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명화와 상상이 만나 소설과 영화를 만들다
글 입력 2021.02.02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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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는 소설 <진주 귀고리 소녀>를 원작으로 삼아 영화화한 작품이다. 이 영화의 주제는 사랑이다. 주로 다루는 사랑은 베르메르와 그리트의 사랑이지만, 그리트에 대한 피터의 사랑과 베르메르에 대한 카타리나의 사랑도 짧게나마 나온다. 베르메르는 그리트가 미술에 대해 깊이 있는 이해를 할 수 있게 미술을 설명해 주는 방식으로 그리트에 대한 사랑을 드러내고, 그리트는 베르메르의 그림을 동경하면서 그가 작업을 원활하게 할 수 있게 도와주는 형태로 그에 대한 사랑을 드러낸다. 한눈에 보이는 명시적이고 육체적인 사랑은 아니지만 베르메르와 그리트는 미술과 그림을 매개로 한 정신적인 사랑을 나눈다고 볼 수 있다. 영화는 책과 달리 시간의 제약이 있어서 책에 나온 모든 사건을 다루지 않고 일부 사건만 선택적으로 다룬다. 인물들도 다 다루기 힘들기 때문에 감독의 의도에 맞추어 일부는 인물 자체를 생략하고 몇몇은 대사와 행동을 간추린 채 이야기를 전개한다. 이 영화는 이러한 영화의 매체적 특징은 살리되 원작소설의 어조나 분위기, 정신은 그대로 구현하고 있다. 그러한 점에서 텍스트를 선택적으로 해석하는 다원적 각색을 한 것으로 보인다.

 

먼저 사랑이라는 주제를 드러내는 방법에 있어서 영화는 책과 다른 점이 몇 가지 있다. 책에는 네 사람의 사랑이 골고루 나타난다. 앞서 말했듯이 베르메르는 예술에 대해 그리트에게 가르쳐줌으로써 그리트에 대한 사랑을 드러내고 거기에 더해 늘 자신이 직접 하던 일(물감재료를 사오고, 물감을 만드는 일)을 그리트에게 맡긴다. 그렇게 사랑의 한 형태로 가타리나에게는 보여주지 않던 깊은 신뢰를 그리트에게 보여준다. 책에서 그리트는 베르메르에 대한 사랑과 피터에 대한 사랑을 모두 드러낸다. 그녀의 행동에 대한 묘사가 간접적으로 베르메르에 대한 사랑을 그려냈다면 가령 "나는 그를 그의 아내나 아이들과 함께 생각하는 것이 싫었다. 화실에 홀로 있는 그를 생각하는 것이 더 좋았다. 혼자가 아니라면 나와 함께 있는 모습을"과 같은 부분에서는 직접적으로 그 사랑을 보여준다. 또한 "내가 피터의 다정하고 잘생긴 얼굴을 보고 싶어 한다는 것을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피터는 나의 피난처였다"를 통해서는 피터에 대한 사랑을 직접적으로 알 수 있다. 반면 영화에서는 피터에 대한 그리트의 사랑을 대체로 생략하고 있다. 또 그리트에 대한 피터의 사랑을 드러내는 부분이나 그리트와 피터가 만나는 장면들도 책에 비해 짧게 그리고 있다. 그러다 보니 피터와 베르메르가 대립하는 장면도 나오지 않고 질투심에 사로잡힌 베르메르의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감독은 짧은 시간 안에 주제를 함축적으로 담기 위해서 오직 베르메르와 그리트의 서로에 대한 사랑에만 집중해서 장면을 구성했다.

 

사실 두 사람의 사랑에 대한 감정이 피터의 많은 개입 없이도 계속해서 고조될 수 있었던 이유는 책과는 달리 영화상에서 베르메르를 그리트를 위해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으로 그려냈기 때문이다. 베르메르가 그리트에게 화실 청소 이외의 것들을 시키면서 카타리나와 코넬리아를 비롯한 집안사람들이 그들의 관계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베르메르는 그리트에게 이것저것 하라고 지시할 뿐 그 일들에 의해 파생되는 의심이나 오해에 대해 해명을 하거나 책임을 지는 행동은 전혀 하지 않는다. 소설 속 어느 날 코넬리아가 그리트의 빗을 훔쳐 가고 그리트가 베르메르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베르메르는 코넬리아가 훔쳐 간 빗에 대해 카타리나와 마리아에게 얘기를 하고 빗을 찾을 수 있게 도와준다. 이때 빗을 찾아온 사람은 매지(베르메르의 딸)였다. 여기서 직접적으로 나서지 않고 적당히 거리를 둔 채 그리트를 도와주는 베르메르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영화에서 그리트가 코넬리아에 의해 카타리나의 빗을 훔쳐 갔다는 오해를 받자 베르메르는 직접 나서서 온 집을 뒤지고 결국 코넬리아 방에서 카타리나의 빗을 찾아낸다. 이렇듯 베르메르를 한층 더 사랑에 대해 적극적인 사람으로 그려냄으로써 영화에서는 베르메르가 피터를 향한 질투를 사랑의 원동력으로 삼는 장면은 넣지 않았다.

 

소설이 영화화되면서 주제를 드러내는 방식 이외에도 다양한 형태의 각색이 이루어졌다. 우선 여러 인물이 사라졌다. 반 레이원후크, 그리트의 동생들 그리고 매지가 사라졌다. 반 레이원후크는 베르메르에게 카메라 옵스큐라를 빌려주는 사람인데 소설상에서 베르메르의 조력자 역할을 한다. 카타리나와는 사이가 좋지 않고 베르메르가 죽고 나서 베르메르의 유언이 잘 지켜지는지 지켜보는 일을 한다. 때때로 그는 베르메르에게 휘둘리지 않게 주의하라고 그리트에게 충고를 한다. 그리트의 동생인 아그네스와 프란스도 영화상에 등장하지 않는다. 소설상에서 아그네스는 전염병을 앓다가 죽게 되는데 아그네스는 피터와 그리트가 가까워지는 계기를 제공한다. 병에 걸린 아그네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피터와 그리트가 자주 대화를 나누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소설상에서 그리트의 조력자 역할을 했던 카타리나와 베르메르의 딸, 매지도 나오지 않는다. 매지는 크면서 동생들보다는 그리트와 함께 있으면서 시간을 보낸다. 그러면서 그리트를 위로하기도 하고 집안에서 발생할 문제들을 미리 귀띔 해주기도 한다. 하루는 그리트가 다락방에 머무는 문제를 가지고 베르메르 부부가 나눈 대화를 전달해 준다. 그 문제에 대해 고민하다 시장에 간 그리트는 피터의 부재를 목격하고 그 부재를 통해 자신에게 '피터'가 어떤 의미인지 깨닫고 피터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자각하게 된다. 그러나 감독은 의도적으로 작품 속에서 이 세 인물을 없앴다. 베르메르와 그리트의 사랑을 그려내기 위해서 베르메르와 그리트 관계에 찬물을 끼얹는 반 레이원후크와 피터와 그리트의 관계를 진전시키는 아그네스와 매지를 생략하여 각색했다.

 

인물 다음으로 사건을 생략하거나 변형했다. 소설에서 빈 라위번 부인을 그린 그림을 찾으러 빈 라위번 부부가 방문했을 때 그리트는 빈 라위번과 처음 대면한다. 그 이후로 몇 번 더 마주치면서 빈 라위번은 그리트에 관심을 표한다. 한편 영화에서는 마리아 틴스가 빈 라위번에게 새로 태어난 아이의 탄생 잔치 초대 편지를 전달하라고 그리트에게 시키면서 빈 라위번과 그리트는 처음 만난다. 처음 갔을 때부터 빈 라위번은 그리트에게 관심을 보인다. 또 사석이 아닌 공개적인 탄생 잔치에서 빈 라위번 부인의 그림을 공개한다. 감독은 시간의 제약을 고려해 사건을 압축적으로 변형해서 그려냄으로써 스토리를 속도감 있게 전개한다. 탄생잔치에 필요한 고기를 전달하는 장면에도 변화를 주었다. 소설에서는 피터가 미소를 띤 채 그리트에게 고기를 전달하는 장면을 가족들 모두가 주시하고 있고, 베르메르도 차가운 눈으로 보고 있다. 그러면서 당시 상황을 "두 남자의 시선에 갇힌 꼴이었다"라고 표현한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피터가 그리트에게 개인적으로 고기를 전달한다. 이처럼 베르메르와 피터가 서로를 경계하는 듯한 장면과 피터와 그리트의 관계를 질투하는 베르메르의 모습을 생략하고 계속해서 베르메르와 그리트의 관계에 초점을 맞춰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사건 각색 중 주축이 되는 각색은 귀를 뚫고 진주 귀걸이를 끼는 장면이다. 소설에서 베르메르는 그리트에게 진주 귀걸이를 낄 준비를 하라고 일러준다. 그리트는 귀가 뚫려 있지 않다고 말하지만 베르메르는 "글쎄.. 그건 네가 알아서 조치를 해라"라고 말한다. 귀를 뚫는 건 남자가 신경 쓸 문제가 아니라고 표현하면서 그리트가 요청했을 때 귀걸이를 끼워주기만 한다. 이때 짧게나마 직접적인 스킨십이 이루어진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베르메르가 직접 귀를 뚫어주고 피도 닦아주고, 진주 귀걸이를 끼워준다. 소설에서는 귀를 뚫는 고통을 그리트가 온전히 혼자 감내해야 했지만 영화에서는 베르메르가 직접 귀를 뚫어주면서 그리트의 고통을 함께 감내한다. 베르메르와 그리트의 직접적인 스킨십은 영화에서도 이 장면이 유일하지만, 유일한 스킨십 장면을 고통을 매개로 해서 보여줌으로써 소설보다 훨씬 더 감각적이고 관능적으로 묘사한다. 이 강렬한 묘사를 통해 또 한 번 영화의 초점이 어디에 맞추어져 있는지 알 수 있다.

 

마지막에 진주 귀걸이를 전달받는 장면에서도 변형이 드러난다. 소설에서는 그리트가 그 집에서 도망쳐 나온 지 10년이 지난 뒤 타네커가 카타리나가 찾는다며 집으로 부른다. 그 집에 가자 카타리나가 두 달 전에 죽은 베르메르의 유언을 집행하기 위해 그리트에게 자신의 귀걸이를 준다. 이때 유언을 집행하는 과정을 반 레이원후크가 지켜본다. 그리트는 그 귀걸이를 곧바로 팔고 베르메르네 집이 피터에게 빚진 만큼의 돈만 챙기고 나머지는 어딘가에 숨겨둔다. 그제서야 그리트는 진짜 그 집으로부터 자유를 얻었다고 느낀다. 필자는 이 장면을 통해 마침내 그리트와 베르메르의 관계가 진짜 끝이 났다고 생각했다. 그 집에서 도망쳐 나왔을 때까지도 그리트는 눈앞에 닥친 현실을 해결하기 위한 선택을 하고 그저 살아왔을 뿐, 이후에도 그 집 소식을 궁금해하고 매지로부터 소식을 전해 듣기 때문이다. 영화에서는 피터와 그리트의 결혼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는다. 진주 귀걸이 역시 타네커가 그리트를 찾아와 전해주는 것으로 영화는 끝이 난다. 베르메르가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알 수 없고, 받은 진주 귀걸이를 그리트가 어떻게 한 것인지도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이 장면도 감독이 베르메르와 그리트 이외의 관계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음을 알려준다. 또, 마지막까지도 그리트와 베르메르의 관계가 완전히 끝나지 않은 듯한 여지를 남겨둔다.

 

영화는 짧은 시간 안에 유기적으로 스토리를 담아내야 한다. 그래서 소설을 영화화할 때 감독들은 어떤 주제에 초점을 맞춰 어떠한 방식으로 각색할지 정해야 한다. 피터 웨버 감독은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제작할 때 베르메르와 그리트의 짙은 감정적 사랑과 그들의 관계에 초점을 두고 다원적 각색을 통해 스토리를 구성했다. 그는 이 관계를 부각하기 위해 소설 속 불필요한 사건이나 인물을 생략하고 일부 사건은 변형하거나 재구성하였다. 그러면서도 빛의 섬세한 변화와 명암을 활용하여 소설을 구현할 수 없는, 영화의 영상미를 표현해냈다. 빛은 소설과 영화의 주인공인 베르메르가 그림을 그릴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요소이기도 한데 이러한 연관성을 통해 감독은 영화 전체를 세세한 빛을 드러내는 하나의 그림처럼 담아냈다. 결과적으로 빛을 바탕으로 한 영화의 영상미가 원작 소설의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드러냈다.

 

 

[이연송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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