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지난 날의 글쓰기를 되돌아보며 - 짧게 잘 쓰는 법 [도서]

글 입력 2020.10.25 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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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게 잘 쓰는 법>을 읽고 나니, 되려 이 글을 써 내려가기가 쉽지 않다. 분명히 이 책이 원하는 바는 아니겠지만 말이다. '짧게 글 쓰는 법'에 대한 책을 읽었으니 그에 합당한 결과물을 보여줘야 할 것 같은 느낌이랄까. 잠시간에 고민 끝에 얻은 결론은 지금 당장 근사한 결과물을 보여주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한 권의 책이 25년 넘게 써온 글쓰기 방식을 단번에 바꿀 수 없다. 사실 이건 선전포고다. 내 문장이 <짧게 잘 쓰는 법> 리뷰에 맞지 않게 길더라도 이해해달라는 말이다. 모든 것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 책을 선택한 계기는 간단하다. '글을 잘 쓰고 싶어서'이다. 많은 이가 그렇듯, 나는 언제나 글을 잘 쓰고 싶었다. 그러나 정작 글 쓰는 방법에 대한 책을 읽은 적은 드물었다. 그런 의미에서 <짧게 잘 쓰는 법>은 감상하기 제격인 책이었다. 짧게, 잘, 쓰는 글이라. 구미가 당기는 제목이었다. 짧게 쓴 글이 좋은 글이라는 소리는 누누이 들어왔다. 알지만 실천하기 힘든 것이 짧게 글쓰기였다. 평소엔 말수 적은 내가 글만 쓰면 문장에 이 말 저 말 붙이기 일쑤였다. 내 글쓰기의 해답지가 되길 바라며  <짧게 잘 쓰는 법>을 펼쳤다. 짧게 글 쓰는 스킬, 비법 따위를 바라면서.


‘좀 더 자유로워져라.’ 책 한장 한장 넘길 때마다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짧게 잘 쓰는 법>은 내가 기대한 것과는 조금 다른 책이었다. 내가 예상한 것이 '수학의 정석'이라면 이 책은 자기계발서 같았달까. 한마디로, 내 자신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하는 책이었다. 나는 글을 어떻게 쓰고 있었더라? 하고 말이다.


 

학교에서는 독자가 끊임없이 길을 잃을 위험에 놓여 있다는 전제하에 글쓰기를 가르칩니다. 명료하게 쓰는 것이 아니라 문장과 단락에 족쇄를 채워 연결함으로써 독자를 인도할 수 있게 말이죠.


논리를 전개하는 법을 떠올려보세요. 그런데 효과가 있었나요? 단락 후반부에서 다음 단락으로 넘어갈 준비를 합니다. 들여쓰기로 움푹 들어간 빈 공간을 훌쩍 뛰어넘는 거대한 도약! 여러분은 글쓰기가 아니라 공중그네 묘기를 배운 겁니다.

 

- p39

 

 

돌이켜보면 나는 논리적인 글을 쓰려고 무던히 노력했다. 논리적인 글은 당연히 좋은 글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은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다고 말한다. 물론 논리적인 글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논리적인 글을 위해 내 글을 옥죄려 한 것이 아닌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었다. 이렇게 <짧게 잘 쓰는 법>은 글쓰기에 대한 고정관념을 흔들어 놓는다. 그래서일까. 책을 읽으며 마음 한구석이 가벼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흐름'의 배후에는 황홀하기까지 한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문장보다 생각이 우위에 있다는 전제입니다. 생각이 도약해나가고 단어는 앞서가는 생각을 좇아가기도 버겁습니다. 숨막히는 추격적이 펼쳐지죠. 다시 말해서 문장들이 줄줄이 흘러나오고 문구는 문구를 부르며, 설사 문장까지는 아니어도 단어가 생각에 앞서 튀어나옵니다. 영감이란 이런 것인가 싶을 거에요.


우리 모두 이런 순간을 경험했습니다. 참 솔깃한 순간입니다. 문제는 그런 순간을 과대평가한다는 데 있습니다.

 

- p104-105

 


책을 읽으며 해방감뿐만 아니라 머쓱함을 느낀 순간도 있었다. ‘민간인 사찰 금지’라는 말이 절로 나오도록 저자가 내 모습을 꿰뚫어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 또한 영감이 찾아오는 순간을 경험했다. '영감'은 참 매력적인 단어다. '영감'이라는 단어 속에 태어난 문장은 무엇보다 특별하게 느껴진다. 그 특별한 문장을 어떻게든 부여잡으려고 애쓰게 된다.

 

그러나 저자의 말처럼 그 문장은 결국 수정이 필요한 또 하나의 문장일 뿐이다. 우리가 붙잡고 싶은 것은 문장이 아니라 그 순간의 감정이라는 데에도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온갖 의미를 부여했던 영감은 문장을 만드는 과정의 또 다른 표현일 뿐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매일같이 문장을 만드는 노력이다. 그럼 영감은 절로 찾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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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게 잘 쓰는 법>이 글쓰기의 해답지가 되었느냐고 묻는다면 내 대답은 '글쎄'이다.

 

내가 글쓰기의 해답지를 바란 이유는 내 글이 항상 의심스러웠기 때문이다. 글을 쓰고 나면 종종 잘 쓰인 글인지 그렇지 못한 글인지 판단을 내리기 어려웠다. 남의 글이 아닌 내 글이기에 더욱 그랬다. 그래서 수학 문제처럼 해답지를 찾고 싶었다.

 

내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없다면, 해답지를 외우고 싶었다. 그렇게 하면 좀 더 나은 글쓰기를 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 책을 읽은 지금, 애초에 글쓰기 해답지 같은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앞선 질문에 애매모호한 답을 한 이유이다.


글쓰기는 수학문제처럼 명료하지 않다.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해답지를 바란 것은 단번에 글을 잘 쓰고 싶은 내 얄팍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글쓰기에 답은 없어도 답을 만들어 갈 순 있다. 다양한 글을 경험하고 쓰는 것이 그 답을 만들어가는 과정일 것이다. 글쓰기는 역시 어렵고, 어렵다. 그래서 매력적이다.

 

 

[정지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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