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적절한 줄타기 - 이언의 철학 여행 [도서]

글 입력 2021.01.05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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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 '이언'은 꿈이 아닌 꿈 속에서 노인을 만난다. 노인은 이것저것 마치 이언을 시험하듯 질문하고, 이언은 혼란을 겪는다. 꿈에서 깬 이언은 노인과 얘기했던 주제를 부모님과 다시 이야기한다. 부모님과 대화하며 이언은 생각의 오류를 짚고, 논리의 비약을 고쳐나간다.


대화는 되도록 처음부터 끝까지 집중해서 읽는 게 좋다. 논증 과정 전체가 철학의 목적과 관련 있기 때문이다.

 


철학이라는 학문의 본질이

쉬운 대답의 발견이 아니라

줄기찬 문제 제기에 있고,

철학이 지식의 축적이나 기술의 연마가 아니라

사유 활동 자체라는 것을 인정하고

 

(9)

 


이언이 펼치는 주장과 노인의(때론 이언을 괴롭히려는 것 같은) 반박, 그리고 부모님이 보완 및 보충하는 논거를 읽으며, 꼭 줄타기를 하는 느낌이었다. 줄타기의 목적이 한쪽 끝에서 반대편 끝까지 넘어가는 것 뿐 아니라, 온전한 흔들림을 체험하는 것까지 포함한다면, 이 행위를 철학하기에 비유할 수 있을까.

 

 

 

1. 철학: 사유 활동



예를 들면 인간과 정신에 관하여.

  


- 육체에 어떻게 정신이 있을 수 있죠?

- 왜 그것이 어딘가에 있어야만 하지?

 

(109)

 

 

이언의 아빠는 의자 다리 사이의 빈 공간을 가리키며 말한다. 의자에 작용하는 중력의 중심은 의자 자체에 있지 않고, 이 '허공'에 있다고. 허공은 손에 잡히지 않지만(사실 이것도 인간 감각의 기준이다) 분명히 의자 중력의 중심이 존재하는 장소다.

 

존재(중력의 중심, 또는 인간의 정신)의 증명은 이론적 정의에 의해서도 가능하다.

 


- 정신은 육체적인 것에서 나온다고 말할 수도 있어. (110)

 


그러나 이론만으로는 부족하다. 예를 들어 CD에 들어 있는 0과 1이란 코드가 음악과 동등한 것이라 말할 수 없는 것처럼, 인간이 세포로 이루어져있다고 해서 세포 자체가 인간의 의식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처럼. 존재가 출현하는 근원은 분명히 있지만, 이 근원은 존재의 시작일 뿐 존재의 성질과 같다고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존재가 근원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말할 수도 없다. 근원이 없다면 존재는 만들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명확히 답을 쓰는 일은 조금 어려울지도 모른다. 철학이 '사유 활동 자체'라는 말은 아마 이렇게 성립하는 게 아닐까. 다행히, 철학하는 행위의 혼란은 안전하다. 생각의 기준을 정할 수 있다면 말이다. 줄 위에 올라선 광대의 발이 불안하게 흔들려도, 결국 '줄'의 성질에 제한된 범위에서만 진동하는 것처럼.

 

 


2. 사유 활동의 기준: 유효 범위 정하기



철학하기의 과정이 질문과 대답의 전 과정을 일컫는다 할지라도 무작위로 모든 생각을 포함하지는 못한다.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먼저는 어떤 질문도 가능하다는 관용을 베풀되, 생각의 유효 범위를 좁혀 나갈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신의 전지함과 인간의 자유의지가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지에 관하여.

 


- 너는 지금 전능한 존재든 전능하지 않은 존재든 그게 누가 되었든 할 수 없는 것(논리적으로 불가능한)을 전능한 존재에게 하라고 요구하고 있는 거야. (220)

 

-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는 거지. 세계 최고의 축구 선수라 하더라도 축구공을 직접 만들 필요는 없어. 전능한 존재라도 둥근 사각형을 만들 필요는 없다는 말이야. (222)

 


'그럴 필요가 없다', '그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회피가 아닌 이유는, 말 그대로 우리는 생각할 필요가 없는 문제까지 끌어들여 논증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 그는 너보다도 너를 더 잘 알고 있어. 그러나 그것이 네가 그렇게 행동하도록 만든다는 걸 뜻하지는 않아. 그는 네가 무엇을 할 것인지 알 뿐만 아니라 그것을 선택할 능력도 네게 부여하고 있어. 이것이 전지함이 가지고 있는 특혜 중의 하나지. … 그러나 알 수 있다고 해서 그가 원인이 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 신은 그저 바라볼 뿐이지. 신은 전능하기 때문에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고도 모든 것을 다 내다볼 수 있는 거야. (224)

  


가능한 모든 생각 중에서 유효한 생각의 범위를 설정하면 생각(문장)에 적절히 마침표를 찍을 수 있다. 마침표는 다음과 같은 의미다. '거기까지만 생각할 것.'


적절한 마침표로 이어진 문장은 올바른 논리를 만든다. 올바른 논리는 오류를 걷어내고 상충할 것 같은 두 진실의 공존이 가능하다는 명제가 참이라는 걸 증명한다.

 

 

 

3. 사유의 빈 공간: 오류의 두 얼굴



간과하기 쉬운 사실 중 하나는 논리의 주체가 인간이라는 점이다. 철학을 펼치는 도구는 인간의 언어이며 따라서 모호하다. 그러니 제거할만 한 오류가 있는 반면, 허용하는 오류도 생긴다. 오류의 두 가지 얼굴을 이해하고 사유의 빈 공간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 인간이 세상을 해독하려면 약간의 실수가 필요해. 우리는 짧은 선을 긴 것으로 보고 하얀색을 빛 아래에서는 오렌지색으로 보고, 곧은 막대를 굽은 것으로, 큰 별을 작은 별로 보지. 다시 말하면 우리 주변 세계를 안다고 말하기 위해서는 약간의 오류를 허용해야 한단다. (425)

 

- 논리가 타당하지 않은 것은 우리의 언어 때문이며, 따라서 모호한 것은 세계가 아니라 세계에 대해 말하는 우리의 방식인 거네요? (427)

 


생각의 유효 범위를 정하며 논리의 올바름을 추구하는 것이 절대적 완전함을 목표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완전하지 않은 인간의 기준으로 절대적 기준을 세우는 것도 불가능하겠지만.


모호함은 틈이고, 수많은 틈으로 생각이 새어나간다. 이 모든 것을 잡을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우리는 우리가 가능한 이해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애초에 모호성이란, 우리가 설명하려는 세계가 아닌 우리 자신에게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쩌면 철학하기란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이기도, 세계를 보는 우리의 해석을 이해하는 방식이기도 할 것이다.

 

*

 


- 특정한 행동과 도덕적 코드에 초점을 맞추어 생각하기보다는 '나는 어떤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가?'에 초점을 맞추는 게 나아. (509)

 


위 본문은 도덕에 관한 대화문이지만, 책을 읽으며 철학하기 위한 태도로도 적용할 수 있을 것 같다. 사유 활동의 유효 범위를 정하는 주체나, 제거해야 할 오류와 허용하는 오류의 결정자는 결국 인간, 그리고 '나'다. 내가 어떤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지, 어떤 삶을 살아가길 원하는지에 관한 가치에 따라 각자의 철학이 세워지기에 이 태도는 중요하다.

 

각자의 철학이 난무한다고 가정하면, 아니 실제로도 경험해본 바 감당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섬세하게 축조된 철학이라면? 사려깊고 꾸준한 인내심으로 연마한 생각이라면. 어느 지점에서 서로의 철학은 어긋나지 않은 형태로 공유될 수 있지 않을까. 이언과 노인, 이언의 부모님이 그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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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언의 철학 여행
- 세상의 모든 사유를 경험하다 -
 
 
지은이
잭 보언
 
옮긴이 : 하정임
 
출판사 : 도서출판 다른
 
분야
교양철학
 
규격
147*215mm
양장
 
쪽 수 : 576쪽
 
발행일
2020년 10월 30일
 
정가 : 28,000원
 
ISBN
979-11-5633-304-3 (03100)
 

 

[이서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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