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인류세 ; 새로운 '시대정신(zeitgeist)'을 요구하다 [문화 전반]

글 입력 2020.11.10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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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미래 세대의 눈이 여러분을 향해 있다.

이 책임을 피해서 빠져나가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 그레타 툰베리(Greta Thunberg)

 

 

지난 2019년, 스웨덴 출신 청소년 환경 운동가 그레타 툰베리(Greta Thunberg)가 UN 총회 기후행동 정상 회의에서 보여준 모습은 우리들로 하여금 그동안 우리가 환경 오염에 대해 얼마나 무심하게 지나쳤는지 반성하게 했다. 그뿐만 아니라, 현재 우리가 안고 있는 환경 오염 문제를 직시해야 함과 동시에 구체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함을 경고하는 일침이었다.

 

이번 글은 지난 2019년 6월에 방영된 EBS의 <인류세> 3부작 다큐멘터리를 바탕으로 한 <인류세 : 인간의 시대> (이하 <인류세>)를 통해 인류의 환경 오염 문제를 되돌아보고자 한다. 또한, 환경에 대한 주제의식이 담긴 일본 애니메이션 <모노노케 히메>를 함께 살펴봄으로써 환경 오염 문제를 위해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1) ‘그들’만 사는 세상, ‘그들’을 지배하는 세상


 

<인류세>는 가장 먼저 ‘인류세’에 대한 논의에 대한 이야기로 출발한다. 그리스어로 인류를 뜻하는 ‘anthropos’와 세를 나타내는 접미사 ‘cene’가 결합되어 만들어진 ‘인류세’(anthroposcene)는 현재 인류가 살아가고 있는 ‘홀로세’ 다음의 지질시대를 이르는 개념이다. ‘인류세’의 시작점은 사회경제적 변화와 지구 시스템에 대한 여러 연구들과 방대한 자료조사를 통해 ‘거대한 가속’(The Great Acceleration)의 시기 다시 말해, 인류가 지구를 급격하게 변화시키는 ‘동력’으로서 작용하기 시작한 시기인 1950년대로 정의되고 있다.

 

이어서, <인류세>는 인류의 ‘욕심’으로 인해 식용 수단으로 전락한 닭을 비롯해 환경 오염으로 인해 멸종 위기에 처하게 된 동식물의 이야기를 통해 전 지구적 차원에서 변화하고 있는 자연의 모습을 사실적인 사진들과 전문가들의 인터뷰를 통해 보여준다. 한편, 외딴 섬처럼 차가운 인류세 안에서도 냉동 방주를 통해 동식물을 보전하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을 보여줌으로써 희망의 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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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세>의 3장에서는 어느새 인간과 불가분한 관계에 놓이게 된 플라스틱에 주목한다. ‘빚어내다’라는 뜻의 고대 그리스어 ‘plastikos’에서 이름을 딴 플라스틱은 다양한 편리함을 가지고 있지만 잘 썩지 않는 특성으로 인해 환경 오염의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본격적으로 인류의 ‘애용품’으로 자리 잡게 된 1950년대 이후로 플라스틱은 그 누적 생산량 및 처리량이 급증하고 있지만 재활용을 통한 처리 과정에도 한계가 있을 뿐만 아니라 완전하게 사라지지 않고 아픈 흔적을 남긴다는 점에서 '인류의 영원한 숙제'임을 시사한다. 또한, 플라스틱이 자연 분해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미세 플라스틱의 문제를 짚으며 플라스틱의 문제가 단순히 생태계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인류 또한 플라스틱의 ‘피해자’가 될 수 있음을 이야기한다.

 

<인류세>는 마지막으로 스모그와 매립지 문제를 비롯해 ‘인류세’ 위에서 인간 문명을 상징하는 도시가 가지게 된 문제들에 주목하면서 앞서 플라스틱의 예처럼 환경 오염의 문제가 비단 자연 파괴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결국 인간에게 되돌아올, ‘인재’(人災)로 돌아올 수 있음을 경고한다. 나아가, ‘인류세’에 대한 낙관론과 비관론 사이에서 인류의 의미는 무엇인지 되물어보며 앞으로 인류가 살아가는 삶의 방식 전반에 걸쳐 보다 환경친화적인 방향을 가져야 함을 주장하면서 책은 마무리된다.

 

 

 

2) 동화보다 '환상적’이지만, 결코 아름답지만은 않은 ‘현실적’인 이야기



<인류세>와 함께 살펴볼 애니메이션 <모노노케 히메>(1997)은 뛰어난 작화와 완성도 높은 스토리를 보여주면서도 특히, 후속작 <바람의 계곡 나우시카>(2000)과 함께 선명한 주제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일본 애니메이션 제작사 지브리 스튜디오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영화는 마을을 침범하려고 한 재앙신을 죽여 저주를 받게 된 주인공 아시타카가 저주를 풀기 위해 사슴신을 찾아 나서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서쪽으로 향하던 도중, 아시타카는 총을 비롯한 과학 기술을 통해 자연을 지배하고자 하는 에보시와 그에 맞서 사슴신을 지키고자 노력하는 모노노케 히메(이하 ‘산’)을 만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자신이 만났던 재앙신이 결국 에보시와 같은 사람들에 의해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존재가 되었음을 알게 된 아시타카는 사슴신을 죽이고 그의 숲을 영원히 파괴하려는 에보시를 저지하고자 산을 돕고자 한다. 산과 아시타카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슴신은 끝내 에보시에 의해 죽음을 맞이하게 되면서 자연의 분노를 사게 된다. 하지만, 두 사람이 진심이 담긴 용서를 빌면서 숲은 다시 활기를 되찾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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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노노케 히메>는 등장인물과 서사구조를 통해 인간과 자연의 관계 그리고, 그에 대한 다양한 가치관을 상징적이면서도 사실적으로, 직접적이면서도 은밀하게 다루고자 했다. 각각의 등장인물을 살펴보면 철과 총으로 대표되는 과학 기술을 통해 자연을 지배하고자 하는 인물로서 자연과 대립되는 문명(인간)을 상징하는 에보시. 비록 인간으로 태어났지만 자연에서 자라나 피와 털로 대표되는 야생성을 통해 자연을 보호하고자 하는 인물로서 문명(인간)과 대립되는 자연을 상징하는 모노노케 히메(산), 그리고 자연을 파괴하고자 하는 인간들의 무차별적이고 이기적인 모습에 반대하는 인물로서 문명(인간)과 자연 간의 상생을 상징하는 아시타카에 이르기까지 단순히 인간과 자연을 대립항으로 구분하는 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자연에 대한 다양한 가치관을 상징적으로 담아내고자 하였다.

 

뿐만 아니라, 영화는 환상적인 설화 구조 속에 사실적이면서도 날카로운 주제를 은밀하게 담아내고 있다. 단순히 인간과 자연을 이분법적으로 나눔으로써 자연에 대한 일방적인 옹호의 시각을 담아낸 권선징악의 구조보다 오히려 때로는 인간의 편에서, 때로는 자연의 편에서 서로가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지, 서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보여줌으로써 인간과 자연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존중하고 인간과 자연이 하나의 ‘연속선상’에서 '함께 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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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머리’보다는 ‘가슴’, 멈추지 않고 ‘발’까지



인류세를 살아가야 하는 우리에게는 무엇이 필요한가? 우리는 무엇을 해야만 하는가?

 

가장 먼저 우리가 갖춰야 할 태도는 ‘겸손함’의 태도이다. 자연은 우리에게 충분한 자원을 꾸준히 누릴 수 있는 ‘기회’임과 동시에 그만큼의 책임감을 져야 함을 냉혹하게 알려주는 ‘경고’라는 점에서 인간과 자연은 ‘상호보완적’이고 ‘연속적’인 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자연의 문제가 곧 인간의 문제라는 생각을 하면서 이미 자연으로부터 얻고 있는 것들을 먼저 생각하려는 ‘용기’가 필요하다. 자유롭게, 맨몸으로, 아이처럼 자연과 공존하던 고다마의 모습처럼 우리는 자연 앞에서 우리 스스로를 순수하게 내려놓을 용기를 보여야 한다.

 

우리가 갖춰야 할 두 번째 태도는 ‘적극성’의 태도이다. 최근 환경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일상 속 환경 보호 운동 또한 다양한 형태로 확산되고 있다. 지난 2018년 스웨덴에서부터 시작된 ‘플로깅’(plogging)은 조깅을 하면서 동시에 쓰레기를 줍는 운동으로 쉽게 참여할 수 있는 만큼 국내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동참하고 있다. 또한, 기존의 재활용품을 재사용하는 ‘리사이클링’에서 나아가 새로운 상품을 만들어 가치를 높이는 활동인 ‘업사이클링’ (upcycling)의 경우에는 기존 자원을 이용함으로써 환경을 보호함과 동시에 새로운 상품 시장을 형성함으로써 경제적 효과 또한 창출할 수 있으며 나아가, 이를 다시 환경 보호 활동에 재투자함으로써 보다 많은 사람들이 환경 보호 운동에 참여할 수 있게끔 장려하고 있다. 마치 아시타카가 인간과 자연 간 화해를 위해 노력했던 것처럼 우리도 환경 오염을 줄이면서 자연과 함께하는 인류세를 만들어가기 위한 ‘움직임’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갖춰야 할 태도는 ‘신뢰’의 태도이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만약 우리가 매일 사용하고 있는 일회용품이 사라진다면 어떤 일들이 일어나게 될까?’라는 질문과 ‘만약 우리가 매일 일회용품을 줄여가는 노력을 한다면 어떤 일들이 일어나게 될까?’라는 질문 중에서 어떤 질문에 보다 확신에 찬 대답을 할 수 있는가? 우리는 분명 '머리'로 환경 보호가 필요함을 알고 있음에도 때로는 환경에 대한 책임감이 부담스럽다는 생각에, 때로는 우리의 편의를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환경 문제에 대해 안일하게 생각하고 만다. 이는 어쩌면 환경 보호의 효과가 그만큼 가시적이고 구체적으로 다가오지 않지만 그만큼 우리가 아직까지 환경 보호에 익숙해지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모노노케 히메> 속 아시타카가 산에게 건네는 말처럼 인류세가 곧 '함께 살아가는' 공존과 상생의 시대임을 '가슴'에 새기고 나아가, 우리들의 '발'로서 실천하는 시간을 가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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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정신’(zeitgeist)

 

독일의 철학자 J.G. 헤르더가 처음 사용한 ‘시대정신’(zeitgeist)는 ‘한 시대의 문화적 소산에 공통되는 인간의 정신적 태도나 양식 또는 이념’(네이버 지식백과 참고)을 의미한다. 역사가의 사관이나 가치관에 따라 ‘효율적’으로 선택되어 기술되는 역사의 영역처럼 현생 인류가 살아가는 시대의 문화와 관련된 ‘시대정신’ 역시 필요에 따라 끊임없이 수정되고 재선택되며 다듬어져야 한다.

 

‘인류세’의 개념은 전 지구적 차원에서 인류를 둘러싼 환경 전반에 대한 내용이면서 이미 문화예술계, 과학계 등 사회 전반에 걸쳐 널리 사용되고 있다는 점에서 인간과 자연에 대한 ‘시대정신’(zeitgeist)을 내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인류세’는 이미 우리에게 현실로 다가와 있으며 인류의 미래와 직접적으로 맞닿아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무엇을 새롭게 ‘발명’하기보다 무엇을 놓치고 있지 않은지 ‘발견’하는 ‘시대정신’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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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윤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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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항상 좋은글 잘보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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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sde
    • 이번 글도 잘 읽었습니다. 지브리 스튜디오에서 모노노케 히메 말고도 알고보면 교훈적인 내용을 담은 애니메이션들이 많은데, 다뤄주시면 정말 좋을 것 같습니다. 또 시대정신을 언급한 부분에서 감명을 받았습니다. 환경은 현 인류가 살아가는 터전임과 동시에 후대를 위한 텃밭인 셈인데, 플라스틱으로 참 많은 것을 망치고 있죠. 어느 때보다 다방면의 노력이 필요한 시기인 것 같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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