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거대하고 얇은 음파의 베일 - 라메르에릴 한·러 수교 30주년 기념 음악회 [공연]

국악과 서양악의 메기고 받는 소리
글 입력 2020.11.19 16:47
댓글 1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포스터.jpg



라메르에릴의 이번 공연은 롯데콘서트홀에서 이루어졌다. 롯데월드몰의 1층을 조금 헤매다 콘서트홀 전용 엘리베이터를 찾아 올라가기를 8층, 아는 콘서트홀이라고 해봤자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이 전부인 나로서는 쇼핑센터의 위쪽, 지상 8층에 마련된 홀이 얼마나 클는지 궁금하기부터 했다. 도착한 로비 바깥쪽으로는 롯데타워가 보인다. 팸플릿 하나를 들고서 얼른 홀로 들어갔다.


홀은 생각한 것보다, 역시나 한참 컸다. 그리고 과연 좌우보다 위아래로 넓다. 여기서 음이 어떻게 퍼져 나갈는지 호기심을 느끼게 하는, 그런 구조. 2층 자리를 찾아 앉으니 저기 아래 1층 객석과 무대, 그리고 3층 양익 兩翼의 객석까지 훤칠히 잘 보인다. 위로 고개를 꺾으면 못해도 4, 5층 높이의 퍽 드높은 천정 아래로, 무대 장치가 잔뜩 달리어 있음이 잘 보인다. 이리저리 둘러본 다음 여남은 지루한 시간은 라메르에릴의 지난 광복절 음악회를 상기하며, 또 내가 쓴 이번 공연에 대한 프리뷰를 톺아보며 얼른 지나 보낸다.



[크기변환]KakaoTalk_20201119_135533398.jpg

 

 

이번 공연은 라메르에릴과 ARTE TV와 함께했으며, 공연이 궁금하신 분은 언제든지 유튜브를 통해 다시 보실 수 있다. 첫 곡은 아렌스키의 ‘차이코프스키 주제에 의한 변주곡’. 보시다시피 규모는 스무 명 남짓한 체임버 오케스트라다.

 

 


 

직관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내게 있어 클래식 콘서트의 즐거움은 첫 번째 곡에서 가장 크지 않나한다. 집에서 아무리 들어보아도, 이 현장의 음이 주는 질감은 늘 새로운 것. 첫 곡은 그러므로 귀를 틔우는 곡, 그러면서 찬찬히 음률을 씹어보고 귀에 익게 하는 순서이다.

 

쇄도하는 소리에 충분히 감동하고 난 다음부터, 저 안에서 바이올린과 비올라 소리를 나누어보고, 주선율 뒤에 자리하는 첼로의 반주 소리를 추적하며, 이따금 크게 울리는 콘트라베이스 소리를 캐치하게 되는 것이다.


첫 곡이 영상 21분 40초 즈음 마치고 난 다음 순서로 이영조님의 ‘소프라노와 현악앙상블을 위한 환희’(이하 ‘환희’)가 기다린다. ‘환희’는 지난 8.15 광복절 특별음악회에서 초연된 곡으로서 라메르에릴이 작곡한 곡이다. 한 번 들은 바 있는 노래이니만큼, 절로 흥미로운 비교가 전개된다. 성악이 있는 곡이다 보니 소프라노에 따른 음색의 차이점이 가장 먼저 다가온다.


한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이 옆으로 넓은 지층의 홀이라면, 여기 롯데콘서트홀은 위아래로 넓은 홀. 이곳에서 울리는 소리의 질감은 거대한 동굴을 연상시킨다. 특히 저음부의 첼로와 콘트라베이스가 저기 위 옴폭한 천장을 부딪고 내게로 찍어누르듯 떨어짐을 느끼는 것이 참 재미지다. 바이올린의 소리도 물론 풍부히 울린다. 전반적으로 촘촘하고 밀도 있는 질감이라기보다는, 벽을 부딪고 넉넉히 울려 퍼지는 푸근한 맛이다.


영상 35분, ‘환희’의 마지막 악장인 3악장은 아리랑 테마의 변주곡이다. 위아래로 넓은 홀에 소프라노의 아리랑 독창이 퍼지니 참 이상하다. 거대하되 얇은 음파의 베일이 위에서부터 내리 쓰이는 감각. 음의 밀도가 낮아 음의 전달력에 있어 정확성이 조금 희석되지만, 그만큼 아늑하고 풍성하며 신비한 감각을 불러일으킨다. 이것은 영상에서 결코 느껴볼 수 없는 감각.


 

자르기]Screenshot 2020-11-19 at 14.43.39.jpg

지난 광복절 특별음악회의 ‘환희’

라메르에릴 채널에서 다시 보실 수 있다.



다음 곡은 영상 42분 경, 임준희 작곡 ‘소프라노, 대금, 해금과 현악 3중주를 위한 독도환타지’(이하 ‘독도환타지’)이다. 프리뷰에서 입에 침이 마르도록 격찬한 바로 그 곡, K-클래식의 정수를 느끼게 해준 그 곡이다. 응당 고대했던 순서, 현장성을 더없이 잘 느끼기 위해서 예습을 많이 한 곡이다.


과연 차이는 단번에 느껴진다. 음의 시작을 알리는 대금으로부터 엄청난 폭의 진동이 터지듯 퍼져 나온다. 대금에 불어넣는 호흡이 음으로 화하기까지의 찰나, 그 순간에서 아직 음이 되기 전의 공명 자체가 커다랗고 순수한 진동으로 먼저 다가옴을 피부로 감각하게 된다. 이 또한 영상에서는 느껴지지 않는 것으로 보아, 아무래도 안타까울 따름이다.

 

투박하고도 생생한 이 진동, 대금이라는 악기의 매력이 이것일까. 그러나 놀랍게도 이 진동이 곧 대나무 통에 이리저리 부딪혀 음이 될 때는 참으로 아리따운 소리가 되어준다. 쓸쓸하고도 맑은 소리에 더불어, 대금 연주자가 한 번씩 호흡에 힘을 줄 때마다 느껴지는 카랑카랑한 쇳소리가 더없이 좋다.



자르기]Screenshot 2020-11-19 at 16.06.58.jpg



1악장의 주선율이 너무도 아름답다.

 

곡의 초반부는 보시다시피 대금이 리드를 하고 서양악 군이 배음을 맡는다. 시나브로 고조되는 곡의 분위기 끝에 서양악이 테마를 넘겨받아 대금과 주고받으며, 두 악기의 아이덴티티가 생생하게 비교된다. 우열을 가릴 수 없는 순수한 차이가 말이다.


대금을 통해 반복되는 이 악장의 테마를 바이올린이 재빨리 받는 그 순간 카타르시스는 터진다. 주선율의 플레이어가 대금에서 바이올린으로 바뀌자마자, 곧바로 완벽한 대비가 성립된다. 여기서 관악과 현악의 차이, 그 이상의 것을 순간적으로 체험하게 된다. 생각건대는 관악과 현악의 차이에 더불어 동양과 서양의 차이가 여기서 한순간에 대비됨으로써 차이점이 선명해지는 것이 아니었을지. 바이올린과 대금이 서로 비슷한 선율을 주고받는다. 두 악기가 비슷한 멜로디를 반복하는 것만으로도 ‘메기고 받는 소리’의 구성이 성립되는 듯하다.


영상 50분, 첫 악장을 마무리하니 여태 줄곧 참고 있던 해금 소리가 곧잘 뛰쳐나온다. 2악장은 동서양 현악의 대결, 역시나 메기고 받는 구성이다. 현악 3중주가 부르는 하나 된 소리에도 해금은 홀로 뒤지질 않는다. 의식에 스며드는 진하고 날카로운 국악의 소리. 2악장의 메인 테마는 ‘밀양 아리랑’의 변주인 듯하다.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으로 익히 알려진 밀양 아리랑 선율을 해금이 메기고 서양악이 받는다.



자르기]Screenshot 2020-11-19 at 15.54.39.jpg



국악기와 서양악기의 앙상블, 이것이 왜 이다지 사무치게 다가와 날 설레는지. 이 사안에 대해 공연 프리뷰를 적을 때부터 고심해보았다. 그리고 대금과 현악의 1악장, 해금과 현악의 2악장을 지나 영상 56분, 3악장에 이르러 모든 악기가 하나의 선율에 뛰어들어 하나의 앙상블을 만드는 그때 깨달았다.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서양 음계에 비교해 보았을 때 국악의 음계에서는 플랫음이 자주 들리온다. 아무래도 서양 음계에 익숙한 요즈음, 국악의 음계는 조금 낯설다. 대체로 따뜻하고 맑고 밝은 서양 장음계에 비하자면, 국악 음계는 호젓하고 쓸쓸하며 처량한 음색이 주를 이룬다는, 개인적인 견해를 여기서 밝힌다.



음정.jpg



국악 음계의 빈자리를 서양 악·서양 음계가 채워 들어오니, 나로선 국악에선 느끼지 못했던, 혹은 직감적으로 아쉼을 느꼈던 음계가 충족됨으로써 환희가 영근 게 아닌가, 이런 생각 하나가 불쑥 떠오른다. 그리고 이런 상념과 앙상블 위로 소프라노가 홀을 울리는 소리를 뱉는다. 높은 천장까지 고루 닿아, 사면에서 날아오는 고음역의 진동을. 이 앞의 나는 전율하지 않을 수 없다.


**


이후, 인터미션을 지나 라흐마니노프의 ‘노래하지 마오 아름다운 이여’와 차이코프스키의 ‘플로렌스의 추억’을 지나서 연주회는 끝난다. 나는 고대했던 ‘독도환타지’에 흠뻑 젖은 채로 여남은 시간을 지나 보냈다. 이후의 곡이 궁금하신 분께서는 영상을 마저 관람하시길 추천드린다.


나는 아직껏 ‘독도환타지’의 감동에 흠뻑 빠져 있다. 그런 중에 이 리뷰를 쓰기 위해 영상을 찾아 몇 번이고 반복해서 듣자니, 새로이 느껴지는 감동이 있고 여기선 느끼지 못할 현장의 감동이 있다. 현장에서 미처 듣지 못해 놓친 것들과 현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것들이 지금 떠오른다.


클래식 콘서트 직관이 하나하나 쌓여갈수록 알게 되는 것이란, 이렇듯 현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것들에 대함이다. 연주가 시작되자마자 벅차오르는 동시에, 고로 나는 서글퍼지는 것이란 내 그 순간 느끼는 감동이 망각의 소치인 까닭이다. 시간이 꽤 흐른 뒤 남는 것이라곤, 직관에서 너무나 벅찬 감동을 느낄 수 있더라는 메마른 진술에 불과한 것임을. 그러므로 별수가 없다는 결론을 내린다. 나는 종종 찾아와야만 하는 것이다, 콘서트홀을.


아무리 듣고 또 듣고, 돌려 들어도 영상을 통해서 재생되는 음악에는 현장성까지 담겨 있지는 않다. 마치 대금의 커다란 공명 같은 소리, 또 거대한 홀의 구석구석을 다 부딪친 뒤 내게로 닿는 울림음과 높은 천장에 맺힌 뒤 쇄도해 내리오는 거대하고 얇은 베일 같은 소리들이 말이다. 그러니 나는 여기에 이 감동의 추억을 소상히 적어두기로 한다. 다음 기회가 다시 찾아오면, 나는 내 적어둔 추억을 보고서 다시 이리로 이끌려 돌아와야겠다.

 

공연,

라메르에릴 한-러수교 30주년 기념 음악회였다.

 

 

포스터.jpg

 

 

 

아트인사이트 컬쳐리스트 태그.jpg

 

 



[서상덕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이름
비밀번호
자동등록방지
88700
댓글1
  •  
  • 이불
    • 선율의 표현이 생생하고 고스란히 느껴지는 듯해요. 많이 배웁니다. 좋은 글 감사해요!
    • 0 0
 
 
 
 

등록번호 : 경기, 아52475   |   E-Mail : artinsight@naver.com
발행인/기사배열책임자 : 박형주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형주
Copyright ⓒ 2013-2020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트(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