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둘 빼기 하나는 영이 아닌 하나 - 토이스토리4 [영화]

글 입력 2021.01.28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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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이스토리 4

Toy Story 4, 2019

 

감독 : 조시 쿨리

배우 : 톰 행크스, 팀 알렌, 애니 파츠, 토니 헤일

 

장난감의 운명을 거부하고 떠난 새 친구 ‘포키’를 찾기 위해 길 위로 나선 ‘우디’는 우연히 오랜 친구 ‘보핍’을 만난다. 한편 포키는 우디의 목소리 상자를 노리는 ‘개비개비’에 의해 납치당하고, 이에 우디는 보핍의 도움을 받아 포키를 구하기 위한 모험에 나선다. 한편 남겨진 버즈와 친구들도 사라진 우디와 포키를 찾아 위험천만한 세상 밖으로 나서는데.

 

***

 

이제 막 연애를 시작한 연인을 떠올려보자. 같이 있는 매 순간이 즐겁고, 잡은 손은 끊어질 줄을 모른다. 하루라도 말하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 것마냥 사랑을 강박적으로 고백한다.

 

하지만 그 달콤한 설렘도 잠시, 시간이 흐르고 나면 둘 사이엔 어느새 권태가 찾아온다. 비슷했던 서로에 대한 열망은 이제 한쪽의 몫으로 돌아선다. 다른 한쪽에겐 일상의 다른 부분들이 더 중요하다.

 

한편 남은 한 쪽은 아직 연애 초기의 달콤함을 잊지 못하고 변함없는 사랑을 베푼다. 언젠가는 그/녀가 다시 내게 돌아 와줄 거라는 가망 없는 믿음을 손에 쥔 채로. 하지민 그건 말 그대로 가망 없는 믿음일 뿐. 그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지쳐가고 있다. 그리고 마침내.

 

“너는 날 사랑하긴 하니?”

 

서러움에 가득 찬 목소리로 이젠 모든 게 귀찮은 자신의 연인에게 눈물을 보이고 만다. 그렇게 한 때 찬란했던 사랑은 영원한 저녁의 뒤안길로 저물어 버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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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토이스토리4>에서 장난감 친구들은 오늘도 보니와 놀 시간을 기다린다. 힌편 설레는 마음으로 가득한 친구들과 달리 우디는 어딘가 조급해 보인다. 그런 그를 버즈가 다가와 가만히 위로한다. 우디는 괜찮다는 듯 웃어 보이지만 그 미소엔 불편함이 가득하다. 대관절 그에게 무슨 일이 있던 걸까.

 

버즈가 처음 왔던 때를 제외하면 앤디에게 최우선은 늘 우디였다. 하지만 보니의 장난감이 된 지금은 아니다. 왜냐하면 보니에게 우디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하고많은 장난감들 중 하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덕분에 벌써 며칠째 우디는 어두운 옷장 속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저 보니와 노는 친구들의 모습을 부러운 얼굴로 바라볼 뿐이다. 그 사이 그의 몸에는 어느새 먼지가 내려앉기 시작했다.

 

한편 유치원에 간 첫날에 보니는 새로운 친구를 만들어왔다. 이름은 포키, 먹다 버린 포크로 만든 인형이다. 포키는 장난감이 된 자신의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꾸만 쓰레기통으로 돌아가려 한다. 그런 포키를 우디는 기어코 데려와 보니의 곁에 놓는다.

 

주인에게 정체를 들켜서는 안 되는 장난감 세계의 지엄한 법에 따라 보니는 아마 그 사실을 영원히 알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우디는 신경 쓰지 않는다. 아이들을 향한 그의 사랑은 늘 그런 식이었다. 보니가 자신을 없는 장난감 취급을 할 때도 우디는 아이들은 원래 다 그렇다며, 언젠가는 다시 자신을 찾아줄 거라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때를 기다리며 보니에게 변함없는 사랑을 쏟았다.

 

그랬기에 우디는 가출한 포키를 찾아 길 위로 떠나는 걸 서슴없이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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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그런 우디 앞에 그의 사랑의 미래를 대변하듯 두 장난감이 나타난다. 바로 ‘개비개비’와 ‘보핍’이다. 두 장난감에겐 현재 주인이 없다. 개비개비는 목소리 상자가 고장 난 바람에 오랫동안 불량품 취급을 받았다. 덕분에 그녀는 주인에게 사랑을 받아본 적도 없다. 결국 그녀는 지독한 외로움을 참다못해 괴물이 되었다. 그녀는 우디의 목소리 상자를 가지면 아이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을 거라 믿으며 우디를 노린다.

 

하지만 보핍은 다르다. 주인이 없냐는 우디의 물음에 그녀는 경쾌하게 답한다. “주인이 꼭 필요해?”

 

그러니까 우디의 사랑은 늘 헌신적이었다. 그는 자신의 주인이 된 아이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베푼다. 그 사랑의 보답은 아이의 행복한 모습이면 충분하다. 그는 그게 장난감의 직업윤리라고 믿는다. 그리고 앤디와 함께 있을 때, 그런 우디의 사랑 방식은 적어도 옳은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앤디가 떠난 지금에도 그의 사랑이 여전히 옳다고 말할 수 있을까. 우디의 사랑에는 자기 자신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아닌, 보니가 아끼는 포키를 위해 자신의 24시간을 할애했고, 그런 포키가 가출을 하자 그를 찾아 보니에게 돌려주겠다는 일념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길 위로 나섰다. 친구들이 다쳤음에도 불구하고 보니를 위해 포키를 구하러 가야한다고 말한다. 그런 그의 행동은 사랑이라기 보단 차라리 애정결핍에 가깝다.

 

 

“보니에겐 포키가 필요해!”

“아니, 너에게 보니가 필요한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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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해 우디의 사랑에는 늘 소유가 전제되어 있었다. 그는 아이들에게 사랑받는 것이 장난감의 가장 큰 즐거움이며, 그런 아이들을 위해 자신의 사랑을 쏟아붓는 것이 장난감의 직업윤리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사랑을 하는 그 자신은 어디까지나 대상화되어 있으며, 존재가 텅 비어 있다. 그런 자신을 채워주는 건 오로지 주인의 넘치는 사랑뿐이다.

 

하지만 보핍의 사랑은 다르다. 그녀는 소유되지 않기를 선택하고, 자신의 존재를 오로지 스스로를 통해 채워나가려 한다. 따라서 그녀의 사랑은 어디에도 얽매어 있지 않다. 주인 없는 장난감이라는 처지는 그녀에게 걸림돌이 아니다. 중요한 건 아이들과 노는 것이다. 장난감에겐 주인의 사랑보다 그게 더 소중하다. 이는 어떤 희생을 치르고서라도 주인의 행복을 충족시키려는 우디와 분명히 다르다. 그리고 그런 보핍을 만나 우디는 변한다.

 

 

“아이들은 언제나 장난감을 잃어버려, 우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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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시인 릴케는 자신의 글에서 진정한 사랑을 어린 아이의 놀이에 비유했다.

 

“어린 아이는 언젠가 보고 느끼고 들었던 모든 것, 즉 그가 언젠가 만났던 모든 것을 자신의 소유물이라고 느낀다. 이 아이는 정착한 사물들에게 억지부리지 않는다. 이 사물들은 한 무리의 유목민을 승리자에 의한 것처럼 그들의 성스러운 손으로 바꾸어 버린다. 한순간 그의 사랑 속에서 빛이 되었다가 다시 저 너머로 어두어진다. 하지만 사물들은 모두 이런 사랑을 통과해야만 된다. 언젠가 사랑 속에서 환화게 비췄던 것은 형상 속에 머무르며 더 이상 잃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그 형상이 곧 소유인 것이다.”

 

비눗방울을 불며 노는 어린 아이의 모습을 생각해보자. 자신의 눈앞에 떠다니던 비눗방울이 터진다고 해서 아이는 개의치 않는다. 왜냐하면 아이들에게 중요한 건 방울을 소유하는 게 아니라 그걸 가지고 노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놀이의 경험을 아이들은 소유한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언제든지 찾아올 수 있는 이별 앞에서 우리는 우리의 연인을 결국 소유할 수 없다. 결국 그/녀는 어떤 형태로든 떠난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소유할 수 있는 그/녀와 함께 했다는 기억, 내가 그녀를 사랑했다는 사실 뿐이다.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에서 주인공 재열도 이렇게 말했다. ‘더 사랑해서 약자가 되는 게 아니라,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약자가 되는 거야. 내가 준 걸 받으려고 하는 조바심. 나는 사랑했으므로 행복하다, 괜찮다. 그게 여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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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디도 잃어버린 장난감이야?”

“아니, 자기 자신을 찾은 거지…”

 

 

둘 빼기 하나는 0이 아닌 하나. 연인이 떠나간 자리에서 남겨진 이는 비로소 또 하나의 그림자를 발견한다. 그건 바로 자신의 것이다. 무한한 공간, 저 너머로. 비록 그/녀는 떠났지만 우리의 삶은 여전히 남아 있다. 바로 그게 중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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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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