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의 쓸모보다 존재가 먼저다 [도서]

프란츠 카프카 <변신>, 자신의 쓸모에 대해서 자문하는 이들에게
글 입력 2020.10.12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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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을 마치고 2개 남은 수시 발표를 기다리며 나는 딱 이 소설 속 주인공 그레고리 잠자와 같은 심정이었다. 우리 가족들은 예전과 다름없이 날 소중히 여겨 주었지만 나는 내 자신이 집에서 밥이나 축내는 벌레 같은 존재처럼 느껴졌다. 아르바이트를 하기에는 재수의 가능성이 있기에 너무 애매한 시기였고 그렇다고 맘 편히 놀러 다니기에는 가족들의 눈치가 보였다.
 
한 일주일 정도 혼자 방에 처박혀 거의 나오지 않았다. 어두운 시간이었다. 시간이 지나고 기다리던 합격 소식을 전해듣긴 했지만, 그 좌절의 시간은 내 존재 자체의 가치에 대해 깊게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 당시에 나는 오랫동안 나의 쓸모에 대해 집착하고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저들에게 더 이상 필요한 사람이 아니면 어떡하지…. 나라는 인재를 원하는 대학이 있을까? 내가 쓸모가 없어도 과연 사람들은 날 반겨줄 것인가. 내 존재보다 쓸모에 더 초점을 맞추었던 것이다. 사실 나뿐만 아니라 근래의 많은 이들은 자신의 ‘쓸모’를 어필하기 위해 아등바등 애쓰고 있다. 타인에게 그리고 사회에게 자신의 쓸모를 인정받고 그로 인해 모두가 반겨주는 사람이 되기를 꿈꾸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어느 날 불의의 사고 혹은 노화, 사회의 변화 등으로 인해 내 능력을 펼 수 없거나 내가 필요하지 않게 된다면? 내가 더 이상 쓸모 있는 존재가 아니어도 사람들은 나를 반겨주고 나 자신은 날 사랑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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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카프카는 ‘변신’은 그 질문에 대해 매우 비극적인 대답을 한다. 소설 속 유능한 가장이던 그레고리 잠자는 어느 날 벌레로 변하게 된다. 가족들은 벌레로 변한 그에게 혐오감을 느끼면서도 정성을 다해주다가 점차 부담감을 느낀다. 급기야 시간이 지나고 상처 입은 그를 거의 방치하게 되는데 이윽고 그가 죽었을 때 가족들은 새로운 미래를 생각하며 기뻐한다.
 
물론 사람이 벌레로 변신할 가능성은 없지만 어디선가 그레고리와 같이 어느 순간 자신의 쓸모를 의심받고 그로인해 가장 가까운 이들에게서조차 외면당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대학 입시에 실패한 학생들, 취업난에 시달리는 청년들, 병석에 누워 가족들에게 행여 짐이 될까 걱정하고 있을 환자들, 소외된 노인들, 실업자들 등이 떠올랐다. 자기 자신이 벌레가 되어 버린 것 같다고 혹은 벌레 취급을 받는 것 같다고 느끼는 수많은 사람들….
 
작가가 비극적인 결말로 소설을 마무리 한 것은 인간 본질에 대한 소외를 비판하려는 의도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사람들이 존재 자체의 가치를 깨달음으로 인해 그레고르와 같은 비극적인 결말을 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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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의 삽화를 그리신
조광호 신부님의 작품
 
 
나를 좌절의 시간 속에서 구원해 준 것은 우연히 카*오톡 플러스 친구가 보낸 ‘나의 쓸모보다 존재가 먼저다.’라는 문구였다. 문구를 받고 나는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나의 존재 가치에 대해 돌아보게 되었다. 이전에 공지영 작가가 딸 위녕이 고등학교 3학년이었을 때 쓴 편지를 토대로 펴낸 책,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를 읽었던 것이 떠올랐다.
 
책의 내용 중 '천사 미니멜'의 부분을 인용한데서 감명 받았던 구절이다.
 
 
나의 창조물들을 자세히 보아라. 어떤 눈송이도 결코 똑같이 생긴 것이 없다. 나뭇잎이나 모래알도 두 개가 결코 똑같지 않다. 내가 창조한 모든 것은 하나의 ‘원본’이다. …(중략)… 나는 너 없이도 세계를 창조할 수 있었지만 만일 그랬다면 세계는 내 눈에 영원히 불완전한 것으로 보였을 것이다. 너를 미카엘이나 라파엘로 만들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네가 너로서 존재하고 나의 고유한 미니멜이기를 원한다. 태초부터 내가 사랑한 것은 남과 다른 너였기 때문이다. 너는 내가 오랜 세월에 걸쳐 꿈꿔 온 유일한 미니멜이다. …(중략)…
 

 
나는 대천사 미카엘이나 라파엘은 아니어도, 유일하고 그 자체로도 가치 있기 때문에 존재만으로도 소중한 미니멜이었다! '있음' 그 자체로도 빛나는 존재였던 것이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우리 자신, 그리고 우리 주변의 사람들의 존재 그대로의 가치를 잊고 사는가. 우리가 아무 능력이 없다고 느끼는 이들, 보잘 것 없다고 여기는 이들이 있기에 이 세상이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다. 그 존재 자체로도 세상을 아름답게 메우기 충분하기 때문에.

 

우리가 자기 자신과 다른 이들의 존재 자체를 소중하게 여기고 존중해 준다면 카프카가 쓴 ‘변신’ 속 비극의 주인공과 같은 이들이 줄어들지 않을까. 이 세상에 나의, 그리고 타인의 존재 가치를 발견해 서로를 받아들이고 보듬어 주는 이들이 늘어나기를. 또 그로 인해 ‘쓸모’의 상실로 인해 소외 받는 이들이 더 적어지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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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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