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틀에 박혀 정형화된 삶을 사는 것이 아닌, 자유분방하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방랑자 같은 삶을 우러러봤다. 아무리 매달 안정적인 수입이 나온다고 하더라도 딱딱한 이미지의 회사원은 죽어도 되고 싶지 않았다. 삶에 특별한 레퍼런스도, 에피소드도 생기지 않을 것 같은 반복되는 일상은 저 멀리 치우고 싶었다. 내가 추구하여 그려나가는 미래의 ‘나’에 대한 그림에 어울리지 않는 스케치를 그려나가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타고난 예술가 기질이 있지 않다고 스스로 판단했기에 나에겐 공부가 필요했다. 기질 자체가 일탈을 매우 두려워하고 예상 밖으로 움직여지는 일들이 몸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술이란 남들이 해보지 않은 경험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에, 나에겐 따로 학습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러던 중 적재적소 한 타이밍에 나에게 길잡이가 되어줄 영화 한 편을 발견했다. 지금은 삶을 거둔 배우로 사람들에게 아쉬움을 남기고 간 히스 레저의 생전을 담은 ‘아이 엠 히스 레저’다.
히스 레저는 짧은 생 동안 배우로서, 감독으로서, 한 명의 인간으로서 주변 사람들에게 깊은 영감을 준 재능이 많은 사람이다. 이 재능을 살아있는 동안 어떻게 다듬어서 만들고 가공했기에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타고난 예술가라는 말을 들을 수 있었던 것일까 궁금했고 부러웠다.
내가 찾은 해답으로는 히스 레저는 남들과 똑같이 하는 노력에서 한 번을 더 건드릴 수 있는 사람이었다. 배우라고 단순히 연기 연습을 하는 것에 끝나지 않고 카메라를 직접 들며 다양한 각도에서 자신을 연구했다. 또 주변으로부터 영감을 얻고, 무엇인가를 느끼기 위해 혼자 있는 시간을 많이 만들지 않고 살고 있는 집을 하나의 아지트처럼 지인들이 문을 열고 닫고 마음대로 할 수 있게 놔두었다. 나는 이 점을 학교 앞에 구해 놓은 자취방에서 따라 해보고 싶었다.
혼자 살기 작지도, 크지도 않은 자취방을 구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팬데믹으로, 방을 사용하지도 못하고 써늘한 온도로 방치해 둬야 했다. 몇 달이 흘러, 학교 공고를 기다려보니 대면으로 진행을 하는 수업이 있어서 학교 옆에 구해둔 자취방을 드디어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누군가와 함께 있는 하루도 좋아하지만 내 몸을 혼자 둘 수 있는 하루를 더 좋아했던 나였다. 그러다 보니 나무 랄데 없이 잔잔하게 일상은 흘러가지만 몇 년이 지나 특별하고, 신선한 감정을 바탕으로 ‘무엇을’ 말할 에피소드는 많이 없을 수 있겠다는 두려움이 몰려왔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이에 친한 동기 두 명이 카카오톡 단톡 방에서 나에게 물어왔다. “우정아 나 대면 수업하면 너희 집에서 생활해도 돼?” 나에겐 반가웠고, 즐거운 제안이었다. ‘나도 친구들이랑 더 많이 부대껴서 지내봐야지.‘라고 생각하며 내 대답은 “응, 물론이지, 당장 와”였다. 친구들이 오기 전 내 자취방은 삭막 그 자체였다. 본집과 자취방을 왔다 갔다 했던 터라 짐이 거의 아예 없었다.
씻을 수건과 하루 동안 입을 옷, 파자마 그리고 몇 권의 책이 전부였다. 사람 냄새가 나지 않는 방이었다. 친구들은 먼저 내 자취방에 들어와 온기를 적셔놓고 있었다. 그 후에 들어가 보니 짐이 장난 아니게 많이 쌓여있었다. 전과 후의 공간 차이가 극심하게 나타났다. 욕실에, 책상에, 부엌에 그동안 보지 못했던 작고 큰 짐들이 제각각 배열되어 영역 표시가 되어 있었다. 그런데 난 작은방의 온기를 더해주고 감싸주던 물건들과, 동기들이 정말 고마웠고 감사했다. 그리고 나 자신이 많이 의외였다. 보지 못했던 모습을 발견한 날이었다. 누군가 내 공간을 함께 사용해도 그 순간을 즐기면서, 평소와는 달리 다른 재미를 발견할 수 있었구나. 정확히 이 생각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예술가의 기질은 일에 대해서는 한없이 예민하고 신경질적이지만, 그 외의 나에게 놓인 흐름들에 대해서는 무던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 공간에 다른 사람들의 흔적이 닿아 있어도 아무렇지 않다는 점에 히스 레저랑 얼핏 비슷한 점이 하나 있다는 느낌에 괜스레 나 자신이 마음에 들었다. 이게 ‘예술’과 어떤 부분에서 접점이 있는 거지?라고 의아할 수 있지만, 원래 가지고 있던 고유의 생각의 틀을 와장창 깨트리고 새로운 환경을 만들려고 노력하는 예술가의 직업 정신을 본받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모든 일정이 끝나고 동기들과 다시 집에서 모였다. 에어컨도 나오지 않는 좁은 곳에 옹기종기 모여 부침개를 뒤집고, 맥주를 마시며 미래에 대한 말들을 주고받았던 저녁 8시의 밤은 즐겁게 흘러갔다. 똑같이 들리는 수다에 제각각 다른 6명의 리액션, 6명의 친구들의 말과 행동 덕에 나는 오늘 이 글 한 편을 쓸 수 있었다.
그 친구들은 나를 언젠가 꼭 예술인으로 태어나기 위해 만들어 줄 장본인들이다. 내가 생각하는 예술인은 바로 이 지점이다. 본질의 것들을 무한히 끄집어내는 능력도 중요하지만, 그 외의 것에도 눈을 돌린 후 ‘현재’를 변화시켜 만들어 내는 과정들을 중요시하는 사람. 앞으로도 내가 가지고 있는 주변 환경들을 통해 ‘나’라는 사람이 추구하는 방향이 뭔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에 대해 고민하고 실행에 옮기는 노력파 예술가가 되고 싶다.
스스로 해보지 않았던 용기 있는 일을 하나씩 개척해가며, 내 안에 수많은 에고들이 즐비하는 날이 어서 빨리 오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