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당신은 美를 보는 '안목'이 있나요? [도서]

한국미에 대한 안목을 높이고 싶다면 당장 유홍준의 안목을 읽어보기를!
글 입력 2020.12.30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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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한해 그다지 많은 책을 읽지는 않았지만 이제라도 이 책을 읽게 된 게 참으로 감사하다. 이 책을 통해 생각보다 깨치는 바가 많아 반성도 많이 했고, 앞으로 나는 어떤 자세로 삶을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생각도 하게 되었다. 반성과 계획을 하기 딱 좋은 연말에 잘 어울리는 책이 아닐 수 없다.

 

한때는 나름 미술 관련 책들을 꽤 읽었다 스스로 자부했건만 책을 보며 아주 뜨끔한 것은 한국 미술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없다. 한국 미술이 뭔지 정말 아는 게 하나도 없는 무식쟁이다. 지금껏 한국 사람이 서양의 미술작품들을 보면서 감동하고 놀라는 와중에 왜 나는 한국 미술을 돌아봐야겠다고 생각한 적이 단 한 번도 들지 않았었을까? 책을 넘길수록 부끄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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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보게 된 건 책 제목 때문이었다. <안목>. 한국의 대표적인 미술평론가가 말하는 안목은 무엇일까? "유홍준의 美를 보는 눈"을 가질 순 없겠지만 흘겨서라도 보고 싶은 바람으로 책을 펼쳤다. 사실 보면서도 책에 실린 작품이 정말 훌륭한지, 얼마나 멋진지를 구분하는 눈은 내게 없었다.

 

아무래도 출판물에 실린 사진으로 원본의 아우라를 온전히 느끼기 어려울뿐더러 색감과 재질도 가늠할 수 없었다. 그리고 지금껏 보지 않았던 다소 고루타분하다고만 여겨왔던 한국미술의 위대함이 단번에 나에게 다가올리는 더더욱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그저 예전에는 전혀 느끼지 못했던 한국미만의 고귀한 정신과 잔잔한 아름다움을 이제라도 살포시 알아보게 된 것만으로 다행스러울 뿐이다.

 

또한 책의 제목답게 한 사람의 정신세계가 담긴 예술작품과 예술가도 중요하지만 그 뛰어남을 알아보는 안목을 가진 소수의 사람들 역시 어쩌면 더 위대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이야기한다. 작가와 작품을 알아채고 귀하게 여기며 후대에 남겨주지 않았더라면 한국의 아름다움은 아무 의미 없이 사그라지고 말았을 지도 모른다. 이렇게 시대의 안목가들이 지켜낸 美는 나라의 정신이고 기둥이었음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

 

책은 크게 네 파트로 구분되었다. 첫째 장에서는 한국 미술사에 대작들을 알아본 안목가들의 의견으로 작품을 살펴본다. 둘째 장은 뛰어난 안목을 소유한 이들의 수집 이야기가 이어지며 셋째 넷째 장은 작가가 지금껏 쓴 대가들의 회고전과 기획전의 평론들이 이어진다. 100% 이해했다고 말은 못 하겠지만 내가 인상 깊었던 내용들을 기록으로 남겨두려 한다.

 

우선 추사 김정희에 대한 이야기다. 부끄러움을 고백하자면 그 유명한 추사 김정희 이름만 알지 사실 그 글씨가 뭔지, 왜 유명한지 전혀 몰랐다. 그렇기에 책에 실린 서체 사진을 보고도 그 정도가 얼마만큼의 뛰어남인지는 알아보지 못했지만 적어도 오늘날 일자무식 내가 봐도 추사의 글자가 굉장히 세련되다는 인상을 받았다. 당시 추사 글씨의 파격함을 작가는 서양의 앵포르멜에 비교한다. 얼마나 충격적인 것인가! 그 역시 잘 쓰고 못 쓰고의 기준을 뛰어넘는 독특함 때문에 처음에는 많은 이들의 공감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이에 대한 박규수의 평이 멋지다. 우선 추사의 개성적인 서체를 평하며 그의 천재성만 높이 칭하는 것이 아니라 젊은 시절 중국에서 유행하던 글씨를 쫓던 때의 흠집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그의 위대함은 그저 그런 수준에 머무르던 서체가 꾸준한 노력을 통해 발전해나갔고, 그 후 만년 제주도 귀양살이 끝에 남의 글자를 흉내 내는 것에서 벗어나 스스로 일법一法을 이루었다고 전 과정을 설명한다. 그리고 제자들에게도 함부로 추사체를 흉내 내지 말고 그의 수련을 배우라고 말한다. 뛰어난 안목가는 작품 하나를 논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전 생을 읽는 사람인 것이다. 그리고 추사 자신에 대한 자부심도 멋졌다.

 

 

제 글씨는 아직 부족함이 많지만, 저는 일흔 평생에 벼루 열 개를 밑창 냈고, 붓 1천 자루를 몽당붓으로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자기 자신이 인정할 만한 노력에 뛰어난 박규수의 안목이 더해졌기에 추사체가 더욱 빛을 바란다.

 

다음으로 고려청자에 대한 이야기이다. <문화를 창조하는 것은 생산자지만, 문화를 창달하는 것은 소비자이다.> 아름다운 도자기를 만드는 것은 도공의 역할이지만 알아보는 사람이 없으면 그저 한낱 도구로만 쓰일 뿐이다. 그러나 꼼꼼히 술 잔 하나 주전자 하나에도 그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안목가들이 있었기에 예술작품으로 보존될 수 있었다. 아마 당시 고려에는 나와 같은 사람들만 있었는지 청자의 아름다움을 보지 못하고 묻힐 뻔한 것을 뒤늦게나마 다행히 알아봐 준 건 우리나라 사람이 아닌 1123년 송나라 사신 서긍이라는 인물이었다. 그는 고려청자를 자세히 들여다보고 연구하며 그것이 최고의 명품임을 입증하였고 이를 기록으로 남겨주었다. 그러나 고려 말기에 이르러 청자의 생산과 소비가 모두 쇠퇴하더니 조선에 와서는 백자에게 그 자리를 모두 내어주었다고 한다.

 

이를 다시 알아본 것은 조선에 이르러 추사 김정희와 다산 정약용 같은 당대의 뛰어난 문인들뿐이라고 한다. 그리고 놀라운 건 우리가 보는 고려청자의 대부분이 도굴된 것이라 한다. 고려 사람들은 죽은 사람이 저승에서 사용할 물건을 함께 묻는 장례 풍습이 있었는데 이때같이 묻어버린 청자들이 한창 19세기 말 개항 무렵 일본, 미국, 유럽 등의 제국 주의자들이 무법으로 도굴되었다. 우리는 그 가치를 몰랐으니 할 말이 없다. 더 놀라운 것은 이 청자의 가치를 알아본 게 다름 아닌 일본의 이토 히로부미였다는 것이다. 이토가 어느 날 고종에게 고려청자를 보여주자 고종이 "이 푸른 그릇은 어디서 만든 것이오?"라 되물었다 한다. 히로부미는 조선에 올 때마다 있는 데로 고려청자를 사들였다고 하는데 우리의 우두머리는 이를 귀하게 여기지 못한 탓에 귀한 역사의 흔적들이 파편이 되어 전 세계로 흩어져 버린 것이다.

 

반면에 예술의 가치를 알아보고 공을 들여가며 작품을 모으러 다닌 안목가들의 삶은 많은 귀감이 된다. 추사의 위대함을 알아본 일본 대표 동양철학가인 후지쓰카 치카시가 공들여 얻어낸 <세한도>를 서예가이자 당대 유명한 추사 마니아였던 손재형 선생이 다시 얻어내고자 노력한 일화는 놀라울 정도다. 나라의 보물이 일본으로 건너갔다는 사실에 크게 걱정하며 한참 도쿄 전쟁 중이던 때 일본으로 무작정 건너가 묵묵히 기다린 끝에 마침내 <세한도>를 서울로 가지고 돌아 왔다고 한다.

 

나는 여기서 두 가지 사실에 놀라고 말았다. 개인이 그 작품의 위대함을 알아보고 사비로 나라의 보물을 지켜내기 위해 목숨을 내놓는 일까지 마다하지 않았다는 점과 추사를 향한 후치쓰카의 학문적 열정과 안목이다. 후치쓰카는 나라와 세기를 뛰어넘어 한 예술가를 사랑했고 그의 작품을 모으고 논물을 발표하는 데 일생을 바쳤다. 더 놀랍고 감사한 사실은 그의 아들 역시 그 아버지의 대를 이어 추사를 연구하였으며 죽기 전 그와 그의 아버지가 모은 거의 1만여 점에 모은 작품들을 과천문화원에 기증했다는 사실이다. 시대도 국경도 뛰어넘는 예술의 힘도 놀랍지만 그를 알아보고 아끼며 보존하고자 노력한 삶 자체도 너무 큰 감동이다.

 

계속 감동이 이어진다. 수정 박병래 선생의 이야기이다. 그가 인도주의 의사이자 독실한 가톨릭 신도에서 열혈 예술인이 된 계기는 한 일본인 교수가 접시 하나를 보여주며 이게 뭔지 아냐고 물은 것이 시작이었다 전한다. 어물어물하다 우리 것은 아닌 거 같다고 답하자 "조선인이 조선 접시를 몰라봐서야 말이 되느냐"란 말에 부끄럽고 분한 마음이 차올랐고 그렇게 알아가기 시작한 도자기 수집은 평생의 취미가 되었다. 평생 봉급쟁이로 값이 저렴한 접시와 연적을 주로 모았다지만 한 번 산 물건을 내다 판 적도 없으며 나중에는 그릇을 존경하는 마음까지 생겼다고 한다.

 

한국전쟁 피난 시에도 도자기가 걱정되 장독 밑에 구덩이를 깊숙이 파 숨긴 덕분에 나라의 보물들이 다치지 않고 보존될 수 있었다고 한다. 평생 도자기와 함께 지내온 인생이 행복했다고, 비로소 우리 것이 무엇인기 알게 되었다는 그의 말이 깊게 다가왔다. 그리고 더욱 멋진 것은 70세를 맞아 평생에 모은 미술품을 모두 국립 중앙 박물관에 기꺼이 기증했다는 것이다.

 

 

우리 조상들이 만든 예술품을 혼자만 가지고 즐긴다는 일이 죄송스럽기도 하여 내가 몇십 년 동안 도자기와 함께 지내던 마음을 이제 여러 사람에게 나누어줄 수 있다면 더욱 행복하겠습니다. 지금 나는 과년한 딸을 정혼定婚한 듯한 기쁨에 넘쳐 있습니다.

 

 

책을 읽을수록 작품의 아름다움이 오래도록 기억될 수 있는 것은 예술가의 지나온 발자국이 진하게 남았기 때문이란 사실이란 것이었다. 한 시대의 위대한 예술가란 한 걸음 한 걸음을 수행하는 마음으로 인생을 걸어온 사람들이고 그 수행의 한 지점마다 예술품이라는 결과물을 남겨냈다. 우리가 기억해야 될 것은 작품 하나가 아닌 작품 안에 실린 작가의 예술 혼이어야 했고, 이를 뛰어나게 알아보는 이의 삶이 작은 것 하나 귀하게 보는 마음과 작품을 모으고 지키는 노력의 자세에서 우러났다는 사실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림은 대상에 대한 사실적인 묘사를 넘어 '문자향文字香서권기書券氣'를 갖추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손재주만이 능사가 아니라 모름지기 만 권의 책을 읽고 천 리를 여행하면서 진정한 문인 다운 자질을 길러 그것이 작품 속에 절로 배어 나오게 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다소 촌스럽다고 멋없다 여긴 한국미를 바라보는 나의 식견은 그저 안목이 없었을 뿐임을 고개숙여 인정하게 된다. 한국인의 미학을 한 마디로 표현한 문장이 있다.

 

 

작신궁실 검이불루 화이불치 作新宮室 儉而不陋 華而不侈

새 궁궐을 지었는데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았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았다.

 


외형의 반짝반짝함은 시기가 지나면 바래지고 누레진다. 그러나 올곧은 정신과 성스러운 자세는 하루아침에 완성되는 건 아니지만 세기를 넘어서면서 더욱 빛난다. 우리의 미란 보면 볼수록 귀한 것이었다. 예술을 하는 사람도 예술을 알아보고 작품을 모으는 사람의 삶도 하루아침에 완성되는 것이 아님을 깨닫는다. 이 두 가지 모두 그저 좋아서 하는 일임에도 영혼을 갈아 넣는 시간들이 모여 위대함을 낳았다.

 

책을 통해 복잡한 역사 속 어렵게 지켜진 한국 미술을 아끼는 마음이 커졌다. 또한 비록 그들에 비해 보잘것없는 나의 삶이지만 좀 더 경건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내 보려는 다짐으로 마음의 자세를 바로 세워본다.

 





[최수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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