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만남과 이별 사이의 얼굴, 김행숙 '이별의 능력' [도서]

글 입력 2020.09.02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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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이 특별한 능력이 필요한 일인가. 이 시집의 제목을 읽고 처음 떠오른 의문이 바로 이것이다. 시집과 동명의 시인 「이별의 능력」에서는 ‘이별의 능력이 최대치에 이르는데’라고 말한다. 왜 이별에 능력이 필요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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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다지 놀라운 이야기는 아니지만, 이별은 순간적인 사건이 아니다. 이별의 순간은 분명히 존재한다. 다른 존재와 더 이상의 교류와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는 시점이 있다. 그러나 전기가 찌릿하듯 이별이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이별을 선언하거나 통보 받는 것보다 헤어짐을 깨닫고 실감하는 것이 이별의 본질에 가까운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별에도 능력이 필요한 것일지 모른다. 「이별의 능력」에서도 ‘하염없이 빨래를 하다가’, ‘하염없이 노래를 부르다가’, ‘하염없이 낮잠을 자다가’ 눈을 뜰 때가 있다고 묘사한다. 새삼스레 이별을 깨닫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야 확신하고 실감하는 과정과 함께 이별의 전조증상들을 찾곤 한다.

 

「모르는 사람」에 ‘아무도 같은 얼굴로 오래 서 있지 않네’라는 구절이 있다. 시간이 지나고 사람들은 달라지고 내가 알았던 사람들이 과연 내가 알던 이들이 맞는지, 나는 그대로인지 알 수가 없어질 때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아는 이름을 부를 수 없’다(「모르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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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의 「무제-완벽한 연인들」의 작품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볼 수 있다. 두 시계가 같은 시간을 보여주지만 두 시계는 배터리 차이로 결국 다른 속도를 갖다가 다른 시간을 가리키게 된다. 이렇듯 완벽하게 같은 박자를 가진 사랑과 만남을 꿈꾸지만, 현실은 그렇게 흘러가지 않는다.

 

이런 ‘엇박자’는 비단 타인과의 관계에서만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자신과도 ‘엇박자’로 지내곤 한다. 이 시집에서는 일상 경험의 ‘찰나’를 아주 섬세하게 표현하고 있다. ‘만남’의 순간, 찰나의 접촉을 그려내는 한편, 만남과 사랑을 ‘얼굴’과 함께 놓음으로써 만남과 이별이 일종의 생경함으로 변화한다.

 

 

얼굴의 몰락

 

전우처럼 함께했던 얼굴은 또 한 명의 전우처럼 도망쳤다. 끝을 모르는 고요한 밤의 살갗 속으로

 

그리고 다시 얼굴이 달라붙을 때의 코는 한없이 옆으로 퍼져 있었다. 귀는 늘어져 늘어져서 이어지는 꿈과 같았다. 비누칠을 해서 꿈을 씻어내도 얼굴의 높이는 돌아오지 않았다

 

콧구멍은 파묻혔다. 냄새가 나지 않는 세계에서 아침식사를 했다. 나는 맑아지고 의심이 없어진다

 

얼굴위로 쏟아지는 햇빛. 햇빛. 햇빛이 비추는 이거리의 닳은 구두코. 신발을 신은 사람들. 늪처럼 발부터 빠진다.

 

 

만남과 이별, 그리고 얼굴이 이 시집에서 자주 등장하는 소재이다. 이 세 가지 서로 시상을 형성하며 시집에서 나타나고 있다고 본다면 만남과 이별이 얼굴과 어떠한 방식으로 관계맺고 있는 것일까.

 

우선 얼굴은 우리와 늘 함께하고 있다. 눈을 뜬 순간부터 잠에 들 때까지 우리는 얼굴과 함께 하기 때문에 너무나 당연한 나머지 그 존재를 느끼지 못한다. 없는 것과 다름이 없다.

 

그렇기에 얼굴에 대한 묘사는 어떤 식이든 낯설다. 그러는 얼굴이 자꾸만 흘러내리고 녹아내리고 잠에서 깨어나도 ‘높이도 돌아오지 않는다.’(「얼굴의 몰락」)는 것은 너무 익숙한 것이 생경해지는 느낌을 서술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낯설음은 인식의 계기가 된다. 그렇게 새삼스럽게 얼굴이 있다고 느낌으로써 얼굴은 제자리를 찾는다.

 

 

검은 해변

 

투시불가능한 피부에 대하여

너는 어떤 가능성으로 도달하는가

너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너는 무슨 표현을 하는가

얼굴을 벗어나는 얼굴은 유령처럼

없는 듯하고

무해하고

놀라운 것이다

 

(후략)

 

 

얼굴은 표정이 드러나는 곳이다. ‘투시 불가능한 피부에 대하여/ 너는 어떤 가능성으로 도달하는가)(’「검은 해변」)에서 엿볼 수 있듯이 개인의 감정은 얼굴에 투사된다. 그렇기 때문에 얼굴을 있다는 것을 느끼는 행위는 자기 자신에 대한 인식으로 이어지고 내면에 대한 이해로 환원된다. 시집에서 무수한 만남과 찰나의 교감을 이야기하지만 결국 그 이야기들은 ‘나’를 향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만남과 이별이라는 타인과의 관계는 서로 얼굴을 마주할 때 가능하다. 타인에게 나의 얼굴은 곧 '나'이다. 자신의 얼굴에 대한 탐색은 타인이 바라보는 나를 고민해보는 것이기도 하고, 자기 자신에 대한 고민이기도 하다. 타인의 얼굴을 탐구하는 것은 그의 감정과 생각을 넘어서 내면의 이야기에 귀기울이는 것으로 이어진다. 만남과 이별, 그리고 얼굴이 한 시집의 테마로 나오는 것은 만남과 사랑과 이별이 모두 서로의 '얼굴'을 바라볼 때 가능하기 때문일 것이라고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이승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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