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왜, 지금 '작은 아씨들'인가? - '조의 아이들' [도서]

나의 인생작품이 된 작은아씨들 후속 작, '조의 아이들'
글 입력 2020.10.08 19:27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내가 『작은 아씨들』과 처음 마주한 건 어렸을 적 서점에 있는 세계 아동명작 코너에서였다. 『로빈슨 크루소』, 『키다리 아저씨』, 『걸리버 여행기』, 『빨강머리 앤』 같은 여러 명작동화들 사이에서 특히나 눈을 사로잡는 제목, 『작은 아씨들』은 어렸던 내 마음을 한 번에 끌리게 했다.

 

예쁜 드레스를 입은 네 명의 소녀들이 그려진 표지는 본능적으로 어린 여자아이의 눈을 끌었지만, 그 당시 나는 ‘에이미’나 ‘메그’보다는 괄괄한 성격인 ‘조’에 가까웠던 아이였고, 소녀들의 시시한 이야기이겠거니 하며 『작은 아씨들』을 외면했다.


지금은 그때 이 빛나는 명작을 읽지 않았던 것을 크게 후회하고 있지만, 나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작은‘아씨들’이란 제목은 어쩐지 강인한 여성보다는 보호해 줘야 하는 여성을 먼저 떠올리게 했고, 순진한 표정의 소녀들이 그려진 겉표지는 연약하고 착하기만 한 자매들의 뻔한 사랑 이야기일 것 같았다.

 

 

[크기변환]다운로드.jpg

  

 

그랬던 『작은 아씨들』이 작년 겨울, 그레타 거윅이라는 뛰어난 감독에 의해 다시 영화화되어 내 앞에 찾아온 것이다. <레이디 버드>때부터 워낙 좋아했던 감독인지라 ‘작은 아씨들’의 제목이 주는 나의 오랜 거부감에도 불구하고 믿고 영화를 감상하였다.


그리고 결과는 내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명작이었다. 작은 ‘아씨들‘은 결코 작거나 연약한 아가씨들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은 그 시대에 나온 캐릭터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독립적이고 주체적으로 자신의 삶을 선택하는 강인한 여성들이었다. 그런 『작은 아씨들』에 대한 충격과 애정이 식지 않고 있을 무렵, 그 후속작인 『조의 아이들』이 출간된다는 소식을 들은 것이다.

 

조의아이들+작은아씨들 박스.jpg

 

우리가 영화와 책으로 익숙한 『작은 아씨들』스토리는 1, 2부의 이야기이고, 그 이후의 이야기가 3, 4부로 더 남아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윌북 출판사에서는 1부와 2부를 엮어 『작은 아씨들』이란 제목으로, 3부와 4부를 엮어 『조의 아이들』이란 제목으로 우리나라에서는 30년 만에 그 후속 작을 출판한다.

 

우리가 흔히 아는 조, 메그, 에이미, 베스 네 자매의 어린 시절 이야기는 1부로, 자매들이 성인이 되어 꿈과 사랑을 찾아가는 이야기는 ‘작은 아씨들’ 2부의 내용이다. 3부는 대고모가 물려준 플럼필드 저택을 학교로 만든 조와 그의 남편 바에르 교수가 가르치는 꼬마 아이들의 이야기, 4부는 그 아이들이 다 큰 후에 펼쳐 나가는 로맨스와 성장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사실 영화가 준 ‘작은 아씨’들의 감동이 다 가시기도 전에 그 이후의 이야기가 더 남아있다는 사실은 독자에게 큰 선물이 되어 주었다. 그 아름답고 따뜻한 이야기를 더 이어나갈 수 있다는 사실에 얼마나 설레었는지 모른다. 3부와 4부를 엮은 만큼 장대한 페이지를 담고 있지만 고전적이고 아기자기한 책 표지가 읽는 즐거움을 더해주었고, 무엇보다 1, 2부 못지않게 재미있는 스토리로 술술 읽어나갈 수 있었다.

 

 

 

1. 요즘 시대에 ‘필요한’ 도덕적 가치


 

조의 아이들_표1.jpg


  

조가 운영하는 플럼필드의 문이 열리고 그 안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의 모습과 교육철학에, 이곳을 처음 방문하는 이방인 ‘냇’처럼 나도 처음에는 이곳의 풍경이 적응되지 않아 어안이 벙벙했다. 아이들은 아이답게 마음껏 뛰놀게 하는 편이 좋다는 조의 말대로 이곳은 다른 평범한 학교랑은 다르게 어쩐지 ‘이상한’ 학교처럼 보인다. 많은 지식보다는 삶의 지혜를, 부와 명예보다는 정직과 성실함을 몸소 실천하며 가르치는 조와 어른들. 아이들은 그것에 감동하여 그 아름다운 가치가 마음 밭에 씨를 뿌리고 싹을 틔우게 된다.


3부의 사랑스러운 남자아이들에게 씨를 뿌리고 새싹을 틔웠다면 4부에서는 조가 주는 사랑으로 열매를 맺게 된다. 소설 끝자락에서는 수고하여 농사를 지은 농부가 풍성한 수확을 이웃들과 함께 나누며 자축하는 아름다운 추수감사절의 풍경과 같다.


아이들이 보고 배우는 성숙한 어른들이 강조하는 가치, 그중에서도 가장 귀하고 중요한 것은 우리 시대에 잃어버리고 있는 ‘사랑’의 가치였다. 사랑은 이 책 전반에 스며있는 가장 핵심적 가치였는데, 이제는 낯설고 이상적으로 느껴지는 이러한 ‘베푸는 사랑’에 아무리 차가운 독자라도 감동하지 않을 수 없다. 댄의 굳은 마음이 플럼필드와 조가 주는 사랑으로 변화되고 성장하는 것처럼 말이다. 젊은 날의 치기와 실수로 잠시 엇나갔던 ‘탕자’들도 결국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오게 된다. 소설은 조의 ‘아이들’을 위주로 펼쳐 나가지만 그 ‘아이들’의 이야기는 그들은 끝까지 믿고 기다려준 ‘조’의 헌신적인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선’을 말하는 이 전형적 인물들이 지금과는 맞지 않는 유치한 이야기로 들릴 수도 있겠다. 현대의 이야기는 선과 악을 전면으로 내세우기보다는 인간의 선과 악이라는 이중적인 모호성을 다루는 일을 훨씬 더 ‘세련되고’ ‘예술적’이라고 여기는 게 요즘의 생각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계속 읽다 보면 150년도 훨씬 더 된 이 작품의 메시지가 유치하다기보다는 무척이나 아름답고 고결한, 오랫동안 잃어버린 가치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특히나 우울하고 외로운 시기를 보내는 이때에 나누고 베푸는 이 사랑의 가치는 150년의 세월이 지나도 전혀 빛이 바래지 않는다. 오히려 요즘 같은 때에 더욱 절실히 필요한 울림으로 느껴진다.

 

 

 

2. 요즘 시대에 ‘걸맞는’ 페미니즘


 

[크기변환]다운로드 (2).jpg

  

 

이게 정말 150년 전에 나온 소설이 맞나 싶을 정도로 작가 루이자 메이 올컷은 여성 인권에 대해 매우 앞서나간 사람이었다. 플럼필드의 남자아이들이 앞서 말한 도덕과 사랑을 배우고 성장하는 모습으로 그려진다면, 여자아이들은 올컷의 페미니즘 가치관을 당당하게 그려낸다. 작은 아씨들 1,2부에서 그토록 비혼을 주장하던 조가 결혼하게 된 배경에는 당시 독자들과 편집자의 성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막 작가로서 입지를 다져야 했던 올컷은 조를 결혼시킨 것에 대해 크게 낙심했다고 한다.


1, 2부의 조가 올컷의 ‘분신’일 만큼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라면 3, 4부의 여자아이들은 조의 ‘페르소나’다. 여성의 권리를 활발히 주장하던 올컷의 목소리는 이전작보다 더 직접적으로 나타난다. 가령, 조는 결혼할 수밖에 없었지만 독립적인 의사 ‘낸’은 토미의 열렬한 구애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독신으로 남는다. 또 아이들은 여권의 문제에 대해 자주 이야기하며 토론한다.

 

 

“남성들은 여러 세대에 걸쳐 도움을 받아왔고 우린 거의 도움 받은 게 없는데도 그런 취급을 당해. (중략) 난 공정한 게 좋지만, 공정한 대접을 받은 적은 한 번도 없었어.“

 

663P

 

 

여성의 경제적 독립과 주체성 향상에 대해 목소리를 내지만, 이 작품은 현모양처로서 가정에 의무를 다하는 여성의 삶 또한 존중하는 것 역시 잊지 않는다. 경제적 독립심을 찾아가는 의사 낸의 길을 응원하지만 얌전한 주부를 꿈꾸는 데이지의 꿈 역시 응원하며 균형을 맞춰간다는 점에서 아주 의미 있고 사려 깊은 페미니즘 작품이다.


여성 간의 균형을 맞추는 것 못지않게, 올컷이 최종적으로 그린 이상은 더 높은 곳에 있었다. 남자아이들과 여자아이들이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받으며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조가 하는 말이다.

 

 

“아! 남성과 여성이 우리 아이들처럼 서로 믿고 이해하고 도와준다면 세상은 정말 멋진 곳이 될 거야!” 이렇게 말하며 조의 눈은 어딘가 먼 곳을 바라보는 듯했다. 사람들이 플럼필드의 아이들처럼 행복하고 밝게 살아가는 새롭고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는 모양이었다.

 

522P

 

 

소설 속에서나마 마음껏 자유로운 주장을 펼칠 수 있었지만, 조가 말하는 아름다운 세상은 허구의 세계에서조차 꿈꿀 수밖에 없는 유토피아인 걸까? 하지만 그다음 마치씨가 하는 말은 희망이 주는 따뜻한 온기를 불어 넣는다.


 

“넌 그런 좋은 시대가 오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는 거란다, 조. 그 믿음을 잃지 말고 열심히 노력해라. 너의 작은 실험을 성공시켜 가능성을 증명해다오.”

 

522P

 


읽기 겁날 정도로 방대한 두께를 자랑하지만, 플럼필드에서의 내 시간은 결코 아깝지 않았다. 처음에는 귀여운 아이들의 이야기인가 깊어 들어왔다가 어느새 이 아이들처럼 변화를 겪은 나 자신을 발견한 것이다. 어머니가 들려주는 옛이야기에 모닥불 앞에 앉았다가 어느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에 빠져버린 아이처럼 말이다.

 

모닥불에 앉아 있느라 몸과 마음이 온기로 여전히 따뜻하다. 선하고 바른 이야기는 유치하다고 생각했던 나 자신이 부끄러울 정도로 아름다운 이야기가 내 많은 부분을 다시 일깨우고 변화시킨 것 같다. 이 보잘것없는 독자도 플럼필드가 수확한 열매들 중 하나였기를! 조와 아이들과 함께 이 추수감사절의 기쁨을 누리고자 한다.

 

 


 

 

조의 아이들

작은 아씨들 3, 4부 완역판
 

지은이
루이자 메이 올컷
 
옮긴이 : 김재용, 오수원

출판사 : 윌북

분야
해외 문학

규격
124*178*60mm

쪽 수 : 1032쪽

발행일
2020년 09월 10일

정가 : 17,500원

ISBN
979-11-5581-299-0 (04840)
 
 
 

백유진.jpg

 

 

[백유진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6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