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몽중인-나는 춘향이 아니라,' - 향단의 이야기 [공연]

글 입력 2020.09.18 0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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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공연 <몽중인-나는 춘향이 아니라,>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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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랜만에 우연한 기회로, 너무 좋은 공연을 보았다. 가만히 있다가 친구가 건네온 티켓을 받고 영문도 모른 채 그 공연을 보러 갔다. 그리고 친구와 가서 극을 본 후에는, 보길 너무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내가 느낀 감정들이 날아가기 전에 꼭 글로 기록하고 싶다 생각하여, 집에 돌아와 이 글을 쓴다.

 

<몽중인-나는 춘향이 아니라,>는 판소리 공연이다. 판소리라는 장르는 사실 처음 보는 공연의 종류였다. 더 정확히 말해, 편식을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국악 관련 무대를 본 기억이 없다. 그 때문에 호기심 반 두려움 반으로 공연을 기다렸다. 처음 공연의 공간인 스페이스 111을 들어선 순간 다소 미니멀적이고 초현실적인 무대가 보였다.

 

항상 그렇듯이 조용히 앉아 무대들의 구성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렇게 나는 공간에 대해 관찰을 하고 친구는 도록을 찬찬히 읽다, 무대의 시작을 알리는 암전이 되었다. 무대에 등장한 아티스트는 총 세 명으로, 고수 이향하 님과 베이시스트 장혁조 님, 그리고 소리꾼 이승희 님이 공연을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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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 창이 시작될 때, 처음 들어보는 종류의 강약 조절과 미세한 떨림이 들어간 노래가 선명히 들렸다. 또한 밴드에서나 익숙하게 등장하는 악기인 낮고 묵직한 베이스 음과 전자 피아노의 음이 창과 어우러져 묘하게 조화로운 음악을 만들어냈다. 어두운 공간에 조명은 은근하게 비추어 꿈을 꾸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그렇게 춘향이가 아닌, 향단이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춘향은 더 이상 누군가 만들어 놓은 인생을 살 사람도 아니고, 누군가에게 기대어 살 사람도 아니다. 향단도 자신의 삶을 새롭게 받아들이고 스스로 선택해 나아간다. 언뜻 말로 풀어놓으면 쉬운 듯해 보여도 이러한 삶의 태도가 결코 쉽지 않다는 걸 잘 안다.

 

- <몽중인-나는 춘향이 아니라,> 이승희 창작노트 중


 

향단이는 춘향이의 몸종이다. 이름도 출신도 없는 천애 고아였고, 춘향의 비단 끈을 잡고 졸졸 따라다니며 그녀와 항상 함께 했다. 하지만 춘향이가 변 사또의 수청 들기를 거부하고 옥에 갇혔을 때, 춘향과 운명을 같이 하던 향단도 그 비단 끈이 끊어진 듯 절망에 빠진다. 그리고 이 상황에서 춘향의 비단 끈으로 그네를 높이 타는 꿈을 꾼다.

 

꿈의 배경은 21세기, 그녀는 '언니'를 만나고, 향단은 '언니'와 같이 거주하며 꿈을 살아간다. 향단은 춘향 없이, 자기가 누군인지 헷갈려 하는 상태에서 꿈 안의 인생을 살아간다. 여기서도 그녀는 현실과 비슷하게 서비스업에 정신없이 종사하며, 피곤한 몸을 이끌고 생활을 한다. 정신적으로는, 춘향과 관련된 꿈도 꾸고 울기도 많이 울며 현실과 꿈의 경계가 흐릿해진 상태로 지낸다.

 

하루는 그것이 절정에 달하고 '언니'에게도 불행한 일이 생기자, 향단은 울고 싶은 마음으로 멍하니 생각을 하다 춘향과 뒤바뀌는 꿈을 꾼다. 향단이에게 고맙고 미안해하는 춘향이가 되어, 자신이 무슨 역할을 하고 있었는지, 왜 굳이 '향단'이인지, 자신이 정확히 누구인지에 대해 실마리를 잡는다.

 

 

가야겠다. 일단 돌아가서 그 사람 사는 모습이라도 지켜봐야겠다. 밥을 먹는지, 굷고 있으면 죽이라도 한 술 뜨게 해야겠다. 남들이 욕하면 그 앞에서 소리라도 질러줘야겠다. 열녀비 세운단 사람한테 그 무슨 쓸데없는 소리냐고 돌을 깨버려야겠다. 죽지 말라고 손이라도 잡아줘야겠다. 괜찮냐고 한 번 물어라도 봐야겠다. 향단은 다시 생각했다. 내 이름이 춘향 아씨의 인생을 비단길로 만들어주라고 향단일까 보오. 가야한다. 꿈에서 깨어나야 한다.

 

"언니 나 갈래요."

 

- 이연주 소설, <몽중인-나는 춘향이 아니라.> 중


 

꿈을 깬 후 향단이는 광한루에 나가 다시 그네를 탄다. 사람들이 건방지다며 욕을 하고 소리를 질러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네를 탄다.

 

"앞이 솟고, 뒤가 멀고"라는 가사는 향단이가 그네를 탈 때에 부르게 되는, 행동 묘사이자 노래이다. 꿈에 들어갈 때, 그리고 꿈에서 나올 때에 향단이는 이 가사를 있는 힘껏 부른다. 자신이 든 부채로 앞이 솟고 뒤가 멀어지는 장면을 묘사하고, 조명은 강렬하게 그녀를 비춘다. 공연이 끝난 후에도 이 가사와 음이 계속 머리에 맴돌았다. 향단이가 자신의 자아를 찾게 되는 계기이자, 공연의 마지막 장면이었다.

 

정신없이 향단이가 꿈과 현실을 오가며 자기가 누구인지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을 보며, 나도 나 자신에 대해 돌아보게 됐다. 나는 누구일까. 난 특별한가? 아니면 향단이가 지하철에서 본 사람들과 같이, 어느 하나 튀지 않는 평범한 사람일까. 향단이의 삶일까, 춘향이의 삶일까, 이몽룡의 삶일까. 알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향단이가 자신의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나도 울컥하는 감정을 느낀 것이었다. 그녀는 자유로운 현대사회에 나왔을 때 오히려 더 방황하고 힘들어했다. 그리고 결국에는, 자신을 그대로 '향단'이라 인식하지만 '춘향의 끝(향단의 뜻)'이 아닌 춘향을 이끌어주는, 좀 더 주체적인 자아로서 본인을 바라본다. 이것은 향단이로서는 최선이 선택이었을 것이다.

 

아이디 당 2매의 티켓을 예매할 수 있고 객석의 수도 한정되어 있어 이 무대를 다시 볼 순 없지만, 기회가 있다면 기꺼이 다시 보고 싶은 공연이었다. 좋고 매끄러운 공연을 보고 나오면 마치 긴 꿈을 꿨다가 방금 일어난 것과 같은 여운이 남는다. 그런 몽롱함을 느끼며 생각을 하다 공연의 내용도 ‘꿈 이야기’였다는 것을 인지하여 기분이 묘했다. 좋은 공연을 보게 해준 친구, 그리고 이런 멋진 결과물을 만들어 내신 제작진분들께 모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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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C Artist 이승희 신작, 창작 판소리

<몽중인-나는 춘향이 아니라,>

 

일시: 2020년 9월 16일(수) ~ 9월 25일(금)

  

화 수 목 금 8시 / 토 5시

 

*9.20(일) 9.21(월) 공연없음

 

장소: 두산아트센터 Space111

 

관람연령: 14세 이상

 

러닝타임: 7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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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지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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