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우리는 분위기를 사랑해 [문화 전반]

글 입력 2020.10.28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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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2020년 10월 28일. 수요일이고 날씨는 구름 많음이다.

 

코로나 신규확진은 103명으로 증가폭이 다시 세자리수가 되었다. 오늘 날짜는 수식할 수 있는 표현들이 이렇게 다양한 가운데 나는 '디데이 58일'에 집중한다. 한달하고도 삼주정도의 숫자가 가르키는 것은 바로 크리스마스다.

 

크리스마스가 두달도 남지 않았다는 것!

 

크리스마스가 다가온다. 이 사실은 나를 무척 설레게 만든다. 그래서 난 10월부터 캐롤을 들으며 연말 기분을 낸다. 올해의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내게 뺴놓을 수 없는 기억은 바로 작년 연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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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나는 교환학생으로 프랑스에 있었다. 12월초 즈음에는 모든 교환학생들의 수업이 종강한 상태였고 다들 여러 나라로 여행을 가는 분위기였다. 파리를 비롯해 프랑스 전역에서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리기 시작했고. 나는 베를린 - 프라하 - 드레스덴 루트로 혼자 여행을 계획했다. 그리고 그 중 프라하와 드레스덴 두 곳의 크리스마스 마켓을 방문했다.

 

프라하와 드레스덴 모두 성대한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리기로 유명한 곳들이었다. 웅장한 규모의 마켓 안에 감도는사람들의 설렘은 혼자 여행하는 나에게 큰 온기로 다가왔다. 프라하의 바츨라프 광장에서 나는 갓구워진 굴뚝빵을 하나 샀다. 광장 한켠의 무대에서 노래하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설탕이 뭍혀진 굴뚝빵을 조금씩 뜯어먹었던 기억이 난다. 달콤했다.

 

프라하를 뒤로 하고 향한 독일의 드레스덴. 그곳의 크리스마스 마켓은 내가 가본 마켓 중 가장 화려했다.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크리스마스 마켓인 Striezelmarkt(슈트리젤 마크트)는 신기하게도 가판대의 지붕들이 예쁘게 꾸며져있었다. 유치원 때 많이 보았던 인형극에 등장하는 인형들이 지붕에 올라가 있었고, 쿠키를 팔던 곳의 지붕에는 커다란 하트 쿠키모양의 조형물이 올라가 있기도 했다.

 

밤인데도 어둠이 전혀 느껴지지 않을 만큼 따뜻하고 밝은 곳이었다. Gluhwein(글뤼바인 : 따뜻한 와인)을 한 잔 사서 홀짝이니 몸 전체로 온기가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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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만끽하기 위해 떠났던, 철저히 크리스마스 마켓 중심의 여행이 끝나고 나는 크리스마스 직전 무렵 프랑스로 다시 돌아왔다. 이렇게나 크리스마스를 좋아하는 사람이니, 크리스마스 당일도 특별하게 보냈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았다.

 

크리스마스 당일날 나는 친구들과 함께 외식을 하려고 기숙사를 나섰으나, 연휴 당일에는 대부분의 식당이 문을 닫는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지하철을 20분정도 타고 시내에 나갔으나 대부분의 식당은 문이 닫혀있었고 우리는 골목들을 기웃거리며 문 연 식당을 찾았다. 마땅한 곳이 없었으나 배가 너무 고팠기에, 다시 기숙사로 돌아가서 요리해먹기는 싫었다. 그래서 우리는 눈에 띈 케밥집을 들어가 감자튀김과 함께 케밥을 우물거렸고 그 길로 다시 집에 들어왔었다.


케밥의 맛은 나쁘지 않았고, 친구들과 함께 보낸 하루는 좋았다. 전체적으로 괜찮았던 하루지만 크리스마스를 고대하던 사람의 하루치고는 심심한 감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이십몇년을 살아오면서 이렇게, 이브까지는 설레지만 크리스마스 당일에는 별일이 일어나지 않았던 해를 무수히 보냈기 때문에 이제는 무던해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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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생각을 하지 못했을 때에는, 기대했던 날이 특별한 일 없이 끝나고 있다. 라는 생각이 들 때부터 기분이 가라앉았다. 이 무거운 감정은 억지로 끌어올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내가 설레하던 감정을 되살리는 건 좀 더 쉬웠다.

 

그래서 일기장을 펴고, 그 일이 다가오며 느꼈던 몽글함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몇가지 단어들만으로도 충분했다. 예를들어 '백예린, 티볼리 라디오, 노란 조명' 이라고 적힌 단어들은 나를 2016년의 어느 12월로 데리고 간다. 해리포터 시리즈에 등장하는 커다란 접시 모양의 펜시브처럼. (지팡이로 기억을 꺼내서 펜시브에 넣고, 머리를 푹 담그면 해당 기억이 생생히 재생된다)

 

어둑해지던 오후, 혼자 집에서 종강의 여유로움을 만끽하던 나. 이때 노란 조명은 나의 말랑말랑한 감정들이 뛰어 놀 수 있게 하는 필수품. 부드러움 하나 없이 빽빽하게 내리쬐는 형광등 아래에서는 다 숨어버린다. 따뜻한 조명 속 배경음악은 티볼리로 틀어놓은 백예린의 Love you on christmas.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고 있음에 황홀해했던 내가 기억난다.

 

이렇게 기록해두면 만약 그 일이 생각보다 덜 만족스럽게 끝나도 분위기를 사랑했던 것으로 충분해진다. 사년전 나의 크리스마스는 구순염뿐이었던걸 보면.

 

 



[최서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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