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앤디 워홀, 그의 '외상적'(the Traumaitc) 팝아트

자의적으로 선전된 "유토피아" 속 난무하는 '가짜' 실재의 폭로
글 입력 2020.11.15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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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세기를 대표하는 미국의 예술가, 앤디 워홀


 

앤디 워홀(Andy Warhol, 1928-1987)은 20세기 중후반을 대표하는 미국의 상업미술가 중 한 명으로, 그 자신의 독창적인 미술 기법인 ‘팝아트’로 유명세를 얻은 인물이다. 팝아트란 ‘대중 예술(Popular Art)’을 가리키는 용어로, 해당 사회에 보급된 매스미디어의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차용한 반(反)예술적 미술 사조를 뜻한다. 이 사조는 기존의 예술이 옹호했던 낭만주의적 가치, 다시 말해 ‘예술다운 것’을 지향하는 행위를 배격하고 현재 사회에서 포착되는 윤리적인 문제들을 예술을 통해 드러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20세기의 대표적인 팝아트 선구자로서 앤디 워홀은 자신의 작품을 통해 1960-1980년대 미국 문화에 내재된 상품주의와 소비주의의 향락을 적나라하게 표현했다. 캔버스 위에 그림을 그렸던 기존의 회화 작업 방식과 달리, 워홀은 영화배우 등 유명인을 아이콘의 초상 형태로 만들거나 공산품의 상품 이미지를 기계적으로 양산하는 등 상품문화의 대표 격인 인물들과 사물들을 예술로 끌어들이고자 노력했다. 이로써 냉전 체제가 지속되던 와중, 미국에서 신자유주의 및 자본주의 이데올로기가 제일의 원리로 격상되던 시기에 미국 사회의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었던 소비중심주의, 황금만능주의의 단상을 공격적으로 포착했다.

 


 

2. 앤디 워홀의 ‘외상적’(the Traumatic) 팝아트


 

정신분석학적 연구에서 ‘외상’(Truma)이란 인식 주체가 내부 혹은 외부에서 얻은 강력한 자극으로 인해 정신적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현상을 가리킨다. 정신분석학 용어사전에 의하면 “이때 [주체의] 자극 장벽이나 보호막이 깨어지고, 자아는 압도되어 중재 능력을 상실한다.” 이러한 외상적 경험들은 동일하거나 유사한 외상에 대한 자아의 대처 능력을 떨어뜨리게 한다. 결과적으로 주체는 원래 직시하고 있던 눈앞의 현실에서 멀어져, 현실 이면에 존재할 잠재적인 위협을 우려하며 외상이 다시금 발현할 수 있으리란 불안감에 시달리게 된다.

 

앤디 워홀의 팝아트는 이와 같은 외상적 특징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그가 활동하던 시기 미국 소비문화에 내재된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의 폭력성을 선보인다는 점에서 독창적이다. 공산품을 대량으로 복제한 이미지나 미국 대도시의 풍경을 담아낸 사진들을 콜라주 형태로 덧붙인 이미지를 통해, 워홀은 미국이 전세계에 자랑하던 자국의 ‘수준 높은’ 대중문화가 사실은 농도 짙은 상업성으로 무너진 개인의 윤리관을 전시하고 있을 뿐이라고 비판한다.

 

 

 

2.1. 핼 포스터의 외상적 실재론


 

핼 포스터가 1996년에 미술학계에 제시했던 외상적 실재론은 자크 라캉의 정신분석학적 논의에 그 모태를 두고 있다. 포스터가 설명하길 라캉은 언어를 사용하는 주체로서 인간이, 언제나 자신이 거주하는 ‘상징계’(the Symbolidc)의 바깥에 존재한다고 본다. 즉, 라캉의 시선에서 우리의 현실은 온갖 상징과 규정으로 가득한 세계다. 특정한 정상성에 부합하는 사회 구성원을 길러내기 위한 규범과 정의(definition)들로 채워졌다는 것이다. 인간 주체는 상징을 받아들이는 존재로서 상징계 바깥에 서서, 상징계에 존재하는 ‘가짜’ 실재를 받아들이면서도 동시에 ‘진짜’ 실재(the Real)를 마주할 수 있는 가능성에 발을 딛고도 있다는 논지다. 라캉에 의하면 이러한 진짜 실재와 주체와의 만남은 ‘어긋난’ 형태로만 가능하다.

 

이를테면 “개인은 자유롭게 부를 축적할 권리가 있다”라는 등 자본주의의 긍정적인 면모를 강조한 경제 가치관으로 상징되는 ‘가짜’ 실재 이면에,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개인이 이윤 창출의 수단으로 전락한다는 ‘진짜’ 실재가 존재한다. 개인은 평소에 가짜 실재만을 보며 자본주의 사회의 충실한 구성원으로 살아가며 그편이 옳다고 믿지만, 예기치 않은 사건으로 진짜 실재인 사회의 상흔을 목격함으로써 자신이 믿었던 가치가 잔인한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는 외상을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어긋난 만남으로도 실재는 외상을 일으킨다. 즉 실재는 외상적이고, 외상의 충격은 실재의 존재를 확증한다.”

 

이때의 만남이 어긋난 만남인 이유는, 정상적으로 삶을 영위하는 평소 상황에서는 그런 외상을 겪을 일이 없기 때문이다. 외상이라는 신경증적 현상이 동원되는 특수한 상황에서만 개인은 실재 이면에 존재하는 또 다른 실재를 마주할 수 있다. 가짜 실재가 정상으로 제시되는 세계에서, 진짜 실재는 “[현실 속에] 재현될 수 없고, 단지 [외상적 경험을 통해] 반복될 수만 있을 뿐이며, 반드시 반복되고 만다.” 핼 포스터는 외상적 실재론의 핵심이 이처럼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매개된 어긋난 만남을 반복함으로써 외상의 충격을 끊임없이 재생산해, 진짜 실재를 계속 개인 앞에 내놓는 것에 있다고 주장했다. 한 번 충격을 입은 주체는 다시 일상을 평범하게 살아가더라도, 조금이라도 유사한 체험을 할 때마다 똑같은 외상을 여러 번 직면하면서 그 외상에 익숙해지는 동시에 다시 무의식적으로 자기 자신에게 외상을 입히는 과정을 반복하게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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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외상적 실재로서 미국의 후기 자본주의 사회


 

포스터에 따르면 앤디 워홀의 작품은 이러한 외상적 실재성을 적극적으로 이용해, “실재로부터 외상적 충격을 받은 주체가 반복을 통해 그 충격을 완화시키면서 실재를 회피하려고 하는 동시에, 반복을 통해 그 충격을 유발하면서 실재를 제시하기도 하는 작업”을 완성했다. 이때 충격을 주는 외상적 실재의 배경은 미국 후기 자본주의에 내재된 산업화, 표준화의 논리에 있다. 냉전으로 인한 소련과 미국의 대립이 격화되고, 두 초강대국의 이데올로기 싸움이 지속됐던 1960-1980년대에 워홀은 미국이 대외적으로 부의 상징이자 발전 국가의 모범으로 여겨졌던 ‘가짜’ 실재 뒤에 존재하는 ‘진짜’ 실재, 다시 말해 산업화의 논리에 매몰돼 인간적 감수성을 잃고 상품화와 자본을 찬미했던 양상을 작품으로 들춰냈다.

 

워홀의 눈에 비친 당대의 미국은 대외적으로 냉전의 최전선을 대표하는 강대국이었다. 자본주의는 미국이 냉전의 한가운데에서, 성공적인 근대화를 이뤄 부국이 될 수 있었던 강력한 지표로 쓰였다. 오드 아르네 베스타에 따르면 “미국 엘리트는 미국의 핵심 ‘국익’이 서로 다른 방법을 통해 자유로운 시장을 세계로 확장하는 데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대통령은 시장의 자율성을 보호하고 이익을 추구할 수 있는 개인의 권리를 최대한으로 보장하기 위해 힘써야 한다고 여겼다. 이윤을 정당한 수단을 동원한다는 전제 아래 무한대로 추구하는 것이 ‘진정한 자유’로 상징됐다. ‘자유로운’ 미국 국민은 국가의 규제나 계급적 지위에 상관없이 누구나 부유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의 시대에서 살아가기에, 자유로운 존재로 천명됐다. 베스타가 지적했듯 195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시장의 신격화는 미국 대외 정책 이데올로기의 자본주의적 요소가 가장 극단적 형태로 나타난 결과물이었다.”

 

미국은 이처럼 자본주의를 국가의 이데올로기로 전시하면서, 자국의 영향력을 제고해 소련을 견제하고자 1950년대 중반부터 제3세계와의 외교와 해당 지역 국가를 겨냥한 원조 정책을 펼쳤다. 이 가운데에서 자본 축적의 원리와 소비주의의 위상은 지나치게 격상됐고, 한 사회를 규율하는 이데올로기로서 자본주의를 감당하기 위해 미국은 자국 내에서 그러한 이데올로기들이 묻어난 흔적들을 공격적으로 대중에게 선보일 수밖에 없었다. 대중문화 전반에 값싼 오락물을 대량으로 보급했던 것이 그 예시다. 텔레비전과 라디오 등 방송 매체가 대중화되기 시작했고, ‘질보다 양’을 우선시한 영화·코미디 쇼 등의 프로그램이 무수히 만들어졌다. 뿐만 아니라 간편식 음식처럼 저렴한 공산품들이 소비 시장에 쏟아지기도 했다.

 

핼 포스터의 외상적 실재론을 적용하게 되면, 이 때문에 워홀의 입장에서 ‘가짜’로 표상된 자본주의 세계는 더욱 공고해져 간다. 대중이 자신을 둘러싼 세계에 의문을 제기할 틈도 없이 자극적인 연속극과 코미디언들의 쇼, 시각적인 재미를 강조한 뮤지컬들이 쏟아지면서 국가 측은 이런 작품들을 자유롭게 감상하며 문화생활을 누릴 수 있는 자유를 개인에게 제공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즐길 거리도 살 것도 풍요로운 동시에 이 모든 상품을 개인의 능력이 허용하는 한 마음껏 누릴 수 있다는 ‘자유로운 미국 시민’의 이미지를 쌓아나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유흥거리를 즐기지 못하고 당장의 생계를 고민해야 하는, 자본주의에서 버려진 가난한 이들의 삶은 가려진다. 자본주의의 혜택을 받지 못한 채 자본주의가 강요하는 경쟁 체제에서 생존하지 못한 사람들의 고통이나, 자본주의의 논리에 잠식돼 이윤을 창출하지 않는 모든 것들을 무가치하다고 쉽게 단정하는 이들의 비인간적인 면모는 표상된 실재의 세계에서 철저하게 가려진다. 전자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존재 자체가 그 사회에서 지워지기 마련이며, 후자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그 자신이 인간성을 잃고 있다는 자각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상황에 처한다.

 

곧이어 본격적으로 살펴보겠지만, 앤디 워홀의 작품에 나타나는 주제의식의 이중성―당대 미국의 소비주의 사회가 제공하는 물화의 이미지를 수용하면서도, 그런 이미지를 통해 미국 이데올로기의 물질만능주의적인 성격을 역설적으로 가장 잘 보여준다는 점―은 자본주의 세계의 이면에 존재하는 진짜 실재로서 이러한 폭력적인 결과들을 작품에 끌어오는 혁신을 창출한다. 권력층에 의해 자의적으로 규정된 가짜 실재를 경유해 진짜 실재를 선보임으로써 자신이 믿어왔던 세계가 무너지는 체험을 당대인들, 특히 후자에 속하는 개인들에게 제공하는 것이다. 따라서 앤디 워홀이 발을 담그고 있었던 후기 미국의 자본주의 사회는 그 자체가 그릇된 실재면서 세계에 대한 진실된 이미지를 충격적으로 체험할 수 있게 할 외상적 실재였던 셈이다. 하지만 뒤이어 살펴보겠으나, 이러한 외상적 실재는 일시적으로 직시된다는 한계점을 가지고 있다. 끊임없이 보급되는 값싼 대중문화의 산물들로, 혹은 유사한 방식으로 사회가 개인에게 주입하는 이데올로기적 정상성을 받아들여 이들은 외상으로 인해 겪었던 충격을 망각한다. 그럼에도 모종의 계기로 진짜 실재들을 계속 접하게 되면서 개인은 실재들이 가져오는 충격에 오히려 익숙해져, 그러한 충격을 정상적인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경험하는 것으로 단정하게 된다.

 

 

 

2.3. 상품 이미지 차용을 통한 ‘미국적인 것’의 표면적 수용


 

양차 세계대전 이후 냉전 체제가 도래하기 시작했을 때, 미국은 20세기가 도래하기 전까지 유럽이 쥐고 있었던 예술계의 주도권을 자국으로 가져오고자 노력했다. 유럽에서는 점차 모더니즘 미술, 즉 시각적 유사성을 중요한 요소로 여겼던 이전까지의 회화를 거부하면서 실제 세계의 재현을 포기하는 ‘유럽 아방가르드’가 시작됐던 시기였다. 양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냉전에 돌입하려고 했던 바로 그 시기에, 미국은 유럽 정신사의 산물인 예술을 자국 문화에 들여옴으로써 정신적인 차원의 열등의식을 극복하려던 생각이었다.

 

이에 분업의 원리에서 유리되는 것을 목적으로 삼았던 유럽의 순수 미술에 대항하는 격으로, 미국은 자국의 근대성을 표현할 수 있는 예술의 하위 영역으로 회화를 지목했다. 잭슨 폴록이 속한 추상표현주의 사조가 그 증거다. 특히 드립 페인팅 기법으로 그렸던 폴록의 작품들은 ‘미국적인 것’을 대변하기에 알맞았다. 1948년에 마셜 플랜이 시작된 이후, 본격적인 냉전이 시작되고 있었던 때 미국은 ‘미국적인’ 색깔, 다시 말해 “그 무엇에도 구애되지 않는 듯한 해방된 감성을 자랑하는 자유분방한” 분위기를 보여줄 수 있는 여러 문화 생산물들을 세계 곳곳에 전파해 자국의 위상과 영향력을 드높이려고도 했다.

 

이처럼 ‘미국만의’ 예술을 확립하려는 강박에 휩싸이면서 미국은 폴록을 시작으로 다양한 예술 분야를 ‘전략적으로’ 육성했던 것이다. 가짜 실재가 난무하는 자본주의 세계를 예찬하고자 또 다른 가짜인 실재로 미술을 간주한 결과다. 이 때문에 미국이 내세웠던 미국적인 미술작품에는 뚜렷한 형체가 없다. 온갖 종류의 물감으로만 화면을 채웠던 잭슨 폴록의 페인팅 작품들을 예로 들 수 있다. 캔버스에서 특정한 사물이나 사건의 현장, 인물 등의 대상이 부재한 상태를 미국의 문화정책 전문가, 비평가들은 자의적인 의미를 불어넣을 수 있는 여지로 해석했던 것이다. 재현적인, 고정된 사물 없이 형형색색의 물감만 난무하는 캔버스의 화면은 미국적인 자유로움을 대변할 수 있는 근거로 채택됐다.

   

 
“…그가 1963년 맨해튼의 이스트 47번가에 차린 작업실 이름은 적절하게도 ‘공장’(Factory이었다. 예술의 산업화 혹은 예술과 문화산업의 상호 침투를 예견하는 명명이다. 이 공장에서 워홀은 상품―이미지 세계 속의 새로운 존재 방식을 드러내고 펼쳐냈다. 명예가 유명세 아래, 뉴스 가치가 악명 아래, [예술작품의 숭고함이 빚어내는] 아우라가 화려함 아래, 그리고 카리스마가 과장 광고 아래 포섭돼버리는 세계에서 그는 현장의 제보자로서 … 잊을 수 없는 이미지들을 찾아내는 안목을 감추고 있었다.” (조주연, "현대미술강의" 중)
 

 

이런 상황에서 앤디 워홀은 자본주의 사회가 부추기는 상품사회의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차용해 ‘잘 팔리는’ 예술작품을 만들고자 했다. 핵심은 제품의 겉면 포장이나 제품 자체, 혹은 사람의 초상을 찍은 사진 등 복제된 이미지를 즐겨 썼다는 것에 있다. 당대 미국은 형상이 없는 추상미술처럼 미국의 자본주의적인 모습들을 감출 수 있는 미술 사조를 선호했다. 하지만 워홀의 창작 기법이 보여주는 것은 정확히 그 반대에 위치했다. 그에게 미국 사회는 외상적 실재를 작동시킬 장이었기에 오히려 미국의 상품사회가 제공했던 저급 대중문화 TV 프로그램이나 공산품 디자인의 이미지를 공격적으로 활용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예술과 문화산업, 즉 고급 산물과 저급 산물 사이의 경계를 흐려서 주체가 외상을 경험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했던 것이다.

 

워홀의 작품 세계관은 가짜 실재를 미술의 핵심 재료로 삼아 가짜 실재 이면의 실재를 외상을 일으키는 방식, 부연하자면 개인에게 자신이 일상을 영위하고 있는 현실이 자본과 물질을 최상의 가치로 여기는 가면으로 위장된 공간임을 깨닫게 해 충격을 선사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그런 점에서 워홀의 예술작품은 그가 엄격하게 의도했든, 그렇지 않든 냉전이 절정에 다다르던 시기 미국이 전세계의 모범 국가로 자처하면서도 끝내 지울 수 없었던 모순점을 명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역사적이다.

 

 

 

3. 팝아트 속 외상의 반복적 발현: 미국 이데올로기의 폭력적 이면


 

이때 핼 포스터는 앤디 워홀의 창작 기법이 외상적 리얼리즘의 차원에서 ‘충격 받은 주체성’과 ‘강박적 반복’이라는 테제를 따라간다고 주장한다. 포스터에 따르면 워홀의 테제는 물화된 세계에 익숙해진 비주체성(nonsubjectivity)의 인물 배후에, 그렇게 충격을 경험하게 하는 어떤 주체가 존재해야 함을 우선적으로 제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충격을 받은 주체란 현실 세계에서는 모순어법에 해당한다. 이때의 충격은 자본주의 사회에 결함이 존재한다는 자각을 제공하는데, 가짜 실재의 세계에서는 이를 누군가 자발적으로 제공하려는 사람들이 극히 드물다.

 

따라서 이런 배후의 주체가 누구인지는 절대로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 초래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포스터는 외상적 사건을 반복적으로 캔버스에 드러내는 워홀의 창작 방식이 프로이트가 규정했던 것처럼 이미지를 단순히 복구하는 차원에 머무르지 않는다. 워홀의 반복은 단순히 외상의 결과들을 재생산하기만 하지 않고 외상의 결과들을 직접 그 자신이 ‘생산하는’ 차원으로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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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작품 ①: “캠벨 수프 통조림”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문화비평가 롤랑 바르트(1915-1980)에 따르면 앤디 워홀의 팝아트는 예술의 가치를 전혀 다른 차원의 것으로 바꿨다. 팝아트의 미술사적 가치, 나아가 역사적 가치는 모멸적이라 규정된, 이를테면 저급 대중문화 범주로 보급된 문화 생산물의 이미지를 있는 그대로 이용하는 것에서 나온다. 이런 이미지들의 경우 그 자체로는 “단지 진부한 방법론이나 제작 방식에 따라 끊임없이 똑같은 형태를 만들어내며 재생산될 뿐인, 무의미하고 공허한 생산물”에 불과하지만, 그런 속성 때문에 누군가가 이미에 특정한 함의들을 불어넣고자 넣고자 할 때, 그것을 있는 그대로 수용해 지시체로 기능한다는 것이다. 바르트는 이러한 이미지의 예시로 사진을 든다.

 

그는 사진이 실제 현실을 사실적으로 재현하는 과정에서 전통적인 회화와 빈약하게 연결고리를 만들어 오던 와중, 팝아트의 등장으로 사실성에 기인해야만 했던 한계점에서 벗어나 팝아트가 탄생하는 기원으로 격상했다고 주장한다. 나아가, 사진 매체를 이용해 팝아트의 지시체적 성격을 온전히 드러낸 예술가로 앤디 워홀을 지목한다. 워홀은 동시대 미국이 대내외적으로 자국의 이데올로기를 정상 국가의 모델로 제시했던 가운데, 자본주의 세계관이 감추고 있었던 내적 폭력성을 오히려 자본주의 세계관이 전면에 내세우는 대중문화의 사진적 이미지를 이용해서 폭로한다는 것이다.

   

 
“워홀의 매력은 이 배후[외상을 제공하는 것]의 주체에 관해 누구도 결코 확신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충격받은 주체성과 강박적인 반복이라는 이러한 개념들은 워홀의 페르소나와 이미지들에서 반복이 맡은 역할을 재설정해 준다. … ”『팝피즘(POPism)』에서 워홀은 따뜻함과 반복, 지배에 대한 이런 포용에 대해 다음과 같이 주석을 달고 있다. “나는 그것이 본질적으로 똑같은 것이 되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그것이 정확히 똑같은 것이 되기를 원한다. 왜냐하면 정확히 똑같은 것을 보면 볼수록, 의미는 점점 더 사라지며, 느낌은 점점 더 좋아지고 점점 더 무심해지기 때문이다.” (핼 포스터, "실재의 귀환" 중.)
 

 

이러한 폭로는 ‘반복’을 통해 가능해진다. 외상적 실재를 개인 앞에 끊임없이 내놓음으로써 가능해지는 것이다. 개인은 처음 외상을 겪었을 때 느꼈던 충격을 잊지 못하고, 비슷한 이미지를 마주칠 때마다 이전에 겪었던 고통을 떠올린다. 반복적으로 외상을 체험하게 되면서 충격에 무뎌지고, 유사한 체험을 하는 것에 익숙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앤디 워홀을 비롯한 외상적 실재론자들은 오히려 이렇게 외상적 경험에 익숙해졌다고 스스로 생각함으로써, 익숙해진 충격을 현실에 무의식적으로 아무렇지 않은 것인 마냥 드러내는 과정으로 그 폭력성이 외부에 투사된다고 설명한다. 이와 같은 반복 메커니즘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으로 그가 1962년에 발표한 팝아트 “캠벨 수프 통조림”이 있다. 이 작품은 시중에 판매되고 있던 캠벨 수프 캔의 광고 이미지를 큰 폭의 캔버스에 하나씩 꽉 차게 총 32번 반복적으로 그린 결과물이다. 캔버스에 채워진 캠벨 수프 캔은 저마다 맛을 가리키는 문구들만 다를 뿐, 나머지 세부 사항이 모두 같다.

 

조주연은 복제된 수프 캔의 이미지들이 “대량 기계생산이면서도 부분적으로 차이를 만들어 획일성을 회피한 생산”인 “수열적 생산”으로 만들어진 것임을 지적하면서, 이런 수열적 생산과 소비의 이미지가 똑같이 반복되는 것이 곧 앤디 워홀 자신이 소비주의 미국 사회에서 겪었던 외상적 충격들을 회피하는 동시에 직시하고 있는 것이라 주장한다. 1963년에 비평가 진 스웬슨(Gene Swensen)과 진행했던 인터뷰에서 앤디 워홀은 과거 20년 동안 매일같이 캠벨 수프를 점심으로 먹어왔다고 밝히면서, 이 작품이 캠벨 수프라는 공산품 이미지를 위시하면서 생활의 곳곳에 매일 먹은 캠벨 수프처럼 일상적으로, 익숙하게 침투해 있는 자본주의 산업화의 논리들을 짚어내고 있음을 암시한다. 매일 가공된 질 낮은 간편 식품을 먹어야 하는 삶은 분명 고통스러운 경험인데도, 그런 삶을 반복하게 되면서 앤디 워홀은 소비주의 사회의 폭력성을 일상의 일부로 수용하는 수준에 이른 것이다. 충격을 반복함으로써 감정을 표면적으로 완화한 셈이다.

 

그렇기에 “캠벨 수프 통조림”은 워홀의 삶을 지배하는 수열적 생산과 소비의 질서를 그대로 반복하는 작품인 동시에, 각기 다른 영역에서 비슷한 반복을 행하며 자본주의가 요구하는 사회적 구성원상에 맞춰 살아가는 당대 미국 사회의 모든 개인의 암울한 상황을 대변하고 있는 작품이라 말할 수 있다. 미국식 자유 이데올로기로 포장된 사회의 겉은 이윤의 추구가 끝없이 보장되고 즐길 유흥 거리가 넘쳐나는 역동적인 세계로 비치지만, 그런 가짜 실재 이면에는 워홀이 “[자본주의의 폭력적인 성격을] 타파할 수 없다면 [그것에] 가담하라고” 사회가 암묵적으로 시사하듯 “[개인이] 반복에의 강박에 전적으로 가담”하게 돼 “그 반복을 [무의식적으로] 폭로”하는 원리가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 체제에 저항할 수 없는 개인은 자본주의 사회가 최우선시하는 물질적 가치들을 그대로 수용하면서, 수반되는 고통 역시 반복을 통해 강제적으로 익숙해져야만 하는 상황에 놓인다.

 

앤디 워홀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를 포함한 당대 미국의 구성원들은 이처럼 자본의 논리가 관통되는 사회가 ‘쾌적한’ 공간이라 믿으며 자기 최면을 걸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가 그랬는데, 내 삶이 나를 지배해왔다는 거예요. 나는 그 생각이 마음에 들었어요.” 핼 포스터가 논했던 외상의 경험이 본 작품을 통해 반복적으로 가짜 실재의 세계에 지속적으로 침입하고 있는 것이다. 개인은 자신이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자본주의 시장의 폭력성을 무의식중에 내보이면서, 그런 논리가 공동체 보편의 덕목으로 제시되는 냉전 시기의 미국 사회를 비판하는 역설을 빚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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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작품 ②: “실크스크린 연작들”


 

“재난 시리즈”(Death and Disaster Series), “DIY”, “엘비스”, “마릴린 먼로” 등 앤디 워홀은 당대 미국 사회의 핵심적인 산업 동력이었던 기계들이나 대중문화를 상징한 유명 인물들을 연작 팝아트의 주제로 선택하기도 했다. 이때 워홀이 사용했던 물질적 창작 기법은 실크스크린 기법이었다. 이는 공판화를 이용한 판화 기법으로, 다른 판식에 비해 잉크가 많이 묻기에 강력한 색상과 선명한 색감을 선보일 수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색감을 선명하게 뽑아낼 수 있어 단순명쾌하고 강렬한 시각적 효과를 연출할 수 있기에, 대형 포스터나 광고용 전단지 등 상업 미술 분야에서 적극적으로 사용돼왔던 기법이다. 해당 기법을 작품 창작을 위한 수단으로 선택했다는 사실로부터 앤디 워홀이 상품의 영역과 예술의 영역을 엄격하게 구분하지 않았던 당대 사회의 흐름에 동참했다는 것을 일차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각각의 실크스크린 작품들이 “캠벨 수프 통조림”에서와 마찬가지로 함의하고 있는 외상적 반복의 실태들을 분석하게 되면, 그가 단순히 사회적 흐름에 동참한 것이 아니라 그런 흐름에서 읽어낼 수 있는 미국 이데올로기의 허황을 가감 없이 폭로하고 있음을 이차적으로 파악하게 된다.

 

“재난 시리즈”는 말 그대로 교통사고의 현장, 죽은 사람의 해골,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는 기계 등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재난의 현황을 반복적인 이미지로 한 화면 안에 묘사한 작품이다. 워홀은 교통사고의 현장을 찍은 사진 이미지를 가져와, “캠벨 수프 통조림”을 창작했던 것처럼 캔버스 안에 하나의 이미지를 여러 번 반복해 그려 작품을 완성한다. 그가 작품에 복제해 넣은 사고 현장은 시신의 혈흔이 묻어 있고 파손된 자동차가 적나라하게 모습을 보이고 있는 등, 정돈되지 않은 형태로 관람 주체에게 전시된다. “DIY”는 자본주의 산업 사회에서 기성품을 빠르게 만들기 위해 공장에 동원되는 기계를 암시하는 이미지의 반복으로 만들어진 그림이다. 엘비스 프레슬리와 마릴린 먼로 등 저명한 문화계 인물의 초상 사진 이미지를 반복적으로 채워 넣은 작품들도 존재한다. 이처럼 특정 인물이나 사물, 현상을 여러 번 복제해 만든 팝아트는 관람객들에게 외상의 경험을 위한 매개체로 끊임없이 자리한다.

 

예컨대 “재난 시리즈”를 통해 개인은 죽음의 상황을 떠올리면서, 유사한 경험을 실제 현실에서 하게 될 수 있으리라고 순간적으로 두려워한다. “앰뷸런스 재난”이라는 연작 중 한 편에서 감상 주체는 앰뷸런스 차창 밖으로 널브러진 희생자의 머리에 내리꽂힌 수직의 얼룩을 바라보며, “실재의 힘, 즉 우리가 평상시에는 ‘문명의 이기’라며 자동 기호화하는 현대 기계 문명 사회의 ‘오토마론’(편리, 속도, 쾌적, 여행 등등) 뒤에 도사린 실재의 위협을 순간적으로 드러내는 ‘투케’”를 경험한다. 하지만 이내 그림에서 눈길을 거둬 공포를 느끼는 현장에서 벗어나지만, 죽음을 연상케 하는 사건을 반복적으로 마주하면서 계속 외상의 충격을 겪게 되고 시간이 지날수록 이 체험에 무뎌지는 결과를 낳는다. 이러한 죽음의 이미지는 앤디 워홀이 의도한 바에 따르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주로 포착되는 인격의 죽음을 암시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개인은 여러 번 자신의 인격이 비인간적인 소비주의 문화 속에서 격하되는 충격을 반복하며 상품사회의 향락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물들어, 인격적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는 논지다.

 

마릴린 먼로와 엘비스 프레슬리처럼 유명인들의 복제 이미지가 나열된 작품에서도 비슷한 주제의식이 포착된다. 초상 이미지의 반복은 대중문화의 아이콘으로 상품화되고 선전되는 그들의 가짜 실재 뒤에 서려 있는 인간성을 가리고, 상품화의 영향을 받은 외관만이 온전한 실재인 것처럼 제시되는 것이다. 상품광고 이미지를 대량으로 생산하기 위한 실크스크린 기법에 의해 말이다. 앞서 살폈던 수프 캔의 작품과 동일하게, 앤디 워홀의 실크스크린 연작은 외상으로 인한 충격이 반복적으로 생산될 수밖에 없는 미국 사회를 눈앞에 선보인다. 이때 외상을 입는 개인은 자신에게 이런 외상을 선사하는 최초의 인물이나 경험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한다. 이미 사회가 미국적인 것으로 제시한 이데올로기에 충분히 익숙해진 상태여서다.

 

그래서 워홀이 선택한 재난, 죽음, 기계성, 아이콘화의 모든 이미지는 “현대 산업 문명이 약속하는 스펙터클 사회에 균열이 생기는 순간들”에 해당한다. 그의 작품은 이러한 균열이 드러내는 실재의 충격을 반복적 이미지 생산을 통해 막고자 하지만, 반복되는 이미지는 언제건 진실을 직시하는 투케를 유발할 수 있다. 그렇지만 수십 년간 먹어 온 캠벨 수프의 흔적들, 광고 포스터의 이미지, 오락성만을 겨냥한 대중 매체물 등 사람들은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보편과 정상성의 굴레 안에서, 결과적으로 모두가 폭력이 만연한 세상에 무뎌지게 된다. 앤디 워홀은 이러한 사회 구조를 팝아트라는 동시대 미술 속에 표현한다.

 

 

 

4. 나가며: 외상 이미지의 발현과 망각: 역설적 구조의 반복


 

 
“…워홀은 모든 측면에서 끊임없이 역설을 일으킨다. 그의 작품은 실재를 지시하기 위해 반복되는 충격적인 이미지이기도 하고 그 충격을 은폐하기 위해 반복하는 무덤덤한 스크린이기도 하다. 또한 작가는 실재의 충격에 공감하고 참여하는 주체이기도 하고, 실재의 충격에 냉담하고 무관심안 주체이기도 한데, 이런 역설적 주체 효과는 관람자에게서도 마찬가지로 되풀이된다.” (조주연, "현대미술강의" 중)
 

 

팝아트의 주역으로서 앤디 워홀의 역사적 위상, 구체적으로는 20세기 중후반을 대표하는 몇 안되는 예술가라는 칭호는 그가 미국 사회의 암울한 이면을 독창적인 예술 기법으로 포착했다는 점에서 나온다. 롤랑 바르트는 앤디 워홀의 팝아트가 미국식 이데올로기가 발휘하고 있던 폭력의 비가시화를 “주술적인 반복을 통해 드러낸다고” 주장한다. 바르트에 의하면 워홀은 동일한 이미지들을 색조나 이미지에 존재하는 특정 문구만 일부 수정해 연속적으로 배치하는 등, 사소하게만 변형된 이미지를 반복적으로 동원해 작품을 제작했다. 이러한 반복성은 질적으로 완전히 다른 국면의 일시성으로 변모한다. 워홀의 작품에 등장하는 대상들은 이미지의 반복, 반복을 통한 외상을 재생산하게 됨으로써 자본주의 세계로부터 배제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워홀적인’ 작품 속 대상은 바르트의 표현을 빌리자면 대상 자기 자신을 통제하던 가짜 세계의 파토스(pathos), 다시 말해 소비주의 사회의 자본주의적 덕목을 전제로 받아들인 상태에서 가해지는 구성원들의 규정을 스스로 제거하게 된다. 그 대신에 작품 속 대상은 충격을 주기 위한 진짜 실재의 세계로 편입돼, 일시적일지라도 사회의 모순을 폭로하는 기능을 도맡게 된다.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들은 폭로되는 모순을 직시하며 충격을 받고, 가짜로 만들어진 자의적인 정상성의 세계 이면에 자리한 이데올로기의 폭력적인 구조를 가짜 세계의 바깥에 서서 확인한다. 그러면서도 그 구조를 전복하지 않는 한, 자본주의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생산성을 발휘해 금전적 이익을 취득하는 것이 미덕으로 여겨지는 공간에서 벗어날 수 없으리라는 무력감이나, 사회가 주입하는 각종 기호들에 의해 외상의 경험을 스스로 망각하곤 한다. 앤디 워홀의 작품은 격화되고 있던 냉전의 한 축을 담당한 미국이 스스로를 성공한 근대 국가로 선전하기 위해 자본주의와 소비중심주의, 시장중심주의적 가치관을 어떻게 당대 사회의 구성원에게 강요하고 있었는지 이처럼 외상의 발현과 망각의 반박이라는 역설적인 구도를 통해 보인다.

 

종합적으로, 앤디 워홀의 작품은 이렇듯 당대 미국 사회의 근본적인 작동 원리를 예술을 통해 정신사적 양상에서 짚어냈기에 ‘역사적 증언’으로서의 가치도 가진다. 유럽을 중심으로 주도됐던 예술계의 흐름이 미국으로 넘어갔던 가운데에서도, 당대에는 여전히 현실 세계와의 연관성을 완전히 제거하고 순수 기호의 세계만을 다룬 모더니즘 예술이 강력하게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특정 시대의 정치·사회적 양상을 예술작품에 반영해야 한다는 논조가 아직까지 학계의 주된 논점으로 자리하지는 않은 형국이었다.

 

그럼에도 앤디 워홀은 특히나 상품사회의 원조 격이었던 미국의 자본주의 논리를 미술작품에 그대로 반영해 ‘실제적이면서도 비실제적인’ 예술로 팝아트를 발전시켰다. 대중문화의 상품성과 냉전 시기의 미국이 강조했던 소비주의 이데올로기를 적극적으로 받음으로써, 워홀은 역설적으로 미국 사회에 내포했던 비인간적인 지점들을 짚어냈다. 특히 그가 작품 제작 과정에서 사진 이미지 형태로 차용했던 상업 광고 포스터, 유명인의 초상, 당대 유행하던 텔레비전과 라디오 오락 프로그램, 공산품 등 대중문화의 다양한 이미지들 역시 그의 작품이 가지고 있는 역사적 가치를 끌어 올리는 또 다른 요인이기도 하다.

 

 

 

실무진 명함.jpg

 

 

[이소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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