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리얼돌'을 내세워 올해의 작가상 후보에 올랐다? [시각예술]

인간다움을 찾기 위해 여성을 배제하는 기만한 행위를 예술로 칭해도 되는가?
글 입력 2020.12.11 16:01
댓글 13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131.jpg

  

 

국립현대미술관의 주요 프로젝트 중 하나는 단연 올해의 작가상 선정이 아닐까 싶다. 2012년부터 국립현대미술관과 SBS문화재단이 공동으로 주최해 온 대한민국 대표 미술상으로 알려진 이 상은 동시대 미학적, 사회적 이슈들을 다루고 있는 역량 있는 시각 예술가 4명을 선정해 제작 지원과 전시 기회를 제공하며, 선정된 4명의 후보 작가들에게는 제작 지원금 4000만 원을, 최종 작가로 선정되면 상금 1000만 원을 추가로 받는다.

 

그런데 올해의 작가상 4명의 후보로 선정된 정윤석 작가의 작품이 지난 4일 처음 공개된 후로 논란이 일고 있다. 여성의 모습을 본떠 제작한 리얼돌, 이른바 섹스돌이라고도 불리는 오브제로 사용하여 보인 것.

 

스크린샷 2020-12-10 오후 8.54.32.png

 

국립현대미술관에서는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정윤석 작가의 작품을 설명했다.

 

'영화 <내일>은 인간과 닮은 인간의 대체물들을 만들거나 소비, 혹은 이용하는 사람들이 등장하는 다큐멘터리입니다. 영화는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개인들이 선택하는 삶의 모습들을 통해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집니다.'


이 작품에서는 중국의 리얼돌 공장에서 리얼돌을 제작하는 과정과 리얼돌과 실제로 함께 거주하는 일본인 센지 나카지마, 인공지능 로봇을 정치적 대안으로 제시하는 미치히토 마츠다까지 인간이 아닌 인간과 유사한 것들을 곁에 두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교차한다. 국립현대미술관은 두 인물의 선택 모두 인간에 대한 실망과 불신에서 출발하지만 문제를 타개하는 방식과 목적은 사뭇 대조적이며,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개인들이 선택하는 삶의 모습들을 통해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면서 우리 시대의 기괴한 풍경과 미래의 징후들을 드러낸다고 정 작가의 작품을 소개했다. 그러나 지능과 사고를 할 수 있어 정교한 작업을 해낼 수 있는 AI 인공지능과 로봇 지능 및 사고 없이 외양만으로 인간의 흉내를 낼 수 있는 리얼돌을 비교할 수 있는지부터 의심해 봐야 한다.

 

또한, 리얼돌은 인간의 외양과 똑 닮은 인형에 '성 기능'을 추가한 인형이다. 웹사이트에 리얼돌을 검색만 해도 여성의 몸을 외설적으로 제작해 홍보하는 성인용품점들이 차고 넘치며, 남성 리얼돌의 제작 수량보다 훨씬 더 많은 양의 여성 리얼돌이 계속해서 제작되는 실정이다. 리얼돌을 제작하고 소유하려는 저의는 여성의 성 기능을 도구화하여 아무런 의지도 없고, 말도 없는 물체를 '소유'하여 독점하려는 그릇된 성 가치관에서 비롯된다는 것이 문제다. 그러나 국립현대미술관과 정윤석 작가는 이 점을 간과한 채로 '인간다움'의 출처를 성적 도구화 대상에게서 찾고자 한다. 그렇다면 어째서 이런 작업을 진행한 것일까.

 

지난 3일 진행된 기자 설명회에서 정윤석 작가는 "여성을 상품화하는 시스템이 왜 존재하는지, 왜 시스템을 알면서도 그런 소재들을 선택해서 사는지 인간적인 내면을 들여다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며 "시스템의 부조리는 영화에서도 충분히 언급하고 있다. 그런 부분에서는 중립적인 시선을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실제로 영상에서는 섹스돌 공장에서 근무하고 있는 여성 노동자들의 인터뷰도 나오며, 그들은 사뭇 밝고 당찬 얼굴로 인터뷰를 진행한다. 생계를 위해 섹스돌 공장을 택한 여성 노동자들을 조명하는 인터뷰는 작가의 이러한 의도를 파악할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러나 작가는 일전 일민미술관에서도 유사한 작업을 전시한 적이 있었다. 인간과 유사한 마네킹을 만드는 중국의 리얼돌 공장을 촬영한 개인전 '눈썹'. 그는 당시 리얼돌에 '눈썹'을 붙이자 생명력이 살아난 것 같았다고 말했다. 2018년 문화 경제에서 진행했던 인터뷰를 보면 '영상을 찍으면서 마네킹, 섹스돌을 단지 성적 대용품이 아니라 친구, 가족 대용으로 여기고 주문하는 사람도 많다는 것을 알았다'며, '일본에서도 관련 리서치를 찾아봤는데 현 사회에서 인간이 가장 비정하고, 섹스돌이 인간보다 낫고, 그래서 위로를 받는다고 주장했다'고 말한다.

 

작가의 이러한 발언은 리얼돌 산업을 비판하고자 했던 목적과 상이하지 않은가. 또한 그가 이번 작품 <내일>에서 담아냈던 리얼돌과 함께 거주하고 있는 남성 센지 나카지마의 인터뷰를 보면,  '당시에는 그냥 성인용 인형이었지만 지금은 단순 인형 그 이상'이라고 말한 바 있다. 또한 '자신을 배반하지 않으며 돈만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게 그가 사오리를 사랑하는 이유'라고 말한다.


인간에게서 받았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굳이 성 기능이 추가된 리얼돌을 사려는 의도는 무엇인지, 여성에게서 받은 상처를 극복하기 위해 여성의 외양을 한 리얼돌을 구매해 성욕을 해소하고, 리얼돌을 구매하게 된 이유를 여성에게서 받은 상처로 돌리는 건 또 다른 여성 혐오를 낳는 순환 구조의 반복이 아닌가를 의심해봐야 한다.

 


IMG_ACC4581B46E6-1.jpeg

 

 

맹점이 하나 더 있다. 작품을 바라보는 눈이다. 관람객의 눈을 대신하는 카메라의 작품 구도는 이번 작품엔 정 작가가 촬영한 다큐멘터리 영상 외에 섹스돌을 제작하는 과정을 담은 작품들이 전시되었고, 그중 여성 노동자가 리얼돌의 성기 안에 손을 집어넣는 모습을 포착한 작품이 공개되며 관람객들의 항의가 빗발쳤다. (작품은 현재 연령 제한으로 인해 사진 촬영이 불가하다)

 

문제는 그것이다. 작가가 리얼돌 산업에 대해 비판할 목적과 동시에 여성 노동자들이 생계를 위해 여성 리얼돌을 만들게 되는 환경적 시스템을 비판하고자 했다면 최소한 여성의 신체를 폭력적으로 휘두르는 장면을 배제했어야 했다. 여성의 신체를 전시함으로 인해 성적 수치심을 느끼지 않을 남성 작가가 담은 작품들에 불편함을 느끼는 건 오롯이 여성 관람객들의 몫이니 말이다. 여성이 만들어내는 여성 리얼돌의 제작 과정을 담아 관람객에게 충격과 교훈을 주기 위해서 연출해내는 구도는 '국립'현대미술관을 찾는 무수한 관람객들의 고유한 성적 트리거를 배려하지 않은 행위라고 말할 수 있다.


계속해서 항의가 빗발치자, 국립현대미술관은 정윤석 작가의 해당 작품은 '돈으로 인간 대용의 인형을 사고 파는 당면 사회적 이슈'를 '비판적인 시선'으로 다루는 다큐멘터리 작업이며, 예술작품에 대한 관람객의 비판과 논의는 충분히 가능하고, 사회적 이슈를 다루는 동시대 미술에서는 불가피한 면도 있다고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국립현대미술관은 '현대'미술관이기 전에 '국립'미술관이다.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기에 누구도 배제되면 안 될 공공기관이다. 비판적인 시선으로 리얼돌 산업을 바라보지만, 폭력적인 구도로 국민에게 불쾌감을 준다면, 그건 공공의 이익을 위해 운영되는 국립기관의 운영 지침과 위배되는 행보라고 정의할 수 있다.

 

논란이 일자 '여성의당'은 성명서를 발표해 '공공성의 가치를 가져야 할 국공립 미술관으로서 의무를 위반했다"며 정윤석 작가의 올해의 작가상 후보를 박탈할 것을 주장했다. 또한 시각예술 분야 여성 예술가 네트워크 '루이즈 더 우먼'은 '실존하는 여성의 신체를 성적인 목적으로 왜곡한 섹스돌 이미지를 통해 '인간다움'을 보여주겠다는 기획 의도부터 기만일 수밖에 없다. 작품은 포르노그래피적 재현에 불과하다"라고 비판했다.

 

인간은 왜 인간과 닮은 것을 제작하는가? 라는 의문에서 출발해 리얼돌과 AI를 비교하는 것, 욕구를 해소하기 위해 리얼돌을 구매하는 사람과 인공지능 로봇을 정치적 대안으로 제시한 정치인의 목적은 다를 수밖에 없다. 같은 비교 선상에 오르기에는 더더욱 접합점을 찾을 수도 없다. 여성이 여성의 몸을 만들어내는 구조적 시스템에 문제를 제기하려는 목적이었다면 여성을 위한 최소한의 배려라도 해야 했다. 그것이 국립현대미술관의 의무이자, 자신의 영향력을 인지하고 있는 작가의 도리다.

 

시스템을 고발하기 위해 포착할 장면에 시각적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모순이 아닌가. 노인 성폭력을 다룬 영화 <69세>가 누구에게도 상처 주지 않기 위해 폭력적인 장면을 연출하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 시각적 폭력을 최소화하기 위해 어떤 구도로써 연출할 것인지 고민하고 또 고민해야 하는 것은 작가 자신의 몫이다. 정윤석 작가도 리얼돌을 소재로 한 이번 작업이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는 것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를 올해의 작가 후보로 선정한 국립현대미술관 또한. 그들이 이번 사안을 교훈 삼아 공공성에 위배되지 않을 전시를 만들기 위해 앞으로도 충분히 논의하기를 바란다.

 

 

[이보현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이름
비밀번호
자동등록방지
54161
댓글13
  •  
  • bluecat
    • 국현미 리얼돌 논란에 할말이 많았는데 이렇게 정돈된 언어로 잘 풀어주셔서 읽는 내내 속이 다 시원했네요
      에디터님의 섬세한 통찰을 함께 공유할 수 있어서 감사한 마음입니다.
    • 0 0
    • 댓글 닫기댓글 (1)
  •  
  • lomila1073
    • bluecat최대한 이성적으로 통찰하기 위해 기울인 노력을 알아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의견에 공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0 0
  •  
  • mean
    • 좋은 기사 잘 보고 갑니다
    • 0 0
    • 댓글 닫기댓글 (1)
  •  
  • lomila1073
    • mean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0 0
  •  
  • 아무개
    •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여성을 천시하는 내용을 담은 작업을 예술이란 이름으로 포장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설령 예술이 맞다고 하더라도 비판에서 자유로워지는 것도 아니고요.
    • 0 0
    • 댓글 닫기댓글 (1)
  •  
  • lomila1073
    • 아무개저도 동의합니다. 의견 감사합니다.
    • 0 0
  •  
  • 장미
    • 좋은 논평 잘 읽었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혼란스러웠는데 잘 정리해주셨네요.
    • 0 0
    • 댓글 닫기댓글 (1)
  •  
  • lomila1073
    • 장미감사합니다.
    • 0 0
  •  
  • coco
    • 좋은 기사 잘 읽었습니다. 이번 사태에 대해 정돈된 언어로 통찰있는 글을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 0 0
  •  
  • 시선
    • 잘 정돈된 좋은 글 감사합니다. 마음 속으로 뒤죽박죽 엉켜있던 생각들이 에디터님의 정돈된 문장으로 되새기듯 돌아온 것 같습니다. 예술의 다양성과 창작의 자유보다 우선되어져야 할 것이 보편적 도덕이라고 생각합니다. 의도적으로든 본의아니게든, 보는 이로 하여금 상처를 주는 것이 과연 좋은 예술일지 생각해봐야 할 문제라고 여겨집니다. 다시한 번 좋은 글 감사합니다.
    • 0 0
  •  
  • ㅇㅇ
    • 작가한테 가장 중요한건 자신의 의도임. 그거조차 이해 못하는 것들이(심지어 대상화에 대한 공부도 부족한) 여성계가 작업을 평가질하니ㅉㅉ. 예술계과 괜히 대중을 무시하는게 아니지.
    • 0 0
  •  
  • ㅇㅇ
    • 예술에 대한 도덕적 잣대는 최소한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예술에 이러한 사회적 잣대를 허용한 결과값은 문화탄압과 창작의 자유 억압 뿐입니다.
    • 0 0
  •  
  • ㅋㅋㅋ
    • 뭐 불편해 하는건 자유지만 그쪽사람들 생각의 전개는 언제봐도 기막히다
    • 0 0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1.06.11, 22시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부일로205번길 54 824호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1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트(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