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책 선물 [사람]

글 입력 2020.11.22 0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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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친구를 만났다.

 

한 여름, 뜨거운 계절에 만났던 우리는 차가운 바람에 옷깃을 여미게 되는 쌀쌀한 계절에 다시 만났다. 그 사이 우리의 생일은 지나있었고, 그 사이 서로의 생일을 챙겨오는 것이 우리의 관례였다.

 

반가운 인사, 뒤이은 근황을 나누다 친구는 나에게 고심 끝에 골랐다는 선물을 내밀었다. 이런저런 부연 설명이 긴 것을 보니, 오히려 '고심했다'라는 말에 더 믿음이 갔다. 나는 머뭇거리며 편지를 내밀었다. 뒤 이어 '선물을 준비하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책을 즐겨 읽는 나는 책을 읽어가는 과정에서 우연히 떠오르는 사람에게 그 책을 선물하는 것을 좋아한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연히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면, 책을 선물하는 것이다. 구체적인 이유 없이 그저 '떠올랐다'라는 사실이 내가 책을 선물하는 궁극적인 이유이다. 그러니 나에게 '책을 선물한다'라는 행위는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에게 책을 선물하고 싶었다.


문제는 도통 그 친구가 떠오르는 책을 찾을 수 없었다는 것이었다. 떠오르지 않았다. 하는 수없이 책 선물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나는, 우리가 만난 장소가 아기자기한 소품 상점들이 많은 곳이었기에, 그곳에서 친구가 원하는 무엇을 선물하는 것으로 현실과 타협했다.

 

그전에 친구는 이곳에 자신이 가보고 싶었던 독립 서점이 있다고 말했다. 우리는 간단히 점심을 먹고 그 서점에 가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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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 도착한 우리는 잠시 각자의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문득, 시집 코너에 멈춰 선 나는 내가 좋아하는 시인의 이름을 찾았다. 마침 옆으로 다가온 친구에게 물었다. "너 이 시인 알아?"

 

시집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래? 그래도 이 시 한 편만 읽어볼래?" 생각보다 괜찮다고 말했다. "그치! 내가 처음으로 재미를 느꼈던 시집이었어." 그 시집을 선물해달라고 말했다. "시집을? 정말로?"

 

서점을 나서는 친구의 손에는 내가 추천한 시집이 들려 있었다. 나는 분명 그 시인에게서 그 친구를 떠올리지 않았는데. 처음으로 떠오르지 않았던 사람에게 책을 선물하는 경험을 한 것이다. 그저 잠시 들렀다 갈 것으로 생각했던 서점에서 나는 우연히 책 한 권을 발견했고 그 책을 타인과 공유하기에 이르렀다. 나의 철칙을 깨는 행위였다.


하지만 이내, 가슴 한편에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반대로 이제는 시집을 읽으며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이 생겼기 때문이다. 실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뿌듯함이었다. 용기를 내볼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떠오르지 않았어도, 떠올릴 수 있도록 만드는 일이 이렇게 기분 좋은 일인 줄 알았다면, 용기를 내볼걸!

 

 

[김규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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