활만을 위해서도 돈이 필요하다. 그래서 보통의 우린 달과 6펜스 사이에서 살아간다.

 

현실을 살아가며 달의 존재를 잊어버리긴 쉽다. 일상을 살아가다 달을 바라보는 것조차도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눈앞에 닥친 현실 앞에서 이상, 신념은 무가치한 것으로 치부되기 쉽상이다.

 

서머싯 몸은 그가 닿을 수 없었던 이상을 스트릭랜드를 통해 구현해낸 것일지도 모르겠다. 현실에 발을 딛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게 <달과 6펜스>라는 이상을 보여주려 한 것일 수도 있다. 6펜스의 세계가 주는 안락함과 달콤함에 달을 자주 잊어버리는 우리에게, 달과 6펜스 사이에서 늘 고민하는 우리에게 달의 존재를 잊어버리지 말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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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소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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