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무라카미 하루키의 굴튀김 이론 [도서]

굴튀김을 오물거리며 써나가는 각자의 이야기
글 입력 2020.11.12 21:52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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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문집.jpg

 

 

책을 잘 안 사는 내가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을 구매한 건, 순전히 ‘굴튀김 이론’ 때문이다.

 

일 년 전 처음 굴튀김 이론을 마주했을 땐, 좋아하는 노래가 비슷한 친구와 서롤 닮은 둘만의 규칙을 만들어냈을 때처럼 찌릿한 기분이었다. 단 한 번 먹어본 적 없지만, 이 이론을 알게 된 뒤로는 고소한 바다냄새를 품고 바삭하다가도 몰캉하게 터져 나오는 굴튀김 맛이 입안에 때때로 맴돈다.

 

시작은 열심히 취업 준비를 하는 한 독자의 질문 메일에서다.


 

‘며칠 전에 취직 시험을 봤는데, 그 때 ’원고지 4매 이내로 자기 자신에 관해 설명하시오‘라는 문제가 나왔습니다. 저는 도저히 원고지 4매로 저 자신을 설명할 수 없었습니다. 그건 불가능하지 않나요. 혹시 그런 문제를 받는다면, 무라카미 씨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프로작가는 그런 글도 술술 쓰시나요?’

 


청년들의 고민이 비슷비슷한가 보다. 왠지 웃음이 살짝 배겨 나온다. 자기소개서가 쓰기 싫으면서도 하루키에게 메일을 보내는 패기 어린 딴짓이 어딘가 엉뚱하고 귀엽다.

 

도저히 원고지 네 매로 설명할 수 없는 이유는, 고작 그 정도로 ‘나’라는 무궁무진한 사람을 풀어내기 막막해서이거나 혹은 스스로도 모르는 것을 네 장이나 늘어놓아야 해 골치가 아프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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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취업준비생들의 밈을 종종 접해 보노라면 후자에 가깝다는 확신이 든다. 많은 청년이 자기 자신을 알아갈 중요한 시간에 끊임없이 다른 노력, 외적 자기계발 등 밖으로 눈을 돌려야 하는 상황을 모르는 것도 아닐 텐데. 이런 20대들의 속을 알아도 모른 척하는 건지, 퉁명스러운 자기소개서 문항은 요지부동이다.

 

그런 기업들과 인사 담당자의 마음을 헤아리기에 나는 너무 멀리, 정반대의 곳에 와 있다. 세상적으로 보면 그들에 비해 너무 낮은 곳에 있는 것이겠지.

 

하루키는 대답한다.

 

 

‘제 생각에 그건 굳이 따지자면 의미 없는 설문입니다. 다만 자기 자신에 관해 쓰는 것은 불가능하더라도, 예를 들어 굴튀김에 관해 원고지 4매 이내로 쓰는 일은 가능하겠죠. 그렇다면 굴튀김에 관해 써보시는 건 어떨까요.’

 

 

굴튀김 이론의 등장이다.


 

‘당신이 굴튀김에 관한 글을 쓰면, 당신과 굴튀김의 상관관계나 거리감이 자동적으로 표현되게 마련입니다. 그것은 다시 말해, 끝까지 파고들면 당신 자신에 관해 쓰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것이 이른바 나의 ’굴튀김 이론‘입니다. 다음에 자기 자신에 관해 쓰라고 하면, 시험 삼아 굴튀김에 관해 써보십시오. 물론 굴튀김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민스 커틀릿이든 새우 크로켓이든 상관없습니다. 도요타 코롤라든 아오야마 거리든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든 뭐든 좋습니다. 내가 굴튀김을 좋아해서 일단 그렇게 말한 것뿐입니다. 건투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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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는 글의 끝 부분에 정말 굴튀김에 대해서 쓰며 굴튀김 이론의 예시를 보여준다. 굴튀김을 오물오물 먹는 하루 끝 일상을 관찰하고, 썼을 뿐이다. 하지만 어쩐지 사람 향기가 느껴졌다. 그 사람이기에 그렇게 묘사할 수 있다는 생각이 몰려 들어왔다.


하루키가 이름 붙인 굴튀김 이론이 가장 많이 퍼지는 곳이 블로그라고 생각한다. 제각각의 사람들이 제각각의 경험을 하고 자신만의 글을 쓴다. 그런데 어쩐지 그 사람만의 향이 난다. 그 사람만의 특징이 느껴진다. 그 틈새 사이에서 우리는 매력을 느끼고, 한 사람의 사유를 알아간다.

 

생각해보면 나도 옛날에는 블로그에 나만의 굴튀김을 잘도 끄적였던 것 같다. 그 굴튀김은 나만 가질 수 있는 매력을 뿜어냈다.


 

‘그렇다, 소설가란 이 세상의 굴튀김에 관해 어디까지나 상세하게 써나가는 인간을 가리킨다. 자기란 뭘까? 하고 생각하자마자, 우리는 굴튀김이나 민스 커틀릿이나 새우 크로켓에 관한 글을 써나간다. 그리고 그런 사상·사물과 자기 자신 사이에 존재하는 거리와 방향을 데이터로 축적해간다.’

 


관찰이 왜 중요한지 이제 확실히 알겠다. 관찰이라는 단어는 언뜻 행하면 딱 외면의 울퉁불퉁함까지만 나아간 뒤 다시 튕겨 나간다. 그러나 한 번만 쭈그려 앉아 잘근잘근 물기 시작하면 혀에 서서히 배어드는 풍선껌 냄새처럼 내 냄새가 스르르 퍼져나간다. 나를 알아가는 과정은 이렇게 쉽고도 어렵다.


사실 자소서 첨삭 홍보 문구, 땡땡 기업 합격자 모범답안이 유령처럼 끝없이 돌아다니는 현실 속에서, 하루키 말대로 왠지 모르게 심금을 울렸던 오늘의 저녁 식사를 적어 내려간 글 속의 나를 당당히 제출하기란 어렵다. 아니, 불가능에 가깝다. 그 자체만으로 한 편의 모험이 될지 모른다.

 

그래도 굴튀김 이론은 많은 사람들에게 따땃한 기분 좋음을 한 잔 내려줄 수는 있겠다. 귀여운 고양이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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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예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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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3
  •  
  • bluecat
    • 하루키 잡문집 사서 읽어보고 싶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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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2020.11.13 17:5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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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uecat조금 루즈한 부분도 있지만 재미있는 부분도, 흥미로운 내용도 있는 책이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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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라
    • 몇년전에 하루키작가님의 작품을 닥치는대로 도서관에서 빌려보았던 기억이 새록새록 나네요.소설위주로 많이 봐서 그런지 굴튀김은 아직 못봤어요.하지만 재미있어보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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