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농장 하나 가꿔보실래요? [게임]

글 입력 2021.01.13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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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느 때보다 귀농, 귀어의 욕구가 솟구치는 요즘이다. 사람이 빽빽하게 들어차서는 집도, 일자리도 구할 수가 없는 수도에서 벗어나고픈 생각이야 언제든 있었지만, 서로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선 집 밖으로 나가는 것조차 조심해야 하는 날들이 계속되면서 이 생각은 점점 강해졌다. 자발적이지 않은 칩거는 즐겁지도, 편안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나는 책임감 있는 우리 사회의 구성원이므로, 무모하게 나돌아다닐 수는 없었다. 대신, 오랫동안 내 컴퓨터 안에 묵혀 뒀던 게임을 다시 꺼냈다. 귀농을 꿈꾸는 이들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바로 그 게임, ‘스타듀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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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플레이해 보는 것은 아니다. 나는 대략 2년 전부터 이 게임을 해왔다. 누적 플레이 시간은 이미 400시간을 넘겼고, 웬만한 콘텐츠는 전부 다 해봤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답답하고 짜증이 날 때면 언제나 이 게임이 생각난다.

 

스토리는 간단하다. 대기업의 직원으로 의미 없는 하루하루를 보내던 주인공(플레이어)은 할아버지가 물려준 농장을 가꾸기 위해 ‘스타듀밸리’로 가게 되고, 농장의 주인이 되어 넓고 황량한 땅을 일궈야 한다. 게임에는 몇 개의 도전과제가 있고, 그것을 달성하면 일종의 엔딩을 볼 수 있지만, 그것이 끝은 아니다. 도전과제를 모두 끝낸 이후에도 플레이어는 얼마든지 원하는 만큼 게임을 이어갈 수 있다.

 

짧게 말해, 이 게임은 귀농 시뮬레이션이다. 물론 조금씩 비현실적인 부분들이 있기는 하지만, 우리가 귀농에서 원하는 것들-친절하고 정 많은 이웃, 조용한 동네, 그리고 자연과 함께하는 삶 같은 것들-을 완벽히 구현해냈기 때문이다. 그래픽이 뛰어나거나 대단히 현실적인 게임은 아니어도, 계절별로 다른 옷을 입는 나의 농장이 매달 쑥쑥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 절로 웃음이 난다.

 

게다가 납작한 픽셀 그래픽 안에 꽤 정교하게 현실을 반영했다. 플레이어는 계절별로 다른 작물을 키워야 하고, 다른 물고기를 낚아야 한다. 가축들을 기르기 위해서는 매일 건초를 주거나 번식용 잔디를 마당에 심어줘야 하고, 까마귀가 작물을 훔쳐먹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일정한 거리마다 허수아비도 세워줘야 한다.

 

현실과 판타지가 절묘하게 뒤섞인 이 가상의 마을에서 우리는 자유롭게 땅을 일구고, 주민과 대화하고, 원하는 대로 삶을 살아갈 수 있다. 현대인들이 가장 원하는 것이 이 게임 안에 그대로 반영된 것이다.

 

개발자 또한 그 점을 염두에 둔 것 같다. 주인공이 귀농을 결심하고 대기업에서 퇴사하는 모습, 한때는 마을의 중심이었던 마을 회관이 대형 마트가 들어온 이후 아무도 찾지 않는 폐가가 된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다. 게임 내에서 할아버지가 물려준 땅을 일구고, 마을에서 대기업의 자본을 몰아내 전통적 삶의 방식을 되살리는 것은 우리에게 만족감을 준다. 당연히 현실의 사회는 그리 간단하지 않고, 이 게임을 하는 사람이라면 그 사실을 알지만, 그럼에도 이 게임이 주는 위로는 적지 않다.

 

내 손으로 직접 흙을 갈고, 씨를 뿌리고, 매일 물을 주면 노력에 걸맞은 품질 좋은 작물을 수확할 수 있다. ‘스타듀밸리’가 주는 위로와 편안함은 여기에서 기인한다. 땅은 거짓말하지 않는다. 내가 쏟아붓는 마음만큼 되돌려준다. 점점 더 많은 사람이 귀농을 꿈꾸는 것은 그만큼 사회가 우리의 노력을 보상해주지 못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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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스타듀밸리’가 단순히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위로만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스타듀밸리’의 플레이어가 마을 주민들과 관계를 맺고, 그들의 고민을 해결해주고, 가족을 이루는 것은 단순한 보조 퀘스트가 아니다. 이것은 플레이어를 움직이는 원동력이자 주된 목표이고, 게임이 진행될수록 플레이어는 어느새 게임 캐릭터들의 호감을 얻고 그들의 삶을 돌보는 일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인구밀도가 높은 나라 중 하나지만, 사람들 사이의 거리는 그만큼 가깝지 않다. 개인을 강조하는 사회에서 타인과의 관계가 가지는 중요성은 점점 작아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우리가 타인에게 관심을 가지고, 도움을 주고, 더 나은 삶을 위해 신경 쓰는 것은 개인의 자아를 갉아먹는 행위가 아니다. 오히려 이 관심과 애정을 통해 타인을 향한, 그리고 나를 향한 희망과 긍정을 찾을 수 있다. 그 어느 때보다 서로 간의 거리가 멀어진 지금, ‘스타듀밸리’는 우리가 잊고 살았던 이 오래된 삶의 방식을 일깨워준다.

 

혼자서 온전히 존재하는 사람은 없다. 인정하지 않아도, 우리의 삶과 정체성은 우리가 세상을 향해 가지는 태도, 다른 사람과 맺는 관계를 통해 빚어지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공평하지 않은 사회에서 우리가 실망하는 것만큼, 타인을 위해 마음을 쓰는 일은 점점 어려워진다. 특히나 누구도 마음이 여유롭지 않은 요즘 같은 시기에는 더욱더 그렇다.

 

하지만 인간은 받지 않아도 줄 수 있고, 주지 않아도 받을 수 있는 존재다. 내가 답답할 때마다 이 게임을 꺼냈던 것은 아마 여기에 그런 따스한 인류애가 담겨있기 때문일 것이다. 땅은 우리가 주는 만큼 돌려줄 뿐이지만, 인간은 거기에서 한발 더 나아갈 수 있다. 나에게 잔잔한 위안을 줬던 이 게임이 다른 누군가에게도 위로로 다가가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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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고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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