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노력을 재단하지 않을 노력 [사람]

글 입력 2021.01.12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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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주 어릴 적부터 급했다. 무엇이든 쫓기듯 했다. 색칠공부를 하면 빠르게 빈 공간을 채워야 했고, 수학 학원에 다닐 땐 누구보다 먼저 문제풀이를 끝나고 집에 달려가는 아이였다. 대부분 남들의 평가에 의한 것이었다. 문제를 ‘왜’이렇게 풀어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한 가지 유형의 문제를 알려 주면 나머지는 쉬웠다. 똑같은 방식이나 공식에 숫자만 바꿔 넣으면 대부분 해결되었기 때문이다. 어른들에게 나는 똘똘한 아이가 되어 있었다.


그놈의 ‘똑똑하고 빠른 아이’에 갇혀 자라온 나는, 뭐든 대충 하는 아이가 된다. 사립 인문계에 진학해 첫 일주일을 보낸 후 나는 야자 시간엔 종종 화장실로 도망 치곤 했다. 늘 치고 빠지며 효율적인 속도감을 추구했던 나로선 내내 갇혀 있는 야자 시간은 지옥이었다. 그대로 화장실 창문 밖으로 몸을 던질까도 고민했다.


나름 한다고 했는데, 더 이상 먹히지 않았다. 설렁설렁했던 중학교에선 나름 상위권을 유지했다. 그런데 일 년 내내 모의고사 성적이 전부 4등급이었다. 단 한 과목도 빼놓지 않고. 이게 뭐지? 이때부터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노력의 정도, 속도의 정도. 남들의 입시 공부 수기를 읽었다. 하지만 내키지 않았다. 그렇게까지 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만, 노력에 비해 만족하지 못할 결과를 얻을까 두려워 시도하지 않았던 것이 가장 컸다. 그런데 일단 지금은 할 게 없으니 한 번 해 보자, 싶었다.


고등학교 1학년을 마치고, 겨울방학 시즌이 닥쳐 그 ‘한 번 해 보자’를 해 봤다. 방학 시즌 보충에 참여해 아침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보충 수업이나 자습을 하고 독서실로 향했다. 그리고 공부를 하든 말든 오후 10시 반쯤 귀가했다. 가끔 침을 흘리며 졸기도 하고 독서실 벽을 노려보기도 했다. 그렇게 스스로를 가두며 개학을 하고, 3월 모의고사를 봤다. 또, 지옥의 4등급.


그래도 했다. 사실 그때 당시 나와 함께 놀아줄 만한 친구도 없었고(다들 입시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인터넷으로 누군가를 만날 만큼 사람이 고프지도 않았다. 독서실에 가서 친구들과 피자를 먹는 게 즐거웠고, 수험생으로 인정받아 다양한 혜택을 누리는 게 꽤 쏠쏠했다. 가족 외식 때 내가 원하는 메뉴를 먹는다든지. 그렇게 첫 성적 상승이 왔다. 전 과목 2등급이 되었다. 사실 운이 크게 작용하기도 했다. 주관식 문제 몇 개를 찍어서 맞췄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뒤엔 성적이 유지되었다.


입시를 무사히 거쳤다. 부모님은 값비싼 학원과 과외를 붙여 주지 못했다며 아직도 그것에 대해 사과하신다. 하지만 늘 비슷한 뉘앙스의 말을 듣는다. ‘네가 조금 더 열심히 했으면, 넌 더 잘 갔을 거야.’ 아무래도 부모님이나 지인들은 나의 노력을 아직까지 잘 모르는 것 같다. 늘 ‘빠르고 효율적인 아이’로 낙인찍혔던 덕분에, 나의 장난 같은 입시 챌린지가 꽤 여유롭게 보였나 보다.

 

여유로웠던 것을 부정할 생각은 없다. 스트레스를 받아도 잘 자각하지 못할 만큼 둔하고, 그것이 쌓여 몸에 이상이 생겨야만 아는 성격이니 남들보다 간절하지 않아 보였을 수도 있다. 공부 시간이 남들보다 독보적으로 긴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나는 그들과는 조금 다른 방식의 노력을 했다. 이 사실을 안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나는 어떤 프로젝트나 작업을 시작할 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그것의 데이터를 모으는 습관이 있다. 정해진 일자 직전까지 그것에 대해 생각하며, 드문드문 떠오르는 것들을 기록하는 것이다. 얼마 전 TED 영상을 보는데 나 같은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다.

 

 

 


고통스럽게 머리를 쥐어짜고 밤을 새워가며, 혹은 눈물을 흘려가며 매달린 채 무언가를 한 적은 없다. 공부나 대외활동을 할 때, 개인 작업을 진행할 때도 커다란 고통을 느끼진 않았다. 하지만 머리는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밥을 먹다가 문득 ‘그 기획안에 이런 세계관을 넣으면 재밌겠다’라고 생각하고, 어제 외운 외국어 단어가 뭐였는지 상기하며 중얼거린다. 이 글도, 일주일간 ‘이걸 써야지!’와 ‘이렇게 써야지!’를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떠올렸다. 오래 떠올리고 빠르게 만들어내는 것뿐인데, 이것은 노력이 아니게 된다.


‘네가 뭘 진심으로 열심히 한 걸 본 적이 없다’라는 사람도 있다. 이해는 한다. 긴 시간을 붙잡고 있는 일도 거의 없고, 늘 노래를 틀어놓고 작업을 하다 다른 이가 등장하면 창을 닫아 버리니 그들은 내가 어디서 뭘  하는지도 잘 모를 것이다. 이걸 깨닫기 이전의 나 또한 그렇게 생각했다. ‘대충 해도 결과물은 어느 정도 나오네!’라고 자만하는 시기도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런 말들은 그다지 기쁘지 않다. 만일 주위에 무언가를 뚝딱 끝내버리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데 그렇게 해낸 것이 ‘운이 좋게’ 결과물이 괜찮았다면, 그 ‘뚝딱’은 말 그대로의 것이 아니다. ‘뚝ㅡ딱’의 과정을 거쳤을 것이다.


고등학교 입시 과정을 구구절절 설명한 것은 나름 당시의 노력들을 확신하기 위해서였다. 순수 공부 시간은 몇 시간에 그쳤지만 나머지 시간 내내 머릿속으로 정리하며 보낸 나의 노력. 그리고 그 사실을 대학교를 졸업하는 이 시점에서 발견한 나에 대한 무지. 스스로의 노력까지 재단해온 지금까지의 내 모습을 반성하고 또 반성하며, 다시 생각을 하겠지. 노력을 재단하지 않는 노력을 어떻게 해야 할까.

 




[이민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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