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아프리카 말라위에서, '바람을 길들인 풍차 소년' [영화]

글 입력 2020.09.13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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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늘 익숙한 것만 보았던 것 같다. 지인 또는 인터넷상의 추천, 혹은 익히 알고 있는 감독의, 배우의 필모그래피로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는 작품들만 말이다. 120분 남짓한 시간을 보내기엔 익숙한 것이 어느 정도 보증되지 않을까 하는 안도감 같은 게 있었던 모양이다. 그래서인지, 영화 스트리밍 사이트를 수없이 들락날락해도 내가 보는 영화는 한정되어 있었다. 새삼 나 자신이 편협하고 진부한 사람이라고 느껴지지만 어쩌겠는가. 제목도, 장르도 안 끌리고 썸네일조차 끌리지 않는 영화들을 억지로 볼 순 없는 것을.

 

이날 또한 마찬가지로, 추천받은 <그린 북>을 보러 넷플릭스에 접속한 날이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얼마 전까지 분명 있었는데 내가 보려는 날엔 계약이 종료된 것인지 사라진 상태였다. 아쉬움 마음을 머금고 노트북을 닫으려는 찰나, 관련 콘텐츠에 첫 번째로 뜬 <바람을 길들인 풍차 소년>에 눈길이 갔고 미심쩍은 기분으로 재생 버튼을 눌렀다. 그렇게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낯선 영화를 우연히 틀게 된 건, 정말 오랜만이었던 것 같다. 결과적으로, 꽤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기에 나와 같은, 익숙한 영화만 보는 이들에게 <바람을 길들인 풍차 소년>이라는 제목이 눈에 익기 바라며 리뷰를 쓰게 되었다.

 

*

 

<바람을 길들인 풍차 소년>은 2000년대 초반 아프리카 말라위의 열네 살 소년 윌리엄 캄쾀버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이며 2008년 윌리엄이 쓴 회고록을 원작으로 한다. 영화에 대한 소개에 앞서 이해를 돕기 위한 윌리엄의 TED 강연과 넷플릭스 영상을 첨부하니 시청을 권한다.

 

 


 


 

 

2001년, 윌리엄은 넉넉지 않은 형편에도 교육을 중요시하는 부모님으로부터 교복을 선물 받고 설레는 마음으로 중학교에 입학한다. 하지만 배움의 기쁨도 잠시, 홍수와 가뭄으로 인해 수확해 실패한 아버지는 등록금을 마저 낼 경제적 여유가 없어 윌리엄은 학교에서 쫓겨나고 만다. 그러나 과학에 대한 호기심과 배움에 대한 열정이 가득한 윌리엄은 포기하지 않았고 꼼수를 부려 학교 도서실을 이용하게 되는데, 그곳에서 풍차가 표지에 그려진 <에너지 사용>이라는 책을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그 책을 통해 풍차를 이용해 전기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전기가 있으면 모터를 이용해 물을 퍼 올릴 수 있기 때문에 전기의 생산은 가뭄 때문에 생기는 굶주림에서 벗어나게 해줄 해결책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하여, 풍차를 만들기 위해 폐기물 하치장을 며칠이고 뒤지지만 가장 중요한 발전기와 꼭 필요한 아버지의 자전거를 얻지 못한다.


풍력발전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는 아버지에겐 겨우 입에 풀칠만 하며 지내는 상황에서 전 재산과 다름없는 자전거를 달라는 윌리엄이 어리석어 보일 수밖에. 그렇게 부자간의 갈등의 골이 깊어만 가던 와중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누나 애니가 남자친구인 윌리엄의 선생님과 입 하나 덜어주겠다는 편지를 남긴 채 야반도주를 감행한다. 여자가 신부 몸값도 받지 못한 채 남자와 떠나면 나머지 가족에게 치욕으로 여겨졌던 말라위에서 말이다.


한데, 편지만 남긴 것은 아니었다. 누나는 윌리엄이 부탁한 선생님의 발전기도 남기고 떠났다. 머지않아 그간 윌리엄의 간절함을 받아들인 아버지 또한 반신반의한 마음으로 자전거 넘겨주었고 어머니의 응원과 아버지와 마을 사람들의 도움으로 윌리엄은 수일에 걸쳐 풍차 제작에 매진한다.

 

그렇게 완성된 풍차는, 모양새는 엉성하지만 불어오는 바람을 타고 날개가 돌기 시작한다. 지켜보는 나의 가슴까지 두근거리며 자신이 만든 풍차 위에서 하늘을 바라보는 윌리엄의 표정은 못내 위풍당당하다. 풍력으로 충전된 배터리를 통해 양수기의 물이 터져 나와 마을 사람들이 환호할 땐 전율마저 느껴진다. 윌리엄의 열정이 마을에 생명력을 불어넣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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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라고 하지만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았던 영화다. 탄자니아, 모잠비크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농업 국가인 말라위가 내게 생소해서 더욱 그랬을 수도 있지만 2000년대 초반에 전기가 없어 등유로 어둠을 밝히고 가난으로 인해 그마저도 없어 책을 읽을 수 없다는 것은 실로 믿기 어려웠다. 우리는 매일 어떤 에너지를 이용할지 선택할 수 있는 환경에 놓여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때의 말라위를 살아가던 윌리엄에겐 순응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자 간절히 극복하고 싶었던 현실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좋지 않았다. 누군가의 리뷰를 보니 죄책감까지 들었다고 하던데 난 그렇지는 않았던 것 같다. 모든 인간이 같은 환경에서 나고 자랄 수는 없으니 말이다. 그저 자신의 어려운 환경을 비관적으로만 받아들이지 않고, 배우고 공부한 지식으로 고군분투해가며 난관을 극복해 나가는 모습이 대단해 보였다. 척박한 환경 속에선 쉬이 무기력해지니 말이다.


영화에서는 윌리엄의 모습뿐 아니라 아프리카에 들어선 민주주의와 문명에 대한 메시지를 던지려는 듯 보이기도 했다. 민주주의, 글쎄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는 최선의 선택일지 몰라도 말라위의 사람들에게는 윌리엄 아버지의 “민주주의는 수입한 카사바 같아, 빨리 썩지.”라는 대사처럼 나쁜 징조가 아니었나 싶다. 민주주의는 말라위라는 나라에 도입됨과 동시에 부패했고 문명화되지 못한 이들에겐 폭력 그 자체일 뿐이었으니.

 

사람들은 민주주의라는 거대한 시스템이 그들을 구제해주리라 믿고 대통령에게 환호를 보냈지만, 정부는 그들의 대기근을 모른 체했다. 사실, 서구의 경제 체제만 받아들였지 기술력은 갖추지 못했기에 마땅히 해결해 줄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럼 그간 마을도, 정부도 감당할 수 없는 대자연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하늘에 대고 비가 내리게 해달라고 기도하던 선조들의 지혜와 협동이었을 것이다.


윌리엄의 어머니는 “비가 내리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않기로 약속했다. 우리는 현대인이니까.”라고 말했지만, 실질적으로 그들을 살게 한 건 현대 서구의 문명이 아닌, 윌리엄이 풍차를 만들 수 있도록 도운 모든 마을 사람들의 협동이었을 것이다. 어머니의 또 다른 대사 “비를 내려주십사 기도했지만, 우리 조상들은 함께했기 때문에 살아남았어요. 우리는 언제나 함께하나요?”를 보면 알 수 있듯이.

 

*

 

생경한 문화권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다른 관점에서 우리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한편으론 지구상에 유토피아는 존재하지 않으니 갈등의 원인만 다를뿐 모두들 저마다의 어려움을, 각자의 방법으로 이겨내며 살아가는 중이라는 동질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이색적인 재미와 감동이 느껴지는 영화는 아니었지만, 저 먼 곳 말라위의 2001년의 현실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었다.

 

 



[강안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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