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내 친구 정일우, 당신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영화]

잊을 수 없는 향을 풍기는 그의 삶
글 입력 2020.11.20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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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은 여전히 가난뱅이들이 세상을 구할 거라고 믿고 계신가요? 상처받은 이들이 앞장서 싸워야 하는 이 현실은 과연 끝날 수 있을까요?"

 

"왜 그 싸움, 힘이 없는 사람들한테 맡겨 버리느냐? 왜 그 사람들만이 이 나라를 위한 싸움을 해야 되느냐? 얻어맞고, 다치고, 죽고 그렇게 함으로써 이 사회가 정의로운 사회가 된다면 저나 여러분들께서 그 덕을 볼 건데 ... ... 저나 여러분들 너무하지 않냐는 얘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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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가난뱅이가 나라의 미래라고 믿었던 사람이 있었다. 젊은 청춘의 나이에 머나먼 타국 땅으로 건너와 자신의 신념에 인생을 맡긴 사람이 있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래 수레바퀴처럼 반복되는 빈곤과 재개발의 현장에서 제일 낮은 곳에서부터 우리와 함께한 사람이 있었다.

 

많은 이들은 그의 외면이 예수와 닮았다 말하지만, 사실 그가 예수와 닮은 점은 인생의 서사이지 않을까. 그의 삶은 숭고했고 검소했으며 그는 웃음이 많았지만 타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사람이었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의 신념이 나와 같지 않더라도, 당신의 종교가 신부님이라는 역할에 익숙하지 않다고 하더라도, 이 영화가 당신에게 사랑과 애정을 전달할 수 있다는 확신을 하기에 앞으로의 글을 읽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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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 Vincent Daly



1935년, 미국 일리노이 주 아일랜드계의 아버지에서 태어난 John Vincent Daly는 신부가 되기로 결심한다. 예수회 신부가 된 그는 한국으로 건너와 예수회가 설립한 서강대학교의 교수가 된다. 그는 학생들에게 좋은 선생님이었다. 한 학년에 100여 명 정도였지만 그는 학생들의 이름을 모두 외웠고 학생들의 활동에도 열정 넘치는 모습으로 지지해 주었다.

 

민주화 운동으로 서강대 학생들은 반독재운동을 진행했다. 억울하게 처벌받는 학생들을 위해 그는 1인 시위를 하게 된다. 미국에서 건너온 신부의 행동은 사회의 관심을 모을 수 있었고 그는 조금씩 우리나라 사회의 최하층에서 국가를 지탱하고 있는 평범한 시민들에게 시선을 돌리기 시작한다.  그에게 대학에서의 생활은 더 이상의 가르침을 얻을 수 없었다. 그 시절의 대학은 사회의 엘리트층들만이 다닐 수 있었고 신부는 더 큰 보람을 찾기 위해 대학을 떠났다.

 

결국 그는 청계천에 있던 판자촌으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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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다른 일을 하기 위해 들어간 것은 아니었다. 매일 같이 판자촌에 거주하는 사람들과 대화를 하고 놀았을 뿐이다. 동료 신부가 와서 그에게 물었다. "정일우 신부님, 혹시 가난한 자들을 위해 어떤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십니까?" 신부는 웃으며 답했다. "아뇨, 그냥 있어요."

 

신부는 이런 말을 했다. '처음엔 가난한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고 싶어서 판자촌에 들어가서 살았다. 그런데 나중에 가니 내가 얼마나 비인간적인 생각을 한 것인지 알게 되었다.'

 

그는 빈민들과의 삶에서 아름다운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고 회상을 했다. 가난한 것이 그 사람을 판단하는 모든 척도에 영향을 주어선 안 된다. 오히려 세상과 교회가 그들을 구원하는 것이 아닌 그들의 노력과 땀, 피와 시간이 우리들을 구원해준다는 사실을 신부의 행동과 삶 속에서 느낄 수 있었다. 가난한 자들이 우리를 구원한다는 그의 말을 생각해보면 좋을 듯하다.

 

하지만 서울시 정책에 따라 청계천 판자촌은 허물어진다. 강제 이주 된 주민들과 함께 신부는 양평동 판자촌으로 가게 된다. 그곳에서 혈육과 다름없는 끈끈한 관계를 갖게 되는 '제정구'를 만나게 되고 철거민들과 의기투합하여 경기도 시흥에 자신들만의 보금자리를 만든다. 그 동네의 이름은 '복음자리'이다. 직접 벽돌을 올리고, 울타리를 세운다. 이윽고 과거의 빈민들은 몇 년에 걸쳐 땅값을 갚아나갔고 그들은 앞으로 살아갈 터전을 마련했다. 그 중심엔 정일우 신부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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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정일우, 정제두, 정제두 씨의 부인)

 

 

거대 자본과 정부에 대하여 건물뿐만이 아닌 사람의 마음과 몸이 허물어지지 않게 한다는 것은 참으로 대단한 일이다. 눈앞에 놓인 거대한 벽을 마주한다면 무력감을 느끼겠지만 정일우 신부는 매번 철거민들과 함께하는 삶 속에서 그들을 끌어주고 밀어주었다.

 

재개발과 철거와 함께 생겨나는 빈민들은 단지 과거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현재에도 지속되고 있고 현장을 가보면서 느낀 달라진 점은 세대가 넘어왔다는 불가피한 사실 밖에 없다. 당장에 단절될 수 있는 희망이 존재하는 문제가 아니다. 앞으로도 순환될 것이고 이 글을 읽고 있는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의 방식을 정일우 신부님을 보면서 우린 배울 수 있다.

 

신부는 이어 상계동에 위치한 판자촌으로 이동한다. 그는 제 2의, 3의 '복음자리'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지만 쉽지 않았다. 매일 밤같이 찾아오는 용역들로 인해 밤하늘이 주민들의 천장이 되었고 빈민들은 더욱 가난해졌다. 그런데도 정일우 신부는 '우리는 더욱 가난해졌으니, 오히려 잘 된 것.'이라며 멈추지 않았다.

 

'정일우'라는 명성과 언론매체들의 관심으로 성금과 구호물품이 모이게 되었다. 김수환 추기경도 방문하며 정일우 신부와 철거민들을 응원해주곤 했으며 삶은 더욱 힘들어져도 특유의 장난과 웃음은 그치질 않았다.

 

하지만 모든 들꽃의 향이 좋을지언정 겉이 다를 수밖에 없으니 사람들의 생각 또한 모두 일치하지 않았다. 어느 정도의 보상이 사람들에게 이루어지자 끈끈한 공동체를 형성했던 철거민들도 흩어지기 시작했다. 정일우 신부도 이후 시골로 내려왔다. 빈민운동가였던 신부는 농촌운동가로 변화했다. 작은 텃밭에서 감자를 캐고 오는 손님마다 막걸리를 대접하는, 어느 마을 입구에 위치한 정자에서의 모습이 잘 어울리는 사람이 되었다.

 

주변은 매번 달라졌지만, 한결같은 모습을 보여주는 사람이 정일우 신부였다.

 

 

 

#사람 정일우


 

 

"제 소망은, 죽기 전에 인간이 되고 싶은 거예요. 다른 것이 없어요. 맨날 주님한테 기도하는 것이고 캄캄하다는 것을 맨날 느껴요. 사실상 인간이 뭔지도 모르는데 도저히 정의할 수 없어요. '인간이 이것이다'"

 

 

정의가 무엇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상황과 시대에 따라 항상 변화하는 그 가치가 중요한 것일까에 대한 의문을 가진 적도 있다. 사회와 진실을 거부한 채 눈앞의 행복을 추구하는 게 달콤하게만 느껴졌다. 자본과 권력은 빈부의 골을 더 깊이 파고들고 있고, 가난은 더욱 무섭고 부끄러운 것이 되어가고 있다.

 

사람을 아끼고 구원을 약속한 정일우 신부야말로 인간의 정의를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영화를 보면서 정일우 신부에 대한 감사함과 나에 대한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이 복잡하게 얽혀졌다. 예수가 될 수는 없으나 사람 정일우가 되고자 한다. 이게 정일우 신부의 생각이었고 이젠 나의 신념이 되어가려 한다.

 

도시 빈민이라는 사회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하는 사람은 몇몇 있지만, 그들과 일생을 같이하고자 한 사람은 본 적이 없다. 이론과 논리로는 사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생각이었을까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누구도 하지 못한 기적을 이뤄냈다.

 

제일 낮은 곳에서 그들과 살아온 것, 그리고 그들이 삶에 대한 희망을 찾을 수 있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 것. 정일우 신부가 돌아가시고 나서도 그를 회상하고 추억하는 이들이 많다는 것은 그가 아름다운 사람을 많이 만난 것뿐만이 아니라 그 또한 무척이나 아름다운 사람이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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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자신을, 그리고 상대방에게도 우린 '깨진 꽃병'이라 했다. 무슨 의미였을까 영화가 끝나고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

 

세월과 사회의 풍파에 지쳐 마음에 날 선 조각이 나 있는 사람들에게 위로를 전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혹은 꽃병의 존재 이유가 아름다운 꽃을 담는 것처럼 각자의 꿈을 품을 수 있다는 가능성과 희망의 말을 하고 싶으셨던 것일까.

 

이제 신부는 세상에 없지만, 여전히 그의 신념과 진심은 세상을 돌아다니고 있을 것이다. 언젠가 퇴색되기엔 그는 너무나 숭고했고 사랑받았으며 모든 이들이 그를 바라보며 행복을 느꼈기 때문이다. 사람 정일우, 그와 가까워지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다.

 

 


#다큐멘터리


 

다큐멘터리의 내레이션이 정말 인상 깊었다. 처음엔 의문점이 들었다. 전문 성우의 느낌은 나지 않았고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이 직접 녹음을 했나 싶었다. 서투름이 느껴졌고, 문장마다 떨림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내 친구 정일우' 작품의 감독인 '김동원' 감독, 그의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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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정일우 신부의 모습을 직접 촬영하며 2017년 다큐멘터리 영화로 제작을 완성하게 된다. 단순히 정일우 신부의 삶에 관심이 생겨 제작한 영상이 아닌 누군가를 사랑하고 존경하는 마음을 기록하기 위해 기획을 했다는 생각이 영화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정일우라는 사람에 대한 객관성을 보장하긴 애초에 힘들지 모르지만, 감독의 시선에서 바라본 정일우라는 사람의 모습을 최대한 진실하게 담았다는 점에서 감동적이었다. 김동원 감독에게 이 영화는 필모그래피의 한 장면 채우는 의미에서 벗어나 정일우 신부를 위한 헌정의 의미를 갖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그래선지 먹먹하게 들리는 내레이션이 그렇게 매력적으로 들릴 수 없었다. 감독이 왜 신부를 영화에 담고 싶어했는지는 영화의 내용을 전부 봐야 이해하겠지만, 당신이 신부를 생각하는 감정만큼은 처음 몇 마디의 읊조림만으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누군가의 삶을 영화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영감을 준 삶을 살았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다큐멘터리의 매력이 이거다. 스크린 앞에 앉은 한 시간에서 두 시간으로 인물과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다. 등장인물의 삶을 음미하면서 성숙해진다. 다른 장르에 비해 특성상 지루할 수도, 템포가 느리다고 느껴질 수도 있지만, 오히려 그런 점이 큰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내 삶과 상대방의 삶을 공유하고 서로 감상할 수 있다는 점은, 그리고 그 방식이 굉장히 섬세하고 차분하며 조심스럽다는 점이 다큐멘터리라는 장르의 매력이다. 여행을 다니는 것과 비슷하다. 예기치 못할 때 새로운 인연을 만나고, 첫 인상과 다른 매력을 발견하면 즐거움이 느껴진다. 자신의 취향과 맞지 않는 곳에 가버리는 선택을 할 수도 있지만, 그것도 훗날 돌이켜 보면 좋은 추억으로, 하나의 배움으로 남는다.

 

다큐멘터리라는 장르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앞으로 다큐 리뷰 글을 종종 올릴 것 같다. 다큐라는 장르에 흠뻑 빠지고 싶은 사람이 이 글을 읽고 있다면 앞으로도 계속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 당신과 몇 번의 여행을 더 떠나고 싶다.

 

 

 

#에필로그


 

지난 5월부터 도시빈민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 중이다. 그래서 영화를 보면서 영감을 얻기도, 작업에 대한 자신감과 책임감을 느낄 수 있었다. 정일우라는 신부에 대한 성스러운 영화일 줄 알았건만, 예상치 못하게 얻어가는 내용이 많은 영화였다.

 

촬영하러 다니고 있는 지역도 정일우 신부의 발자취가 남겨진 곳과 무척이나 유사하다. 철거민들은 갈 곳을 잃었고, 다른 지역으로 쫓겨나듯 이사한다. 하지만 언제나 그들의 신분은 예비 철거민이다. 정일우 신부와 같은 사람들의 노력이 있었음에도 여전히 존재하는 문명 발전의 그림자는 안타깝기만 하다.

 

문명이 발전하고 세상이 바뀌어나가겠지만 '내 친구 정일우'라는 영화는 잊히지 않고 꾸준히 회자할것이다. 한때 이런 사람이 존재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겠지만, 그때마다 신부를 동경하는 사람들이 나타난다면, 언젠가 이 끔찍한 빈곤의 수레바퀴의 순환이 끊기길 희망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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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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