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의 소소한 '임솔아 작가론' - 희고 둥근 부분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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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임솔아 작가의 단편 소설 「희고 둥근 부분」을 소개하고자 한다. 앞서서 나는 임솔아 작가의 「내가 아는 가장 밝은 세계」를 소개하는 글을 쓴 바 있다. 이 글은, 앞서 쓴 글에서 임솔아라는 작가를 소개하는 데 부족했던 부분들을 보충하게 될 것이다. 이번 글까지 한, 두 편의 글을 통해 미흡하게나마 나만의 ‘임솔아론’을 만들어본다.
보름 전에 임솔아 작가가 10월에 발표한 단편 「내가 아는 가장 밝은 세계」를 소개하는 글을 쓸 당시에는 어째서 임솔아 작가가 이렇게 문제적인 소설을 써야 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렇게 생각했던 이유는 올해 상반기에 발표된 임솔아의 다른 작품들에서 현실에 가까운 서술, 사회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말하기 방식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상처받은 인물들, 그리고 그들의 사소한 연대에 대한 섬세한 묘사를 나는 기대했던 것 같고, 그러한 모습들이 올 상반기에 발표된 「희고 둥근 부분」과 「그만두는 사람들」에서 인상적으로 느껴졌던 것이다.
이 글은 내가 임솔아 작가의 작품 사이에서 느꼈던 간극, 그러니까 ‘이게 같은 사람이 쓴 글 맞아?’하는 그 기분에서부터 출발한다. 여름에 읽었던 「희고 둥근 부분」을 다시 읽으면서 올해 발표된 임솔아 작가의 작품들 사이의 일관성 같은 것을 알아보고 싶다. 그러니까, 「내가 아는 가장 밝은 세계」에서 느꼈던 충격이 사실 애초에 그 전조를 드러내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희고 둥근 부분」에서 마냥 작고 소중하게만 느껴졌던 인물들의 연대의 뒤에 어떠한 불편한 모습이 그려지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들을 추적해가면서 임솔아 작가의 작품세계의 매력을 다시 한 번 느껴보고 싶은 것이다.
이제 연말이 다가오고 속속 각 출판사의 문학상 수상작들이 발표되면서 한 해의 화제작들이 정리되고 있다. 「그만두는 사람들」이 김유정문학상 후보작, 「단영」이 현대문학생 후보작에 선정되는 등, 올해 임솔아 작가의 작품들은 여러 문학상에 노미네이트되었다, 아무래도 이제는 우리나라 소설계에서 그녀의 진가를 의심할 수 없게 된 것 같다.
한편 이번에 소개할 「희고 둥근 부분」은 문학과 지성사의 계간 프로젝트 <소설 보다>에서 2020년 여름의 ‘이 계절의 소설’로 선정되었다. 지난 글에서 「내가 아는 가장 밝은 세계」를 소개한 것에 이어, 이번 글에서는 「희고 둥근 부분」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 글이, 내가 임솔아라는 작가를 더욱 가까이서 관찰하고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되는 동시에 독자들이 임솔아 작가의 작품들을 찾아 읽는 계기가 될 수 있길 바란다.
「희고 둥근 부분」은 미주신경성 실신을 앓는 ‘진영’이라는 인물의 이야기이다. 뇌신경의 하나인 미주신경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탓에, 미주는 온몸에 힘이 풀려 누워버리게 되는 상황을 일상적으로 경험한다. 사립학교 계약직 교사로 일하고 있던 미주는 이러한 일상적인 위협으로 인해 학교측으로부터 해직을 권고받는다.
진영은 자신과 일상을 함께하던 사람들을 떠올린다. 진영의 이모는 진영에게 자신의 친구인 인숙의 얘기를 들려주곤 했다. 마작을 하며 놀고 있던 이모와 친구들을 찾아와, 인숙은 자신이 농약을 먹었다고 털어놓는다. 이모는 멀쩡한 그녀의 모습에 당황하지만 이내 마작을 같이 하며 놀았다. 인숙은 다음날 사망했다. 또 진영이 일하던 사립학교의 학생인 민채와의 기억도 떠올린다. 민채는 자해 행위로 손목에 생긴 상처를 진영에게만 보여준다. 교통사고 현장에서 다른 사람이 죽어가는 것을 피부로 느낀 바 있는 민채는, 모든 정신적 치료를 거부하며 진영에게만 마음을 열어놓는다.
학교를 관둔 진영은 이러한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를 모두 뒤로하고 2주에 한 번씩 고등학교 동창인 로희와 만나 서울과 경기도의 경계로 작은 산책을 떠난다. 경계에 위치한 동네들에서 진영과 로희는 맥주를 마시거나 자전거를 타며 소소한 여행을 즐긴다. 시흥동과 석수동의 경계에서 은행나무를 감상하면서, 그들은 작은 눈 알갱이를 맞으며 첫눈을 함께 맞이하게 된다.
날씨가 제법 쌀쌀해진 이 시점이 되어서 「희고 둥근 부분」을 다시 읽으니 제법 재미있게 느껴지는 부분들이 있었다. 진영과 로희가 첫눈을 맞이하는 그 장면이 쌀쌀한 날씨를 경험하고 있는 오늘날의 나에게 조금 더 생생하게 다가왔던 것 같고, 왠지 주인공들의 미묘한 감정들까지도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다.
물론 마냥 재미있게만 느껴지는 작품은 아니다. 현실의 불편한 지점들, 내가 경험을 하고 있든 그렇지 않든 어디선가 벌어지고 있는 현실의 이야기들이 소설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것 역시 눈에 띄었다. 작품 속에서의 불편한 장면들은 어쩐지 낯설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이었고, 이를 「내가 아는 가장 밝은 세계」와 관련지어 생각했을 때 생각할 지점들이 더욱 많아지는 것 같다.
「희고 둥근 부분」에서 발견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매력 포인트는 두 가지는 ‘불편함’과 ‘작품 구조’인 것 같다. 불편함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해보자면, 임솔아 작가가 그리고 있는 불편한 장면들은 눈앞에서 생생하게 재생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예를 들어 미주신경성 실신으로 인해 학교수업을 하게 못하게 되었을 때, 학교 행정실에서 보이는 반응이 이를 보여준다.
진영은 의자에서 일어났다. 다른 사람들처럼 왼쪽과 오른쪽을 번갈아 보았다. 플랫폼 중앙에 매점이 보였다. 진영은 매점에서 초코바를 구입했다. 두 입을 먹고 나서야 출근 시간이 지났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진영은 행정실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사정을 설명하고 대체 수업을 진행할 강ᄉᆞᆨ 있는지 물었다. 병원에는 가셨냐고 실장이 물었다. 갑작스러운 대체 수업에 따른 학부모 항의가 많은지라, 죄송하지만 진료확인서를 부탁드린다고 실장은 전했다.
- 『자음과 모음』 2020년 봄호 168쪽
학교라는 집단이 가끔은 우리 사회의 축소판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학생과 교사와 학부모의 삼원적인 대립 속에서 행동 지침이나 정책 같은 것들이 결정된다. 물론 그 삼원적 관계의 외부에는 사회의 교육정책과 교육현실이 지배직인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한편 그 모든 입장에서 소외된 계약직 교사도 있다. 진영은 사립학교의 계약직 교사다. 실신하여 쓰러진 사정을 설명했을 때 그녀에게 돌아온 것은 걱정이나 위로가 아니다. 자신의 행적은 설명하기 위한 진료확인서를 요구받을 뿐인 것이다.
이 외에도 소설 속에는 사회적 외면의 다양한 모습들이 등장한다. 의사는 미주신경증 환자에게 항우울제를 처방하고 있고, 학교는 징계위원회를 열어 진영을 사직시킨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을 들이는 것보다, 문제를 외면했을 때 발생하는 비판을 받아들이는 것이 훨씬 쉽기 때문에 이러한 일들이 일어난다. 그리고 이러한 일들은 어째 낯설지가 않다. 이러한 장면들을 그려내는 것이 작가 임솔아가 소설을 쓸 때 굉장히 공들이는 부분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임솔아 작가는 낯설지 않고 아주 그럴 듯하게, 그러면서도 많은 설명 없이도 외면의 장면들을 독자들에게 전달해낸다. 이 부분들을 읽으면서, 임솔아 작가가 확실히 독자들의 곁에 머물면서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그 다음으로 작품의 구조에 대해서 짚고 넘어가고자 한다. 작품 속에서 진영과 로희는 2주에 한 번씩 서울의 경계에 위치한 교외의 동네들을 거닌다. 그리고 그 공간에서 그들은 일상으로부터 벗어난 행위들, 일상에서 독립된 시간들을 보낸다. 진영이 일상을 보낸 장소인 학교와 병원이 서울로 추정된다는 점을 생각하면, 결국 서울은 사회의 무정함과 잔혹함이 머물고 있는 장소이고 진영과 로희가 서울의 가장자리로 함께 떠나면서 폭력으로부터 벗어나 함께 연대하는 것처럼 보인다. ‘경계’라는 공간에서 그들이 맥주를 마시고 자전거를 타고 은행나무 사진을 찍는 행위들이 사회의 고통 속에서 그들이 함께 견뎌나가는 한 가지 방법처럼 보인다.
그런데 여기서 「내가 아는 가장 밝은 세계」와 비교해서 볼 때, 「희고 둥근 부분」의 공간 설정이 더욱 흥미롭게 느껴진다. 「내가 아는 가장 밝은 세계」에서는 주인공이 활동하는 영역이 서울을 완전히 벗어난 교외 지역이다. 해당 작품에서 ‘나’로 지칭되는 주인공은, 서울에서의 생활에 염증을 느껴 교외의 지역으로 자리를 옮겨 생활을 이어나간다. 지하철 노선의 종점에 위치한 곳, 분위기도 한적하고 땅값도 저렴한 공간에서 프리랜서 작가로서의 생활을 꿈꾸던 주인공은 예기치 못한 현실적인 문제들을 봉착하고 점점 속물적인 인간으로 변해간다. 서울을 완전히 벗어난 교외의 공간에서는 그들만의 질서가 존재했고, 서울 외부에는 다시 그들만의 권력 구조가 존재했던 것이다.
임솔아가 「희고 둥근 부분」에서 주인공들을 서울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으로 보내지 않고 그들을 ‘경계’의 공간까지만 보낸 것에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서울이라는 공간이 사회구조가 너무 견고해서 인간적 여지가 주어지지 않는 공간이라고 해도, 일상을 사는 인간은 그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 일상적인 삶, ‘보통의 삶’을 유지해야 하는 인간은, 아예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지 못할 수 없다. 결국 일상적인 ‘서울’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사회의 일원으로 사는 동시에 자신의 인간적인 면을 챙기는 수밖에 없다. 임솔아가 그린 ‘경계’라는 공간을 나는 그렇게 받아들이고 싶다. 어쩌면 우리는 사회구조와 개인의 인간성 사이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면서 살아가야 하는지도 모른다. 어느 한쪽도 포기하지 않는 끊임없는 저울질로 스스로를 지켜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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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솔아 작가의 소설 작품들은 2015년에 시작하여 꾸준히 독자들에게 발표되었고, 그렇기 때문에 이 글은 2020년도 몇 개의 작품에 대한 글일 뿐, 임솔아 작가에 대한 총체적인 평가가 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앞서서 가치있는 작품들을 발표했고, 또 앞으로도 훌륭한 작품들을 발표할 임솔아 작가의 2020년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해주길 바란다. 「희고 둥근 부분」과 「내가 아는 가장 밝은 세계」를 비롯하여 그녀의 모든 작품들을 선택하고 감상하는 데, 이 글이 작은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임솔아 작가의 「희고 둥근 부분」이 실린
『소설 보다 : 여름 2020』과
『자음과 모음』 2020년 봄호
[한승빈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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