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사라진 모든 미술 작품에 건네는 헌정시 - 뮤지엄 오브 로스트 아트

글 입력 2021.01.09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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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 더는 존재하지 않는 것, 잃어버린 무언가를 다시금 조명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없다'라는 걸 기본적으로 전제한 뒤, 그것이 존재해왔고 사라지기까지의 행적을 샅샅이 연구하고 뒤따를 일련의 수고를 감내해야 할 것이기에 말이다. 그래서인지 커다란 수고를 감내함으로써 로스트 아트만의 새로운 길을 열어준 본 서적은 웅장함을 띤 채 내게 다가왔다.


네모반듯하게 정돈된 채로 벽에 걸려 위엄을 잃지 않을 것만 같은 미술 작품. 그런 예술품 역시 사라지고 파괴됨의 역사를 꽤 오래도록 거쳐왔다. 심지어는 현존하는 위대한, 또는 제작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로스트 아트가 여러 시대를 발 빠르게 스쳐 가기도 했다. 우리 곁에 왔다 갔는지도 눈치채지 못했을 정도로, 제작된 수만큼 사라지고 도난당해 파괴된 예술의 실체는 무수했다.

 

그렇게 르네상스 시기부터 현대미술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작가의 수많은 미술품은 세상에 나와 각가지의 수난을 맞이해야만 했다. 그리하여 '언젠가 발견될 잃어버린 작품들'의 이야기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일지도 모른다. 그걸 깨달은 순간, < 뮤지엄 오브 로스트 아트 >가 사라진 모든 미술 작품에 건네는 헌정시처럼 느껴졌다.

 

 

오늘날 세상에는 수많은 미술관과 엄청난 양의 미술품이 있다. 하지만 지금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미술품이 각기 다른 이유로 사라지거나 숨겨졌다. 지진으로 파괴된 거대 청동상, 종교개혁의 시대에 파괴된 성상, 나치가 강탈한 미술품, 테러리스트들이 파괴한 고대의 유적,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도난당하고 은닉되고 파괴되는 작품들. 만약 잃어버린 미술품들을 되살릴 수 있다면 현존하는 박물관보다 몇 배나 더 많은 박물관이 필요할 것이다.

 

저자 노아 차니는 미술품의 도난과 위작 문제에 관한 연구와 저술로도 알려져 있다. 미술 범죄 분야의 전문가로서 미술품의 존재 방식을 다채롭게 살피는 작업을 해왔는데, 사라지고 잃어버린 작품들을 다룬 이번 책은 그러한 입체적인 관심사의 연장이라고 할 수 있다.

 

- 책 소개 중

 

 

 

살아남은 것과 살아남지 못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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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히어르 판 데르 베이던 < 십자가에서 내리심 >, 1443년 이전

패널에 유채, 205X262cm, 프라도 미술관, 마드리드

 

 

우리가 특정 작가의 특정 작품을 '가장 유명한 그림'이라 할 때, 해당 작품이 실제 제작되고 선보여졌을 당대에도 오늘날과 동일한 답변으로 일컬어졌을까? 저자인 노아 차니가 로스트 아트의 숨은 이야기를 들려준 이후로 앞선 질문에 대한 답은 유동적으로 변하게 될 것이다. 꼭 그런 것만은 아닐 거라고...!

 

그리고 바로 15세기 중반 플랑드르 르네상스 시기의 영향력 있는 화가였던 로히어르의 작품이 적절한 예시가 된다. 오늘날 로히어르의 작품으로는 수 세기에 걸쳐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한 <십자가에서 내리심>이 가장 유명하지만, 그가 활동하던 시기에는 <정의의 순환>이 대표작이었다. 그러나 브뤼셀 시청의 황금의 방을 위해 그렸던 그 그림은 9년 전쟁 중 프랑스군의 브뤼셀 포격 당시 발생한 화재로 모두 소실되어버렸다.

 

이로써 가장 유명한 작품은 <십자가에서 내리심>으로 뒤바뀌었다. 우연인지 운명인지 모를 그런 한순간이 작가의 대표작을 결정지은 것이다. 미술의 역사도 참 다사다난했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역사의 발자취를 함께한 예술가의 운명이 본인의 작품과 동일한 발걸음으로 나아간 듯 보였다.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말이다.


 

어떤 다른, 더 탁월한 무엇이 예술가들을 그렇게 순례하게 만들었는지 궁금해하는 사람들도 있다. 우리가 위대한 예술가들과 연관 짓는 작품들이 반드시 그들의 가장 위대하고 가장 영향력 있는 창작물만은 아니었다는 것을 잊기 쉽다. 종종 그것들은 역사의 우연 속에서 살아남은 것일 뿐이다. - 19p

 

 

 

공백의 미술사를 만들지 않으려 힘썼던 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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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레도 알카사르 화재

 

 

한편으로는 급박한 상황 속에서도 공백의 미술사를 만들지 않으려 부단히 애썼던 이들도 있었다. 톨레도 알카사르 화재 때 궁정 사람들은 자신의 목숨을 마다하지 않은 채 불 속으로 뛰어들어 창밖으로 미술품들을 던졌다. 그 미술품에는 벨라스케스의 위대한 걸작인 <라스 메니나스>도 포함돼있었다.

 

이처럼 작품을 구하고 되살리기 위해 노력했던 과정에서 다치거나 목숨을 잃은 사람들도 여럿이었다. 그들은 단지 예술을 위해, 그것 하나만을 바라본 채 공백이 될뻔한 미술사의 한 부분을 애써 채워 넣었다. 이름 모를 그들이 있었기에 예술의 한 페이지는 조금 더 다채로워질 수 있었던 것이다. 희생을 통해 지켜낸 미술품을 보다 소중히 보존하고 다음 세대에 전승해야 할 마땅한 이유가 <뮤지엄 오브 로스트 아트>에 기록되어 있었다.

 

*

 

이렇듯 '로스트 아트'의 기나긴 여정은 현존하는 예술품의 무사함과 파괴되고 사라진 것들에 대한 안타까움, 그리고 도난당해 아직까지 행방을 알 수 없는 미술품들에 반짝일 희망을 품도록 해준다. 그렇기에 사라진 미술품과 문화재에 대한 이야기는 앞으로도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아니, 계속되어야만 한다.

 

여전히 발견을 기다리는 무수한 미술품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발견과 발굴, 복원을 통해 비로소 완전한 예술로서 대중들 앞에 선보여질 '로스트 아트'. 그런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헌정시가 저자의 따스한 시선과 손길로 쓰인 것만 같았다. 예술을 경험하고 느끼는 직접적인 행위가 어려워진 현시대에 더욱 간절한 마음으로 읽게 된 책이 아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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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노아 차니
 
옮긴이 : 이연식

출판사: 재승출판

분야
미술일반/교양

규격
152*224

쪽 수 : 352쪽

발행일
2020년 11월 30일

정가 : 22,000원

ISBN
979-11-88352-39-5 (03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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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세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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